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떠러지로 추락하다
올레길 21번 코스를 마친 후, 물도 마시고 숨도 좀 고르고, 생각도 정리하고, 이것도 저것도 좀 하고 십여 분 정도 쉰 후 다시 길을 나섰다.
이번에는 올레길 20번 코스다.
거센 맞바람에 체력 소비가 만만치 않았다.
자전거를 타고 가는 사람은 한 사람도 만나지 못했다.
환상자전거길 위에는 라이더가 몇몇 다닐 수 있겠지만 나와 마주칠 일이 없긴 하다.
세화 해변으로 나가서 세화오일장 뒤편으로 가는 코스다.
겨울바다가 주는 느낌은 좀 색다른 편인데 이번에는 파도가 높지 않아 와 닿는 느낌이 별로 없었다.
다만 낮게 앉은 구름이 세상을 차분하게 만드는 것처럼 보였다.
구좌는 토질이 좀 다르다.
밭에 모래가 많아 당근 농사가 잘 되는가 싶다.
동쪽 지역은 대체로 현무암 가루로 된 토질이 대부분인데 구좌 쪽엔 유난히 모래가 많다.
아닌 게 아니라, 좀 더 달려가니 바다에서 한참 멀리 떨어진 내륙의 동산 하나가 완전히 모래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런 걸 보고 이색적이라는 표현을 하는 것이 아닐까?
자전거가 푹푹 빠져 달리기 어려웠는데 그 참에 자전거에서 내려 사진 몇 컷 남겼다.
주변을 둘러보니 온 천지가 모래다.
지나가는 길에 만난 이상한 건축물.
이색적인 건축이다.
제주도 곳곳에 묘한 건물이 많은데 이건 좀 특별나지 싶다.
가운데 건물에는 계단으로 되어있는데 과연 용도가 뭘까?
다시 제주의 돌담이 이어진 농로로 들어섰다.
이런 돌담을 밭담이라고도 하는데 밭과 밭, 밭과 길의 경계를 두기 위해 쌓은 담이라고 한다.
대체 얼마나 오랜 기간 동안 쌓은 돌담일까?
역사가 얼마나 되었는지 궁금해졌다.
평대리는 당근이 유명하다.
한동안 벽화가 유행했었는데 이제는 이런 벽화가 오히려 경관을 해친다는 느낌이 강하다.
하지 않느니만 못한?
농로길을 한참 달려 나온 곳이다.
곧 바다를 잠시 만나는 위치인데 이 길이 상당히 눈에 익다 했더니 예전에 땅을 보러 왔던 기억이 났다.
그곳이 평대리였다는 생각이 들자 사람의 기억이란 게 얼마나 문제가 많은가 생각했다.
길가의 단독주택 울타리 안에 있던 녀석이다.
같이 놀아달라고 꼬리를 흔들며 뛰어오는데 너무 외로운 모양이었다.
하지만 내 손을 거부하는 나쁜 녀석.
코도 한번 못 만져주고 페달을 밟았다.
제주도의 유명한 흑돼지 식당인데 여기에도 엄청난 규모의 주차장을 둔 식당을 오픈한 모양이었다.
주차장이 너무 넓어 승용차 100대는 너끈하게 주차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마도 관광버스를 받기 위해 넓게 지은 듯 보였다.
다시 좁아진 올레길.
울퉁불퉁한 길 위로 자전거를 타다가 컨트롤하기 너무 어려워서 하차하고 말았다.
여기까지 오는 길에 여러 번 비슷한 경험이 있었는데 위험하다 싶어서 내리곤 했다.
몇 번 넘어질 뻔했는데 다행히 다치거나 하지는 않았다.
평대리에 들어서면서부터 풍력발전기가 보이기 시작했는데 올레길은 그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언젠가 풍력발전기 주변에는 사람이 살기 어렵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었는데 마침 바람이 강한 날이라 그런지 왜 그런 말이 나왔는지 알 것도 같았다.
윙윙, 쉭쉭 하는 소리도 시끄럽지만 전자파 문제도 있다고 들었다.
농로를 돌아 나오니 잠시 잘 닦인 2차선 포장도로를 만났다.
신났다고 페달을 밝고 가다가 또 올레길을 놓치고 말았다.
그러면 그렇지. ㅠㅠ
다시 돌아와 올레길 입구를 찾아 들어가니 농로길이 또 이어졌다.
이젠 조금씩 지겨워지기 시작했다.
자전거를 세워 두고 한 컷 촬영하고 지나간다.
어머니 자전거인데 오히려 내가 더 많이 타고 다니는 것 같다.
