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가 되기까지

토지주에서 소비자까지의 기나긴 여로

by 루파고

요즘 아파트 가격 때문에 난리다.

한 달 정도 뭔가 정리가 된 자료 하나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이런저런 핑계로 게으름을 피우다 이제 글을 정리해 볼까 한다. 실구매자가 아파트를 분양받기까지 얼마나 복잡한 과정이 있는지 정확하게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아마도 처음부터 끝까지 시행사업을 해본 사람밖에 없을 거다. (물론 나는 아니다. 제대로 이해하고 쓰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글을 쓰기 위해 선수에게 자문을 구했다. 더 많은 지식과 경험을 가진 분이 꾸지람을 하신다면 겸허히 받을 각오로. ^^)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불편한 내용도 있을 것이고, 오히려 속 시원한 내용도 있을 거다. 색안경 쓰지 않고 보면 좋겠다. 내가 이런 걸 왜 쓰고 있나 싶기도 하지만...




특정 토지에 아파트가 건축되어 입주자에게까지 가는 기나긴 과정을 살펴보 한다. 일단, 그 과정 속에 얼마나 많은 분야의 사람들이 있는지 살펴보자.


1 - 토지주

2 - 작업자

2.5 - 공인중개사 / 법무사 / 변호사

(3 - 엔지니어링사)

4 - 시행사

(4.0 - PM사)

4.1 - 철거

4.2 - 인허가

4.3 - 설계

4.4 - 광고

4.5 - 기타

5 - 금융사(신탁사)

6 - 공사

7- 분양대행사

7.5 - 입주대행사(법무업무 포함)

8 - 회계사 기타 등등 사업의 마무리까지 잔무 관계자들


이렇게 나열해 보니 꽤 많아 보이지만 상세하게 풀면 훨씬 더 많다. 그냥 굵직한 부분만 정리한 거다. 이해를 돕기 위해 1-토지주와 4-시행사까지 이르는 데 명도라는 아주 어렵고 비용이 플렉시블 한 악재도 숨어있다는 것을 살짝 걸고 넘어가 본다.

사업을 위해 가장 선제되어야 할 것이 있다. 바로 시행사의 자금력이다. 예전에는 숟가락과 입만 가지고 시행사업을 하던 시절도 있었다고 할 만큼 금융에 허점이 많았다고 한다. 요즘엔 시행사의 자금력을 인증된 후에야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 이른바 자기 자본인 에쿼티(Equity)라고 한다.


1-토지주와 4-시행사 사이에 있는 2-작업자는 속된 표현으로 브로커라 하는데 총사업비에서 보면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비중을 차지한다. 그 속을 보면 지저분하기 이를 데 없는 수준의 아귀다툼이 벌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금액이 워낙 크다 보니 인생 바꿔보려는 흑심이 깊은 사람들이 서로를 비방하고 헐뜯고 상상이 어려울 정도로 다양한 기술을 구사한다. 그 기술이래 봐야 선수가 보면 속 보이는 소리지만 돈에 눈이 멀어 비현실적으로 꾸며진 거짓에 속아 넘어가는 사람도 부지기수다. 상식을 벗어난 일은 일이 아니라는 것을 새삼 실감하게 만드는 대목이다. 번데기 앞에서 주름잡지 말라는 속담이 있다. 시행사업에 대해 귓동냥으로 몇 마디 주워들은 것만 가지고 시행사 입네 하고 돌아다니는 형편없는 사기꾼도 많다. 그들 자신은 모르지만 자기 입에서 나오는 용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모르는 사람이 많고, 용어 자체를 아예 모르는 사람도 많다.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즉, 될 일을 가지고 돌아다녀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역삼동, 선릉 근처에 보면 수십 년간 이런 브로커 흉내만 내고 돌아다니는 노인들이 제법 있다. 사무실 하나 없고 커피값도 없는 양반들 입에서는 수백억에서 수천억에 이르는 금액들이 술술 나온다. 심지어는 자기 가방 안에 있는 서류들이 수십조 프로젝트라 떠드는 사람을 목격했다는 분도 있는데 수십 번을 복사하여 글자도 잘 보이지 않는 서류들을 들고 다니며 선량한 사람들 꼬드겨 술밥이라도 얻어먹으려는 심산이 아닌가 싶다. 이 부분에 있어 자세한 내용은 내가 쓴 부동산 소설에 똠방을 두고 표현해 두었다. 이런 생각은 해 봤을까? 인허가 부분을 봤을 때 전혀 문제없을 거라고 판단했던 사업지였고 작업자에게 수수료를 건넸지만 실제로 상황이 벌어지자 뭔가 다른 상황이 벌어졌다. 작업자와의 컨설팅 계약서에는 분명 하자 발생 시 비용을 돌려받기로 했지만 문제가 생기자 그는 연락두절이다. 민사소송으로 간다 한들... 한탕해 먹고 돌려줄 생각이 없던 그들이 계약서대로 이행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이미 서로 나눠 가져 갔으며 일부는 지출하고 없을 테니 말이다.


