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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파고 Jun 11. 2023

50. 태기산 넘어 금당계곡을 품에 안고 성목재를 넘다

비소식이 뜨거웠다.

며칠 전부터 친구들을 따라가기로 했던 태기산 라이딩인데 비소식이 안절부절못하게 만들었다.

주말엔 딱히 업무도 없고(당연한 건데 뭐라도 안 하면 불안한 캐릭터) 해서 전날 근처에 가서 캠핑하며 글도 쓰고 나름의 소일거리를 꾀했는데...



텐트를 치고 맥주 한 캔을 까고 풍경을 느끼려는데 서쪽 하늘이 심상치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몇 분도 채 지나지 않아 천둥소리가 들리기 시작했고 빠른 속도로 가까워졌다.

게다가 번쩍거리는 게 캠핑을 해도 되나 싶을 정도였다.

빠른 속도로 단조팩을 깊이 박은 후 타프를 치고, 좁은 타프 안에 살림들을 구겨 넣었다.

내가 준비를 마치기만을 기다렸던 것인지 바로 강풍이 불며 빗방울이 옆으로 쏟아져 들었다.

하는 수 없이 짐들을 챙겨 텐트 안에 던져 넣고 내 몸도 던졌다.

히말라야도 아닌데 텐트가 요동쳤다.

내게 이런 정도의 악천후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캠핑이고 뭐고 계획했던 그림은 몽땅 지워지고 말았다.

문제는 다음날 상황이었다.

나는 대충 굴러다니다 돌아가면 그만이지만 새벽부터 길을 나설 사람들은 헛걸음을 하게 될지도 모르는 상황이니까.

나는 실시간으로 상황을 공유했다.




다음날 새벽 5시까지도 비는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6시쯤 되자 이슬비처럼 비는 가늘어졌고 하늘이 조금씩 개는 게 보였다.

텐트를 정리하고 나설 때쯤 되자 하늘에 푸른빛이 돌고 구름이 사라지고 있었다.



태기산을 내려가며 도로 상황을 보니 밤새 내린 비 때문에 노견에 쌓였던 날카로운 돌은 물론 낙엽과 온갖 쓰레기들이 도로를 점령하고 있었다.

다운힐 때 조심하라고 공유해 놓고 난 출발 지점으로 향했다.



남는 건 사진뿐이라며 사진에 열심인 친구들... ㅋㅋ


이번 라이딩엔 고프로도 안 챙겼고, 사진도 별로 촬영하지 않았다.

태기산 코스를 다녀오기도 했었고 딱히 매력이 없다고 생각했었던가 보다.

하지만 금당계곡을 벗어나는 순간 생각이 바뀌었고 사진을 남기지 않은 게 후회스러웠다.

나름 변명이랄 수 있는 게 있다면 비 온 후라 물이 탁해서라고...



금당계곡은 차로 많이 다닌 곳인데 자전거로는 처음이다.

그래서인지 느낌이 생소했다.

평창 일대는 손바닥처럼 알고 있을 정도로 엄청 돌아다녔었는데 이참에 자전거로 다녀볼 생각도 했다.



성목재를 오르는 길에 맑은 계곡을 만나 잠시 발을 담그고 왔다.

혼자 다닐 땐 쉬는 것도 귀찮고, 먹는 것도 귀찮아서 100Km는 무정차로 다닐 정도라 이런 여유라도 챙길 수 있는 라이딩이 좋긴 하더라.



사실 사진은 많지만 더러운 나의 몸을 노출해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거나 하는 일이 발생하는 안 되는 걸 알기에 거의 풍경 사진만 올리는 편이다.

내 몸을 본 사람들은 식음을 전폐하고, 자전거 타는 사람들을 죄다 폄훼하게 될 것이며, 쫄쫄이를 입고 다니는 지인들에게 손가락질을 하게 될 게 분명하니까 말이다.

오늘 나와 비슷한 체구를 보유한 몇 분들과 같은 의견을 공유했다.

그래도 건강하기만 하면 됐지 뭐!

우린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이며 산다.


짧은 라이딩이었지만 2시에 예보된 비를 피해 잘 타고 아무런 사고 없이 돌아왔다.

오늘 이해했는데 그걸 '무복'이라 한다더라.

'무사 복귀'

난 왜 이런 줄임 표현을 잘 모르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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