이번에는 건천인 하천을 만났는데 여기도 여지없이 농사용 폐기물, 쓰레기가 널려 있었다.
정말 보기 흉한데 이런 건 신경 쓰지 않는가 보다.
농민들의 계몽은 천 년이 지나도 어려울 것 같다.
21코스 중 해녀박물관을 지나며 경상도 아주머니 두 분이 지나가다가 코를 푼 휴리를 당연한 듯 버리는 꼴을 봤다.
얼핏 들은 대화 중에 제주도로 이주한 육지사람 같았다.
제주도가 좋아서 오긴 한 걸까?
뭐가 좋아서 온 걸까?
정말 청정 제주가 좋아서 온 거라면 그런 사소한 것부터 지켜야 하지 않을까?
다시 바닷가 길로 접어들었다.
이젠 풍력발전기가 여기저기서 보인다.
너무 많아서 감흥도 없어진 상태.
바닷가로 접어드니 맞바람이 장난 아니다.
행원리로 접어들어 바닷가로 난 올레길을 자전거로 타는데 여기서 사고를 맞고 말았다.
돌이 울퉁불퉁한 길 위로 자전거를 타다 끌다 반복하는데 마침 자전거를 타고 가는 지점에서 엉뚱한 사고가 난 것이다.
MTB 경력이 짧은 나는 이런데 대처 능력이 부족한 것이다.
모든 건 경험에서 나오는 거지만 이렇게까지 황당한 경우를 당하리라고는 상상해본 적이 없었다.
낭떠러지에 떨어진 후 몸을 추스르고 위를 올려다보며 촬영한 사진이다.
약 2미터 높이는 되는 것 같다.
양쪽으로 낭떠러지가 있는 좁은 길이었는데 앞바퀴가 큰 바위에 걸리면서 멈추고 중심이 흐트러졌는데 하필이면 낭떠러지와 가까운 왼쪽으로 중심이 넘어간 것이다.
왼손으로는 짚을 공간이 없었고 몸은 이미 왼쪽으로 기울었으며 오른손으로 잡을 수 있는 건 자전거밖에 없었는데 잡으나 마나였다.
자전거와 함께 구르면 더 큰 사고를 당할 것이라는 생각에 절벽에 있는 잡을 만한 것을 찾았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다.
워낙 추락하는 일에는 경험이 많은지라 몸이 굳거나 그런 일은 없었다.
하지만 지지할 곳 없이 추락하는 건 공포스럽지 않을 수 없었다.
뻔히 낭떠러지가 보였으니 말이다.
그리 높지는 않은 절벽이지만 바닥은 죄다 바위라 몸이 다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었다.
몸이 뒤로 벌러덩 까지며 등으로 떨어졌는데 다행히 오른손이 벽을 끝까지 붙들고 늘어져 속도를 많이 줄일 수 있었다.
라이딩용 쟈켓 오른쪽 주머니는 터져 나갔고 그 안에 들어있던 스마트폰은 구멍으로 빠져나갔다.
스마트폰 액정은 충격으로 깨지긴 했지만 작동상 큰 문제는 없어 보였다.
일부 터치가 잘 안 되는 부분이 있다는 점이 있는 것을 제외하면 말이다.
몸에 쓸린 부분들이 있는지 여기저기 쓰라린 곳이 느껴졌다.
워낙 곰탱이 같이 무식한 편이라 그런지 그런 건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팔다리가 잘 움직이는지 확인하고 떨어지거나 한 건 없나 살핀 후 절벽 위로 다시 기어올라왔다.
자전거는 잘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엉뚱한 사고였다.
그만하길 다행이라는 생각과 함께 자전거를 세우고 다시 길을 재촉했다.
오늘 세 개 코스를 마무리해야 한다는 목적의식이 더 강렬했기 때문일까?
마음 깊은 곳에서는 19코스는 다음에 해야겠다는 생각도 있었지만 일단은 가보기로 했다.
날도 스산하고 바람도 강한 데다 사고까지 당하고 나니 의지가 한풀 꺾인 건 사실이었다.
행원리를 지나 월정리로 접어들었다.
수십 번은 와본 월정리는 더 이상의 매력이 느껴지지 않았다.
난잡하게 발전된 월정리는 이미 마음을 떠난 지 오래였다.
그냥 지나치려던 나는 점심식사를 할 시간이 훌쩍 넘어갔다는 걸 알고는 가던 길을 되돌아와 아무 식당이나 찾아 들어갔다.
강남 물가와 비교하면 안 되지만 월정리 음식 가격은 강남만 못지않았다.
