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루파고 Nov 19. 2023

성남누비길 3구간 종주기

토요일. 대충 점심밥을 때운 후 오늘은 뭐 하고 놀아볼까 고민하던 나는 지도를 열어 주변 산자락을 살피기 시작했다.

그런데 갑자기 눈에 들어온 남한산성.

이게 성남누비길 3구간 종주를 하게 된 계기였다.

뜬금없는 목표와 코스 설정...

그것도 오후 2시 30분이 지나 갑자기 작정한 코스.

무작정 배낭을 꺼내 두툼한 재킷 하나와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헤드랜턴과 보조배터리 등 필요하다 싶은 것들을 대충 던져 넣었다.

무작정 산행의 시작이었다.

경기도 광주 오포에서 하남 남한산성까지 가서 버스를 타고 남양주 다산신도시로 가는 여정이다.

무리하다 싶었지만 일단 가보면 알겠지라는 생각이었다.

짐을 챙기고 출발한 시간은 약 3시경.

밤늦게까지 걸을 생각이었기에 딱히 도착 예정시간 같은 건 계산에 두지 않았다.

동계용 등산복 바지에 긴팔 티셔츠와 얇은 고어텍스 재킷만 입었는데 좀 쌀쌀한 감이 없지 않았지만 몸에 열이 나면서 추위는 버틸 만했다.



태재고개를 넘어 성남시로 접어드니 자투리 땅에 농사를 짓는 분들이 보였다.

여기서 육교를 건너면 다시 산행길이다.



골프연습장이 능선에 닿았다.

이게 산인지 아닌지 분간이 안 되는...



등산로에 단독주택들이 있다.

한동안 적응하기 힘들었는데 능선 위에 건축허가가 났다는 게 용하지 싶었다.




능선을 타고 가다 보면 이런 집들이 줄기차게 나타난다.

왼쪽으로는 율동공원을 두고 걷는 구간이다.



태재고개에서 영장산 방향으로 걸었다.

지도를 보니 높진 않지만 넘어야 할 산들이 제법 보였다.

계획 상으론 검단산을 지나 남한산성인데 은근히 멀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느낌적인 느낌이 팩트였음을 인정하기까진 얼마 걸리지 않았다.


스트라바를 켜고 등산을 시작했는데...

3시 54분. 약 1시간 가까이 걸었지만 겨우 율동공원 동쪽 위쪽까지 간 거다.

제법 빠른 속도로 걸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앞길이 까마득했다.

그래도 어찌하겠는가?

시작했으니 가봐야지. 



영장산 정상에 도착할 때까지 등산객을 20명 정도 만났다.

날이 쌀쌀해서 사람이 없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사람 구경하기 정말 힘들었다.

하지만 그것도 영장산 인근까지였다.

그 후로는 달랑 두 명 만났으니..



이정표가 잘 되어 있어서 길을 헤멜 일은 없었다.

하지만 벌써 해가 기울고 있었다.

날이 밝을 때 최대한 많이 걸어야만 했다.

바람은 점점 매섭게 불었고 기온이 떨어지고 있었다.



등 뒤로 해가 떨어지는 걸 보니 내가 북쪽을 향해 걷는 게 아닌 듯했다.

산길을 따라 이리저리 방향을 틀며 서쪽으로 해가 떨어지는 게 보였지만 낙조를 감상할 만한 공간이 없었다.

정상에 조망대 하나쯤은 만들어 두면 좋을 텐데, 아쉽단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 사진이 최선이었다.



갈마치 고개를 향하는데 이상한 텐트가 있어서 보니 대피소?

아무튼 정체를 알 수 없지만 필요에 의해 설치한 것 같았다.



갈마치고개에 도착하니 해는 금세 저물어버렸다.

어둠이 짙어지며 바람이 강해졌다.

혹시나 싶어 챙겨 갔던 두꺼운 재킷으로 갈아입고 스트라바 위치를 보니 5시 57분인데 목표했던 곳까지 절반 정도 걸은 셈이었다.

3시간 동안 그만큼 걸었으니 남한산성까지 그만큼 더 걸어야 하는 셈이었다.

남양주에 사는 선배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고생하지 말고 집에서 소주나 한잔 하잔다.

그렇지 않아도 마음이 흔들렸던 난 소주 생각에 그쯤에서 산행을 접기로 했다.

벌써 한 시간 동안 사람 그림자도 볼 수 없어서 외롭기도 했다.

날도 춥고...



여기까지 와서야 성남누비길의 영장산길 구간이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이미 날이 어두워 헤드랜턴을 쓰고 사진을 찍어야 했다.

갈마치고개가 구간 갈림길인데 여기서 내려가려다 긴 도로를 걸어 도심으로 내려가야 된다는 생각에 조금 더 걷기로 했다.

여기서부터는 검단산길 구간이란다.



이배재 고개까지 가는 길은 사람들이 많이 다니지 않는지 산길 상태가 썩 좋지 않았다.

특히 낙엽이 너무 많아 미끄러지기를 여러 번.

밤이라 더욱 조심해야 했다.

자전거 타가가 부러졌던 고관절에 통증이 왔다.

꽤 빨리 걸어오긴 했는데 아무리 그래도 이 정도 산행도 버티지 못한다니.

선배 말 듣고 갈마치고개에서 바로 빠졌어야 했나 싶었다.



이배재고개를 내려와 뉴서울CC와 이어진 도로를 만났다.

멀리 달빛에 그려진 스카이라인이 멋져서 사진을 찍었는데 역시 내 맘 같진 않다.

도로를 걷는 건 역시 힘들다.

특히 내리막길은 다리가 더 아프다.

등산용 스틱을 가지고 다녀야 하건만 또 맨몸으로 다녔더니 내리막길에 무리가 많았다. 

어쨌거나 목표로 했던 남한산성까지 구간은 다음 주 새벽부터 등산을 시작해 재도전할 생각이다.



그런데 하필 교통카드가 들어있는 지갑을 놓고 왔다는 걸 알게 됐다.

이런... ㅠㅠ

난 부랴부랴 교통카드 앱을 깔고, 충전을 하고... 생쑈를 해야만 했다.

성남소각장에 도착해 마을버스를 타고 단대입구역으로 향했다.

거기서 남양주 다산신도시까지 가는 길은 멀고도 험했다.

등산보다 더 힘들었던 느낌. 

그래도 꽤 걸었다.

17.37km를 걸었고 획득고도는 910m에 총 4시간 10분이 걸렸다.

평균속도는 4.2km/h면 느린 속도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문제는 자전거 탈 때와는 달리 칼로리 소모량이 적다.

다시 자전거로 돌아가야 하나.

매거진의 이전글 용인과 성남을 오가는 대지산-효종산-불곡산 가을숲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