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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삼자적 내로남불

'조국 사퇴' 시점에 파울로 코엘료의 <불륜>을 떠올리며

by 루파고

내로남불이라는 단어가 심심치 않게 쓰이는 요즘이다.

검찰은 누구의 편이며, 법무부는 누구의 편인가?

경찰은 누구의 편인가?

정의의 편일까? 약자의 편일까?

그들이 흔히 하는 말처럼 국민의 편이기는 할까?

여기서 간과하면 안 될 것이 있다.

대통령도, 국회의원도, 법관도, 검찰도, 경찰도 모두 국민이다.

언젠가는 그 위치가 위태롭거나 변할 수도 있겠지만 그들의 권력이 문제다.

그렇다고 약자라고 해서 무조건 정의롭고 선할까?

정의, 선, 약자.

그것들의 기준은 모호하다.



너무나도 유명한 <연금술사>를 쓴 파울로 코엘료의 <불륜>이라는 소설이 있다.

마침 내로남불이라는 표현과 딱 맞아떨어지는 <불륜>이라는 소설에서 이런 표현을 했다.


선과 악을 명확히 구분할 수 있는 사람은 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타인의 사건을 두고 로맨스냐, 불륜이냐를 명확히 구분할 수 있을까?

누군가에게 들키지 않았다면 불륜이든 로맨스든 자기 판단에서 끝날 일이다.

그는 불륜을 선과 악이라는 잣대에 비유했지만 어쨌든 타인의 시각에서 본 사건을 기준으로 한다.

나는 선을 그을 수 있는 그 소수에 속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그 소수에 속하는 사람은 대체 어떤 사람일까?

권력을 장악한 사람일까? 목소리가 큰 사람일까?


파울로 코엘료는 <불륜>에서 이런 표현을 자주 썼다.


어떻게든 되겠지!


조국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그래, 적응되면 뭐든 어떻게 되든 버텨볼 수 있다.

시간이 흐르면 망각할 것이고 아무리 복잡한 일이라도 어떻게든 될 거니까!

하지만 국민은 어떻게든 될 거라 생각하고 수수방관하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최선을 다 하지 않으면 하지 않은 것과 다르지 않다고 한다.

또한, 행동하지 않는 생각은 죽은 생각이라고도 한다.

행동이란 대체 무엇이기나 할까?

잘못된 방향인지도 모르고 열심히 한다는 게 가장 큰 문제일 수도 있다고 하는데 길잡이는 제대로 하는 걸까?

두 패로 갈라진 집단 안에서도 개인들은 각기 생각의 차이는 분명히 있을 것이다.

어쩌면 옳고 그름이란 것은 명확히 이분화할 수 없을 수도 있다.


나한테는 편식하지 말라면서 아빠는 왜 편식해?
무단횡단은 나쁜 거라면서 아빠는 왜 하는 거야?
지각하지 말라면서 아빠는 왜 항상 늦게 들어와?
아빠는 할머니 말 하나도 안 들으면서 왜 나한테만 엄마 말 잘 들으라고 해?


마지막으로 아이가 했던 말들을 끄집어 본다.

바른 훈육이라 생각하고 아이에게 조언했던 것인데 내 불찰이 보였으니 나의 말에 어떤 신뢰가 갈까?

타인의 행실을 두고 그토록 날카롭게 질타했던 조국, 그를 두고 신뢰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내로남불이라는 표현이 전혀 아깝지 않은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타인을 비방할 때는 입술만 열면 되니 매우 쉬운 일이었겠지만 같은 비방이 나를 겨눌 땐 이미 주워 담기 힘든 일이라는 것을 깨우쳤을 것이다.

문제는 이게 조국만의 일이 아니라는 게 통탄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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