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25-탈영병

by 루파고

하르방이 내준 식량을 지게에 지고 무거운 걸음을 옮겼다. 박수가 움막으로 향하는 숲으로 들어서려는데 숲 근처에 아들 기정의 모습이 보였다. 하르방에게 상황을 전해 들은 박수는 기정의 모습이 발각될까 두려워 안간힘을 써서 속도를 붙였다. 박수를 발견하고 뛰어나오던 기정에게 다시 돌아가라며 소리를 지를 순 없어 손짓을 하며 숲으로 들어가라고 했지만 이해하지 못한 기정은 빠르게 달려왔다. 다행히 본 사람은 없겠지만 박수는 만사가 다 걱정이었다.

"빨리 돌아가자. 이젠 절대로 숲 밖으로 나오면 안 된다."

기정을 짧게 설명한 후 숲으로 몸을 감췄다.

"아방, 움막에 손님이 있어요."

기정의 말에 박수는 심장이 내려앉는 충격을 받았다.

"손님?"

"네. 그런데 군인 삼춘이예요."

"군인? 무슨……."

박수는 마치 심장이 벌렁거려 죽을 것만 같았다.

"저희들이 숲에서 데려왔어요. 피를 흘리며 죽은 사람인 줄 알았는데 숨을 쉬더라고요. 그래서 애들이랑 힘을 합쳐서 움막으로 옮겼어요. 제가 나올 때까진 정신을 못 차렸는데 지금은 모르겠네요."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면서……."

박수는 화를 내려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착한 아이들이 무슨 죄라고 다친 군인을 무서워하겠나 싶었다. 박수는 기정을 앞장 세워 움막을 향했다.

새로 지은 움막 주변에 아이들이 몰려 있었다. 박수가 도착하자 아이들이 달려와 짐 내리는 걸 도왔다. 박수는 지게를 내린 후 주먹 만한 현무암 하나를 들고 움막 안으로 들어갔다. 여차하면 군인을 때려죽여야 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도지는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한 군인 곁에서 이마의 식은땀을 닦아주고 있었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이오."

이제야 박수가 돌아온 것을 알게 된 도지가 황급히 일어나 박수의 손목을 잡았다.

"아이들이 데려왔는데 거의 죽어가는 사람을 내칠 수도 없었어요. 아직 정신이 없어요. 깨어나면 어쩌죠?"

"총 같은 건? 칼이나 무기 같은 건 없었소?"

박수는 도지의 손을 뿌리치고 군인 몸을 뒤지기 시작했다.

"올 때부터 아무것도 없었어요."

"이 군인은 어디서 발견했는지 물어봤소?"

"그건 아직……. 경황이 없어서 물어보지 못했어요."

도지의 대답에 박수는 기정을 불러들였다. 기정의 설명으로는 관음사 아래 들위오름 옆 병문천에서 발견했고 아이들도 군인의 총 같은 건 볼 수 없었다고 했다. 아이들도 무서워서 한동안 주위를 살폈지만 다른 사람은 못 봤다고 했다. 박수와 함께 기거하는 아이들은 비슷한 상처를 입은 상황이라 박수가 강조하지 않아도 타인에 대한 경계가 많았다. 아이들 말을 믿어도 될 것이지만 박수는 다음날 직접 다녀오기로 작정했다. 군인은 오른쪽 어깨에서 쇄골 사이로 구멍이 났다. 총상, 그것도 관통상이었다. 박수는 상처를 입은 군인의 다리를 묶어 움직일 수 없게 만든 후 밤새 옆에서 지키기로 했다. 도지는 비좁은 할망의 움막에서 많은 아이들과 함께 밤을 보내게 됐다.

