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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파고 Aug 08. 2023

15년 만에 가본 설악산 오색-천불동 코스

여름휴가 내내 자전거를 타다가 문득 설악산 등산이 당겼다.

설악산에서 잔 날만 계산해도 무려 반년이나 될 정도로 산에 미쳐 살았던 시절이 있었다.

잊을 수 없는 사고 이후로 산을 멀리하기 시작했고 다른 레저로 눈을 돌린 후론 딱히 산을 찾지 않았는데 이상하게 산이 나를 부르는 것만 같았다.

산행을 예상한 것도 아니기에 차엔 배낭은 물론 등산을 위한 장비라곤 아무것도 없었다.

다행히 한 번만 신고 버릴 생각으로 차에 던져두었던 오래된 등산화 한 켤레가 있었는데 어쩌면 그게 설악산행을 향한 불씨가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난 새벽 4시에 일어나 최대한 간편한 차림으로 후다닥 산행을 마칠 요량으로 채비를 하고...

반바지 차림에 자전거용 물통 하나를 손에 들고 주머니엔 마그네슘, 포도당캔디, 파워겔 하나 달랑 넣고 오색으로 향했다.



한계령 근처로 가니 이미 먼동이 트고 있었다.

이미 예상했던 출발시간을 넘겼지만 풍경이 아쉬워 사진 몇 장을 남겼다.



유명한 관광지 중 하나였던 오색은 전과 달리 상권이 무너져 있었다.

이른 시간이라 사람은 거의 보이지 않았고 불법주차 현수막이 무색해 보였다.

적당한 장소를 찾아 주차를 하고 오색 등산로 입구로 가니 등산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몇 명 입구를 서성거리고 있었다.

오색의 새벽, 산행의 시작 시점엔 알 수 없는 초조함과 부푼 기대가 공존하고 있었다.



약 이십 년 전 겨울, 기껏 이 지점에서 산행을 포기하고 내려갔던 친구 녀석이 기억났다.

그렇게 오래된 기억인데 바위를 보니 어제 일처럼 또렷하게 떠오른 게 신기했다.



누군가 등산용 스틱 일부를 버리고 갔다.

실수로 떨어뜨렸다고 볼 순 없는 상태였는데 꼭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었다.

나중에 이 사진을 보니 어쩌면 나의 무모한 산행을 예고하고 있었던 것인가 싶었다.



오색 코스의 중간 정도 지점에 있는 설악폭포를 지나 첫 번째 휴식을 가졌다.

너무 미친 듯이 오른 걸까?

근육이 땅기는 느낌이 들었다.

아무리 한동안 등산을 하지 않았다 해도 100리터 배낭을 메고도 날아다니던 난데, 배낭도 없이 맨몸으로 오르는 산에서 버거움을 느끼는 게 한심하게 느껴졌다.

누가 앞질러 가도 아무런 상관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경주를 하는 것도 아님에도 불구하고...

나는 사람들을 제치고 오르는 재미에 거의 뛰다시피 오르고 있었던 거다.



사람을 겁내지 않는 다람쥐 한 마리가 내 주위를 배회하고 있었다.

뭐라도 먹을 걸 줄까 싶었던 모양인데 딱히 줄 만한 게 없어 사진만 남겨 주었다.

오래전 희운각대피소에서 손바닥의 쌀을 먹으려 내 손에 올라탄 다람쥐를 촬영한 사진이 어딘가 있었던 기억이 났다.



대청을 향하며 촬영한 몇 장의 사진이다.

역시 자연은 위대하다.



대청을 코앞에 두고 다리 근육이 털리는 느낌이 들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닌데...

15년 만에 찾은 설악산이라지만, 등산용 근육은 소실되고 자전거 타는 근육만 키운 셈이라지만 기껏 오색 코스 좀 올랐다고 이럴 수는 없는 거다.

어쨌건 정상까진 기껏 500미터 정도 남았으니 고생은 끝이라고 생각했다.



다리 근육이 털렸지만 대청은 코 앞, 이 근처에 벙커로 된 대청대피소가 있었던 기억이 났다.

겨울 등반 때 라면을 끓여 먹던 사진이 어디 굴러다니고 있을 거다.



1708

이 얼마나 반가운 대청봉이던가?

실측 후 1707미터가 나왔다는 설도 있었는데 어쨌거나 설악산은 공식적으로 1708미터이다.

