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고도 깊은 호수.
양쪽이 가파른 절벽인 지형.
쉽게 접근할 수 없는 곳인데 인간들이 떼 지어 모여 있었다.
푸라고는 높은 나무를 찾아 꼭대기까지 올라갔다.
인간들 사이로 용이 둘씩이나 죽은 듯 쓰러져 있었다.
'대체 어떻게 된 거지? 인간들의 능력으로 어떻게 용을 감당할 수 있는 걸까?'
푸라고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인간의 힘으로는 불가능한 상황이다.
게다가 하나도 아닌 두 용을 상대로 인간이 이겼다는 건 더욱 용납할 수 없었다.
파파와는 여전히 아무런 소통이 되지 않았다.
푸라고는 동공을 조여 파파의 모습을 찾아보았지만 인간 외엔 생명체를 찾을 수 없었다.
그런데 두 녀석 다 와이번이 분명했다.
놀라운 일이었다.
와이번이 둘이나 될 거라는 생각은 아예 하지도 못했었다.
와이번은 검푸른 몸에 두꺼운 비늘이 돋보였다.
자세히 보니 두 날개가 깊게 찢어져 있었다.
와이번은 다른 용들에 비해 힘이 약하긴 하지만 마법에는 매우 강한 저항력을 가졌다.
그렇다 해도 인간이 용을 상대로 싸울 수 있다니......
속임수나 덫을 놔서 잡았다 치더라도 한 가지 문제가 더 있다.
마법을 부리지 못하면 와이번을 제압할 수 없다.
와이번의 긴 발톱이 미세하게 꿈틀거렸다.
죽은 건 아니라는 사실에 푸라고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어쩌면 다행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와이번과 상대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부상을 당한 와이번이라면 큰 산 하나는 넘은 셈이다.
그나저나 푸라고는 파파의 행적 문제로 머리가 아파왔다.
그가 없는 세상을 생각해 본 적이 없던 건 아니지만 이런 상황은 상상해 본 적도 없었다.
'설마, 와이번의 뱃속에 있는 건 아닐까?'
푸라고는 해서는 안될 생각에 머리를 흔들며 밤이 되기를 기다리기로 했다.
튼튼한 가지를 찾아 자리를 잡은 푸라고는 동공을 조여 인간들을 살폈다.
덩치가 큰 인간 한 명이 긴 창으로 와이번의 머리를 쿡쿡 쑤셨다.
용 사냥꾼인 듯싶었다.
인간의 창은 와이번의 비늘에 작은 흠집도 내지 못했다.
'그럼 그렇지~'
푸라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인간의 무기로는 와이번을 상하게 할 수 없었다.
두 와이번의 몸 구석구석을 살폈지만 어디에도 상처 같은 건 보이지 않았다.
잠시 후 인간은 와이번의 비늘 한 겹을 제치고 창을 찔러 넣었다.
푸라고는 저도 모르게 신음을 내었다.
아니나 다를까 와이번이 괴성을 질렀다.
잔잔하던 호수 위에 파도가 일었다.
계곡 구석구석까지 와이번의 날카로운 비명이 훑고 지나갔다.
숲 속의 모든 새가 하늘로 날아올랐다.
당황한 들짐승들은 어디로 튈지 방향도 잡지 못한 채 이리저리 날뛰었다.
반면 인간들은 환호성을 질러댔다.
인간은 창 끝을 하늘 위로 치켜세웠다.
깊은 바닷속에서나 볼 수 있을 파란 피가 묻어 있었다.
비명을 지를 뿐, 와이번은 전혀 움직이지 못했다.
푸라고는 그것도 이해할 수 없었다.
깊은 한숨에 주변 나뭇가지가 스르르 녹아내렸다.
푸라고는 인간을 죽이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용 사냥꾼이 와이번을 죽이게 둘 수 없기 때문이다.
해가 질 무렵이 되자 인간들의 축제 같은 열기가 식어갔다.
절반 이상 되는 인간들이 숲을 떠났다.
짙은 어둠이 찾아오자 남아있던 대부분 숲을 떠났다.
와이번 주위로 모닥불이 피어올랐다.
이글거리는 모닥불에 비친 용 사냥꾼들의 모습이 사납게 흔들렸다.
