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파, 하늘을 날아본 적 있나요?"
푸라고는 나무 아래에서 깊은 생각에 잠겨있던 파파에게 물었다.
"있긴 하지. 너무 오래돼서 기억도 가물가물 하지만 말이야. 아버지는 어디서 잡아오셨는지 엄청나게 큰 새 한 마리를 보여주셨다네. 어찌나 크던지 양쪽 날개를 펴면 큰 바위를 덮을 정도였으니까 말이야. 당시 내가 워낙 어려서 더 크게 보였을 것 같긴 해. 그래서였는지 그 새는 나 외에는 누구도 탈 수 없었어. 이상한 건 녀석이 내 말을 너무 잘 알아들었어. 상당히 신경질적이었던 새였는데 나중에 좀 친해지고 나선 상당히 고분고분해졌어. 난 그 덕분에 녀석을 타고 멀리까지 날아다니곤 했어. 안타깝게도 일 년도 살지 못하고 죽고 말았지. 그 후로 그렇게 큰 새를 본 적이 없었어. 녀석이 죽은 날 아버지가 이런 말씀을 하셨어. 아주 오랜 옛날에는 용과 비슷한 녀석들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었대. 모두 그런 건 아니지만 인간이든 뭐든 간에 피를 가진 생명체라면 뭐든 닥치는 대로 잡아먹는 포악한 종족도 있었다고 하시더라고. 자네도 알다시피 용을 타고 날아다녔다는 우리 조상들의 전설도 있지만, 나는 그 새를 타고 하늘을 날게 된 후 전설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지. 그 후로 삼천 년이 지나도록 같은 종류의 새를 본 적이 없어. 아마도 이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아."
파파는 오랜 기억을 더듬으며 이야기보따리를 풀었다.
그의 옛 기억을 듣던 푸라고의 얼굴에는 묘한 자신감 같은 게 묻어 있었다.
"다시 날 수 있게 해 드릴게요."
"그게 무슨 소리야? 우리가 하늘은 난다니 무슨 말도 안 되는..."
파파는 푸라고의 말을 믿지 않았다.
싱거운 농담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번성했던 왕국에서조차 상상할 수 없었던 걸 하겠다니.
하지만 푸라고의 표정은 예사롭지 않았다.
푸라고는 탈 것에 달았던 응룡의 짧은 날개를 떼어냈다.
그리곤 겉옷을 벗어 날개에 대고 짧은 주문을 외었다.
"쌴다르!"
그의 짧은 주문에 옷과 날개가 달라붙었다.
푸라고는 두 날개를 붙인 겉옷을 입고 파파에게 우스꽝스러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기대하시죠. 이게 안 될 이유는 전혀 없잖아요? 무거운 것들이 없어졌으니까 말입니다."
머리 위쪽에 시선을 집중하던 푸라고의 몸이 서서히 하늘로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속도였다.
파파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고 입을 벌렸다.
깊은 탄성이 흘러나왔다.
섬보다 조금 높이 올라갔던 푸라고는 다시 천천히 내려와 땅에 닿았다.
"푸라고, 자네는..."
파파는 놀라움에 말을 잇지 못했다.
그렇지 않아도 육지까지 갈 방법을 구상하고 있던 차였다.
"안 될 이유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왕국에는 용의 날개가 없었으니 이런 걸 생각해 볼 이유가 없었겠죠. 역시 필요해야 상상력을 펼치게 되나 봐요."
"맞는 말이네. 그런데 날개를 붙이는 건 내가 가르쳐준 주문이니까 그렇다 치고, 떼어내는 주문은 어떻게 알게 된 건가? 그건 나도 모르는데..."
마법으로 붙인 걸 마법이 아닌 방법으로는 절대 떼어낼 수 없다는 건 상식적인 일이었다.
파파의 질문에 푸라고는 뒷 머리를 긁었다.
"그게 참 신기한 게 말이죠. 방금 갑자기 기억난 거예요. 어릴 때 동생하고 뭔가 떼었다 붙였다 하는 놀이를 했었어요. 그러다 무슨 이유였는지 다투기 시작했거든요. 티격태격 다투는 걸 본 아버지는 우리에게 간단한 주문을 하나씩 알려주셨어요. 동생에게는 붙이는 마법을, 제게는 떼는 마법을 말이죠. 그날은 그 마법만 가지고 하루종일 신나게 놀았던 기억이 나요. 돌아다니면서 눈에 보이는 건 죄다 붙였다 떼었다 했으니 얼마나 재밌었겠어요."
사실 파파는 마법사의 집안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왕국을 떠나 세상을 떠돌아다닌 탓에 사실상 배운 게 거의 없었다.
항상 안타깝게 생각하던 부분이었다.
푸라고의 집안 역시 마법사였다.
그 역시 제대로 배워보기도 전에 왕국이 사라져 마법사의 맥을 잇지 못했다.
그런데 마침 딱 필요한 마법을 알고 있던 것이었다.
오래전 왕국은 마법으로 용들을 제압했었다.
만약 파파나 푸라고가 마법을 제대로 익혔다면 지금의 과업이 매우 수월했을 것이다.
파파는 아쉬움에 한숨을 흘리고 말았다.
*
밤이 깊은 육지에는 다양한 생명체가 드글거렸다.
해변의 모든 생명체는 너도나도 달빛을 숭배했다.
몸을 숨길 곳을 찾아 어렵게 둥지를 튼 새들이 달빛을 받으려 고개를 내밀었다.
그 위로 달빛을 가린 시커먼 그림자가 덮었다.
모래밭 구멍 위에서 이리저리 눈을 돌리던 크고 작은 게들이 삽시간에 자취를 감췄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날짐승의 공격을 눈치챈 것이다.
새들은 머리를 처박고 숨을 아껴 쉬었다.
그림자의 정체는 파파와 푸라고였다.
푸라고는 응룡의 날개를 단 옷을 입고 있었다.
그의 앞에는 파파가 달라붙어 있었다.
둘은 빠르지도 느리지 않은 속도로 바다를 건넜다.
바다 위를 날며 달빛에 그을린 해안선의 아름다움에 흠뻑 젖어 있었다.
"쌴피!"
푸라고의 주문에 그의 몸에서 붙었던 파파가 분리되었다.
파파의 얼굴은 빨갛게 상기된 상태였다.
그는 다시 하늘을 날았다는 것만으로 다시없을 추억 여행을 한 것이다.
"그나저나 응룡의 날개를 어디에 감춰두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이 큰 걸 가지고 다니다가 인간들 눈에 띄면 피곤할 수도 있잖아요."
푸라고의 말에 파파는 마법의 필요성을 다시 한번 느꼈다.
고민을 하나 싶었던 푸라고는 주변의 큰 나무 위로 날아올랐다.
다시 땅을 밟은 푸라고는 나무를 타고 올라가더니 응룡의 날개를 마법으로 붙이고 내려왔다.
낙엽이 많이 떨어졌지만 유심히 보지 않는 이상 잘 보이지 않았다.
누군가 발견한다 하더라도 마법으로 붙인 날개를 뗴어낼 수는 없다.
나무를 통째로 베어낸다 해도 완전히 떼어낼 수는 없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들이 떠난 뒤 달빛 아래 땅의 주인들이 경계를 풀고 하던 일을 재개했다.
잠시 후 그들 뒤로 정체 모를 그림자 하나가 빠른 속도로 지나갔다.
새들도 게들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