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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파고 Feb 06. 2019

3. 제주도 동부권 내륙 코스 자전거 여행

로드바이크로는 갈 수 없는 곳을 가다

작년 추석 전까지만 해도 제주도 서쪽 끝 고산리에 살던 어머니가 완전 반대 방향인 동쪽 끝 성산 시흥리로 이사하셨다.

그동안 업무가 많다는 핑계로 제주에 내려오지 못하다가 설 명절에야 제주를 찾게 됐다.

몇 개월만인가?

나에게 제주는 휴식 같은 존재다.

고향은 아니지만 고향이 되어버린 곳, 제주.

어머니가 계셔서 그런지 마냥 마음이 편한 곳이다.

여행으로 제주를 찾는다면 비용도 만만치 않겠지만 제주에 집과 차가 있으니 전혀 부담스럽지 않게 된 거다.

그 때문인지 여행 때마다 하나라도 더 보고 느끼고 즐긴 후 돌아가야 한다는 강박증 같은 게 없어 좋다.


이번 설날 오전.

드디어 바람이 잦아들었다.

매일 바람이 거세게 불어 자전거를 탈 엄두가 나지 않았다.

바닷가 환상자전거길을 힘겹게 달리는 라이더의 모습 때문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어떤 이는 자전거에서 내려 밀고 걸어가기도 했다.

굳이 어려운 선택을 할 필요가 없다고 느꼈던 나는 기회만 엿보고 있었던 거다.


이번에도 역시 어머니 자전거다.

사이즈도 작고 안장도 낮지만 최대한 몸에 맞춰 본다.

하지만 역부족이다.

그런들 어떠하리.


며칠 전 파치귤을 짜낸 귤즙을 물통 가득 붓고 집을 나섰다.

자전거 의류나 GARMIN GPS 등은 모두 서울에서 가져왔다.


이게 착즙기 없이 내린 귤즙이다.

손으로 짜낸...

상큼 달콤.

당 떨어질 때 한 모금만 마셔도 힘이 솟아난다.


이번 라이딩엔 귤즙을 담은 물통 한 통만 가지고 나섰다.

생각만 해도 듬직하다.

평소에도 스포츠겔 등을 먹지 않는 난데 이상하게 이건 지참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도가 높다.


집을 나서 뒤쪽으로 난 길로 접어들었다.

처음부터 업힐이다.

사진 한 장 촬영하고 시작해야 하지 않나 싶었지만 귀찮음이 모든 걸 눌러버렸다.



원했던 건 아닌데 포장도로를 벗어나 오프로드를 달리게 됐다.

이런 게 진정한 자전거 여행이지 싶다.

아무도 없는 길.

제대로 가고 있는지나 모른다.

앞에 썩 괜찮은 오름 하나가 보였다.

이름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지도를 보니 유명한 용눈이오름이란다.


며칠 전 내린 비로 길이 질퍽인다.

자전거를 타고 가기에도 버겁다.

어떤 구간은 내려서 끌바(자전저-BIKE-를 끌고 간다)해야만 하는 상황.

진흙탕길을 벗어나고 보니 자전거가 만신창이다.



이 구간을 지나 포장도로 쪽으로 나가는데 전기차를 타고 진입 중인 세 분의 아주머니들.

자전거도 힘든 길을 겁 없이 들어오길래 가면 죽음이라고 겁을 주고 내 갈 길을 갔다.


산굼부 쪽을 향해 달렸다.

차로는 수십 번은 달렸을 도로다.

얼마 전부터 이슈가 됐던 비자림 삼나무 훼손에 관한 뉴스.

그 현장을 다시 지나친 거다.

전날 그곳을 지나며 사진 한 장 남기려 했지만 차량 소통이 많고 중간에 차를 댈 곳도 없어 그냥 지나쳤기에 사진 몇 장 남겼다.


다시 한참을 달리다가 정석비행장 이정표를 보게 됐다.

꼭 한 번은 가보리라 했던 곳.

내비게이션을 찍으면 절대 안내하지 않는 길이다.

내친김에 난 그 길로 접어들었다.

산굼부리로 가는 길은 너무 자주 간 곳이라 흥미롭지 않다.

오백 미터 남짓 되는 경사 약한 업힐 끝에 잠시 쉬어가고자 멈추고 쟈켓을 벗어 볕에 말리는데......


멀리 있던 말들이 나를 구경하러 다가왔다. ㅋ

누가 누굴 구경하는 걸까?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말들이 나보다 나을지도 모르겠다.


정석비행장을 지나쳐 가는 길.

도로는 한산하기 그지없다.

라이딩하기에 딱 좋은 코스다.

적당한 업힐과 다운힐이 이어진다.



역시 가시리답다.

말들이 뛰어놀던 곳.

드넓은 대지 위에 가시리 풍력발전소가 있다.



다시 길을 달려간다.


중국인 관광객이 끊겨 개발 도중 망가진 대형 타운하우스가 눈에 띈다.

흉측하다.


성읍민속마을로 접어들었다.

여기저기 장사 목적으로 난립한 곳들이 어지럽기만 하다.

이게 외국인 또는 외지인들에게 보여줄 제주의 모습인가 싶다.

너무 정비가 잘된 하천 제방은 볼품없다


지나는 길에 모구리 야영장이 보여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혼자 하는 라이딩인데 내가 맘먹으면 쉬는 거다. ^^

캠핑하는 가족들이 몇 보였다.



잠시 쉬고 성산 방향으로.

두산봉이 보이면 집이 가까워지고 있단 거다.

서쪽에 살 땐 수월봉이나 당산봉을 보며 달리면 되었는데 여긴 두산봉이 집을 향하는 랜드마크다.


집으로 가는 길.

일부러 농로로 접어들었다.

MTB라 이런 길이 더 재미난다.

차 한 대 보이지 않는 농로.

한적함이 제주스러움에 제주다움을 더했다.


집에 오니 어머니표 샐러드 빵이 준비되어 있었다.

재료는 원산지를 알 수 없는 빵만 빼고 전부 제주산이다.

감자, 당근, 양파, 브로콜리, 오이


이번 라이딩 기록은 이렇다.

https://strava.app.link/AxLAkTeX4T


제주도 라이딩은 이것 말고 세 번 했다.

1. 환상자전거길 MTB 당일 종주 (시계방향)

2. 환상자전거길 MTB 당일 종주 (반시계 방향)

3. 산록도로 MTB 종주


3시 정도 집에 도착해서 일정이 끝난 게 아니었다.

조개를 캐러 가기로 약속이 되어 있었다.

샤워만 마치고 바로 바다로 go go!


바지락을 3kg는 캔 것 같다.

겨울이라 살이 없지만 국물 내기에는 충분했다.


다음에 내려오면 올레길 모든 코스를 MTB로 종주할 생각이다.

이틀이면 풀코스 종주가 가능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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