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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추억소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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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파고 May 17. 2023

1982년 어청도 사진을 꺼내다

집에 있는 앨범에서 오래된 사진을 찾아냈다.

까마득히 잊고 있었던 건데 막상 마주치고 보니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꿈틀거렸다.

해군이셨던 아버지는 한 번쯤은 섬에 살아봤으면 한다는 엄마의 소원을 이뤄주기 위해 아무도 원하지 않는 전라북도 소재 서쪽 바다 끝에 있는 외딴섬, 어청도 해군기지에 파견을 요청했다.

아버지의 그런 결정을 아무도 이해하지 못했을 거다.

지금이야 해군기지도 철수했고, 유명 관광지로 거듭난 섬이지만 당시의 어청도는 서쪽 바다 끝단을 지키는 해군기지와 육지에서 멀리 떨어진 바다까지 나온 어선들의 피항지 역할을 하는 섬일 뿐이었다.

1년 6개월 정도 살았던 곳이지만 어청도는 엄마에게도 동생에게도 나에게도 강한 추억을 남겼다.

내 동생은 그 섬에서 물에 빠져 먼바다로 흘러가 죽음에 이를 뻔했던 적도 있다.

어청도의 등대는 지금도 기억 속에 생생한데 얼마나 멋진 곳이었는지 가끔 등대까지 소풍을 가기도 했었다.

당시 섬에는 자동차가 거의 없었던 것 같은데 아마 난 군용 차량을 타고 올라갔던 기억이다.



여긴 어청도항 입구에 있는 등대이고 등대 옆에 선 아버지의 모습이 담겼다.

오늘 이 사진 한 장을 놓고 보니 잊었던 기억들이 조금씩 스쳐간다.

역시 사람은 추억을 곱씹어 먹고사는 동물인가 보다.


그 추억 때문에 고등학교 2학년 때 친구들을 꾀어 서울에서 통일호 기차를 타고 군산까지 가서 그 먼 어청도까지 까만 매연 뿜으며 바다를 가르는 고물 여객선을 타고 대여섯 시간을 갔었던 기억이 난다.

거기서 삼사 일 정도 머물고자 했지만 주의보가 떨어져 이틀을 더 머물어야 했고 가져간 돈이 바닥나서 여비만 남기고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다 돌아왔던 적이 있었다.

이번에 엄마에게 이 사진을 보여드리며 조만간 어청도에 가보면 어떻겠냐고 물었더니 엄마도 흔쾌히 동의하셨다.

내게도 깊은 추억이 남은 곳인데 엄마에겐 얼마나 진한 추억일까?

오죽하면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로 내내 섬이나 바다를 접한 곳에만 사시나 싶다.


* 아침 글쓰기 끝~ 업무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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