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가 오스카 4관왕을 거머쥔 이유 중 번역이 큰 역할을 했다고 한다.
AI가 새로운 역사를 쓸 것이라며 코 앞에 닥칠 예측할 수 없는 변화를 예고하는 요즘 번역에 대한 부분을 재고해 볼 좋은 계기가 아닌가 싶다.
브런치에 글을 쓰는 사람들은 대부분 작가이거나 전업작가가 되기를 희망하는 작가다.
표현력의 차이겠지만 대개 좋은 생각을 품었을 것이고 그 생각을 글로 옮겨내는 작업을 하는 사람이 작가다.
유명하고 아니고는 말 그대로 유명세를 탔는지의 여부의 차이다.
그 차이를 만들어내는 것이 역량이겠지만 그것을 잘 알리는 것 또한 역량이다.
안타깝지만 기획마케팅 능력까지 겸비한 작가는 흔치 않은데 사실 따지고 보면 글쓰기 자체가 기획력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작가들은 기본적인 자질을 갖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사실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가 맨부커 상을 받은 건 번역의 힘이 강하게 작용했다.
이번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도 마찬가지다.
게다가 오스카 시상식에서 매끄러운 통역 역시 조명받았다.
왜 그런 걸까?
이 모든 것은 언어라는 소통의 벽 때문인 것이다.
아무리 좋은 생각이라 해도 제대로 쓰여야 좋은 글이 되고, 좋은 글도 제대로 된 기획마케팅의 힘을 입을 때 좋은 글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좋은 글로 평가된 글이 외국에 소개되려면 그 시대, 그 국가에 맞게 번역되어야 공감을 얻을 수 있다.
시대에 뒤떨어진 유행어를 쓰거나 그 나라에서는 심각한 욕설에 해당하는 표현을 당연한 듯 쓰거나 한다면 어떻게 될까?
그런데 의외로 이런 경우는 너무 많다는 게 문제다.
올바른 번역조차 이뤄지지 않는 상황이라면 어떻게 작가의 의도가 제대로 전달될 수 있을까?
만약 <채식주의자>나 <기생충>이 다른 번역자의 손을 거쳤다면 이런 유의미한 결과가 가능했을까?
업무적으로 통역의 두 얼굴을 연상하면 재미있다.
• 제대로 통역이 될 때
• 원래보다 잘 될 때
미드 <왕좌의 게임>에도 보면 통역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나오는 씬이 있었다.
말 한마디에 천냥 빚도 갚는다는데 의미를 잘못 전달한 통역이나 번역이 얼마나 큰 실패 혹은 손해를 보게 만들게 되는지 생각해 보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