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동료 소설가 한 분이 브런치라는 툴을 소개해준 적이 있다.
삼성 노트 앱을 노트 삼아 아이디어 같은 것들을 끄적이던 내게는 딱히 다른 툴이 필요없는 상황이었다.
평생 메모벽이라 할 정도로 습관이 된 지라 메모는 스쳐 지나가 사라져 버릴 생각의 끄트머리를 간신히 부여잡고 어떻게든 흔적을 남기는 행위였던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잃어버린 생각의 흔적을 찾아 기억을 뒤적이느라 하루 종일 머리를 쥐어짜기 일쑤였기 때문에 습관처럼 되어버린 거다.
그러던 어느 날 뭔가를 검색하던 중 카카오 브런치 게시물이 눈에 들어왔고 없던 호기심이 발동하여 작가 신청을 하게 됐다.
딱히 대단할 것 없는 소설을 쓰던 나를 어엿비 봐주셨던지 브런치 과거에 급제하여 글쓰기 권한을 획득하게 됐고 그때부터 노트와 병행하여 브런치에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온라인 기반이라 스마트폰과 PC의 경계를 넘나들며 글을 쓸 수 있다는 건 의외의 편의를 가져왔다.
시간이 흐르면서 노트는 아이디어 저장소 역할에 그치고 브런치가 생각의 저장고가 되기 시작했다.
전업작가가 아닌지라 바쁜 업무 와중에 소설을 쓰기 때문에 수시로 작업을 정리할 공간이 필요했었는데 브런치가 그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특히 맞춤법 검사 기능은 만족도를 높였다.
생전 쓰지도 않던 수필이나 에세이도 쓰기 시작했고 온갖 잡설을 끄적이는 나를 발견했다.
그것들이 모이다 보니 브런치북이라는 것도 만들어 보았고 낙방했지만 공모전에도 슬쩍 발을 담가보기도 했다.
어쨌든 재미있는 툴이라는 건 절대적인 사실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몰라도 나는 브런치에 글을 쓰면 뭔가 작가로서의 다른 입지를 구축하게 될 것이란 막연한 기대를 품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 희망이 공모전 주변을 기웃거리거나 했던 것으로 흔적이 남았다.
"거지 같은 플랫폼!"
낙방 후 난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런 고급 플랫폼을 공짜로 쓸 수 있게 해주는 것만 해도 감사해야 할 일을 얻다 대고 삿대질을 한단 말인가?
말이야 바른말이지, 내 글들 중엔 카카오다음 메인 페이지에 노출된 적이 많다.
조회수가 하루 몇만 회씩 되는 걸 목격하고 메인 페이지 노출의 힘을 실감하기도 했다.
아무튼 거지 같은 플랫폼이 이미지를 변신하여 왠지 모를 묘한 매력을 풍기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몇 달 정도 지난 후 나는 나도 모르게 자리 잡고 있었던 브런치로 득을 보겠다는 기대를 지운 채 글을 쓰게 됐다.
내가 글을 쓰는 이유가 뭔가?
남들에게 보여주려고 글을 쓰는 건가?
그게 아니라면 대리 만족하려고?
심심해서?
솔직히 잘 모르겠다.
이젠 그냥 쓰다 보니 쓰는 것 같고 한 꼭지 한 꼭지 쓰다 보니 몇백 개가 넘어버린 글모음집이 된 브런치 계정 자체로 만족하고 사는 것 같다.
브런치로 뭔가를 해보겠다는 욕심을 비우고 나니 브런치 이 녀석 참 괜찮다 싶다.
나는 오늘도 브런치에 잡설을 끄적끄적거리는 중이다.
뭔가 쓰지 않으면 불안한 신경과민에 걸린 놈처럼 말이다.
그냥 생각나는 대로 후다닥 써버린 넋두리 같은 글이라 앞뒤 없다.
보시는 분이 있더라도 양해해 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