바람이 어찌나 센지 제대로 서 있을 수조차 없을 정도였는데 덕분에 8월의 무더위는 온데간데없었다.

구름 아래 거센 바람 때문에 저체온증을 걱정해야 할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대청에서 주변 사진을 몇 장 남기고 하산을 시작했다.

이제 내려갈 일만 남았으니 고민할 게 없었다.

유유자적 풍경을 감상하며 천불동계곡을 즐기면 될 일이다.



대청봉에 자란 초롱꽃이 예뻐 사진을 남겼다.

강풍에도 불구하고 꽃이 떨어지지 않은 게 신기할 지경이었다.



기상관측소가 있는 중청과 그 아래 위치한 중청대피소가 보인다.

추억이 많은 곳이다.



소청봉에 서니 수렴동계곡, 서북주능선 쪽으로 가는 갈림길을 만났다.

서북주능선은 여름이나 겨울이나 참 힘겨웠던 코스였는데 언젠가 다시 가볼 생각이다.

이젠 등반장비까지 가득 채운 무거운 배낭을 지고 다닐 일이 없어졌으니 얼마나 가뿐한 산행인가...



소청에서 바라본 중청과 대청이다.

멀리 용아장성, 공룡능선, 울산바위 등 설악산의 명물들이 한눈에 보인다.



희운각대피소는 건물을 새로 지었다.

500미리 물통에 있던 물은 다 마신 상황이라 희운각대피소에서 2리터 생수 한 통을 3,000원에 구입해 물통에 채운 후 남은 물을 몸에도 채웠다.

예전엔 계곡물을 그냥 먹었는데 언제부터인지 생수에 길들여진 모양이다.

그렇게 채우고도 절반 정도 남았는데 내려가는 길에 물이 필요한 사람이 있으면 나눠줄 생각으로 물통을 손에 쥐고 가기로 했다.

대피소에서 생수를 구입하며 공단 직원인 구조대원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는데 98년도 토황성폭포 경북대 산악부 조난사고 얘기까지 나왔다.

당시 나도 구조에 참여했었는데 폭설이 내리던 날, 나는 죽음의계곡에서 탈출하고 있었다.



무너미고개에 설치된 안내판이다.

너무 디테일하게 설명이 되어 있어 신기할 정도였다.

공룡능선에서 내려오던 동남아인 사진작가들을 만나 생수를 나눠주고도 꽤 남았다.

마음 같아서는 공룡능선을 타고 싶었지만 천불동계곡으로 하산하기를 너무 잘했다.

내 몸의 상태로는 아마 조난당했을 가능성이 크다.


내가 이 표지판에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가 있었다.

하산하는 동안 근육이 피곤할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게 오판이었다는 걸 인지한 것이다.

내 몸이 쓰레기가 된 거라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로 다리 근육에 힘이 빠져나가고 있었다.

난 자전거 탈 때도 잘 먹지 않던 에너지겔과 마그네슘, 포도당 캔디를 몽땅 털어 넣었다.

아직 갈 길이 먼데 벌써 이러면 큰일이었다.



죽음의계곡 초입부를 지나 양폭대피소(예전엔 양폭산장이라 불렀다)까지 오는 길, 난 근육에 힘이 거의 빠져나갔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쥐가 나거나 한 게 아니었다.

미침 양폭대피소에 구급약품을 제공하고 있어서 근육통증을 완화시켜 주는 물파스를 잔뜩 발랐는데 전혀 효과가 없었다.

저질 체력으로 인한 상황인 것이다.

98년 폭설 때, 죽음의계곡에서 양폭대피소까지 딱 하루 걸렸던 기억이 났다.



잦은바위골 입구를 지나며 겨울만 되면 잦은바위골 오십폭, 백폭, 토막골 형제폭을 오르내리던 옛 기억이 또렷하게 떠올랐다.

참 세월 많이 흘렀구나 싶었다.


한창때만 해도 죽음의계곡에서 비선대까지 한 시간 반이면 뛰어내려 갔었는데 이번엔 무려 네 시간이나 걸렸다.

가다 쉬다, 가다 쉬다를 반복하며 귀면암 근처에선 두 다리로 중심조차 잡을 수 없는 지경이 되어 부러진 나무를 주워 지팡이 삼아 기다시피 내려와야 했다.

