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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파고 May 06. 2023

엄마가 차려준 술상

지난 설 명절에 다녀간 후로 처음 집에 왔다.
뭐가 그리 바빴는지...

몸이 바빴다기보다는 머리가 바쁘고 마음이 온전치 못했던 것 같다.

이번 주엔 꼭 집에 다녀와야지 하면서도 정작 주말이 되면 일에 밀려 집에 다녀오겠다던 생각을 잊고 말았다.

그러다 예정되었던 업무가 피치 못할 사정으로 밀렸고 한동안 멘붕 상태로 시간을 보내다 다시 로드바이크를 탔다.

그 와중에도 집에 다녀와야 한다는 강박증이 자리 잡고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쉽지 않은 행보였다.

어쩌면 제주도 항공권 가격이 부담스럽게 느껴졌던 걸까?

대개 관광객들과는 달리 하루 일찍 가서 하루 늦게 돌아오거나, 거꾸로 움직이는 편이어서 항상 저렴한 항공편을 이용할 수 있었는데 한동안 그런 가격대에 적응되어 있어서 그런 건지 십만 원이 넘는 티켓 가격에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

5월이니 이번만큼은 꼭 다녀오리라 생각했지만 어린이날이 금요일이라 연휴를 끼고 관광객이 넘칠 거란 생각에 포기하고 말았다.

그렇게 고민만 하던 어느날 6일 토요일 비행기 티켓 중에 매우 저렴한 걸 발견하고 광클릭으로 예매를 해 두었었다.

하지만 돌아오는 항공편이 문제였다.

수시로 항공편을 검색해 봤지만 일요일 티켓 가격은 나를 부담스럽게 했다.

며칠을 고민한 끝에 월요일 아침 시간대 항공편을 예약했고 그렇게 해서 이번엔 기어코 제주에 발을 딛게 됐다.



그런데 황당하게도 5월 5일 공항으로 가다가 공항에 거의 도착할 즘 6일 항공편이란 걸 기억해 냈다.

한심함의 치를 떨며 차를 돌려야 했다.

그 순간 난 그렇지 않아도 제주도 항공편이 기상악화로 결항이 이어지고 있던 참이었기에 어쩌면 다행이었는지도 모른다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그렇게 6일 비행기를 타게 됐는데 오전에 1시간 정도 지연됐다는 메시지를 수신했다.

어쨌든 고생 끝에 비행기를 타고 제주로 향했는데 구름 위를 나는 풍경을 감상하다 비행기 위에 또 구름층이 있다는 걸 볼 수 있었다.

구름 사이를 날고 있었던 거다.



성산에 있는 집에 도착해 차에서 내리는데 도롱뇽 한 마리가 나 때문에 놀랐는지 마당을 후다닥 가로지르는 걸 발견했다.

나를 제일 먼저 반겨준 녀석이다.

그리고 현관문이 열리며 엄마가 환한 웃음으로 나를 반겼다.

거의 반년만인가 싶다. ㅠㅠ

뭐가 그리 바쁘다고...

의지가 부족한 거다.



사진은 촬영하지 않았지만 미리 준비하신 엄마밥상을 허겁지겁 흡입하고 잠시 이런저런 사는 얘기를 나눈 후 부른 배를 두들기다 낚시나 다녀올까 싶어 집을 나섰다.

벵에돔 낚시를 좋아하는 편이지만 비도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고 하여 루어대를 챙겨 볼락이라도 잡아 안주 삼아야 하나 상상하며 나선 거다.

하지만 내게 잡혀 줄 녀석들이 아니다.

이리저리 포인트를 옮겼지만 역시...



집에 돌아와 소주 생각이 나서 편의점에 갔더니 제주맥주 중 초기버전인 제주위트에일 네 캔에 6,000원이란다.

난 내 눈을 의심했고 점원에게 확인 후 8캔을 사가지고 왔는데 집에 와서 보니 7캔이다. ㅋㅋ

한 캔을 놓고 온 거다.

내가 좋아하는 한라산 21이 있으니 상관없다.



마에게 아들 술안주 좀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다.

별 메뉴 없냐며 물었지만 안주할 만한 게 없다더니 박대가 나왔다.

손녀 올 때는 갈치 주시더니 아들은 이렇게 박대하신다.



직접 뜯은 두릅으로 전을 부쳐 주셨고 직접 키운 부추와 역시 직접 잡은 보말로 부추전을 부쳐 주셨다.

제주의 맛인 거다.



박대는 손 큰 엄마에게 수시로 이것저것 얻어먹던 이웃집에서 준 거란다.

엄마의 큰 손은 항상 빛이 난다.

볼락이라도 한두 마리 잡으면 회에다 소주 한잔 하려고 했었지만 맛깔나는 안주들을 보니 보니 뭐 한다고 낚시하러 갔었나 싶다.

엄마밥상도 좋지만 엄마가 만들어준 술안주가 올려진 술상도 좋다.

집에 오면 이렇게 맘이 편한 것을...




내일은 비 맞으며 톳과 미역을 하러 간다.

운 좋으면 소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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