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은 아직 미정, 장편소설의 시작
신 인간시장, 소설 인트로
불붙은 숲 속 오두막은 동굴 같던 숲을 벌건 대낮보다 밝게 했다. 아이는 동생을 꼭 끌어안은 채 불길 속에 시선을 던지고 있었다. 눈물은 볼을 타고 길게 이어졌다. 이글거리는 불길은 피눈물인지 그냥 눈물인지 모르게 했다.
다음날 상습성폭행자가 불에 타 죽었다는 기사가 있었다.
요즘에도 두메산골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 곳이 있을까? 빛이라곤 초승달과 별빛뿐인 깊은 숲이다. 사람이 살 수 있을 것 같지도 않다. 과연 길이 있을까 싶다. 하지만 신경 쓰고 잘 들여다보면 풀이 쓸린 자국이 있긴 하다. 최근 수레를 끌었는지 땅이 패인 곳도 보인다. 겨울이 오려면 아직 멀었는데 한기는 겨울 못지않다. 강원도의 가을은 겨울을 무색하게 한다. 그나마 가을이라는 것을 알리는 건 스산한 바람을 간신히 버티는 갈색 밤송이들 뿐이다.
바람이 낙엽을 비벼대는 소리 사이 아이들이 작게 재잘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좀 더 깊은 숲 속이다. 성인 다섯 명이 팔을 둘러도 모자랄 것 같은 커다란 둥치의 나무 아래 삼각형 군용 텐트 한 동이 있다. 가까이 다가서야 보일 정도로 흐린 불빛이 두꺼운 텐트 천을 간신히 뚫고 나왔다.
어린 두 딸을 둔 가난한 아빠는 오두막 한 채를 짓기 시작했다. 십수 년을 홀로 살아왔다는 나이 많은 땅주인 덕분이다.
사실 아빠에게는 오랜 지병이 있었다. 그게 무슨 병인지는 본인도 모른다. 병이 들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것도 복부 깊숙한 곳에서 아린 통증이 시작되면서부터였다. 의료보험도 그에게는 사치였다. 그야말로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사람들도 그에게는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인근 마을에서는 그들을 경계했다. 어디서 흘러 들어온 가족인지, 정체가 무엇인지조차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누구도 그의 가족에게 선뜻 온정을 베풀지 않았다. 그의 고향이 어딘지 아는 사람도 없었다. 항간에는 그가 고아 거나 탈북민일 것이라는 소문도 있었다.
오두막이 거의 완성되어 갈 무렵이었다. 겨울이 깊고 깊은 어느 날 그는 갑자기 죽고 말았다. 사인이 무엇인지 누구도 알지 못했다. 두 딸은 그가 저녁에 잠든 후 깨어나지 않았다고 했다. 영원의 잠에 든 것이다. 그는 해가 뜨기 전에 일어나 아이들 아침밥을 준비한 후 수십 킬로미터를 걸어가 공사장에서 일을 했다. 일용직인데 그마저도 떼이기 일쑤였다. 일을 마치고 돌아오면 두 딸에게 늦은 저녁 식사를 차려준 후 오두막을 지었다. 오두막은 하루하루가 다르게 집의 형태를 갖춰 갔다. 다행히 먹거리는 그들을 품어 주었던 땅주인이 조금씩 보태주어 모자람이 없었다. 그날도 그는 어둠을 밝혀줄 모닥불을 피우고 체력이 소진할 때까지 오두막을 지었다. 그날 밤 생명이 완전히 소진된 것이다. 모닥불도 언제 꺼졌는지 차갑게 식어 있었다. 오두막을 완성하지도 못한 채였다. 만약 그에게 삶의 끈을 잡을 수 있는 선택권이 있었다면 어떻게 해서든 버텨냈을 것이다. 적어도 어린 두 딸이 편히 살 수 있는 오두막이라도 완성해야 그나마 편히 눈을 감았을 것이다. 하지만 생명의 선택권은 애당초 그에게 있지 않았다.
