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삼 년 만에 제주환상자전거길 당일치기 라이딩을 나섰다.
한 해 한 해가 다르게 체력이 떨어지는 걸 느끼는 요즘이었는데 이번 라이딩에서야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다.
이번 라이딩을 포함해서 제주환상자전거길 종주를 네 번 했는데 이번이 제일 힘들었던 것 같은데, 어떻게 보면 인간을 망각의 동물이라 했던 것처럼 지난 고통을 잊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매번 종주 때마다 맞바람을 탓하며 힘든 몸을 다독이며 라이딩을 했었는데 이번 라이딩은 지난 라이딩에서처럼 갖은 준비를 하지 않았던 게 체력의 부침에 한몫했던 것 같기도 하다.
그 흔한 에너지바 하나 챙기지 않았고 언제나처럼 엄마의 MTB를 빌려 타고 돌았지만 이번엔 라이딩 전에 제대로 정비조차 하지 않아서 체력이 부쳤던 거다.
긴 연휴지만 제주의 추석 기간엔 딱히 할 게 별로 없다.
새벽 5시에 일어난 나는 혹시나 싶어서 챙겨 갔던 자전거 의류를 주섬주섬 챙겨 입고 얼려둔 물통을 들고 창고에서 엄마의 MTB를 꺼냈다.
새벽잠이 없는 옆집 하르방의 자전거 브레이크가 기분 나쁜 비명을 지르며 새벽녘을 가르고 지나갔다.
나보다 빨리 나선 하르방은 나와 같은 방향을 앞서 달리고 있었다.
무심코 하르방을 빠른 속도로 지나치고 페달을 밟았다.
아직 이른 시간이라 날이 쌀쌀하지만 몸에 열이 나기 시작하면 금세 추우는 잊힐 거란 걸 알고 있었다.
종달리 해안도로에 진입하니 성산일출봉이 보였다.
이젠 지겹도록 다녀서 감흥 같은 게 없어지긴 했지만 제주도의 멋진 풍광은 언제 봐도 새롭긴 하다.
구름이 낮게 깔려 한낮이 되어도 딱히 더울 것 같진 않았다.
하도해수욕장을 지나며 며칠 전 캠핑했던 곳을 보니 텐트가 꽤 많이 늘었다.
제주에서 몇 안 되는 괜찮은 캠핑사이트 아닌가 싶다.
성산에서 시작된 라이딩이라 멋진 일출을 기대했지만 구름이 낮게 깔려 딱히 멋진 풍경은 기대할 수 없었다.
하도포구를 지나 세화리 쪽으로 접어들었다.
마침 뒷바람을 맞으며 달리니 라이딩이 편했다.
하지만 이 바람이 언제나 같은 조건일 수는 없을 거란 걸 알고 있었다.
세화해수욕장 근처로 접어드니 태양은 가뿐히 솟아올랐고 일출을 기대하고 일찌감치 나와 기다리던 사람들에게 아쉬움을 주고 있었다.
세화장이 열리는 세화해수욕장도 나름 예쁜 해변이다.
맨발로 모래밭을 거니는 사람의 모습이 호젓하고 멋져 보였다.
내가 본 그와 그가 본 나는 서로 어떤 생각을 했을까?
세화에서 평대리를 거쳐 월정리로 가는 길목이다.
평대리의 작은 해변에도 캠퍼들이 꽤 보였다.
긴 연휴에 제주로 캠핑을 온 사람들이 은근히 많은 듯했다.
커피로 유명해진 월정리.
이젠 초창기의 고즈넉한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도심에 가까워질수록 해변은 인파가 늘어난다.
함덕에 비하면 조족지혈이겠지만 월정리도 이젠 더 이상 개발할 공간이 없을 정도로 빽빽하다.
그래서 난 월정리에서 벗어난 곳을 훨씬 좋아하는 편이다.
김녕해수욕장이다.
사진은 없지만 여기도 캠핑족으로 빽빽하다.
