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파스 드래곤,4화-푸라고의 일기

by 루파고

"그게 뭔가?"


언제 돌아온 것인지 자리를 비웠던 파파가 물었다.

푸라고는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가 만든 건 오랜 세월 별의별 이상한 걸 다 보며 살아왔던 파파조차 놀라게 했다.

배도 아니고 새도 아닌 이상한 물체였다.

만약 인간들이 봤다면 괴물이라고 이상할 게 없었다.

새로운 용이 나타났다는 소문이 돌아도 할 말이 없을 정도였다.

파파는 물체를 꼼꼼히 살피기 시작했다.

기억이 맞다면 앞에 달아놓은 용의 이빨은 분명 레비아탄의 것이 분명했다.

어차피 다시 자랄 거라는 것을 알고 그랬겠지만 딱히 탐탁지 않았다.

날개는 중국에서 발견한 응룡의 것이고 바닥에 달아 놓은 비늘은 스모크의 것이다.

황당하긴 했지만 용도에 딱딱 들어맞는 용들의 분신을 떼어다 맞춘 듯했다.

파파는 기가 차서 고개를 흔들었다.

이빨이나 비늘이야 시간이 지나면 또 자라겠지만 날개는 상황이 달랐다.


"자네, 날개는 어쩌려고 떼어 왔나?"


"다시 달아주면 되지 않겠습니까?"


걱정스러워하는 파파와 달리 푸라고는 다 방법이 있다며 호언장담 했다.

이미 벌어진 일, 파파는 그를 믿어보기로 했다.

푸라고는 몇 세기가 지나도 자기가 만든 것보다 기발한 건 없을 거라고 했다.

내심 자랑스러워하는 눈치였다.


이유야 어쨌거나 푸라고가 만든 물체 덕분에 남극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레비아탄의 이빨은 그들의 앞을 막는 얼음을 녹였다.

푸라고의 주문을 읊자 레비아탄의 이빨이 엄청난 기운을 냈다.

응룡의 짧은 날개는 탈 것의 무게를 가볍게 하며 앞으로 나아가게 했다.

스모크의 비늘은 미끄러지듯 나아갈 수 있게 했다.

처음엔 탐탁게 생각하지 않았던 파파는 왜 이제야 이런 것을 만들었냐고 물었다.


"요즘 인간이 이상한 걸 많이 만들잖습니까! 그래서 저도 인간 문명이 발전하는 것을 보며 생각해 낸 겁니다."


푸라고는 빠르게 발전해 가는 인간의 물정을 익혀가는 듯했다.

파파는 그게 바른 길인지 판단할 수 없었다.


눈과 얼음이 가득한 남극을 빠져나온 후 밤낮으로 태양이 뜨거운 적도 부근을 지났다.

더위가 식혀지는가 싶더니 켈트해로 접어들었고 다시 추위가 시작되었다.

곧 매서운 추위를 앞둔 계절이었다.


"나도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요즘은 추위를 타네."


파파가 옷깃을 스미며 말했다.


"농담하십니까? 남극에 있을 때만 해도 춥다는 소리 한번 못 들어봤는데 겨우 이런 날씨에 춥다니요."


"왜 그러는지 모르겠어. 적도를 넘어서면서부터 몸에 전에 없던 이상한 기운이 도는 느낌이야."


파파는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

푸라고 역시 마찬가지였지만 애써 모른 척했다.

파파는 인간의 나이로 벌써 사천 년이 넘었다.

푸라고가 파파의 일을 돕기 시작한 건 불과 천 년 하고도 겨우 이십이 년이다.

푸라고는 파란 불이 일어나던 날 파파를 따라가라던 아버지의 명령을 떠올렸다.

불과 몇 분만 지체했더라면 그 역시 파란 불 속에서 빛으로 흩어지고 말았을 것이다.

그들의 왕국은 재조차 남지 않았다.

원래 없었던 것처럼 흔적조차 남지 않았다.

왜 파란 불이 일어난 것인지 파파도 푸라고도 알지 못했다.

파파는 푸라고를 만나기 전에도 왕국의 과업을 수행하고 있었다.

파란 불 후에도 과업을 수행했다.