원래 아무거나 잘 먹는 편이지만 관광지에서는 잘 사 먹지 않는 편이라 그냥 간단한 음식을 주문해서 먹었다.
역시 메뉴판 사진과는 180도 다른 음식이 나왔다.
기대를 하지 않았으니 다행이었다.
식당에서 재킷과 장갑을 벗고 몸을 살폈다.
예상했던 대로 크게 다친 곳은 없었지만 재킷은 나 대신 생채기를 입었다.
아~ 흉측한 나의 다리. ㅋ
잠시 쉬면서 조금은 놀랐을 심신을 가다듬고 다시 올레길로 올라탔다.
월정리에 눈에 띄는 매장이 있었다.
곳곳에 이색적인 인테리어를 한 곳들이 제법 보였는데 바닷가 풍경은 난개발이어도 구석구석 볼거리는 있는 듯했다.
나의 관심사 밖이어서 그랬던 모양이다.
나는 페달을 밟으며 난개발과 관련된 생각을 해봤다.
그리고 실험정신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해보지 않으면 결과는 누구도 알 수 없는 것.
주체가 꼭 일반에게만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지자체나 정부에서도 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대중의 뭇매를 맞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은 삿대질만 해댈 뿐, 그들이 어떤 목적으로 그러한 시행착오를 겪어가는지를 생각지 않는 것 같았다.
마치 성공하면 사업가, 실패하면 사기꾼이라는 말처럼 말이다.
우리는 서구의 합리적이고 진보적인 성향을 본받아야 한다고 부르짖으면서도 정작 자신은 편협하고 보수적인 판단을 하는 것 같다.
공무원이 개혁을 하려 해도, 잘못되면 손가락질받고 자리를 내놓아야 하는 상황이 벌어질 것을 예측할 것이다.
사고 치지 않고 평안한 삶을 살기를 원하는 것을 두고 혐오할 자신이 없어졌다.
사회라는 건 참 자기 생각만 옳다 생각한 채 거기다 세상을 끼워 맞추기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열심히 페달을 밟으니 푯말 하나가 보였다.
제주의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다 보면 별의별 눈꼴 시린 꼴을 다 본다.
여기서도 마찬가지다.
제주도민들 중 동지역을 제외한 지역 주민들은 대부분 집 앞에서 쓰레기를 태운다.
분리수거 문제는 이미 원희룡 지사가 죽자 사자 내건 사업목표인데 그것도 잘 따르지 않는다.
하는 사람은 하고 하지 않는 사람은 남의 세상 일처럼 본다.
위 푯말에서처럼 올레길에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이 과연 외지인일까?
정작 제주를 지키겠다고 하는 사람들은 대체 어디 사람일까?
여기도 아직 밭에 모래가 많다.
바닷가 모래가 바람에 멀리까지 날려온 것인 듯하다.
바람이 많아서 풍력발전이 잘 되는 모양이다.
지질트레일 구간이 나왔다.
워낙 바닥이 울퉁불퉁해서 자전거를 탄 구간보다 끌거나 들고 탄 구간이 더 많다.
넓게 자란 갈대밭이 겨울 제주스럽게 했다.
멀리 한라산은 얼굴을 비치지 않았다.
군데군데 빛내림이 한창이었고 바다는 하얀 파도를 일으켜며 위협했다.
다시 한참을 달려가자 드디어 김녕해수욕장이 나타났다.
넓은 백사장 위로 보호덮개가 쳐진 김녕.
이러저러한 스토리가 있지만 주워듣기로 알게 된 내용을 서술하긴 그렇고 하니 넘어간다.
아무튼 정말 아름다운 김녕해수욕장이 이렇게 가려져 있으니 안타깝긴 하다.
벌써 몇 년째인지......
올레길은 환상자전거길과는 달리 김녕마을의 바닷가 쪽 길로 나 있다.
아마 환상자전거길을 타는 사람들은 김녕마을을 잘 모를 것이다.
김녕은 예부터 제주에서 인구가 많은 곳이었다고 한다.
마을도 의외로 크고 넓다.
최근에 생긴 김녕용암해수탕에 한번 가봐야겠다.
김녕항 가기 전에 올레길 20코스가 끝난다는 것을 잊고 무작정 달렸다.
19코스로 들어서도 한참 가서야 다시 돌아왔는데 올레길 인증 스탬프 포인트는 찾지 못했다.
그래서 인근에서 포인트를 종료했다.
올레길 20번 코스는 약 18km다.
높은 경사는 업스며 시골길이 자주 나타나는 편인데 혼자 다니면 위험할 수 있다.
꼭 사람들과 몰려서 다니는 게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