난 사람 많은 곳에서 캠핑하는 걸 기피하는 편이라 난민수용소 같은 모습이 딱히 멋져 보이거나 하진 않는다.
김녕해수욕장 모래밭을 덮어 두었던 포장을 벗겨내니 이제야말로 멋진 김녕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동복리를 지나며 보니 폐냉동창고 옆에 베이글 전문점이 생겼다.
그 냉동창고는 내가 커피공장을 하려고 기획했던 곳인데 기획 중에 다른 누군가 인수해서 공사를 하는가 싶더니 오히려 옆에 신축 건물이 들어섰고 이런 명물이 자리 잡았다.
관광명소도 없는 데다 몇 년 전 게스트하우스 살인사건이 났던 곳이라 한동안 기피지역이었던 동복리가 이젠 새로운 명소가 자리 잡아 활기 넘쳐 보였다.
일주도로 옆 너븐승이 4.3 기념관을 지나쳤다.
언젠가 이곳에 들러 보리라 다짐했건만 벌써 오 년이 지났음에도 멈춰 서지 못하는 나는 대체 뭔가...
드디어 조천읍 함덕해수욕장이다.
이른 시간이라 사람이 많지 않았는데 몇 시간 지나면 여기도 인파로 빽빽해질 게 분명하다.
십수 년 전 함덕 개발계획도를 가져와 함께 사업을 진행해 보자고 했던 분이 있었는데 나중에 보니 함덕은 그의 도면대로 완성이 되어 있었다.
세월이란~
여긴 조천읍 신흥리다.
서귀포시 남원읍에도 신흥리가 있다.
여기도 은근히 예쁜 해변인데 이상하게 사람들의 발길이 뜸한 곳이다.
구석구석 예쁜 곳이 많은데 다음에 심층적으로 파헤쳐볼 생각이다.
제주시가 다가오고 있다.
바람이 옆에서 부는가 싶더니 길이 요리조리 꺾이며 맞바람이 되기도 했다.
고통스러운 라이딩이 예고되는 시점인 거다.
조천읍사무소 근처에 이런 멋진 곳이 있다.
호수처럼 느껴지는 곳이지만 민물이 아니다.
옆에 암자가 멋지게 자리 잡았다.
예전에 다니던 길은 사라지고 넓은 아스팔트 포장도로로 변했다.
길은 쭉 뻗어 있지만 차량 소통은 많지 않았다.
이 업힐을 넘어가면 발전소가 있다.
발전소 옆으로 난 길을 따라 달리면 제주도심이 펼쳐진다.
검은모래해변인 삼양해수욕장엔 관광객들이 꽤 많다.
운동은 나온 지역주민들도 더러 보이긴 했다.
거의 1/4 지점에 도달하고 있었고 시간은 예상보다 늦어 벌써 9시를 넘기고 있었다.
12시간 안에 라이딩을 마무리하려면 9시엔 제주공항에 도착해 있어야 정상이다.
여긴 화북포구다.
작은 포구 같지만 은근히 선박이 많다.
이 풍경도 나름 운치가 있어 사진을 남겼는데 이상하게도 여기서 촬영한 사진이 꽤 많다.
드디어 제주항이 나타났다.
여긴 좀 지루한 구간이긴 한데 제주공항이 가깝다는 걸 증명하는 곳이라 힘을 받는 곳이다.
국립제주박물관 옆으로 들어서 사라봉을 거쳐 제주항으로 향하는 길을 만난다.
얼마 올라온 것 같지 않은데 올라서고 보면 멋진 풍경을 만날 수 있다.
용연계곡이다.
제주도의 계곡은 비록 건천이지만 이런 기이함이 있다.
용두암을 지나 제주공항 갈림길을 넘어서 드디어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드디어 1/4 지점에 도착한 셈이다.
거리는 60km를 달려왔다.
로드바이크로 60km는 일도 아닌데 엄마 MTB로 달리려니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첫 휴식인데 기껏 스포츠음료 하나라니... 내게 너무 박한 거 아닌가 싶기도 하다.
