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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파고 Jul 03. 2023

30년 맛집, 107탄-부산온천동 伯客到

부산사람이라면 모르는 이 없다는 바로 그곳에 다녀오다

외지인인 나로서는 황당한 발견이 아닐 수 없었다.

자전거를 타고 금정산 만덕고개를 오르는 길에 우연히 마주친 간판, 伯客到 (백객도)

노란 아크릴 패널 위에 양각 아크릴을 붙인 '백객도'라는 상호가 너무 멋졌고, 부연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오래된 식당이란 걸 증명하는 요소가 넘쳐났다.

난 자전거를 멈추고 식당 외관 사진을 찍었는데 마침 문이 열리며 할아버지 한 분이 식당 안으로 들어가시는 걸 목격했고 다음에 꼭 찾아오리라는 다짐을 하고 자리를 떴다.


伯 맏 백

客 손님 객

到 이를 도


어느 로거의 글에서 '백 명의 손님에 이른다'는 해석이 있던데 <伯>자를 잘못 이해한 것 같다.

아무리 봐도 이해할 수 없는 간판인데...

나름의 추리를 해보니 이런 게 아닐까 한다.


첫 손님을 맞는 마음으로...


이를테면 '초심'을 다르게 표현한 철학적인 상호가 아닐까 싶다.

수십 년이 지난 오늘도 처음 그 때처럼 같은 요리를 내는 주인장의 마음이랄까?

라이딩을 마치고 이 중국집이 너무 궁금하여 인터넷을 검색했더니 명실공히 부산 명물 노포식당으로 엄청나게 유명한 식당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백부 할 때 '백'이라는 개념으로 보면 '큰 손님이 오실 거다'는 해석도 있더라.



그날 촬영한 사진이다.



그러고도 무려 한 달이 지난 시점에야 식당을 찾아갔는데 11시부터 오후 2시까지만 운영하는 백객도는 30분 대기는 기본 중에 기본이라고 했다.

11시 전에 도착하려고 했지만 결정이 늦어 11시 10분에 도착했고, 벌써 대기줄이 있는 걸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가본 사람은 알겠지만 백객도가 위치한 장소는 자차나 택시 아닌 이상 갈 수 없는 후미진 곳이다.

지금은 금정마을이라고 바뀌었다는데 여기도 금정산 자락의 산성마을이라고 한다.

만덕고개 등산로에 진입하는 길목인 셈이다.



예상이야 했지만 역시 식당 내부는 그리 넓지 않았다.

룸 안에도 테이블이 하나 있는 듯하고, 4인석 테이블 4개, 원탁테이블이 하나 있었다.

벌써 자리는 꽉 찼고 주문한 음식이 나오기만 기다리고들 있었다.

우리 뒤로도 대기줄이 이어지기 시작했다.



화요일엔 영업을 하지 않는다고~



방금 자리가 채워져서 그런지 손님들이 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우린 5명이라 원형 테이블이 가장 유력한 후보였다.

손님들 식사하는 걸 구경 아닌 구경을 하며 무려 30분 정도를 기다려야 했고, 11시 30분 정도 되어 원했던 원형 테이블이 비워지기 시작했다.

손님들은 알아서 그릇을 치워 주방 앞으로 갖다 놓았고 테이블을 닦았다.

알아서 계산을 하고 주인은 손님이 얼마를 놓고 가는지 신경도 쓰지 않는다.

재밌는 풍경이다.



드디어 손님이 비운 자리를 우리가 차지했고 주방 모습을 살짝 촬영해 봤다.

배달 같은 건 하지 않는 백객도는 부산사람들의 오랜 추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고 한다.

맛집 백과사전, 설 모씨에 따르면 백객도의 맛은 십 년 전이나, 이십 년 전이나, 삼십 년 전이나, 그 전이나 한결같다고 했다.

주방에서 요리를 하시는 할아버지의 손놀림을 보니 기력이 많이 떨어져 보였다.