텐트 안에서 생활을 하던 두 딸은 아빠를 잃고 어쩔 줄 몰랐다. 어린 두 아이를 보다 못한 땅주인은 그의 장사를 지내 주고 못쓰는 산 어귀 한 귀퉁이에 묫자리도 내어 주었다. 그가 아니었다면 무연고 사망자보다 못한 장례를 치렀을지도 모른다. 땅주인이 아니었다면 묫자리조차 없어 세 자리 이름조차 남길 수 없었을 것이다. 나무로 된 그의 묘비에는 까만 페인트로 사망일자와 이름만 적었다.
몇 명 되지도 않는 산골 사람들의 의견은 대략 두 갈래로 나뉘었다. 생면부지의 외지인이 들어와 아이들만 남기고 죽었다며 혀를 차는 사람들도 있었고 되려 흉을 보는 못마땅함에 핀잔을 주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누구도 아이들을 돕겠다며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두 아이에게는 직접적으로 삶의 영향을 줄 수 있는 사람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깊고 깊은 겨울이라도 버텨야 다음 삶을 도모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보다 못한 땅주인은 보다 못해 두 아이들을 집으로 들였다. 그의 나이 육십 하고도 넷을 넘기고 있었다.
아빠가 짓던 숲 속 오두막은 한 해 두 해가 지나 폐허가 되어갔다. 아이들의 기억 속에서 아빠의 존재는 점차 희미해져 갔다. 물론 아빠를 그리워하기는 했지만 아빠가 주지 못했던 안락한 삶에 빠져 있었다. 큰 아이는 처음으로 학교에도 다닐 수 있었고 다른 아이들과 비슷한 삶을 살아갔다. 게다가 아이들만의 방도 생겼고 공부할 수 있는 책상도 있었다. 아빠의 존재는 숲 속 오두막이 폐허가 되어가는 시간과 비슷하게 사라지고 있었다.
땅주인의 모습은 점점 시들어 갔다. 완연한 노인의 모습이었다. 그의 나의 칠십이 되던 해 첫째 아이는 중학생이 되었다. 다시 깊고 깊은 겨울이 왔다. 겨울이면 아이들은 마을에서 일찍 돌아와야 했다. 눈을 감고도 다닐 만큼 익숙한 길이지만 밤이 깊으면 숲은 돌연 다른 얼굴을 했다. 두 아이는 언제나처럼 즐거웠다. 익숙함에 지칠 만도 한데 언제나 새로운 놀거리를 생산해 냈다. 첫째는 초등학교 4학년이 되던 해부터 가사를 돕기 시작했다. 거의 일 년이 지날 무렵부터는 가사를 전담했다. 노인은 그런 큰 아이를 실제 딸아이처럼 보듬었다. 언젠가 아이들을 입적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마을에 사는 친구들에게 상의를 했지만 하나같이 모두 그를 만류했다. 출신도 알 수 없는 아이를 족보에 넣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
역시 깊고 깊은 겨울의 어둠이 숲 속을 장악했다. 솔부엉이가 울어대는 소리가 유난히 귀에 거슬릴 정도로 요란했다. 큰 아이는 배에서 온기가 사라지자 손을 더듬어 이불을 찾았다. 또 동생이 이불을 걷어 찬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손에 잡히는 건 익숙하게 느껴지는 까칠한 손등이었다. 손등에 난 털이 손가락에 느껴졌다.
"할아버지?"
아이는 눈을 비비며 일어나려 했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노인이 아이의 몸을 누른 것이다.
"왜요? 무슨 일 있으세요?"
노인은 입술에 손가락을 세로로 대고 말했다.
"너만 조용히 있으면 둘 다 이 집에서 계속 살 수 있다."
"무슨 말씀......헉!"