기껏 십여 분 정도 쉬었을까?
좀 쉬어주면 좋겠지만 1/4 지점인데 10시가 다 되어 마음이 급했다.
해가 지기 전에 집에 도착할 생각이었으니 말이다.
가을에 접어들어 해가 짧아진 탓에 여름에 그랬듯이 해뜨기 전 출발해서 해 지기 전에 도착하는 건 무리일 것 같았다.
고산까진 50km만 달리면 된다.
여긴 어영공원인데 제주공항에 누굴 태우러 오거나 하면 남는 시간을 여기서 보내곤 했다.
심지어 몇 시간 일찍 와서 책을 읽곤 했었는데 노곤함에 낮잠 자기에도 딱 좋은 곳이다.
도두항을 향해 나름 긴 다운힐이 이어지고 이호테우 방향으로 이어지는 해안도로를 달린다.
해가 중천이라 볕이 따가웠다.
그래도 구름이 많은 편이라 버거울 정도로 덥진 않았다.
외도동을 지나며 보니 CJ에서 건축 중인 리조트를 만났다.
얼마나 멋진 곳을 만들어낼지 궁금해서 사진을 남겼다.
하귀에 접어들며 처음으로 라이더를 만날 수 있었다.
전체 라이딩의 30% 넘게 달려서야 자전거 타는 사람들을 만나다니 반갑지 않을 수가 없었다.
속도가 비슷하다면 말이라도 건넬까 했는데 뒤를 따라가다 포기하고 앞서 달리고 말았다.
여긴 예전에 불법건축물로 매스컴을 탔던 곳인데 아직도 방치된 상태이다.
강제복원시킨다 하더니 그대로다.
구엄리, 신엄리를 지나 다락쉼터에서 자전거를 멈춰 세웠다.
짧은 업힐과 다운힐이 이어지는 구간인데 대개 여기서 많이 퍼지는 편이다.
그래도 올라와 보면 아름다운 풍경이 선물로 주어지니 멈추지 말고 업힐을 올라야 한다.
애월의 몇 안 되는 명소들 중 하나인 것 같다.
대부분의 라이더는 여기서 쉬었다 간다.
고내포구, 애월항, 곽지과물로 이어지는 환상자전거길은 대개 일주도로로 이어져 있다.
해안도로가 많이 끊어져 있기도 한데 예전에 나는 환상자전거길과 전혀 관련 없이 라이딩을 다녔었다.
최대한 바닷가에 붙어서 달린 적이 있었는데 가급적 환상자전거길을 타고 달려보고자 하니 아쉬운 구간이 많았다.
한림읍에 접어들며 멀리 비양도가 나타났다.
우도에도 비양도가 있다는 건 아는 사람들은 다 안다.
우도의 부속섬인 비양도를 꼭 섬이라 할 순 없지만 이미 백패킹의 성지로 유명하다.
한림읍의 비양도는 한림에서 여객선을 타고 들어갈 수 있다.
수원리에서 한림항으로 진입하는 곳인데 이 길은 나름 운치가 있다.
거의 만조라 한림항에도 바닷물이 가득이다.
날은 쾌청하니 가을가을하다.
한림항에서 협재 방향으로 이어지는 넓은 도로.
근처 부지는 공업지역인데 공장은 거의 없다.
이건 협재에서 촬영한 사진이다.
비양도는 어디에서 봐도 멋지다.
드디어 내가 좋아하는(제주도민이 가장 사랑하는) 금능해수욕장이다.
언제 가도 기분이 상쾌해지는 곳이 아닐 수 없다.
카이트서핑을 즐기는 사람들이 관광객의 뜨거운 눈길을 받으며 실력을 뽐내느라 정신이 업다. ^^
금능에서 월령으로 넘어가다 보면 이렇게 선인장이 많이 보인다.
월령리는 선인장 자생지로 유명하다.