다행인지 달은 거의 그믐이었다.
그다지 추운 날씨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몇몇 용 사냥꾼들이 벌벌 떨고 있었다.
바람에 날리던 구름이 와이번 위를 가렸다.
흐릿한 달빛과 별빛이 완전히 사라졌다.
와이번의 가는 숨소리는 계곡을 엷게 흘렀다.
푸라고는 바람에 몸을 실어 숲의 가장자리로 향했다.
비록 와이번의 눈은 감겨 있지만 의식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와이번의 발톱이 짧게 두 번 까딱였다.
푸라고의 존재를 인지한 것이다.
푸라고는 용 사냥꾼들을 기절시키기로 작정했다.
상황에 따라 죽이게 될 수도 있겠지만 이미 각오한 일이었다.
용 사냥꾼들은 푸라고의 일격에 추풍낙엽처럼 쓰러졌다.
그가 코 앞에 나타났다는 걸 인지하면 그걸로 끝이었다.
용 사냥꾼들은 비명 한 번 못 질러보고 쓰러졌다.
예민한 용 사냥꾼들 몇 명은 푸라고에게 공격을 시도했다.
설마 했던 상황이 벌어지고 말았다.
이십 명이 넘는 용 사냥꾼들을 제압한 푸라고는 발톱을 까딱였던 와이번에게 다가갔다.
와이번에게 자신의 생각을 전했지만 아무런 답변이 없었다.
눈꺼풀을 들어 눈동자를 살폈지만 전혀 힘이 없어 보였다.
아무래도 약물에 취한 듯했다.
날이 밝아 인간들이 돌아오면 귀찮은 상황이 될 것 같았다.
푸라고는 궁리 끝에 인간이 비늘 사이로 창을 찔러 넣던 모습을 기억해 냈다.
그는 비늘을 당겨 상처를 살핀 후 상처에 손을 쑤셔 넣었다.
곧 와이번의 깊은 신음이 터져 나왔다.
푸라고는 손을 더 깊이 밀어 넣었다.
두꺼운 피부가 뚫렸고 그 안에 다른 물컹한 것이 느껴졌다.
깊은 뜨거움이 느껴졌다.
와이번의 장기 중 하나였다.
거기에도 구멍이 나 있었다.
상처를 확인할 생각으로 더듬자 와이번의 꼬리가 살짝 움직였다.
그 이상의 반응은 없었다.
푸라고는 와이번이 깨어나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동이 트려면 기껏 한두 시간밖에 남지 않았다.
용 사냥꾼이 두 명이 정신을 차렸다가 푸라고에게 맞아 다시 기절했다.
기절한 척하며 눈치를 보던 사냥꾼도 푸라고에게 잡혀 쓰러졌다.
여전히 파파에게서는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크르릉~
와이번에게서 기묘한 소리를 냈다.
밤새 눈치만 보던 새들이 반대쪽 하늘로 날아가 버렸다.
호수 얕은 곳에서 먹이를 찾던 물고기들도 깊은 곳으로 숨었다.
푸라고는 정신을 바짝 차리고 와이번을 살폈다.
아까보다 기운을 차린 듯했다.
[너를 해칠 생각은 없어. 그저 너를 깨울 목적이었던 것뿐이야. 그런데 상처가 꽤 심각한 것 같아.]
푸라고는 생각을 전했다.
[네 마음은 이미 알고 있다. 거긴 내 심장이었다. 난 이제 오래 버티지 못할 거다.]
와이번의 목소리에는 형용할 수 없는 아름다움이 담겨 있었다.
마치 노래하는 듯했다.
음성으로 그림을 그리는 것 같기도 했다.
생명체의 목소리라고 할 수 없는 묘한 이질감이 있었다.
그리고 따뜻했다.
[어쩌다 이렇게 된 거야? 용 사냥꾼들이 너희들을 이렇게 했을 거라고는 생각지 않아.]
[욕심 많은 크립티드. 우리의 땅을 빼앗으려 했다.]
푸라고는 며칠 전 봤던 초록 괴물을 떠올렸다.
와이번은 이미 푸라고의 생각을 읽었는지 그렇다고 답했다.
[둘이 그 한 녀석을 당해내지 못한 건가?]
