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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파고 Aug 10. 2023

55. 진부령 넘어 동해바다를 타고 다시 한계령을 넘다

당일치기 설악산 산행을 제외하면 이번 여름휴가 기간에는 거의 자전거만 탔다.

서울에서 친구들과 자전거를 타다가 잠시 외곽으로 빠져 캠핑을 하며 낮에는 자전거를 타고 밤에는 혼술을 즐기며 휴가를 보낸 거다.

나에게 설악산은 마음의 고향과도 같은 곳이다.

지인들이 내게 역마살이 끼었다고 말할 정도로 가만히 있는 걸 싫어하는 편이라 휴가기간에 멍청하게 시간 때우는 짓을 할 수 없었던 거다.

그리고 자전거를 타고 다니면 딱히 지출도 없어서 절약형 휴가를 보낼 수 있다.

이번엔 인제 용대리에 캠핑사이트를 마련하고 아침 일찍 진부령을 향했다.

원래 계획으로는 4시에 기상해서 5시 전에 출발하는 것이었는데 전날의 과음으로 말미암아 한 시간 정도 지체되고 말았다.

역시 공기 좋은 곳에서 마시니 과음에도 불구하고 개운하기 그지없다.



출발부터 안개가 자욱하다.

새벽에 안개가 심하다는 건 일교차가 크다는 걸 반증하는 거다.

대낮의 땡볕이 벌써부터 우려되는 상황이다.



고성 알프스 스키장의 폐장으로 인근 스키숍과 식당들이 폐허가 되어 있다.

몇몇 식당들은 간간히 영업을 하고 있는데, 올라가다 보니 군부대였던 자리도 텅텅 비어 있었다.

군인 상대로 영업을 하던 사람들에겐 허망한 일이 아닐 수 없었을 거다.



정상엔 박물관과 식당 몇 곳이 있는데 이른 시간이라 나 외엔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일 년에 방문객이 몇 명이나 될까?

알프스 스키장의 오래된 건물은 청년 예술가들을 위한 곳으로 재개발하겠다는 계획이 있던 것 같은데 제대로 되려나 모르겠다.



용대리에서 진부령까지는 별 어려움 없이 올라왔다.

거리도 짧고 경사도 약한 편이다.

이제 긴 다운힐이 남았고, 설악산을 넘는 일이 관건이다.

반대 방향에서 올라오는 게 어려운 코스인 것 같다.



여기까지 진부령 모습이다.

진부령에 올라서고 보니 뜨거운 태양이 천지를 달구기 시작한 것을 알 수 있었다.

라이딩을 빨리 끝내야 할 텐데...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한계령을 넘지 말고 미시령으로 넘으면 오전에 라이딩을 끝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긴 다운힐이다.

이렇게 긴 다운힐을 거꾸로 올라올 생각을 하니 까마득하다.

힘들게 페달을 밟지 않아도 되는 다운힐에도 불구하고 허리와 손이 아파서 잠시 쉬어 갔다.



계곡을 빠져나오니 이젠 응달은 사라지고 땡볕 아래 놓일 처지가 됐다.

아직 아침 햇살이라 다행이긴 한데 빛이 강하다.



고성군청 근처다.

여기서부터는 최대한 동해바다 쪽으로 붙어 자전거도로를 타고 양양까지 가야 한다.



개천을 건너며 사진을 남겼다.

바다, 계곡, 강, 산을 모두 즐길 수 있는 동해야 말로 진짜 무릉도원 아닌가 싶었다.



해가 빠른 속도로 높아지고 있었다.

파란 하늘에 뜨거운 빛을 뿜는 태양을 보면서 최대한 빨리 라이딩을 마쳐야 한다는 강박증이 일었다.

역시 여름에 라이딩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여기까지 오면서 자전거 타는 사람을 한 명도 마주치지 못했다.



가진항과 송지호를 거쳐 삼포 쪽으로 넘어가는 구간이다.

바다 앞에 죽도가 보인다.

이른 시간이라 해수욕장엔 사람들이 많지 않다.

한낮이면 많은 사람들이 해수욕장을 가득 메울까?