선인장 열매인 천년초(?)로 만든 술을 빚는 양조장도 있었는데 지금은 영업을 하는지 모르겠다.
제주도에도 한때 토속주 혹은 지역술 유행을 따라 각 지역에 양조장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겼다가 사라져 갔다.
스노클링의 성지가 된 판포리다.
한때 제주도에서 판포리가 꽤 유명한 관광지로 부각되었는데 이젠 예전만 같지는 않은 모양이다.
그래도 판포리의 에메랄드 빛 바닷색은 손가락에 꼽힐 정도 아닌가 싶다.
두모리-신창리 해변은 풍력발전으로 한창이다.
볼 때마다 발전기가 늘어나는 것처럼 보이는 건 착각이 아닐 거다.
한때 해녀 할망들의 푸념을 귀동냥한 적이 있었는데 발전기 하나 세울 때마다 바닷속은 황폐화된다고 했다.
이미 수족자원은 찾아보기 힘들어졌다나...
그래도 나름의 풍취 때문에 찾아든 관광객을 생각하면 관광불모지나 다름없었던 이 지역에 관광객 유치라는 새로운 변화를 가져다준 것도 있으니 일장일단이 있다 하겠다.
용수리로 접어들면 드디어 차귀도를 볼 수 있다.
동쪽에 성산이 있다면 서쪽엔 차귀도가 있다.
고산포구에서 사진을 남기고 곧장 자리를 떴다.
이미 내겐 너무 익숙한 풍경이라...
내 목표는 점심식사였다.
점심식사 목적지는 원래 고산리의 국숫집이었는데 연휴라서 휴가란다... ㅜㅜ
https://brunch.co.kr/@northalps/1749
여긴 내가 글을 올린 후 다음 메인에 떠서 24,000회 조회수를 기록하며 줄을 서야만 하는 맛집으로 변했다.
이번엔 줄을 서서라도 먹고 갈 생각이었는데 아쉬웠지만...
https://brunch.co.kr/@northalps/2438
바로 아래에 있는 이 식당에 다녀왔다.
알고는 있었지만 가보진 않았던 식당인데 메로지리탕에 반하고 왔다.
이렇게 2/4 지점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다시 페달을 밟았다.
잠시 쉬었다고 몸에 힘이 충전되긴 했지만 앱으로 바람 방향을 보니 이 행복도 모슬포까지가 끝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이미 강풍으로 변해 있었고 돌아갈 길이 막막한 순간이었다.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어쨌거나 절반 왔으니 집에 가려면 그만큼 가야만 한다.
고산리유적안내센터를 지나며 차귀도를 촬영해 드리고 반대편에 보이는 한라산도 한 컷 남겨 드렸다.
제주에서 유일하게 지평선이 보이는 곳이 바로 고산리다.
그만큼 농지가 넓고 평탄하다는 말이다.
수월봉 옆을 지나 신도리로 향했다.
고산리-신도리-영락리-일과리 이 구간은 제주도에서도 보기 힘든 재미있는 구간이다.
육지 쪽은 양식장이 끝도 없고, 바다 쪽은 큰남방돌고래를 볼 수 있는 해안이다.
양식장에서 나오는 사료찌꺼기를 먹겠다며 달려드는 물고기들과 그 물고기들을 잡아먹겠다고 달려드는 팔뚝 만한 물고기들 그리고 그 녀석들을 잡아먹으러 온 돌고래들...
그리고 돌고래를 구경하겠다고 온 사람들!
지루하다 싶을 정도로 반복되는 해변을 달리고 달리다 보면 드디어 모슬포를 만날 수 있다.
모슬포오일장도 꽤 큰 시장인데 마침 이 날 장이 열렸지만 사진을 촬영하진 않았다.
평소보다 차가 많아 안전하게 다녀야 할 것 같아서다.
긴 연휴라고 장도 컸다.
여긴 하모해수욕장인데 여기도 캠핑족들이 상당했다.
