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나는 나에게는 벌어질 거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던 사고를 당했다.
그렇다! 사고는 사고가 났으니까 사고다!
요즘 업무가 긴박한 상황이라 상시 대기상태나 마찬가지인데 몸을 쓸 수 없는 상황이 되자 머리에 패닉이 오는 것만 같았다.
나의 업무가 그다지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거나 하는 게 아니어서 다행이지만 심적 부담은 상당했다.
그것도 항상 달고 다니는 묘한 강박증에서 비롯된 성격 탓일 거다.
토요일 오후 반포에서 사고가 났다.
그것도 다행인 게 나 혼자 날아간 거라 타인에게는 전혀 피해가 없었다.
험한 운동이라면 안 해본 게 거의 없고 운동하며 이런 류의 사고가 난 적이 없어서 이번 사고를 계기로 많은 생각을 하게 된 것 같다.
오전에 김포공항에서 혼자 시작한 라이딩은 아라뱃길을 찍고 행주를 거쳐 반포에 도착해 친구를 만나 분당까지 가서 한 친구와 합류하여 다시 반포로 오는 길이었다.
남산과 북악 코스를 돌고 남양주로 가는 코스만 남겨두고 있었다.
오랜만에 200km 이상 달리는 거라 살 좀 빠지겠다 싶었다.
오전에는 하늘을 가렸던 구름들이 정오쯤 되자 대부분 사라지고 강한 땡볕을 내리쬐기 시작했다.
분당에서 출발할 땐 이미 100km 정도 달렸기에 체력이 달렸지만 다행히 올 때와는 달리 뒷바람이라 크게 힘을 들이지 않고 달릴 수 있었다. 게다가 라이딩 인원이 셋 뿐이었지만 맨 뒤에서 달리니 사부작사부작 놀려면서 페달을 밟았다.
탄천 합수부를 지나자 앞서 달리던 친구가 주행 속도를 높이기 시작했다.
속도가 빨라지자 중간에 달리던 친구가 따라붙지 못했다.
난 밀바 신공을 발휘하여 고속주행을 도왔다.
우리 뒤에 따르던 정체 모를 라이더는 내 뒤를 바짝 따라붙었다.
여기서 멈췄어야 했는데 나는 필요 없는 객기를 부린 거다.
절대 따이면 안 된다는...
반포GS 부근에서 나는 앞바퀴가 앞 자전거 뒷바퀴에 닿으며 핸들이 꺾였고, 그대로 오른쪽으로 날아갔다.
바닥은 아스팔트와 보도블록뿐이다.
브레이크도 잡아보지 못한 채 내 몸은 바닥으로 내동댕이쳐졌다.
헬멧이 바닥에 부딪쳐 빠각거리는 소리가 들렸고 온 몸이 바닥에 튀기고 갈리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다행히 정신을 잃거나 한 상황은 아니었는데 앞서 가던 친구들은 내게 사고가 난지도 모르고 앞서 달려가고 없었다.
마침 토요일이라 편의점 앞에 길게 줄을 선 시민들이 나를 신기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몸을 일으킬 수 없었다.
그대로 누운 채 다리를 당겼다.
아직은 큰 통증이 없는 걸로 봐서는 뼈를 다친 것 같지는 않았다.
잠시 후 친구들이 급히 내게 돌아왔다.
내가 옆으로 날아가는 모습을 보았다는 것이다.
그 속도로 날았으니 오죽하겠는가?
갑자기 현기증이 났다.
아마 더위를 먹은 것 같았다.
이런 상황이 벌어진 건 체력 저하, 더위, 무리한 욕구가 동시에 작용한 결과였다.
정신적 판단력과 신체적 대응력이 흐려진 것이다.
그러던 중 외국인 한 명이 내게 다가왔고 어설픈 우리말로 괜찮냐며 연신 안부를 물었다.
정말 고마웠다.
이런 것만 봐도 동물원 원숭이 보듯 내 사고 현장을 구경만 하는 그 많은 한국인들과 다른 친절함이 있다.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친 외국인들의 친근감에 항상 놀라던 나였는데 이런 사고의 현장에선 느껴지는 바가 더욱 컸다.
외국인에게 고맙다며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나니 시민 한 명이 자전거를 끌고 내게 다가오더니 가방에서 약 두 알을 꺼내 주었다.
소독약도 있으니 필요한 거 있으면 말하라 했지만 관심과 배려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감동한 상황이었다.
덕분에 진통제 두 알을 얻어 복용하고 그대로 바닥에 누웠다.
헬멧은 보기 좋게 깨졌다.
헬멧은 비싼 게 아니라는 걸 다시 절감했다.
라이딩 중 헬멧을 쓰지 않는 건 스스로 자살을 방조하는 거나 다름없다.