아야진 해변에도 비치파라솔이 잔뜩이다.



아야진항을 지나면 잠시 자전거도로가 끊겨 있다.



자전거도로가 끊겨 자전거를 들고 계단을 올라가니 청간정이 나타났다.

청간정에서 처음으로 라이더를 한 명 만났다.

삼척에서부터 올라오는 중이라는 장년의 라이더이다.

중간에 1박을 하고 올라오는 중이라는데 전날의 뜨거운 땡볕에도 불구하고 라이딩을 하다니... 대단한 분이다.

바닷바람 덕에 조금은 시원한 느낌이겠지만 말이다.



봉포항을 지나 청간정콘도 옆으로 난 길로 접어든다.

좀 헷갈리는 구간이긴 한데 청간정콘도는 원래 군인용 숙박시설이었는데 해변까지 개방된 상황이다.

예전에 업무 때문에 다녀온 적이 있었는데 군인들 전용으로 쓰기엔 좀 아까운 곳 아닌가 싶었던 곳이다.



장사항 쪽으로 접어들면 이제 진짜 속초에 도착한 것을 느낄 수 있다.

바다 반대편은 영랑호인데 보이진 않는다.



아바이마을에서부터 이어지는 교량 옆으로 자전거길이 있다.

미시령을 동에서 서로, 서에서 동으로 두 번 자전거를 타고 몇 번 와본 곳이라 그럴까?

익숙하게 느껴지는 건 뭔지...



청초호 안쪽 모습이다.

멀리 설악산이 보인다.

교량 위에서 사진을 촬영하고 있는 라이더 두 명을 봤다.

더운 여름이라지만 휴가를 내서 자전거를 타러 온 사람들이 없진 않은 모양이었다.



빠르게 속초 시내를 지나다 보니 어느새 속초해수욕장은 순식간에 지나쳐 버렸고 완전히 변해버린 대포항을 만날 수 있었다.

한동안 대포항에 가질 않았으니 이렇게 변한 걸 알 수 없었다.

십 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더니 대포항도 세월을 거스를 수는 없는 모양이다.



정암해변은 약 이십여 년 전만 해도 민간에 개방되지 않은 구간이었다.

몇 년 전 겨울, 강릉에서 속초까지 자전거를 타고 올라올 땐 느끼지 못했던 운치가 있었다.

동해안을 옆으로 끼고 달리는 7번 국도를 달리다 보면 철책이 길게 이어져 있었는데 지금은 자전거도로까지 조성되어 있다.



낙산에서 양양남대천으로 접어들면 이런 풍경이 펼쳐진다.

이젠 바다와는 이별이다.

한계령을 넘어 다시 용대리까지 가는 구간인데, 벌써 11시가 다 되어가는 상황.

햇빛은 나를 잡아먹으려는지 뙤약볕이 머리 위에서 직선으로 쏘아 댄다.



한계령 쪽으로 접어들면 식당이 거의 없기 때문에 양양시장의 노포식당인 선흥식당을 찾아갔다.

지체하면 더위와의 싸움이 길어지겠지만 아침도 먹지 않고 달리고 있는데 점심마저 거른다면 긴 한계령을 넘다가 배고파서 쓰러질지도 모를 일이라 챙겨 먹기로 했다.

https://brunch.co.kr/@northalps/2364

다녀와서 쓴 후기다.



맛나게 점심을 먹고 설악산의 품으로 접어들기 시작했다.

한계령은 미시령과 달리 차량 소통이 꽤 있어서 조금은 위험한 감이 없지 않지만 일부 구간은 구도로를 탈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한계령 도로를 안 탄 지가 꽤 오래되었는지 길도 가물가물했다.



오색으로 가는 길이 이렇게 멀었던가?

경사는 그리 세진 않지만 길어도 너무 길다.

미시령 넘을 땐 이렇게 지루하거나 하지 않은데 한계령길은 징그럽게 길게만 느껴졌다.



드디어 오색이다.

한 시간은 달린 느낌이다.

오색 입구에 있는 편의점에서 콜라 하나를 사서 마신 후, 얼린 생수를 한 통 사서 져지 안에 품고 달리기 시작했다.

