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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파고 Dec 03. 2023

서울 상일동에서 광주 신현동까지 32km 산길을 걷다

서울-하남-광주-성남-광주

원래 계획으로는 용인까지 가는 거였는데, 태재고개 근처에서 비를 만나 불곡산, 대지산은 갈무리하고 말았다.

거기까지 걸었으면 딱 40km 정도 걸었을 것 같은데 아쉬움이 남는다.

겨울이 아니었다면 비를 맞고도 가겠지만 태재고개에 도착했을 땐 이미 9시가 넘었고, 자칫 잘못되면 저체온증으로 고생할 수도 있어서 포기하고 말았다.

비록 얕은 산이지만 산은 항시 위험이 도사리고 있으니 말이다.

남한산성을 벗어나 성남누비길을 걸는 동안 네 명 정도 만났는데 이 구간은 역시 등산객이 많지 않다.

망덕산-이배재고개-갈마치고개-고불산-영장산 구간에서는 사람 그림자도 못 봤다.

영장산을 넘어서 태재고개를 가는 길에 반대쪽에서 오는 사람을 만났는데 어찌나 놀랐던지...

야간산행이 되어버린 구간이라 사람을 만나는 게 반갑기도 하지만 기척을 느낄 땐 심장이 덜컹거린다.



좀 더 걸었으면 좋았으련만...

스트라바에 업로드하니 팔로워 중 한 분이 군대 행군 같다고 했다.

지난번 오색-천불동 코스도 기껏 18km 정도였을 텐데 그에 비하면 거리는 길지 경사도가 지 않아 그다지 고생스럽진 않았던 것 같다.

스트라바에 8시가 18분 나왔지만 그건 총 운행시간이고 9시 20분 정도에 산행을 마감했으니 실제 운행시간은 10시간 정도 보면 될 것 같다.




처음엔 이성산부터 시작하려고 했지만 도로로 구간이 끊겨 있어서 생각을 접고 321m의 금암산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위례둘레길이라고 한다.

십수 년 이상 등산을 끊었더니 산에 뭔 코스 이름이 요란해졌는지 모르겠다.

혼자 걷는 거라 내 페이스대로 다니면 되는 건데 초반부터 핏치를 올린다.

내 걸음을 의식하고 속도를 높였던 등산객들은 하나둘 떨어져 나갔다.

산행에선 자기 페이스를 유지하는 게 최고다.



첫 번째 휴식.

전망 좋은 곳이 있어 사진도 찍을 겸 잠시 멈춰 섰다.

기껏 해야 오 분도 채 쉬지 않았는데 아무튼 혼자 다니면 잘 쉬지 못하는 편이다.

로드바이크 탈 때도 항상 그랬다.

고질병이다.



찻 번째 봉우리, 금암산 도착.

멀리 롯데월드타워가 보였다.

랜드마크로서 굳건한 위엄이 있다.

날씨가 좋았다면 하는 아쉬움이 없지 않았다.



드디어 남한산성을 만났다.
남한산성은 밥 먹으러 다니거나 자전거 타고 올라오거나 했었지 이렇게 등산으로 오게 될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었다.

이번처럼 도심의 장거리 코스를 짜서 등산하는 경우가 아니었다면 남한산성 등산을 왔을 것 같지는 않다.

 대개 먼 곳에 있는 산으로 다녔을 것이니까 말이다.



산성길이 너무 예뻤다.

이게 문제가 될 줄은 미처 몰랐는데 산성길에 취해 하염없이 걷다 보니 황당한 경우를 만나고 말았다.



북한산에서도 이렇게 산성길을 따라 종주를 했었는데 남한산성에서도 그렇게 되고 말았다.

산성길은 고개 하나를 넘을 때마다 다른 느낌이었다.

어딜 봐도 예쁘지 않은 곳이 없었다.

이런 곳이 한때 사람 목숨이 오가는 살벌한 전장이었다고 생각하니...



산성 구멍 사이로 잠실 롯데월드타워가 보였다.

아직은 날씨가 괜찮은 편인데 구름이 많이 껴서 왠지 모를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나중에 날씨 좋은 날 다시 올라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맑은 날의 사진을 남겨두고 싶었다.