이번에 헬멧이 나의 부상을 줄이는 데 최고의 역할을 했다.
헬멧은 적당한 충격 이상이면 무조건 깨지는 게 정상이다.
이마에 큰 혹이 났는데 헬멧이 아니었다면 뇌진탕으로 하직했을 것 같다.
옷은 죄다 너덜너덜해졌는데 마침 행주에서 새로 산 옷으로 갈아입고 오지 않은 걸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여유는 대체 어디서 나온 걸까 싶었다.
찰과상들은 그저 그런... 미련하고 둔해서 그런지 별 고통도 느껴지지 않았다.
몸이 이 상태인데 자전거는 전혀 하자가 없다.
자전거가 멀쩡하면 사람이 다치고, 사람이 다치면 자전거가 멀쩡하다더니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누운 상태로 내 몸 여기저기를 살피니 허탈한 웃음이 나왔다.
하루 종일 달궈진 보도블록이 뜨끈뜨끈했지만 등짝에 느껴지는 온도는 부담스럽게 느껴지지 않았다.
친구에게 내 사진을 한 장 부탁했다.
기념으로 남겨두고 싶었던 건 왤까?
남산, 북악 코스를 함께 하기로 했던 분도 내 소식을 듣고 반포로 달려왔다.
난 왼쪽 다리를 전혀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주말에나 간신히 라이딩을 하는 친구들의 라이딩을 망친 나는 미안한 나머지 남산이라도 타고 오라고 했지만 그들은 나를 버리지 않았다.
119를 부르자는 친구의 제안도 거절하자, 친구는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 차를 가지고 돌아왔다.
두 사람이 나를 부축해 주는데도 주차장까지 가는 것 자체가 나에게는 엄청난 고통이었다.
태어나서 이런 고통은 처음이었던 것 같다.
다리를 디딜 수는 없고 비틀 수도 없다.
멀쩡한 다리만 움직이는 데도 내 맘 같지 않고 골반도 접히지 않는다.
차에 어떻게 탔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이를 악물고 입술이 터지도록 입술을 눌렀다.
함께해준 동료들에게 고맙고 미안한 마음이 나를 눌렀다.
현관에 삼십 분은 누워있었다.
옷을 벗을 수도, 어떤 행위도 할 수 없었다.
고통 때문에 몸을 비틀 자신도 없었다.
불편한 자세지만 그냥 그대로 있는 게 제일 편했다.
가변식 소파인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그 위에서 꼬박 3일을 지냈다.
다들 병원에 가라고 했지만 전혀 붓기도 없다.
며칠 지나면 뭉쳤던 근육이 풀리겠지 싶었던 것이다.
무식이 용감이라고 했던가?
센 척했던 걸까?
이틀을 연이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걸어 다니고 계단을 미끄러지듯 내려가는 꿈도 꿨다.
눈을 뜨면 왠지 걸을 수 있을 것 같아 몸을 일으켜 보았지만 상태는 변함이 없었다.
이런 불편함 속에 벌써 걷고자 하는 간절함이 가득했던 것이다.
며칠 좀 쉬면 회복되겠거니 했던 몸은 쉽게 회복의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다행히 뭉쳤던 근육이 좀 풀렸는지 의자를 의지해 조금씩 움직일 수는 있다.
덕분에 4일 만에 PET병 대신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었고, 머리도 감고, 세수도 하고, 양치도 하고, 면도도 했다.
이제 좀 사람 모양이 된 것 같다.
토요일 아점으로 행주에서 순메밀국수를 먹은 것 빼고는 그동안 먹은 게 별로 없었다.
그래서인지 대변도 4일 만에 본 것 같다.
아프지 말아야지...
아프면 안 된다.
무리하지 말아야 하며 강박증보다는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일도 건강할 때 할 수 있는 거다.
몸이 아프면 그 무엇도 내게 이로울 게 없다.
이번 사고로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상황이 되자 대수롭지 않게 보았던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서 노르망디 상륙작전 중 몇 장면들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다리에 총상을 입은 병사를 질질 끌고 안전한 곳으로 이동하는 장면.
그 고통은 아마 이번에 내가 경험했던 고통과 비교도 할 수 없을 것이다.
만약 이런 정도의 고통이 삶과 죽음의 기로 앞에 놓인 상황이었다면 과연 정신력으로 버티고 이겨낼 수 있었을까?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주연의 <레버넌트:죽음에서 돌아온 자>에서 보면 곰에게 물어뜯기고서도 숲에서 살아 나오는 그 과정이 나오는데 영화든 실화든 간에 그런 정신력이 과연 내게는 가능할까 싶다.
정신일도 하사불성이라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