군인은 밤새 신음만 할 뿐 미동조차 없었다. 혹시나 싶어 만져본 이마는 불덩이 같았다. 하는 수 없이 박수는 밤새 군인을 돌봐야 하는 상황이 됐다. 새벽녘이 되어서야 열이 내린 듯하여 잠시 눈을 부친 박수는 해가 떠오른 지 한참이 지나서야 정신을 차렸다. 그가 잠든 사이 도지가 군인을 보살피고 있었다. 전날은 군인이라는 것 때문에 경계심이 커서 제대로 살피지 못했지만 기껏 스무 살 남짓 되었을 군인은 하얀 피부에 잡티 하나 없는 하얀 얼굴이었다. 제주 여자들보다 고운 피부를 가지고 있었다. 군복을 입고 있지 않았다면 누구도 군인이라고 볼 수 없었을 외모였다. 그래도 걱정이 된 박수는 기정의 손에 나무 몽둥이 하나를 쥐어준 후 어멍을 지키라고 했다. 박수는 달래를 데리고 아이들이 군인을 발견한 곳을 향했다. 움막 주위를 손바닥처럼 훤히 알고 있던 달래는 군인이 쓰러져 있었던 장소를 어렵지 않게 찾아냈다. 아이들은 숲에서 멀리 다니지 않았기 때문에 잘 모르고 있었지만 그곳은 관덕정에서 관음사까지 이어지는 오래된 길과 멀지 않은 위치였다. 박수는 달래 손을 꼭 잡고 움막으로 돌아왔다. 군인이 정신을 차리는 대로 그를 협박할 생각이었다. 자칫 잘못하면 그들 가족이 위협받을 상황으로 돌변할 것이다. 만약 그들을 죽이기 위해 나섰다가 부상을 당한 거라면……. 박수는 머리가 어지러웠다. 그렇다면 군인을 죽이거나 감금해야 가족이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움막 입구에서 박수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던 도지는 대나무숲을 헤치고 나오는 박수의 모습을 보며 손짓했다. 상기된 표정이었다.

"군인이 깨어났어요."

"움직일 수 있어?"

"혹시 몰라서 손도 묶었어요."

박수는 움막 안으로 날다시피 뛰어 들어갔다. 얼굴이 하얀 군인은 어두운 움막 속에서도 환해 보였다. 출혈이 많아서 그랬을지 알 수 없지만 창백하다시피 했다. 커다란 몸집의 시커먼 얼굴을 한 박수를 본 군인이 흠칫 놀랐며 일어나 앉았다. 손발 모두 묶인 채였다. 군인 옆에는 몽둥이를 든 기정이 전혀 위협적이지 않은 위협적인 표정으로 서 있었다.

"순순히 자백해야 할 거야. 난 당신을 죽일 수도 있어. 어떻게 숲으로 들어온 거지?"

"저는 탈영병입니다."

"그럼 군인이 아니라는 건가?"

"저는 군인들에게 쫓기는 상황입니다."

"내가 그걸 어떻게 믿지? 우리를 안심시켜 놓고 군인들에게 우리 위치를 알려줄 수도 있잖아. 내게 그게 아니란 걸 증명할 수 있겠어?"

박수는 군인이 살기 위해 뭐라도 변명을 할 거라고 단정 짓고 있었다.






박수는 군인의 정체를 믿지 않았지만 그가 설명하는 내용은 믿을 수밖에 없었다. 군인은 현재 상황에 대해 아주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제주도에는 이천 명이 넘는 경찰 병력이 투입되었으며 그들 대부분이 군인이라고 했다. 최근 경비대총사령부는 제주도경비사령부를 신설한 후 아무런 증거도 이유도 없이 양민을 체포하고 고문하고 학살했다. 그는 육지에서 차출되어 온 현역 군인인데 전쟁보다 무서운 살육이 제주에서 일어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젊고 순진한 청년들을 사형시키려는 상관을 말리다가 다툼이 있었고 급기야는 주먹질까지 하게 되었다. 결국 명령불복종으로 체포되었고 부대로 강제 이송되던 중 탈출해 숲으로 숨었다고 했다. 제주에 투입된 지 세 달 되었다는 군인은 그동안 자신이 목격하고 겪었던 일들을 눈물을 흘리며 설명했다. 그는 잔인하다, 참혹하다, 인간이 할 짓이 아니다, 그들은 악마다라는 말을 끊임없이 토해냈다.