왕국을 지켜내기 위해 꼭 필요한 과업이었다.

이미 왕국이 사라져 버렸지만 말이다.

파파는 자신의 과업은 왕국을 재건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라고 했다.

그로부터 천 년이 넘는 시간이 지났다.

파파는 조금씩 희망을 잃어가고 있었다.

언제부터인지 그저, 그냥 해야 하는 일이라 생각했다.

파파는 과업을 수행하는 게 의무 같은 거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푸라고는 알고 있었다.

파파가 스스로를 다스리고자 하는 것을.

이젠 둘만이 그들의 왕국이 존재했었다는 것을 증언할 수 있다.

푸라고는 파파의 건강이 걱정됐다.

만약 파파가 사라진다면 이 세상에는 푸라고만 남게 될 테니까.

물론 그런 상상을 안 해 본 건 아니었다.

지독한 외로움이 몰려온다면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인간과 어울려 살아갈 수 있을까?

푸라고는 몇 번이고 인간 사이에 어울려 보았지만 그들의 문화를 이해할 수 없었다.

파파는 부질없는 짓이라고 했다.

그래도 푸라고는 듣지 않았다.

어쨌든 결과는 같았지만 말이다.



픽트족이 모여 사는 지역에 도착했다.

척박한 땅은 아니지만 강한 추위 때문에 인간의 수가 많지 않은 곳이다.

가파른 절벽이 융기한 해변.

흡사 요르문간드와 마주쳤던 절벽과 비슷했다.

벌써 세 번이나 왔지만 푸라고는 올 때마다 다른 느낌이 들었다.

이번에는 얼마나 머물게 될지 알 수 없다.

푸라고는 이곳에서 용들의 무덤을 다시 만날 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를 했다.

그는 동공을 조여 육지 해변가를 살폈다.

제법 커 보이는 인간들의 배 두 척이 항구에 정박하고 있었다.

파도가 높아 해안선 일대에는 고기를 잡는 어부들도 보이지 않았다.

그들의 탈 것은 높은 파도를 대수롭지 않은 듯 가뿐하게 넘나들었다.


"정말 이곳에 와이번이 있을까요?"


푸라고가 바닥에 누워있던 파파에게 물었다.

그는 눈 한 번 깜짝하지 않은 채 하늘을 주시하고 있었다.


"글쎄, 알 수 없지. 그날 녀석은 이쪽 방향을 향했어. 와이번은 장거리 비행을 할 때면 정확한 방향을 잡고 그대로 날기만 해. 다른 녀석들과는 달리 고도로 발달된 방향감각을 가지고 있거든."


"파파 역시 와이번을 가까이에서 본 적이 없다고 하셨는데 어떻게 그런 걸 아시는 거죠?"


"책이지 뭐. 나라고 별 수 있겠어?"


푸라고는 입맛을 다시고 해변으로 시선을 돌렸다.

해변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을 것이다.

푸라고는 파파가 읽었다던 책들을 모두 읽고 싶었지만 이미 왕국과 함께 사라져 버리고 없었다.

푸라고는 품 속에서 일기를 다시 꺼냈다.

파파를 따라나설 때 아버지가 준 일기장이다.

얇은 표지에는 스물두 가지의 보석이 그려진 것처럼 박혀 있었다.

너무 얇아서 입체감도 없을 정도였다.

이해할 수 없는 문양으로 여러 공간이 그려져 있다.

가끔씩 그 공간이 검은색으로 변하기도 했다.

그런 류의 책은 어릴 때부터 흔히 접했던 것인데 이제는 마지막 한 권뿐이다.

왕국이 만든 문자 역시 일기에 쓰인 것이 마지막이다.

푸라고는 파파는 문자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에 글을 쓰지 않았다.

푸라고는 틈만 나면 아버지의 일기를 펼쳤다.

일기장은 겨우 절반 정도 채워져 있었다.

나머지 절반은 왕국의 기록이 되었어야 했을까?

만약 그렇다면 왕국은 앞으로도 수억 년은 더 존재해야만 했다.

푸라고는 일기를 써볼 생각으로 빈 공간에 글을 써 봤었다.