내가 즐겨찾기 한 이 지역 낚시 유튜버가 있는데 얼마 전 낚시점도 열고 결혼해서 아주 행복하게 잘 살고 있더라는...
드디어 맞바람이 시작됐다.
죽음의 시간이 온 거다.
예상했던 구간까진 잘 왔으니 다행이긴 한데 의외로 맞바람이 세다.
앞서 달리던 라이더들이 맞바람에 버거워하는 모습을 보며 앞서 달렸지만 이런 식으로 체력을 쓰면 돌아갈 길이 막막한 상황이었다.
이제 100km는 더 달려야 하니까 말이다.
바람은 집까지 내내 맞바람이었다.
송악산 고개를 넘는 게 너무 힘겨웠다.
맞바람에 업힐이라니...
어렵게 고개 정상에 오르는데 이미 송악산 아래부터 이어졌던 주차 행렬이 예고했던 인파가 눈에 보였다.
역시 쉬어갈 상황이 아니었다.
그냥 가는 게 정답이다.
어쨌든 맞바람은 끝이 없으니 끈질기게 페달링 하는 수밖에 없다.
사계리 해변 옆을 달리면 이런 멋진 풍경이 이어진다.
한라산의 양 어깨에 산방산과 군산이 멋지게 어울린다.
맞바람만 아니면 달릴 맛이 나는 구간이다.
산방산 인근 도로는 인산인해였다.
주차장은 말할 것도 없었다.
차를 피해 자전거를 운전하느라 사진을 촬영할 겨를도 없었다.
겨우 정상에 올라 용머리 사진 한 장 남기고 이내 자리를 떴다.
자전거를 세울 여유도 없을 정도로 북적이는 곳을 빨리 탈출하고 싶었다.
제주도에 관광객이 줄었다더니 죄다 거짓말 같다.
멀리 군산과 대명포구 옆 박수기정이 보인다.
화순리를 거쳐 꽤 긴 업힐을 몇 개 넘어야 한다.
원래 내 스타일 대로 간다면 대명포구로 해서 가는 게 정상이지만 안타깝게도 환상자전거길은 일주도로로 안내한다.
제주도의 멋진 풍경은 저쪽에 다 있는데 환상자전거길을 달리는 사람들은 절대 그걸 볼 수 없다.
맞바람에 체력을 빨리며 달리니 중간중간 사진을 촬영하는 것도 버거웠다.
이미 150km 정도를 달린 셈인데 내 로드바이크로 왔어도 쉬운 상황은 아니었을 거다
멀리 범섬과 문섬이 보인다.
서귀포시내가 멀지 않았다는 증거다.
마지막 사진은 삼매봉을 오르는 길에 촬영한 한라산 사진이다.
아마 여기서 정신이 흩어지기 시작한 것 같다.
혼자 달리니 잘 쉬지도 않고 보급도 거의 없어 체력을 바닥내며 달리는 거다.
하지만 가끔 이런 풍경이 힘을 주곤 하는데 아마도 그게 환상자전거길의 매력 아닐까 싶다.
3/4 지점은 쉬지 않고 달리기로 했다.
쉬나 안 쉬나 힘들긴 마찬가지였고 길고 짧은 업힐이 수시로 이어지는 구간이었기에 오르면서 힘쓰고 내려가면서 쉬는 식으로 달리는 거다.
섭섬 앞에서 잠시 쉬어간다.
그래봐야 기껏 5분도 안 되지만 말이다.
섭섬에 구멍치기 달인이 있다고 들었는데 오늘은 보이지 않는다.
바로 뒤에는 고 이주일 씨가 소유하고 있던 주택이 숨겨진 듯 자리 잡고 있고 그 옆엔 작은 카페가 하나 있다.
십수 년 전 처음 가봤던 물회 전문점 '어진이네'는 건물을 새로 지어 이사했다.
언젠가 다시 가볼 생각은 있지만 맛이 변해 추억을 지울 것이 걱정되어 못 가는 중이다.
내가 좋아하는 구간들 중 하나인 하효항이다.
