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에서 글쓰기 스승을 찾았다

에이모 토울스 작가가 내게 이웃 신청을 해 왔다

by 루파고

영화, 소설, 드라마, 시, 연극, 에세이, 하다 못해 유튜브 방송까지 세상의 어떤 종류의 콘텐츠도 스승이 되지 못할 것이 없다. 세상의 많은 작가들의 작품들 중 내게 스승이 아니었던 적도 없다. 글쓰기를 정식으로 배운 적이 없기에 나로서는 필드에서 부대끼며 나 스스로를 키우는 방법뿐이었다. 출판사와 처음 소설을 계약하던 날 만난 편집장님은 다름 아닌 <8월의 크리스마스> 원작자이신 허수정 작가님이다. 무척 놀라기도 했지만 얼마나 영광스러운 만남이 아니었는지 모른다. 기성 소설가를 직접 만났다는 것만 해도 잠을 못 이룰 정도인데 대작 영화인 <8월의 크리스마스>의 원작자께서 내 소설을 읽고 출판을 결정해 주셨다니. 편집장님이자 소설가이신 허수정 작가님은 내게 몇 가지 조언을 해주셨다. 그는 내 글의 문제점이라 할 만한 부분과 개선되어야 할 부분을 지적해 주셨고 앞으로 어떤 소설을 좀 읽어보면 좋겠다는 등의 조언도 해 주셨다. 그는 그 순간 나의 첫 글쓰기 스승이 되어주신 거다. 내게도 글쓰기 사부님이 생긴 거다. 그리고 그가 선정해준 책을 읽으면서 내 글을 되짚어보기 시작했다. 역시 무엇이 문제인지 여실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하나의 깨우침은 일파만파 확장되어갔다. 나는 한 단계 업그레이드를 할 수 있는 계기가 생긴 것이다. 얼마나 다행인지 당시 업무가 바쁘지 않았기에 잠시라도 글쓰기에 집중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우연이라면 우연이다. 나는 거의 일 년간 다시 독서에 집중했다. 원래 독서량이 많던 나였지만 독서법이 바뀐 후 독서의 관점이 달라진 걸 알 수 있었다. 나는 언젠가부터 이야기의 흐름 위주로 글을 읽고 있었다는 걸 알 수 있었던 것이다. 뭐가 그리 급하다고. 조금 더 천천히 글을 읽으면 단어 하나하나가 의미하는 걸 새로이 느낄 수 있었다. 단어와 단어, 문장과 문장이 서로 유기적으로 밀고 당기거나 하는 관계를 익힐 수도 있었다. 그동안 나는 빨리 읽고 치워야겠다는 이유 없는 목표를 설정해 두고 속도전을 펼치는 독서에 익숙해진 것이었다. 즉, 제대로 된 독서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니 글을 쓰면서 이야기를 집아나가는 덴 어렵지 않지만 문자 깊숙한 곳에서 뿜어져 나와야만 하는 에너지가 부족했던 것이다. 강하거나 부드럽거나 빠르거나 느리거나 밝거나 어둡거나 하는 세부적인 묘사에 있어 단어 하나 선정하고 꾸미는 수식에 서툴다 못해 허접한 글쓰기였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시간의 흐름과 함께 독서량이 느리게 늘어갔고 아주 미세한 깨우침들이 반복되며 그것들이 차곡차곡 쌓이면서 나는 아주 조금씩 성장하고 있었다. 그렇게 하다 보니 작문 실력(실력이라고나 할 수 있나 모르겠지만)이 아주 조금은 향상된 것을 알 수 있었다. 얼마 전 편집장님이 그런 말씀을 해 주셨다.


한작가 필력이 많이 좋아졌어요.


사부님의 존재는 나 같은 초보 작가에게 있어 얼마나 강한 빛이 되었는지 모른다.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은 절대 알 수 없을 거다.


그러던 어느 날 원한 것도 아닌 원한다고 될 수도 없는 뜻하지 않은 일이 발생했다. 난 서점에 가서 책을 사는 걸 좋아한다. 어떤 작가가 말했던 것처럼 새로 나온 책 냄새를 맡는 걸 좋아해서 그런 건 아니지만 서점을 좋아하는 사람들 누구나 그러하듯 나 역시 천장을 제외한 모든 공간을 책으로 꽉 채운 서점의 분위기 자체가 좋아서다. 왠지 그곳에 가면 그 많은 책들이 전부 내 것이 될 것 같고 어떻게 해서든 머리에 주워 담고 싶은 욕심에 마음이 마구 설레는 걸 느낄 수 있다. 실현될 수 없는 너무 과한 욕심이란 걸 알면서도 그렇게 된다. 그런데 어느 날 약속 때문에 신논현역에 나간 참에 시간이 남아 즐겨 찾는 교보문고에 갔다. 신논현역에 가면 내 발걸음은 자동적으로 그곳을 향한다. 알 수 없는 마력이 있는 게 분명하다. 아무튼 평소처럼 신간 서적을 휙휙 뒤적거리며 눈길을 끄는 소설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내 손에 잡힌 책이 에이모 토울스 작가의 <모스크바의 신사>였다. 제목도 특이하고 뭔가 묘한 매력이 나를 끌었던 것이다.

소설을 읽고 느낀 바가 있어 써둔 게 있으니 아래 링크를 참조하면 좋겠다.

https://brunch.co.kr/@northalps/280

이 소설에 꽂힌 후 그의 다른 소설인 <우아한 연인>도 사서 읽었다. <모스크바의 신사>가 너무 강렬하여 감동은 덜 했지만 그 소설 역시 명작임엔 틀림이 없었다. 그렇게 그의 소설을 다 읽고도 헤어 나오지 못해 그 속에 푹 빠져 절인 배추처럼 흐물흐물해질 무렵 내 SNS로 그에게서 이웃 신청이 들어왔다. 난 소통 없는 이웃과는 그다지 맺지 않는 편이라 스팸 외엔 이웃 신청이 없다. 그래서 처음엔 스팸인가 싶어 관심을 두지 않았지만 나도 모르게 그의 계정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의심은 점차 환희로 변했다. 에이모 토울스라는 영문 이름에 설마 했지만 그의 SNS가 맞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이게 웬걸? 그의 계정을 보니 기껏 300명도 채 안 되는 이웃 중에 내가 속해있던 것이다. 나만 그런 걸 아닐 거다. 존경하는 작가가 직접 이웃을 원하는 경험을 해본 적이 있을까? 난 지금도 그와 가끔 영어로 댓글을 주고받는다. 제대로 살펴보진 않았지만 현재 328명 중 한국인은 나밖에 없는 것 같다.


그의 소설 두 권은 내게 많은 깨우침을 주었다. 영어권 소설인 데다 러시아 문학에 가까운 느낌도 있어 의역된 부분도 많겠지만 단어 하나하나에 얼마나 깊은 고뇌가 있었는지 알 수 있는 소설이었는데 언제 다시 읽어도 기품 있는 감동을 줄 소설임엔 틀림이 없다.


내 소설 중 한 편은 현재 영화판에서 검토 중이다. 좋은 소식이 오기를 기대하면서도 내 속 안에 있는 욕심을 꾹꾹 누르고 산다. 될지 안될지도 모르면서 얼마나 자랑하고 싶은지 모른다. 나중에 얼마나 후회하려고. 어쨌든 이렇게 직간접적으로 자랑질을 하고 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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