모르긴 해도 웍과 형 국자를 힘차게 휘두르던 시절이 있었을 건데 백객도 식당과 함께 늙어가는 듯하다.

하루 세 시간 영업도 앞으론 더 줄여지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메뉴판이다.

백객도에서는 꼭 간짜장과 볶음밥을 같이 먹어야 한다기에 그런가 보다 했는데 두 개 메뉴를 합쳐도 1만 원밖에 안 한다.

재밌는 건 일반 짜장면과 간짜장 가격이 같다.

더 재밌는 건 짜장면과 볶음밥 가격이 같다.

여기서 제일 비싼 메뉴가 탕수육인데 2만 원이다.

요즘 어디서 이런 가격의 중국집을 또 만날 수 있기나 할까?



before & after

11시 10분에 도착해 웨이팅을 시작했고,

11시 30분에 자리를 잡았고,

11시 45분에 주문을 받았고,

12시가 다 되어 메뉴가 차려졌다.


* 주문을 하겠다고 덤비지 말라! 혼난다! 주문받으러 올 때까지 묵묵히 기다려야 한다!



허~ 참~

딱히 정성스러움은 보이지 않는데 왜 맛있어 보이는 건지...

방금 먹고 왔는데 사진으로 보니 또 느낌이 다르다.

반숙으로 튀겨진 계란이 맛깔스럽다.



간짜장 내용물은 사실 별 거 없다.

양파와 돼지고기 두 가지뿐!

여기에 춘장과 기름, 설탕, 전분 외엔 딱히 들어간 게 없을 것 같은데 묘하게 옛날 맛 그 자체다.

하긴, 옛날 짜장면에 그 외의 것이 들어가는 더 이상한 일이니 수십 년 동안 한결같은 맛을 유지하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이게 5천 원이라는 게 놀라운 일인 거다.



말 그대로 옛날 짜장면 그 자체다.

보통 사이즈인데 여느 중국집 곱빼기와 중간 정도의 양이다.

말이야 바른말이지 사실은 이게 옛날 보통 사이즈가 맞지 싶다.

요즘 가격은 가격대로 올리면서 양은 엄청 줄인 중국집 음식들은 반성 좀 해야 할 거다.



이번엔 볶음밥이다.

좌우로 돌려 한 컷씩 찍어 봤는데 별 의미 없다. ㅎ

이것도 옛날 스타일 그대로의 볶음밥이란다.

밥알이 따로 놀기 일보직전 수준의 까끌거리는 밥에 기름으로 야채와 돼지고기를 볶은 거다.

짜장은 좀 짠 느낌인데 우린 간짜장에 밥을 비벼 먹었다.

아마 이게 공식 아닌가 싶다.



대기줄을 타면서 앞 손님들이 짬뽕 국물을 드시는 걸 봐서 짬뽕을 주문하지 않았었는데 왜 우린 안 주나 했더니 한 사람이라도 짬뽕을 주문했다면 그리 했을 거라고 했다.

맛은 보고 왔어야 하는데 안타깝다.



5천 원짜리 볶음밥 치고 대단한 거 아닐까?



볶음밥!

대단한 맛이라기보다는 추억의 맛이다.

어린 시절, 아빠의 월급봉투가 엄마 손에 쥐어지던 날, 온 가족이 함께 중국집으로 향하던 힘찬 발걸음이 기억나는 것 같다.

아마 그 당시 그 맛의 깊은 추억을 백객도가 이어주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식사가 끝난 후 우리도 자진해서 테이블을 정리하고 나왔다.

이건 백객도의 규정이니 필히 거쳐야 한다.


* 항간에 백객도는 시한제 맛집이라고들 한다. 할아버지의 손맛을 언제까지 맛볼 수 있을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으니 안타깝기만 하다. 대기 중에 진주의 유명한 당근김밥도 할머니가 아프셔서 6월 부로 폐업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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