아이는 더 이상 말을 이을 수 없었다. 헐렁한 고무줄 바지가 힘없이 벗겨지고 있었던 것이다. 숨이 멎는 듯했다. 비명을 지르려 하자 굳은살로 두꺼운 까칠한 손바닥이 입을 눌렀다. 몸부림을 치려고 했지만 바지를 벗긴 노인이 몸 위에 올라타 누르고 있었다. 너무 무거워서 숨이 막힐 것만 같았다.
"할~"
잠시 손바닥이 입술에서 벗어난 틈을 타 말을 하려 했지만 그의 매서운 눈을 보고 말을 멈추고 말았다.
"어떻게 할래? 내가 시키는 대로 순순히 하면 이 집에서 계속 사는 거고 니 맘대로 할 거면 지금 당장 둘 다 이 집에서 나가는 거야. 니 아빠 곁으로 가는 거지."
노인은 아이의 입에서 손을 떼었다. 아이의 기억에 아빠와 함께 살던 시절이 스쳐 지나갔다. 춥고 배고픈 건 참을 수 있겠지만 지금처럼 평온한 삶과 바꾸고 싶지는 않았다. 게다가 어린 동생까지 죽게 만들 수 없다는 생각도 했다. 이런 추위에 밖으로 나가 아빠가 짓다 만 오두막에서 살아갈 생각을 하니 머리가 깜깜했다. 아이는 할아버지가 왜 그러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었다. 그런데 언뜻 마을 어른들이 농담으로 하던 이야기들이 머릿속을 비집고 들어왔다. '그년 배를 타 보면 맛을 안다'며 자랑스럽게 말을 하던 명수 아저씨의 말이다. 아이는 그 말이 무엇인지 한참 고민했던 적이 있었다. 아마 지금 그것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할아버지는 그 맛을 보려 하는 거야.'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대수로울 것이 무엇이 있겠나 싶었다. 그는 아이의 상의를 목까지 올리고 가슴을 핥았다. 이상한 느낌에 온몸의 털이 곤두섰다.
"춥고 이상해요. 안 하시면 안 돼요?"
아이의 질문에도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혀를 놀렸다. 아이가 몸을 비틀자 한 팔로 다리를 쓰다듬어 내렸다. 그리고는 자기 바지를 벗어 버리고는 아이의 몸을 덮었다. 아이는 고통에 겨워 비명을 질렀지만 그는 아이의 입을 꾹 눌러버렸다. 아이는 점점 의식이 사라져 가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항거할 힘이 전혀 없었다. 온몸이 축 늘어지며 죽음이 다가오는 것을 받아들였다.
큰 아이는 추운 겨울 동생과 지낼 곳이 없다는 현실을 직시했다. 노인은 며칠 밤을 방을 건너오더니 나중에는 아이가 그의 방으로 가야 했다. 아이는 조금씩 그 삶에 익숙해지고 있었다. 그의 몸을 받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알기까지 얼마 걸리지 않았다. 자신이 그의 아내나 마찬가지의 삶을 살고 있다는 것에 진저리가 났다. 노인은 매일 밤 아이를 안고 잤다.
세월은 그렇게 흘러만 갔다. 생명의 에너지가 꺼져가던 노인은 다시 활력을 찾은 듯했다. 어둡던 표정도 밝아졌고 식탐도 없이 늘어져 살던 그가 몸에 좋은 것만 골라 먹었다. 집에 놀러 온 노인의 친구들은 아이를 이상한 눈으로 흘겨보았다. 그 눈빛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이는 이미 알고 있었다. 몇 가지의 속내음을 맡을 수 있었다. 음탕한 시선과 부러움의 시선이다. 어떤 사람도 따스하게 보는 사람이 없었다. 이미 마을에서는 노인과 아이가 부부지간이라는 소문이 돌았을 것이다. 그것을 두고 누구도 노인을 탓하거나 손가락질하지 않는다는 것도 안다. 노인은 갈 곳 없는 아이들을 무상으로 집에 들였고 호적에 입적까지 시키려 했었던 호인 중의 호인이기 때문이다. 모르긴 해도 아이가 먼저 노인에게 이상한 접근을 했을 거라는 소문을 냈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아이는 이미 알고 있었다. 입술도 아닌 몸만 탐했던 노인은 자신을 성욕 해소를 위한 창구로 생각했지 사랑 같은 건 절대 아니라는 것을.