하지만 어떤 글도 쓸 수 없었다.

어떤 염료든 닿으면 미끄러졌다.

그 후론 글 쓰기를 포기하고 말았다.


"얼마나 남았어? 이걸 타고 들어가면 인간들이 기겁을 할 텐데. 어디 숨겨둘 곳을 찾아야 하지 않겠어?"


푸라고는 탈 것이 파도를 올라탈 때마다 주변을 살폈다.

수십여 차례 파도를 타고 올라서야 작은 섬 하나가 눈에 띄었다.

동공을 조여 섬을 자세히 살폈다.

인간의 흔적 같은 것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너무 작은 섬이라 인간들이 관심을 가질 이유도 없어 보였다.

푸라고는 탈 것을 작은 섬 쪽으로 돌렸다.

얼마 되지 않아 동공을 조이지 않아도 볼 수 있을 만큼 가까워졌다.

깊이를 가늠할 수 없던 검푸른 바다가 비취색 바다로 바뀌었다.

수심이 얕아진 것이다.

섬이라 하기에는 너무 작다.

걸어서 해안선을 걷는다면 십 분도 채 걸리지 않을 정도였다.

섬 주변은 검은 바위로 둘러싸여 있었다.

너무 뾰족해 인간들의 배로는 진입할 수 없다.

바위에 부딪친 파도가 높게 출렁였다.

아무리 작아도 인간의 흔적이 없는 건 거친 암초 때문이었다.

탈 것을 숨기기에 이보다 좋은 곳은 없을 거란 확신이 섰다.

바위를 사뿐히 넘어 해변의 작은 모래사장에 앉았다.

작은 숲 속에 늙은 새들이 무리 지어 있었다.

그들의 행동을 지켜볼 뿐 놀라거나 날아오르지 않았다.








레비아탄_<나무위키에서>

레비아탄은 구약성경에서 총 6번 언급되며, 창조 때 야훼가 굴복시킨 바다 용으로 나타난다. 곧, 레비아탄은 바다의 이미지로 표현된 혼돈을 상징하는 괴수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레비아탄의 형상은 가나안 신화에서의 바알의 손에 쓰러지는 일곱 개의 머리를 가진 바다 기물인 로탄 아니면 수메르 신화에 등장하는 혼돈의 용 티아마트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고 한다.



응룡_<위키백과에서>

응룡(應龍)은 중국의 신화에 나오는 날개 달린 용인데, 용이 오백 년 또는 천 년이 지나면 날개를 얻어 응룡이 된다고 한다. 『산해경山海經第』「대황동경十四大荒東經34」을 인용한다.

대황大荒의 동북 깊숙한 가운데 산이 있어 이름이 흉리토구凶犁土丘이다. 응룡應龍이 남쪽 끝에 살고 있는데 치우蚩尤와 과보夸父를 죽이고 하늘로 올라가지 못했다. 그래서 하계가 자주 가물었는데數旱 한발이 들면 응룡의 형상을 그렸고 이에 큰 비가 내렸다.

그러나 천 년이라는 긴 세월을 사는 것은 아무리 용이라 해도 쉬운 일이 아닌지라, 신화에서 응룡은 단 한 마리밖에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응룡은 용 중에서도 특히 신성한 동물로 여겨졌다.[출처 필요]

전설에 따르면, 황제가 치우와 싸웠을 때는 폭풍을 일으켜서 치우군을 물리쳤다고 한다. 사기에 ‘황제가 응룡을 시켜 흉려곡에서 치우를 죽이게 했다(黃帝使鷹龍殺蚩尤於凶黎之谷)’라고 기록되어 있다.



스모크_<나무위키에서>

스모크의 생김새로는 신화에 나오는 전형적인 드래곤의 모습이지만, 한가지의 특징이 있다면 어떤 무기도 스모크의 비늘을 뚫을 수 없다고 한다. 현재 폴란드에서는 스모크의 동상이 있는데 이 동상은 다른 동상들과 달리 하루에 조금씩 불을 뿜을 수 있게 설치되었고, 특이하게도 프랑스에 나오는 타라스크처럼 다리가 6개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파파스 드래곤,3화-용의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