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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파고 Feb 15. 2020

제주에서의 5일

제주도민보다 제주도민스럽다

제주에 내려오면 뭔가 해야만 한다는 강박증 같은 게 있다.

그냥 시간을 보내면 후회할 것만 같은...

일 년에 최소 열 번 이상 내려오는 데다 한 번 내려오면 최소 오일 이상 머물면서도 조급증은 물러지지 않는다.

이번에도 결국 비슷한 증세로 잠시도 가만히 있를 못한다.

이번엔 <MTB 올레길 종주>를 계획하지 않았는데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할지 모르겠다.

요즘엔 낚시도 시원치 않아 낚시를 나가도 먼바다만 보다 들어오기 일쑤다.

제주를 가장 제주스럽게 즐기는 건 여유로움이라고들 하는데 왜 나에겐 그런 게 주어지지 않는 걸까?

매일 소설도 써야 하는 것도 강박증을 더한다.


내가 즐겨 찾는 이 포인트는 선착장 옆에 차를 대고 편하게 낚시할 수 있고 항시 멋진 성산일출봉의 자태를 감상할 수 있다.

<2010년 2월 11일 촬영>


역시 고기 얼굴도 못 봤다.

낚시는 접기로 마음을 먹고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이 포인트 저 포인트 돌아다닌다.

그래도 결과는 마찬가지.

코로나 때문에 관광객이 줄어 낚시꾼도 줄었을 테지만 아예 코빼기도 비치지 않는다.



이리저리 둘러보다 만난 동백꽃과 유채꽃.

요즘 한창이다.

아직 겨울인데 제주는 얇은 옷 가볍게 입고 돌아다녀도 된다.

느리게 느리게 제주를 즐기면 좋으련만 이것도 오래가지 않는다.



파치 귤을 구해 즙을 짰다.

30kg 정도 까서 즙을 내렸는데 2리터 페트병 8개 반 나왔다.

고된 노동이다.

이거 다 끝내고 나니 이웃 주민이 귤 한 컨테이너 주고 간다.

ㅠㅠ



이건 당도가 떨어져서 나중에 다른 귤 다 떨어지면 먹는 걸로. ㅎㅎ

제주 사람들에게 항상 귤이 흔하다는 착각은 금물!



갓 따온 톳으로 톳 무침과 톳밥을 해서 저녁을 해치우고...

남은 톳은 햇볕에 바짝 말린다.

잘 말려 둬야 1년 내내 먹을 수 있다.



낚시 잘 되는  없나 싶어 어지간해서는 잘 가지 않는 곳까지 찾아 나섰다.

업무적인 이유라면 멀다고 생각하지 않을 거리인데 기껏 물고기 얼굴 좀 보겠다고 제주도 1/4 되는 거리를 간다는 건 나로서는 쉬운 일이 아니다.

코로나 때문에 길바닥이 너무 한산하다.

귤을 실은 차들이 도로를 점령하고 있을 정도였다.



남원 위미항까지 갔는데 마침 눈 덮인 한라산 백록담이 펼쳐졌다.

서쪽이나 동쪽 끝으로 가면 이런 모습을 보기 어렵다.

한라산에서 너무 멀기 때문이다.

그저 멀리 실루엣 정도나 볼 수 있는 정도에서 만족해야 한다.

이곳 남원 역시 낚시꾼들이 바다 구경에 여념이 없다.

무념 상태로 도를 낚는 것일까?



낚시를 포기하고 다사 성산으로 가는 길에 큰엉해안경승지를 찾았다.

어쩌면 그 포인트에서는 물고기 꼬리라도 볼 수 있지나 않을까?

하지만 벌써 많은 태공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역시 류명한 낚시 포인트는 어쩔 수 없나 보다.

십 분 넘게 그들의 도 닦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하지만 역시 그들도 마찬가지였다.

정말 도만 낚는 것인가...

끝내 마음을 접고 성산 방향으로 돌아섰다.



하지만 기억에도 없는 낯익은 포구에서 또 발걸음을 멈추었다.

혹시, 여기라면...

하지만 역시 허탕이었다.