아이는 겨울이 두려웠다. 겨울이 들면 노인은 아이를 더욱 괴롭혔다. 학교에 가면 다른 아이들과 다른 삶을 산다는 것에 분개했다. 자신에게는 미래가 없었다. 이미 언제 죽을지 모를 노인의 아내가 되어버린 것이다.
고등학생이 되고도 한 해가 지났다. 아이는 어떻게 해서든 자력으로 대학에 진학할 생각이었다. 의지가 있어서 그럴 수도 있지만 워낙 총명했던 터라 전교에서 순위권 밖으로 떨어진 적이 없었다. 그래서였을까? 의무교육 때문이라기보다는 마을 사람들에게 손가락질받기 싫어서 학교에 보내는 것이라는 정도는 이미 알고 있었다. 아이의 목표는 오로지 자력으로 노인의 손아귀에서 탈출하는 것이다. 언제라도 탈출할 수 있었지만 망가진 인생으로 살기는 싫었기 때문에 오랜 세월을 노인의 성욕 대상으로서의 삶을 꾹 참아냈다. 동생을 이 곳에 두고 떠날 수도 없기 때문이기도 했다.
동생이 여자가 되고 두 해가 지난 어느 진한 봄날이었다. 온 세상이 꽃으로 화사했다. 수업을 마치고 돌아오는 버스에서 내려서도 수 킬로미터에 달하는 소롯길은 아름다움으로 물들어 있었다. 해 질 무렵 붉게 물들어가는 먼 산등성이를 보면 콧노래가 절로 나오는 날이었다. 대문을 열고 들어온 큰 아이는 그 자리에서 그대로 굳어버렸다. 마루 위에서 노인이 동생 위에 엎어져 있는 것이다. 몇 년을 두고 자신에게 했던 짓을 동생에게도 한다고 생각하니 눈이 뒤집혔다. 분개한 아이는 담장 옆 오이장아찌를 담근 항아리 뚜껑을 열고 둥그런 차돌을 꺼냈다. 한 걸음 한 걸음 동생 위에서 헐떡거리는 노인에게 다가갈수록 정신이 혼미해져 갔다. 아이는 무의식적으로 노인의 머리를 그대로 내리쳤다. 그리고 또 내리쳤다. 지금껏 쌓였던 모든 분노가 녹아내리는 듯했다. 아이는 눈물을 흘리며 또 내리쳤다. 노인의 뒤통수는 몇 조각으로 깨져나가 뇌수가 튀었다. 피는 분수처럼 위로 뻗었다. 노인은 동생의 배 위에 엎어진 채로 즉사했다. 동생의 얼굴 위로 노인의 뇌수와 빨간 피가 쏟아졌다. 동생의 눈은 뒤집어진 채였다. 광기에 서린 언니의 살인에 까무러친 것이다. 동생의 숨이 살아있음을 확인한 아이는 동생의 몸에서 노인의 몸을 떼어냈다. 쭈글쭈글한 피부에 빨간 피가 질퍽이는 노인의 시체가 흉측했다. 하지만 아이는 시원하고 통쾌했다. 언젠가 했어야 할 일을 드디어 치른 듯했다.