내 근육질 덩치를 보며 지나치는 사람들 중 누구도 내게 상황을 물어보는 사람이 없었다.

너무 튼튼해 보이는 것도 문제다.

가지고 내려오던 생수는 몽땅 마셨고 페트병을 구겨 최대한 작게 만든 후 챙겨서 내려왔다.

몸이 힘드니 그것도 걸리적거려 힘들게 했지만 산쟁이 출신인 내가 산에 흔적을 남길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싶어 죽기 살기로 챙겨 왔다.

내려오는 길에 물놀이를 하는 사람들의 모습에 유혹이 되어 두 번이나 계곡물에 근육을 풀었지만 상태는 전혀 호전되지 않았다.



비선대 입구에는 이렇게 등산 통제소가 생겼다.



난 비선대의 매점을 기대하며 내려왔건만, 비선대의 건물들은 모두 철거되고 없었다.

알고 있었는데 잊고 있었던 거다.

탄산 가득한 콜라를 잔뜩 기대했었는데 탄산처럼 사라지고 없었다.



비선대에서 본 적벽과 장군봉이다.

예전엔 이 뜨거운 땡볕에 어떻게 저런 벽에 붙어살았나 싶었다.

적벽에서 삼십 미터 정도 추락해서 오버행에 대롱대롱 매달렸다가 간신히 벽에 붙었던 아찔한 기억도 났다.



와선대는 비선대보다 훨씬 오래전에 철거됐다.

와선대에서 먹던 감자전과 동동주가 정말 좋았는데 아쉽긴 하다.



여긴 군량장이라고 볼더링을 하던 곳인데 요즘은 볼더링을 하는 사람이 없는 모양이다.

녹이 난 구형 볼트도 아직 걸려 있는 걸 보니 감회가 새롭다.



평지를 걷는 것도 힘들다.

저항령계곡과 멀리 저항령도 한눈에 보였다.

저항령계곡은 산쟁이들의 야영지로 유명했던 곳이다.



체력은 남아나는데 근육만 털린 상태로 어그적 어그적 발을 땅에 질질 끌다시피 걸으며 드디어 신흥사에 도착했다.

권금성산장을 옆에 끼고 나머지 일 킬로미터 정도를 더 걸어야 한다.



소공원도 정비되어 옛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제일 먼저 눈에 띈 매점에 들러 식혜와 콜라를 구입해 거의 원샷에 마셔버리고 말았다.

사진은 뒷전이다.

꿈에도 그리던 콜라 아니던가!



소공원 입구에서 버스정류장까지 가는 길도 버거울 정도였다.

7-1번 버스가 출발하는 게 코 앞에 보였지만 그냥 구경만 해야 했다.

걷는 것도 힘든 상황이라 뛴다는 행위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었으니까 말이다.

십여 분을 기다려 다음 버스를 타고 대포항으로 향했다.

대포항에서 양양을 거쳐 오색으로 돌아가야 하니까 말이다.



대포항에 도착해서 음료수를 구입하려 편의점에 들렀는데 카카오맵에서 안내하던 것보다 좋은 정보를 알게 됐다.

대포항에서 오색으로 가는 시외버스가 있다는 것이다.

생각해 보니 속초-동서울 간 시외버스를 타면 오색에 정차한다.

마침 10분 후면 버스가 온다고 하여 4500원에 티켓을 끊고 얼음컵에 커피를 부어 후다닥 마신 후 버스를 기다렸지만 무려 20분이나 늦게 도착했다.

9번 버스를 타고 양양까지 가서 마을버스를 타고 오색까지 가는 것보다는 편한 상황이라 불만 같은 건 없다.

등산화 상태를 보니 버릴 때가 한참 지났다.

이걸 여태 갖고 있었다는 게 신기할 정도...

만약 이거라도 없었다면 설악산 등산을 했을까?

그랬다면 이런 고생은 하지 않았을 텐데...

하지만 이번 등산은 나에게 다시 산쟁이의 심지에 불을 댕기고 말았다.

이 좋은 등산을 왜 잊고 있었던 걸까?





나의 캠핑 사이트로 돌아와 설악산 명주 중 하나인 산더덕막걸리를 사다 계곡에 던져두고 하염없이 마셨다.

알코올로도 나의 근육은 재생되지 않았고 삼일이나 지난 지금도 다리는 아직 그 모양 그 꼴이다.

다시 산에 갈 수 있을까?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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