이 남한산성에서 한양을 지키기 위해 싸웠을 우리 조상을 생각했다.

지금이야 환경이 좋지 않아 멀리까지 볼 수 있는 날이 많지 않지만 그 옛날엔 어디까지 보였을까 싶다.



산성길을 따라 걷는데 뭔가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이 정도 걸었으면 적어도 검단산에 도착해야 정상인데 어디에도 검단산 이정표는 보이지 않았다.

혹시나 싶었는데 난 산성길에 취해 엉뚱한 길로 남한산성을 빙빙 돌고 있었다.



자전거를 타고 다니던 남한산성길을 만나고서야 알 수 있었다.

원점으로 돌아온 것이다.

남문에서 검단산으로 빠졌어야 하는데 갈림길을 놓쳐서 동문으로 빠져나온 것이다.

실수는 했지만 산성길을 실컷 누렸으니 그걸로 만족하기로 했다.

여기서 한 시간은 허비하고 말았다.

공도를 타고 남문까지 걷는 아스팔트 길에 발바닥이 아파오기 시작했다.

벌써 이렇게 되면 안 되는데 큰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아직 절반도 채 걷지 못했으니 말이다.



드디어 남문을 다시 만났다.

난 남문 위를 통과해 지나쳐버렸던 것이다.

이번엔 남문을 통과했다.



산성길을 걸으며 산성 바깥쪽에 길이 하나 있어서 뭔가 싶었는데 이제 보니 이게 원래 가야 했던 길이었다.

성남누비길이 남문 밖에서 시작되고 있었다.



검단산 정상은 가지 못했다.

공군기지 옆으로 난 공도를 타고 걷는 걸 모르고 산길로 가다가 망덕공원으로 빠질 뻔했다.

한참을 다시 돌아 가파를 공도를 타고 한참을 오르니 망덕산으로 향하는 데크길을 만날 수 있었다.

초행길이니 어쩔 수 없다.

망덕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지만 힘이 쭉쭉 빠지는 게 느껴져 혹시나 싶어서 챙겨 왔던 김밥 한 줄과 샌드위치 중 김밥을 꺼내 먹었다.

미리 챙겨 먹어야 나중에 힘들지 않다.



드디어 이배재고개.

지난번에는 태재고개에서 이번 시작 지점까지 가려다 포기하고 여기서 빠졌었다.

산을 너무 만만하게 봤고 저질이 된 내 체력을 감안하지 못했던 탓이다.

https://brunch.co.kr/@northalps/2543

지난번 산행기다.



갈마치고개까지가 성남누비길 2구간이다.

여기서 고민을 많이 했다.

해도 졌는데 내려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지만 어둠은 내 고집을 꺾지 못했다.

사람 한 명 볼 수 없는 길이라 멧돼지 걱정이 있었지만 그냥 목표했던 대로 가기로 했다.



영장산 이후로는 사진이 없다.

없던 체력은 살아났고 남은 샌디위치를 어둠 속에서 먹었다.

헤드랜턴이 거의 필요 없을 정도로 달빛이 밝았다.

가끔 내게 놀라 도망가는 고라니를 만났지만 내가 더 놀랐다.

혼자 다니는 야간산행에 이런 재미도...

영장산 인근에서 반대편에서 걸어오는 등산객 한 명을 만난 게 끝이었다.



고불산을 넘어 태재고개까지 가는 길엔 이 사진이 마지막이다.

태재고개 근처에선 눈발이 날리나 싶더니 태재고개에선 비가 내렸다.

불곡산과 대지산을 마지막으로 산행을 끝내려 했지만 비 때문에 포기하고 말았다.

오히려 체력은 50% 정도 살아났고 발바닥 고통도 사라진 상태라 10km 이상은 더 걸을 수 있었는데 말이다.

어쩌면 하늘이 도운 것일지도...

9시 20분경 산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씻고 보니 10시다.

오랜만에 장거리 산행을 하니 몸과 마음이 즐거웠다.

다음엔 어떤 코스를 걸어볼까 고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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