노인의 시체는 건너편 창고로 옮겨졌다. 아이는 미리 준비했던 것처럼 침착했다. 머릿속에서는 노인의 사고사를 위장하는 그림이 영화 속 장면처럼 그려지고 있었다. 마침 창고에는 얼마 전 무너져 내린 석가래가 있었다. 어차피 사용하지 않는 창고였기에 언젠가 폭삭 무너져 내릴 거라고 방치해 두었었다. 얼마 전 왔던 노인의 친구도 무너진 석가래를 보며 '저까짓 거 빨리 치우지. 흉물스럽게 둔다.'며 핀잔을 주었다. 노인의 몸뚱이를 무너져 내린 석가래의 모서리 끝에 끼워 맞췄다. 딱 맞춘 듯 잘 끼워졌다. 누구도 사고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아이는 맨손으로 뇌수를 주워 노인의 머리 근처에 흩뿌려 놓았다. 마루 위 피는 깨끗이 닦은 후 말끔히 치웠다. 모든 게 정리되자 동생이 정신을 차렸지만 상황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말을 읽은 동생의 눈동자는 아직 풀려 있었다.
경찰이 다녀가고 장례를 치르기까지 아이는 널뛰는 심장을 주체할 수 없어서 그저 울기만 했다. 그런 아이의 모습을 보며 어떤 이는 효심이 지극하다 말했고 어떤 이는 부부간의 정이 깊었다고 생각했다. 아이는 노인을 살해한 것이 드러날까 두려웠다. 노인의 친구는 사건 현장의 알리바이를 보충했다. 누구도 아이가 노인을 죽였을 거라는 상상을 하지 못 했다. 염을 마친 장의사는 몇 번이나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는 사고가 아니라는 것을 안 것이다. 하지만 모든 사실을 알고 있다는 양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아마도 그는 죽어서까지 비밀을 지켜줄 생각인 듯했다.
동생은 서서히 미쳐갔다. 인근 마을 주민들은 노인이 갈 곳 없는 아이들에게 집을 내어주고 하늘로 간 천사 정도로 생각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마을 사람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노인의 재산은 모두 아이의 소유가 되어있었던 것이다. 어찌 된 영문인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법적으로 명확히 아이의 이름으로 소유권이 이전되어 있었다. 아이는 그동안 노인의 재산이 어디서 어디까지 되는지 수도 없이 들었다. 고등학생이 되던 해 노인은 아들을 낳고 싶으니 도와달라는 부탁을 했다. 겁탈을 강행했던 그가 그런 부탁을 하는 걸 이해할 수 없었다. 그 많다는 재산이 연고도 없는 먼 친척에게 넘어가는 것이 두려운 듯했다. 어차피 그는 하고 싶은 대로 자신을 유린하지 않았던가. 이미 영악해진 아이는 노인의 부탁에 조건을 달았다. 집을 떠나는 날 어떻게든 맨손으로 나가지는 않겠다는 생각을 하던 차였다. 노인은 필사적으로 정력에 좋다는 음식을 챙겨 먹으며 아이를 유린했다. 아들을 보겠다는 의지가 강렬했던 것이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아이는 임신할 수 없었다. 아이는 어릴 때 자궁이 상했음을 은연중에 알고 있었다. 아이는 좀 더 대담해지고 있었다. 노인이 술을 마시고 자는 사이 미리 써둔 유서에 지장까지 찍어둔 것이다.
동생의 배는 점점 불러오고 있었다. 이미 학교에 다닐 수 없을 정도로 정신이 이상해진 상황이었다. 동생은 하루 종일 헛소리만 했다. 아이를 가졌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했다. 아이는 어떻게 학교를 다녔는지 모른다. 목표했던 것을 이룰 이유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학업을 그만둘 수 없었다. 동생의 아기가 세상의 빛을 보던 날 아이는 아기를 산에 갖다 버렸다. 차마 직접 죽일 수는 없었다. 차라리 산짐승의 먹이가 되길 바랐다. 아이는 아기를 산에 갖다 버린 날 후로 매일 밤 노인과 노인의 아이를 만나야 했다. 하지만 피할 수 없었다.