여긴 내가 여유만 있다면 집 한 채 짓고 싶은 곳인데 절대 허가를 낼 수 없을 것 같은 곳에 기똥차게 멋진 집들이 자리 잡고 있다.
그 옆으로 좁은 오솔길이 있는데 차량도 오가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
하효항에는 유명한 테라로사도 있다.
귤밭을 살려서 지은 건물인데 제주스럽게 잘 꾸몄다.
하효항 진입 전에 이런 곳이 있는데 잠시 쉬어 가기 좋다.
멀리 지귀도가 보인다.
지귀도 역시 무인도인데 통일교 소유의 섬이라고 들었다.
낚시로 매우 유명한 섬이기도 하다.
쇠소깍을 달리며 사진을 한 장 남겼다.
여기를 지나면 제주도에서도 제일 볼 것 없는 구간이 이어진다.
제주도 남원읍은 위성지도로 보면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맨땅보다 하우스가 더 많은 지역이다.
바닷가엔 온통 양식장이고 풍경은 다 고만고만하다.
딱히 유명한 관광지가 별로 없어서 관광객도 많지 않다.
금호리조트가 있는 큰엉 정도가 그나마 명소라고 할 수 있고 거길 지나면 표선까진 그야말로 지루함의 연속이다.
더군다나 자전거길은 일주도로로 안내하고 있어서 바다구경하는 것도 어렵다.
표선까지 가지도 못했는데 해가 지가 시작했다.
이러면 안 되는데... ㅠㅠ
이제 남원 태흥리를 지나고 있었고 앞으로 40km는 더 달려야 하는 상황이라 마음이 조급했다.
해가 질 무렵이라 바람은 더욱 거세졌고 체력은 바닥을 향했다.
빨리 표선에 가서 에너지음료라도 하나 마시고 갈 길을 재촉할 생각으로 무겁게 페달을 밟았다.
빛을 빠른 속도로 지워지고 있었다.
여명을 조명 삼아 최대한 표선을 향했다.
그렇게 해서 표선에 도착했고, 아직 갈 길은 25km 정도 남은 상태였다.
어스름하던 태양의 빛은 소멸하고 없었고 달빛에 반사된 아름다운 빛을 발하는 표선 앞바다를 보며 헤드랜턴을 헬맷에 달았다.
서울에서 가져오지 않은 탓에 집에 굴러다니던 등산용 헤드랜턴을 가져온 건데 그거라도 가져오길 다행이었다.
그런데 예전보다 상황이 좋아진 게 있었다.
일주도로에 가로등이 생긴 거다.
안타깝게도 주거지를 벗어나면 가로등이 없다.
그래도 가로등이 켜진 구간엔 나름 안전하게 라이딩할 수 있었으니 다행이다.
제주도의 밤길은 정말 위험하다.
바닥에 장애물도 많고 어두워도 너무 어둡기 때문이다.
해가 지기 전에 라이딩을 종료하는 걸 원칙으로 잡고 라이딩하는 계획을 잡으면 좋다.
난 그렇게 가로등과 헤드랜턴을 의지한 채 일주도로 옆 자전거도로를 달렸다.
그렇게 집에 도착하니 저녁 8시 30분.
엄마가 해주신 밥을 먹은 후 샤워 후 기절.
완벽한 코스였다. ^^
다음날 저녁엔 루어대에 찌낚시채비를 해서 섭지코지 근처 온평리 해변으로 갔다.
벵에돔 전용대가 부러져서 불편을 감수하고 루어대로 대체했다.
뭐라도 잡아서 횟감이라도 할 생각이었다.
해창 때임에도 불구하고 신나게 볼락만 잡다가 손바닥 만한 벵에 한 마리 손맛만 보고 맨손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이렇게 바닷가에 서면 심란한 모든 게 훌러덩 날아가버리는 느낌이다.
진정한 힐링 아닌가 싶다.
내년에는 서울에서 친구들 데려와서 같이 타야겠다.
역시 혼자는 외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