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는 독서량에 비례한다

에이모 토울스의 <모스크바의 신사>를 읽으며

by 루파고
그 꿀은 모스크바 중심부의 꽃나무가 아니라 풀이 무성한 강둑과 여름날 산들바람의 흔적과 퍼걸러의 아늑함 등을 떠올리게 했다.
무엇보다도 꿀 속에는 꽃이 만발한 수많은 사과나무를 암시하는 또렷한 향이 있었다.
"느즈니노브고로드."


<모스크바의 신사> 270페이지에서...

여동생 옐레나를 그리며 호텔 지붕에서 투신하려던 백작의 고향의 향기였다.
사라졌던 벌들은 사과나무 숲으로 유명한 백작의 고향에서 꿀을 담아온 것이다.
백작은 자살하려던 마음을 접었다.
잠시일까?




술을 줄이기로 작정하고 술값을 아껴 다시 독서의 세계로 빠져들기로 작정한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그중 가장 유의미한 이유는 독서량과 글쓰기 능력이 비례한다는 것을 새삼 실감했기 때문이다.

비슷한 표현이 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어쨌든 책은 그 작가의 도서관이 분명하다.

<모스크바의 신사>는 서정적이면서 템포가 매우 느린 소설이며 배경 또한 묘한 판타지적 느낌이 강하다.

오랜만에 느낌의 끈을 놓칠 세라 한 줄 한 줄 곱씹으며 읽는 소설을 만난 듯하다.


작가들의 표현법은 실로 다양하다.

작가 에이모 토울스는 알렉산드르 일리치 로스토프 백작의 자살 앞에 고향의 향기를 담아온 꿀을 내어 놓았다.

향수라는 것이 진한 고독을 주기도 하지만 아련한 그리움도 준다는 것을 다시 느끼게 해 준 대목이다.

사라졌던 벌들이 사과나무가 숲을 이룬 고향의 향기를 담아왔다는 걸 알았을 때 인생을 접겠다던 그의 강한 의지마저 내려놓게 했다.

소설은...

아니 작가의 표현은 독자가 반문할 수 없을 만큼 강한 공감을 형성해버린 것이다.

감동을 주는 표현을 하려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매개체가 있어야 한다.

그걸 잘 찾아내는 게 작가가 해야 할 일이고 그 능력에 따라 글의 평가가 달라진다

나는 묘사보다 이야기의 서술에 더 중심을 두고 글을 쓰는 편인데 이 소설을 읽다 보니 군더더기 없는 묘사들이 자꾸 가슴을 짓이기곤 한다.

지인들이 내게 작가라고 부르는 것이 감사하기는 하지만 이런 글을 만날 때마다 자존감이 떨어지곤 한다.

글쓰기 능력은 선천적이라고만 할 수는 없다.

좋은 글을 하나 만날 때마다 고뇌하는 시간이 이렇게나 길어지는데 세상의 셀 수도 없는 문학서적들을 만나다 보면 얼마나 성장할까 싶다.

나도 모르게 말이다.

그만큼 독서량은 중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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