얼마 전 삼진작전이 개시됐다. 불태워 없애고, 죽여 없애고, 굶겨 없앤다는 끔찍한 대량학살작전이다. 해안선에서 오 킬로미터 떨어진 산간 지역의 주민들은 모두 폭도 혹은 무장세력으로 간주하고 무조건 죽이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외부에서 빨갱이 무장세력이 들어오거나 빨갱이들이 제주도 밖으로 도망가지 못하도록 바닷가의 모든 어선들도 출항을 금지시켰다. 군인들은 빨갱이로 지칭된 무장세력을 토벌하는 토벌대를 대거 조직해 이유를 불문하고 죽이고 있다. 무장세력과 소통한 적이 있거나 그랬다는 소문만 있어도 죽임을 당했다. 무장세력과 친인척 관계만 있어도 죽임을 당했다. 어떤 사람은 체포되어 연행되어 가는 친형을 보고 이름을 불렀다는 이유로 그 자리에서 총에 맞았다. 그뿐 아니었다. 법원장, 신문편집장, 교장 등 인지도 높은 제주도의 유지들 또한 사형을 피해 갈 수 없었다. 아무도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무장세력은 이에 반발하여 경찰서장은 물론 경찰의 가족까지 살해하는 보복을 했다. 물고 물리는 비인간적인 사건들이 줄을 이었다. 무장세력에게 음식이나 물이라도 줬다간 누구도 목숨을 건질 수 없었다. 실제로 중산간에 살던 주민들 중 자의로 제공했거나 약탈을 당했거나 무조건 처참한 죽임을 당했다. 최근에는 제주도 출신 군인 백여 명이 군사재판도 받지 못한 채 사형을 당했다. 그저 제주 출신이라는 게 사형의 이유였다. 제주 대부분의 마을에선 어린아이들이 빗개(보초)를 선다고 했다. 경찰은 검은개, 군인은 노랑개로 불렸다. 아이들은 그들이 마을 주위에 나타나면 '검은개 온다, 노랑개 온다'며 마을에 알리고 몸을 피했다. 체포되어 감금된 사람들은 가족이 고문당하는 소리를 들어야 했고 그러고도 모자라 보는 앞에서 가능한 잔인하게 죽였다. 심지어 생긴 게 빨갱이처럼 생겼다며 이유 없이 죽였다. 위에서 지시한 할당량을 채우기 위해 아무 관련도 없는 사람을 죄인으로 몰아 죽여 할당량을 채웠다. 젊은 사람들은 젊기 때문에 무장세력이 될 거라며 죽였다. 제주의 젊은 사람들, 특히 남자들은 마땅히 죽어야 했다.

*

도지는 얘기를 듣다가 입을 막고 움막을 뛰쳐나갔다. 움막 밖에서 도지의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게 사람이 할 짓이오?"

박수는 독기를 품은 눈으로 물었다. 군인은 그에게서 살기를 느낄 수 있었다.

"저는 사람이 할 짓이 아니라고 판단하고 맞서려다 이 꼴이 됐습니다.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습니다. 악마가 있다면 바로 그들입니다."

박수는 군인을 믿을 수 없었지만 믿고 싶었다. 악마를 죽일 힘도 없거니와 악마를 감금해 두고 두려움 속에서 살고 싶지도 않았다.

"은인께서도 빗개를 둬야 할 것 같습니다. 요즘 미군 정찰기가 산간지역을 뒤지고 있습니다. 한라산 서귀포 쪽에선 벌써 많은 은신처를 발견해 몰살했다고 들었습니다. 영남동과 천서동 사람들은 동굴에 피신해 있었는데 동굴 안에서 사람들을 죽이고 그대로 매장해 버렸다고 합니다."

박수는 다른 지역의 상황을 알 수는 없지만 자신들의 거처라고 해서 안전할 수 없다는 생각에 심란했다. 아무리 평생을 살아온 지역이라지만 기억을 샅샅이 뒤져도 숨기 좋은 곳은 없었다.

"내가 당신을 믿어야 하는 이유 세 가지만 대 보시오. 그에 따라서 살리거나 죽이거나 하겠소."

고민 끝에 나온 결론이었다. 박수의 질문에 군인은 잠시 고민하는가 싶더니 눈동자에 불을 켜며 입을 열었다.

"저는 세 가지 이유를 찾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다만 제 역할을 하겠습니다. 군인들의 생리는 제가 잘 압니다. 군인들이 우리를 발견하면 제가 다른 곳으로 유인하겠습니다. 그때 피신하시면 됩니다. 어차피 저는 탈영병이라 잡히면 죽습니다. 싸우지도 못하고 잡혀가서 죽느니 한 사람이라도 더 살리고 죽겠습니다. 그리고 저를 이대로 묶어 두십시오. 지금은 이 몸으로 도망칠 수도 없겠지만 나중에라도 도망치려고 한다면 그때 죽여도 됩니다."

허영선 작가님의 <제주 4.3을 묻는 너에게>에서 일부 인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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