바늘에 끼워 두었던 크릴새우가 살아서 돌아왔다.

분명 얼어있던 녀석들인데.(설마 믿는 사람은 없겠지? ㅋㅋ)



날이 좋아 자전거 종주를 하는 라이더가 보였다.

차라리 자전거라도 타는 게 좋았을지도...



집 앞마당엔 더덕과 톳이 잘 마르고 있었다.

저녁을 먹고 무엇을 할지 고민하던 나는 물때표를 들여다봤다.

7시 30분이면 간조다.

스윽! 바닷가에 나가 볼까?

혹시라도 눈먼 문어라도 한 마리 건져오면 좋지 않을까?



완전히 제주산 상차림이다.

제주 미역

제주 더덕

제주 유채

제주 톳

제주돼지

이렇게 저녁을 챙겨 먹고 바다라 쓩!!!



아름다운 성산 바다는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처럼 바다 구경 나온 낚시꾼 몇 명이 보였다.


명을 보고도 놀라지 않는 가마우지 한 마리가 바위 위에서 조명의 정체를 확인하지 못하고 어리둥절한 모습을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밝은 조명 탓에 나를 볼 수 없었을 테니.



바닷가에는 파도에 쓸려 온 감태가 널렸다.

몸에 좋다는 소문이 돌아 몸값이 오른 감태.

아마 날이 밝으면 누군가 몽땅 수거해다 햇볕 좋은 곳에 널어놓겠지.



바닷강구 역시 조명에 놀라지 않는다.

도망도 가지 않고 하던 일에 열중이다.

밝은 대낮 같으면 벌써 도망치고 없을 녀석들인데 말이다.


다음날 아침 창고에 보니 무 몇 개가 널려있다.

마당 텃밭엔 미나리와 브로콜리.

사진엔 없지만 대파, 상추 등이 있다.

농약 한번 주지 않은 완전 무농약 결정체다.

이걸로 요리를 해야 진정한 제주살이 아닐까?



군소 두 마리를 잡아왔다.

게도 몇 마리 잡았는데 군소를 지키겠다며 저리 지키고 선 걸까?



결국엔 이렇게 됐지만 ^^



운 좋게 청각도 하나 뜯었다.

문어는 구경도 못 했고...


노는 게 제일 힘든 일이다.

10시도 채 되지 않아 하품을 연발하더니 참지 못하고 기절!



다음날은 집 앞 텃밭에 있는 야채들과 제주산 당근, 키위 등과 훈제 닭가슴을 섞어 샐러드를 만들어 한 끼 때웠다.



작년에 오름 근처 텃밭에서 비름나물을 뜯어 맛난 반찬을 해 먹었던 기억이 나서 다시 그곳을 찾았다.

지만 하도 제초제를 많이 뿌려서 비름나물 비슷한 것도 구경하기 힘들었다.

제주사람들은 제주에 비름나물이 없다고들 했지만 잘못된 정보다.

제초제를 뿌리면 비름나물 같은 것들은 모두 죽고 만다.

비름나물 찾아 가장 게으른 농부의 밭을 찾아 헤맸지만 결국 찾기를 포기하고 당산봉 근처로 내려오는데 소 몇 머리가 보였다.

참 착하게 생긴 녀석들.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송아지 한 마리도 보였다.

어미소는 송아지를 지키려는지 송아지를 몰고 멀리 피했다.

그들을 불편하게 만들기 싫어 빨리 자리를 피해 집으로 향했다.

오늘 저녁은 바비큐다!



오랜만에 숯불을 피우고 하나로마트에서 사 온 막고기를 굽기 시작했다.

고기 좀 굽는다는 나도 거의 반년은 된 것 같다.

고추장 양념을 해둔 돼지고기도 굽고 마당에서 상추를 뜯어다 쌈을 싸서 먹었다.

이 얼마만인가...

이렇게 맛난 고기라니.



남은 불에 숯을 더 넣고 고구마를 굽는다.

역시 숯불엔 고구마 아니던가.

제주의 겨울 아닌 겨울에 달디 단 군고구마로 밤을 보낸다.

달디 단 밤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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