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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파고 Oct 02. 2023

166.제주도 당산봉 아래 시원하고 담백한 메로지리탕

이번 명절에도 당일치기로 자전거를 타고 제주도 한 바퀴를 돌고 왔다.

사이즈가 작은 엄마 자전거라 내 큰 몸뚱이로는 버겁지만 가끔 이렇게 한 바퀴 타고 와야 직성이 풀리는 것 같다.

해가 짧아져 급히 돌아야 하는 문제가 있었지만 점심식사는 거를 수 없으니 성산에서 시작한 라이딩의 딱 중간 지점인 고산에서 식사를 해결하기로 했다.

언제나 그렇듯 혼자 달리기 때문에 식단 결정도 내 멋대로이다.

원래는 고산의 국수 맛집을 목표로 했었는데 명절 연휴라 휴무라고 해서 근처에 있는 당산봉식당으로 향했다.

가을이지만 제주의 정오는 볕이 뜨거워 잘 먹지 않으면 라이딩이 괴롭기 때문에 몸보신(?)이 될 만한 걸 먹어야 남은 구간을 마무리할 수 있다.

메로지리가 보약이 되어 줄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국수보단 낫지 않겠나 싶었다.



기본찬은 이렇다.

칼칼하게 양념이 된 가지 요리도 좋고 다른 반찬들도 맛깔나고 정갈하다.

고사리는 지겨워서 별로 손이 안 가긴 하는데 심심한 맛에 먹기 좋다.

들깻가루가 종지에 나왔는데 이건 메로지리를 먹다가 나중에 첨가해 먹으라고 했다.



잠시 후 메로지리가 따라 나왔는데 비주얼이야 그냥 흔한 모습이지만 구수한 향이 코끝을 자극했다.

메로지리를 먹어본 적이 있었던가?

대체로 메로는 구이용으로나 알고 있었지 이렇게 지리로는 처음인 것 같다.

살점도 많고 한데 메로구이 먹을 때처럼 뼈 안의 골수를 쪽쪽 빨아먹는 재미가 있다.

구이 먹을 때보다 좀 더 담백하다.

국물이 정말 진하다.

다른 생선으로 이런 고소한 지리를 만들기는 쉽지 않을 것 같은데 머릿속에 스치는 이런 강렬한 지리탕이 있었다.

모슬포에서 현지인이 열 시간 이상 끌여서 만들었다던 다금바리 지리탕이다.

기회가 있다면 다시 맛보고 싶은 음식인데 그에 비할 순 없으나 깊은 맛은 인정할 만했다.



지리 국물에 반해 뜨거움에도 불구하고 연거푸 입 안에 퍼붓다시피 했더니 금세 지리가 바닥 근처를 향하고 있었다.

들깻가루를 넣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스러웠지만 그래도 이유가 있어서 준 것일 테니까 첨가하고 맛을 봤다.

내 입맛엔 온전한 지리 국물이 훨씬 좋았다.



사진에서 보다시피 고사리 빼곤 몽땅 비웠다.

배가 고프거나 한 건 아니었고 의무감으로 점심식사를 한 것 치고는 과하게 먹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닌 것 같다.

식사 중간에 생선구이 포장이 되는지 물어보던 손님이 있었는데 참돔 한 마리를 2만 원에 주겠다던 주인의 제안에 고민하는 걸 보며 안타깝단 생각이 들었다.

거저 주는 거나 마찬가지 같은데...

어쩌다 보니 고산에서 2년 정도 살았었는데 그땐 동네 식당엔 관심이 없어서 집밥만 먹고살았는데 당산봉식당이 그땐 없었던 기억이다.

식당 벽면에 걸린 고산 일대를 그린 그림들이 몇 점 걸려 있기에 누가 그린 것인지 물었더니 동네 삼춘(제주에선 가까운 이웃을 남녀 안 가리고 '삼춘'이라고들 한다)이 그렸다고 한다.

국숫집에도 비슷한 화풍의 그림들이 걸려 있었는데 같은 작가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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