다음 해 날이 뜨겁던 여름 한 노인이 찾아왔다. 외할아버지였다. 아이는 희미한 기억 속에서 외할아버지의 모습을 기억해 냈다. 가족이 없다고 생각 했던 아이는 이제야 기댈 곳을 찾았다고 생각하니 마냥 행복했다. 그런데 외할아버지는 아이들을 외가로 데려갈 생각이 없는 듯했다. 외할아버지는 아무런 설명 없이 그 집에 눌러앉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는 동생이 비명을 지르는 소리를 듣고 뛰어 들어왔다. 이번에는 외할아버지가 동생을 겁탈하고 있었던 것이다. 성기도 빼지 못한 상태로 아이를 보는 외할아버지의 표정은 멍청하다 못해 바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충격에 빠진 아이는 벽에 걸렸던 낫을 집어 들고 고민에 빠졌다. 동생은 이미 정신이 나갔고 그 행위가 무얼 의미하는지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을 것이다. 마지막 혈육 인지도 모르는 외할아버지마저 잃고 싶지 않았다. 이 모든 게 무슨 부질없는 짓인가 싶었다. 아이는 힘없이 낫을 내려놓고 말았다.
그 후로도 외할아버지가 동생을 겁탈하는 모습을 수없이 목격했다. 외할아버지는 아이가 자신의 모습을 봤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제는 그것 자체를 즐기는 게 아닌가 싶었다.
아이가 수시 전형으로 서울에 있는 대학교에 합격한 날 외할아버지는 아이마저 겁탈을 시도했다. 완력으로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이를 악물고 치욕을 버텨낸 아이는 다음날 그날 들었던 낫을 다시 들었다. 외할아버지를 찍어 죽이고 말았다. 그것도 백 번을 넘게 찍어 죽였다.
피가 죄다 빠져버린 외할아버지의 몸뚱이는 옮기기 어렵지 않았다. 땅주인이었던 노인보다 흘러내린 피의 양이 많았다. 아이의 손놀림은 의외로 능숙했다. 숲 속 오두막에 시체를 옮긴 아이는 풀을 뜯어 불을 질렀다. 불길은 삽시간에 번져 타오르기 시작했다. 오래전 반쯤 실성한 동생은 외할아버지를 부르며 울었다. 아이는 동생이 자기가 알던 진짜 모습이 맞는지 의심스러웠다.
오래된 통나무집이라 바짝 말라 활활 탔다. 외할아버지는 잿더미가 됐다. 경찰에서는 할아버지가 상습 강간범이라고 했다. 경찰은 오히려 잘 된 일이라고 생각했던지 단순 화재사고로 사건을 종결했다. 경찰들의 시선은 다양했다. 이 사건에 있어 피해자는 넘쳐나지만 당사자는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죽은 자들은 죽음이 마땅하지만 변명할 수 없었다. 마을 사람들은 알 듯 말 듯한 표정으로 아이를 보았다.
두 아이는 두 여자가 되어 마을을 떠났다. 유산을 반쯤 처분하고도 수중에는 많은 돈이 생겼다. 두 여자는 서울로 갔다. 며칠 후 동생은 요양시설로 보내졌다.
여자의 새로운 삶이 시작되고 있었다.
몇 달 전 긴 꿈을 꿨습니다. 너무 생생해서 눈을 뜨자 마자 내용을 정리해 뒀습니다. 새로운 소설의 소재였죠. 다른 소설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지하철 타고 오가면서 인트로 부분만 쓰자는 생각이 들어 살도 붙이면서 마무리 했습니다. 이 내용만 보면 절대 있어선 안 될 이야기며 더럽고 지저분한 글이지만, 앞으로 본론으로 나갈 내용은 좀 다릅니다. 김홍신 작가님의 <인간시장>의 새로운 버전 정도로 생각하시면 좋겠습니다. 그나저나 언제나 시작할 수 있을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