이제 본격 업힐인가?



도중에 계곡물이 너무 맑아...

그런 핑계로 잠시 쉬어간다.

장마가 지난 후 며칠 동안 소나기도 내리지 않아서 그런지 물이 맑디 맑다.

맘 같아선 계곡 안으로 들어가 발 담그며 쉬고 싶었지만 더 더워지기 전에 라이딩을 끝낸 후 시원한 맥주 한 잔 마시는 걸로 목표를 두고 달렸다.



마지막으로 흘림골 입구에서 한 번 더 쉬었다.

고도를 높이면서 더위는 한풀 꺾인 듯했지만 뜨거운 땡볕은 여전했다.

징그럽게 더운 날, 내 머리 위엔 구름도 도와주지 않았다.

바람도 안 불고... ㅠㅠ



그런데 가도 가도 끝이 없다.

한계령이 이렇게 길었던가?

좌우 구불, 우로 구불할 때마다 도로가 보이는데 언제 저 길을 올라가나 싶었다.

업힐 때문에 힘들다기보다는 더위와의 한판 승부였다.

그늘을 찾아 잠시 쉬어가기로 했는데 해발 818M이다.



멀리 한계령이 보이는 지점에서 사진을 남겼다.

900M 지점이다.

경사는 8~10% 정도 되는 것 같다.



드디어 고생은 끝이 났다.

한계령은 해발 920M란다.

이제 업힐 같은 업힐은 사실상 끝이 난 거라고 봐도 된다.



한계령에 사람이 많다.

미시령휴게소는 미시령터널이 생긴 후로 폐업하고 철거까지 했는데 한계령은 아직 한창이다.

여기도 터널이 생긴다면 비슷한 결과를 맞을 거다.

그런 일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얼린 생수는 나의 체온으로 거의 다 녹았다.

마지막 얼음은 생수병 입구로 나올 정도가 되어 입 안에 넣고 살살 녹여 먹었다.

업힐의 끝에 나름 괜찮은 선물이 됐다.



다운힐을 시작하기 전 사진 한 장을 남겼다.

이제 긴 다운힐이다.

올라온 만큼 내려가야 하는 거니까!



한계령 도로엔 차량 소통이 많지 않아 주유소마저 문을 닫았다.

신설도로 하나가 만들어내는 안타까운 풍경인 거다.

내려오는 길에 장수대를 지나쳤는데 대승폭 빙벽을 오르던 기억이 났다.

젊을 땐 벽 탄다며 참 열심히도 다녔었는데...



44번 국도와 46번 국도가 만나는 지점이다.

여기서부터는 46번 국도를 타고 용대리 방향으로 달려야 한다.

평지나 다름없는 약한 업힐 구간이다.

설악산 십이선녀탕계곡이 있는 남교리를 지나, 백담사가 있는 용대리를 지나가면 목적지에 도착하는 거다.



폐업한 설악산수 공장 쪽으로 난 구도로를 타고 달린다.

계곡엔 입수 금지라고 현수막이 걸려 있지만 철조망을 넘어 계곡에 들어가 물놀이를 하는 사람들도 더러 보였다.

그리고 쌍다리쉼터라고 정식 캠핑장이 아닌 변칙성 캠핑장도 있었다.

맑은 계곡에서 피서를 즐기는 사람들이 부러웠다.



북천 옆으로 난 길을 타고 달리는데 하천에서 물놀이를 즐기는 사람들이 보였다.

마냥 부러웠다.

이 더운 여름에 대체 뭐 하는 짓인가 싶었지만 나도 캠핑사이트에 도착하면 계곡에 들어가 더위를 식힐 수 있다는 희망으로 열심히 달릴 수 있었다.



드디어 진부령과 미시령의 갈림길에 들어섰다.

다 온 거나 마찬가지!

고생은 끝이 났다.



용대리의 매바위 인공폭포가 시원하다.

겨울엔 인공빙장으로 빙벽대회도 개최되는 곳이다.

약 140km를 달렸고, 획득고도는 1,555M

살은 좀 빠졌을까 싶었지만 역시 1kg도 빠지지 않았다.

저주받은 체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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