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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파고 Dec 18. 2023

다이어트 산행, 양재트럭터미널에서 대장동까지 22km

옥녀봉-매봉-청계산-이수봉-국사봉-하오고개-응달산-대장동

살 빠지는 재미일까, 등산의 재미일까?

이십 대 시절엔 거의 매주 산행을 했었는데 다시 재미를 붙이게 된 등산.

다시 벽을 타지는 않으리라 다짐했지만 또 선을 넘게 될지도 모른다는 느낌이 없진 않다.

이젠 등반보다 아슬아슬한 비즈니스의 세계를 경험하고 있으니 더 이상의 익스트림은 내겐 필요 없다며 나를 눌러 왔지만 그 봉인이 언제 다시 해제될지 나도 모르겠다.

아마 불어난 체중과 헤비 해진 몸뚱이 덕에 그 세상을 등진 채 살 수 있었던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등산에 다시 재미를 붙인 후 나는 서울과 분당 인근의 산들을 살폈다.

도로로 끊어진 구간이 제법 있지만 능선을 타고 다닐 재밌는 코스를 짜기 시작했다.

나의 살 빼는 재미를 알 턱 없는 지인들은 나를 미쳤다 한다.



한창땐 이것보다 빨랐다.

당시 배낭은 거의 60kg 이상이었는데  지금은 괴나리봇짐 수준이니 날아다녀야 정상이건만...



청계산 매바위에 도착했다.

자주 다닌 산은 아니지만 그래도 몇 번 와 봤다고 눈에 익은 동네다.

라면과 막걸리 등을 판매하는 분들이 있다.

입장에 따라 다양한 시각이 있을 터이니 따지진 않으련다.



날이 흐려서 어딜 찍어도 다 거기서 거기다.



이수봉과 국사봉을 지나며 점점 청계산과 멀어져 갔다.

그런데 가면 갈수록 목표로 했던 광교산까지 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너무 미친 듯이 걸었던 탓일까, 발바닥에 통증이 생긴 것이다.

체력은 아직 무한대 같지만 발바닥에 하자가 나면 체력과 무관하게 속도가 떨어지기 마련이다.

아는 사람들은 다 알겠지만 등산화 밑창이 단단한 이유가 있다.

바닥이 무르면 발바닥이 오래 버티지 못한다.



대지고개를 향하던 중 방향을 헷갈리게 했던 지점이다.

대체 어디로 가란 건지... ㅎㅎ

바로 아래에는 대지고개 공도가 살짝 보였다.

하마터면 여기서 공도로 내려갈 뻔했다.

이 주변은 공동묘지라서 밤에 다니면 심장이 서늘할 것 같다.



자전거 타고 많이 다녔던 대지고개를 등산으로 가로질러 가보게 됐다.

아침까지 비가 와서 바닥이 축축해 라이더는 거의 보이지 않았다.

마침 이 코스로 라이딩을 하겠다는 친구들이 있었는데 노면 상태 때문에 라이딩을 포기했다고 들었다.

어쩌면 여기서 만나게 됐을지도 모르겠다.

은근히 기대하곤 있었지만 말이다.



대지고개를 가로질러 광교산 방향으로 접어들었다.

초반부터 가파른 계단길이 시작됐다.

다리를 건너며 멀리 청계산을 돌아보았다.

걷다 보면 참 멀리도 왔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게 등산 같다.

그게 인생 같기도 하고 말이다.

돌아보면...



여기서부터는 성남누리길 5코스인 태봉산구간이라고 한다.

능선까지 올라가는 등산로가 꽤 가파르다.

숨을 헐떡거리며 두 번 정도 쉰 것 같다.

속도 조절을 못한 탓이다.

쉬엄쉬엄 가면 좋으련만 누가 좇아오는 것도 아닌데 뭐가 그리 급한지...



숨이 깔딱깔딱 넘어가는 가파른 오르막길을 오르니 세 갈래 길로 갈라지는 이정표를 만났다.

여기서 고민 아닌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시간은 거의 4시를 넘기고 있었고, 계획했던 광교산까지 마치고 가려면 당연히 해가 저물 상황이었다.

문제는 가파른 오르막을 오르고 보니 만사 귀찮아지기 시작한 것이다.

야간산행을 좋아하는 편이긴 하지만 어두운 밤에 초행길을 걷는 건 아무래도 위험요소가 많다며 나를 속이고 있었다.

난 나를 속이고 여기서 성남누비길을 타고 분당 쪽으로 넘어가는 코스를 선택했다.

여기서부터는 단 한 사람도 만날 수 없었는데 아주 따분하고 지루한 구간이었던 것 같다.

볼 것도 없고...



군부대 옆 철책길을 따라 걷는데 오토바이 타이어 자국이 끝없이 이어졌다.

MTB는 아닌 게 분명했다.

나도 MTB를 타기에...



배가 고팠지만 좀 지나니 배가 고픈 것도 잊었다.

드디어 끝없는 내리막길이 시작됐고, 깊이 쌓인 낙엽 때문에 몇 번이나 넘어질 뻔했다.

스틱 없이 다니는 건 자살행위였을 것 같다.

이렇게 해서 도착한 곳이 어딘가 했더니 여기가 여우고개인 모양이다.

도로를 타고 1km 정도는 걸은 것 같아.

여기서 다시 산길로 진입한다.

혼자 다니니 모든 판단을 혼자 해야 하는 애로사항이 있다.

이 구간에서도 보니 오토바이 흔적이 많다.

산이 등산하는 사람들만의 소유가 아닌데 우리나라에선 등산객 외 다른 레저인들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안타까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서로 공유하지 못한다면 구분해 사용하면 될 것을...

아무튼 집단이기주의 아닌가 싶다.



날은 금세 어두워졌고 아주 지루하고 기나길 산길이 이어졌다.

사람 한 명 볼 수 없었고 말이다.

한 시간 가까이 걸어가니 대장동에 도착했다.

살다 살다 대장동이란 곳에 다 와보네 싶었다.

여기서 안산-운재산 능선을 타고 가려고 했지만 문명을 만나고 보니 다시 산길로 접어들고 싶지 않았다.

난 대장동 공원길로 접어들었고 고기리를 행했다.

원래 계획으론 낙생저수지로 해서 미금역까지 걸어가고 싶었지만 발바닥 통증이 심해져 고기리에서 일정을 종료했다.

카카오 T를 보고도 막판에 대중교통을 몰라 이리저리 방황하다가 간신히 버스를 타고 귀가할 수 있었다.

이놈의 체력...

어쩌면 좋나.

힘들어야 덜 다닐 텐데...




남은 광교산 코스는 다음 기회로 미뤘지만 아침에 번쩍 눈을 뜨고 광교산이 눈에 밟혀 또 배낭을 메고 나갔다는... 후기는 다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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