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망~ 우리가 사는 제주도가 그렇게 만들어진 건 알겠어요. 그런데 그 새는 어떻게 됐어요? 그 새는 무슨 새죠? 제주도를 만든 할망은 대체 누구죠?"
일곱 살이 채 안 된 여자 아이가 그렇지 않아도 큰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아이는 함께 이야기를 듣던 남자 아이와는 달리 하얀 피부에 턱선이 곱고 속눈썹이 짙은 데다 아직 한창 성장 중인 코가 살짝 눌려 보였다. 도톰한 입술은 화톳불 온기에 익어 빨갛게 번져 있었다.
"혹시 한라산에 있는 까마귀 아녜요? 하르방 까마귀 아닐까요? 대체 얼마나 크면 할망을 태우고 하늘을 날 수 있는 거죠? 저도 탈 수 있을까요? 설마 그 할망은 우리 할망보다 훨씬 작은 사람 아녜요? 그런데 하르방은 언제 나타나는 거죠?"
거의 백 살은 되어 보이는 노파는 미소를 지은 채 쉴 새 없는 아이의 질문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남자 아이는 여자 아이와는 달리 지겹다는 표정으로 시큰둥해 있었다. 이미 골백 번도 더 들어본 이야기라 딱히 궁금한 것도 없었다. 지겨운 이야기지만 밖은 너무 추워서 나갈 엄두조차 낼 수 없었다.
동지도 얼마 지나지 않아 밤이 너무 길었다. 여름이면 아홉 시가 다 되어도 옅은 빛이 남아 돌 텐데, 지금은 다섯 시만 지나도 암흑의 세상이 됐다. 달도 뜨지 않은 날엔 손을 내밀어도 보이지 않는 그야말로 칠흑 같은 세상이었다. 밤이 충분히 적응이 될 나이지만 남자 아이는 할망에게 들어왔던 전설 때문에 밤에 홀로 문 밖을 나서는 게 무서웠다. 일만 팔천이 넘는 신들이 언제 자신에게 달라붙을지 상상조차 두려웠다. 아직 겁이 없는 여동생은 무엇이 그리 좋은지 할망의 이야기에 심취해 있었다.
"할망~ 이제 그런 거 말고 새롭고 신기한 이야기 없어요? 지겨워요~"
남자 아이는 신경질적으로 투덜댔다. 며칠 전 갓 열 살이 된 남자 아이는 뒤로 발라당 누워 눈을 감았다. 여자 아이와는 달리 피부가 검고 눈도 작아 누가 봐도 친남매로 보이지 않았다. 숯처럼 짙은 검은색의 고운 생머리를 한 여동생과 달리 남자 아이는 곱실거리는 갈색 머리를 길게 동여 맸다. 아직 앳된 모습에도 불구하고 팔에는 조금씩 근육이 잡혀가는 게 보였다. 또래의 아이들과는 사뭇 다른 체구에 어깨도 조금씩 벌어지고 있었다. 이미 학교 갈 나이가 지났지만 부모는 아이를 학교에 보낼 형편이 못 되었다. 대신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어멍을 도와 밭일을 도왔고 아방을 따라 한라산 구석구석 약초를 캐러 다녔다.
오늘도 아방은 어멍과 함께 삼십 리나 되는 장터에 약초를 팔러 갔다. 어쩌면 가을에 수확한 지슬이라도 한 자루 사 올지 모른다. 두 아이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삶은 지슬을 미리 머릿속에 그려 놓았다. 하지만 느려 터진 늙은 흑소 때문에 오늘도 여지없이 늦을 게 분명했다. 흑소는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늙어서 걸음이 느렸다. 하루하루가 다르게 느려졌다. 최근엔 가끔 휘청거리기도 했지만 그런 흑소라도 없다면 부모님은 무거운 짐을 옮길 방법이 없었다. 아무튼 이렇게 밤이 긴 계절이 오면 남매는 할망과 함께 지내야 했다. 항상 그렇진 않았지만 부모님을 마냥 기다리는 게 익숙한 아이들이었다.
"달래야~ 할망의 할망도, 그 할망의 할망도 설문대할망을 모셔왔단다. 할망도 설문대할망을 모셔왔고 말이다. 설문대할망은 우리 섬의 일만 팔천 신들 중에 으뜸이란다."
할망은 달래의 손을 꼭 붙들며 말했다. 할망의 두 눈은 깊게 파인 주름살보다 더 깊게 자리 잡고 있었다. 할망의 까만 눈동자는 영혼만 남은 듯 보였지만 묘한 염험함이 담겨 있었다. 당장 눈물 한 방울이 똑하고 떨어질 것만 같은 순수함도 녹아 있었다. 할망의 비쩍 마른 체구는 이미 삶의 끝자락에 간신히 생명줄을 잡고 버티는 듯한 모습이다. 어쩌면 할망은 저승길을 두고 흑소와 줄다리기를 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할망! 제발 그런 말 좀 그만하면 안 돼요? 달래가 왜 무당이 되는데요? 아방도 달래에게 무당 안 시킨다고 했잖아요. 설문대할망이니 뭐니 지긋지긋한 전설에 불과한 거잖아요. 그리고 할망도 이젠 신기도 없고, 언제 죽어도 모를……."
남자 아이는 자기도 모르게 못할 말을 뱉은 걸 알고 자신의 입을 틀어막았다. 아이의 눈엔 약간의 두려움이 실려 있었다. 할망이 두려운 게 아니고 할망을 잃을 것이 두려운 것이었다. 할망이 자기 곁을 떠난다는 건 상상조차 하기 싫었다. 언젠가 아방은 할망이 얼마 살지 못하실 거라며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으라 했다. 동생 달래는 할망을 떠나보내기 힘들 거라고 말이다.
"기정아, 할망은 괜찮다. 니 아방이 나 때문에 고생만 많이 했지. 할망이 그거 모르는 거 아니다. 할망도 이젠 얼마 안 남은 거 안다. 우리 달래도 이제 곧 할망 떠나보낼 준비도 해야 하고 말이다~"
할망의 말에 달래는 세월에 눌려 뭉친 솜이불을 덮고 앉아 있던 할망의 품에 달려들었다. 할망의 누릿한 냄새가 달래의 코끝에 미쳤다.
"할망! 절대 못 가! 내가 못 가게 할 거야! 우리 할망을 누가 데려간다고 그래? 설문대할망이 누군지는 몰라도 절대 안 보내!"
달래의 눈빛은 이글이글 불타오르는 듯했다. 절대 할망을 놓지 않겠다는 강렬한 의지가 눈빛에 그대로 드러나 있었던 거다.
"그 설문대할망이 우리 섬을 만든 그 할망이란다. 달래야~ 할망은 설문대할망이 부르시면 지금 당장이라도 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우리 가족은 설문대할망을 길이길이 모시는 집안이니까 말이다. 그리고 달래 너는 말이다~"
할망의 말에 기정이 이빨을 악물었다. 할망은 그런 기정의 눈빛을 보곤 더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오랜, 아주 오랜 그녀 자신의 기억이 떠올랐던 것이다. 기정은 자기도 모르게 긴 한숨을 쉬었다. 겨우 열 살 먹은 아이의 한숨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