[파파가 놈을 호수 바닥으로 끌고 들어갔다. 그가 아니었으면 우리는 크립티드의 먹이가 됐을 거다.]
푸라고는 쇳덩어리가 머리를 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기어코 두려웠던 그 일이 터졌다는 것을 의미했다.
'정말 혼자가 된 걸까?'
[미안하지만 파파가 물속으로 들어간 게 언제야?]
[네 마음이 느껴진다. 아쉽지만 그가 살아있을 가능성은 없다.]
[그러니까 그게 언제냐고.]
[어젯밤. 오늘이 그 후로 두 번째 밤이다.]
푸라고는 망연자실했다.
[크립티드는 파파도 모르는 존재였어. 너희들은 어떻게 크립티드를 알고 있었던 거지?]
[너희도 모르는 존재는 아직 많다. 우리도 모르는. 아는 게 전부라고 생각하는 게 가장 멍청한 짓이다. 파파는 갑자기 나타났고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땐 우리가 어쩔 수 있거나 할 상황도 아니었다.]
[알았어. 네 말대로 어쩔 수 없는 일이었을 거야. 그나저나 네 친구는 상태가 어떤 것 같아?]
[독이 퍼졌지만 곧 해독이 될 거다. 그때까지만 네가 좀 지켜줬으면 좋겠다.]
[스스로 독을 치료할 수 있다는 말이군. 그렇다면 너는 어떻게 되는 거지? 고칠 수 없어?]
[용 사냥꾼이 내 심장을 찌르지 않았다면 나도 살 수 있었다. 하지만 심장까지 독이 퍼지고 말았다. 나도 이젠 어쩔 수 없다. 넌 이제 내 형제다. 우리 형제를 보살펴주기를 바란다.]
신비동물학에서 찾아다니는 미지의 생물들[1]을 부르는 명칭. 목격담은 있지만 명확한 증거가 없어서 실존하지 않을 것으로 판단되는 동물들이다. 대표적으로는 영국 네스호의 네시가 있으며, 그 외에도 빅풋, 예티, 모스맨 같은 생명체들이 속한다. 한국의 크립티드로는 천지의 괴물이 있다. Cryptid라는 영어표현은 Crypt(숨겨진 것, 신비한 것)[2]에 -id(동물학에서, 같은 종류에 속한 동물을 뜻하는 접미사)를 합친 데에서 나왔다. 일본에서는 UMA[3](Unidentified Mysterious Animal)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UFO에서 착안해 만든 일본식 영어이며, 발음은 우마가 아니라 유마(ユーマ). 실존하는 생물인데도 믿어주는 사람이 없어서 크립티드 취급 받았던 동물들도 있다. 고릴라나 대왕오징어 등이 그렇고, 오리너구리가 처음 유럽과 미국에 소개되었을 때 조작된 이야기라며 크립티드 취급을 받아야 했다. 크립티드를 탐구하는 일은 유사과학의 범주에 가깝기 때문에 과학 기술이 발달한 현재로썬 학계에선 인정받지 못한다.[4] 그러나 현재까지도 전 세계 모든 생물종들이 인간에게 완전히 알려진 것이 아니며, 우리가 책이나 인터넷 사전, 다큐멘터리를 통해서 알게된 생물들은 지구상에 존재하는 생물종들 중에서는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더구나 세계 곳곳에 인간의 접근 및 연구가 어려워 자료가 부족한 생태계가 살아 있는 오지들이 여전히 존재하는 만큼, 크립티드의 실재를 추적 및 확인하는 일은 대부분이 허구로 밝혀짐에도 불구하고, 실존유무를 명확히 밝혀내는 것 자체만으로도 학문적으로 의미가 있는 일이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존재한다. 실제로도 실존하는 생물들 중에서는 한때는 허구의 생물로 취급받았다가 조사 끝에 실존하는 것으로 밝혀진 사례가 상당수 존재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오리너구리와 대왕오징어. 또한 과거에는 존재했지만, 지금은 멸종된 고생물들 중에서도 상상속 동물과 흡사한 생김새를 가진 사례가 더러 있다. 뉴질랜드에서 서식했던 거대 새 모아가 대표적인 사례다. 또한 마핑구아리의 사례를 보면 최근에 멸종된 땅늘보일 가능성도 있기게 확답을 하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