3-엔지니어링사는 상황에 따라 4-시행사 업무 안에 들어갈 수도 있다. 어차피 건축은 토목 후에 이뤄진다. 건축허가와 토목허가는 별개 사항이다. 토목공사를 하기 전에 사업성 검토가 이뤄져야 하고 사업을 위한 허가를 득해야 한다. 토지 가격에 대응하여 적절한 수지를 만들기 위해서는 용적률을 확보하기 위해 피 터지는 밀당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관계부처-엔지니어링사-건축설계사-시행사들의 날 선 전쟁이 벌어진다. 예컨대 3~4천 평에 이르는 학교부지 기부채납, 공원부지 조성 등 지자체에서 요구하는 사항을 수용해야 하며 시행사는 한 푼의 수익이라도 더 건지기 위해 각종 법령을 다 뒤져가며 매입한 자기 토지를 가지고도 땅따먹기를 해야 하는 상황이다. 예를 들어 평당 300만 원짜리 토지 4천 평이면 120억 원이다. 당신 같으면 내 돈 120억 원을 무상으로 기부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시행사가 부당한 수익을 보는 것처럼 가재 눈을 뜨고 보는 건 마땅치 않다. 왜 그런지는 뒷부분에 좀 더 자세하게 기술하도록 하겠다.


4.0-PM사는 어떨까? 보통 총매출의 O% 수준의 수수료 계약을 하는데, 이건 또 이유가 있다. 시행사라고는 하지만 시행 경험 없이 사업을 시작하려는 사업자의 시행업무를 대행해줄 업체에게 그에 상당한 대가를 치르는 것이다. 상호 간 수긍하느냐 마느냐 하는 살벌하게 날카로운 조율이 필요한 부분이다. 시행사 업무 중 지출내역에서 큰 지출을 요하는 부분이 제법 있는데 특히 눈에 띄는 것들이 있다. 시행사 입장에서는 업무를 몰라 큰 비용을 감수하고서라도 PM사에 비용을 지불한다. 물론 사업이 완료되기 전까지 분할 지불하기 때문에 상호 간에 신뢰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믿고 맡겼던 PM사가 예상을 벗어날 정도로 하급 한 수준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면 어떨까? 모를 땐 몰라서 못 봤겠지만 알고 나면 보이는 게 이치다. 한번 정도를 벗어나면 다시 돌아오기까지 엄청난 피해를 감수해야 한다. PM사를 교체한다 해도 온갖 소송의 과정이 있을 것이고 PM사가 생산해낸 사고들을 수습하다 발생한 마이너스 성 지출은 모두 시행사 수익에서 잘라내야 한다. 예상 사업수지분석에 없던 내용이다. 실제로 업체들에게서 뒷돈을 받아 문제가 되는 경우가 상당하다. 모르긴 해도 자기 사업이 아니라는 무책임한 생각에 어떻게든 돈만 벌어보겠다는 이기적인 성향의 파트너를 만나면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천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 하니 정말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4.4-광고. 광고비만 보더라도 총매출의 0.5~1% 수준 되는 엄청난 비용이 들어간다. 혹자는 광고비를 줄이면 되지 않느냐는 소릴 할 순 있지만 요즘 같은 엄청난 경쟁시대에서 광고를 소홀하면 사업의 성패에 막대한 지장을 주기에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다. 그렇다고 다른 분야들은 소홀해되 될까?


5-금융사(신탁사) 개념을 아는 사람들이 얼마나 있을지 모르겠다. 금융사라 적고 괄호 안에 신탁사라고 적었지만 금융사와 신탁사 간의 협업은 그들 간의 거래라고만 할 수는 없다. PF(Project Financing) 자금을 직접적으로 투입하는 건 금융사지만 신탁사에서 사업을 주관하기 때문에 가능한 거라고 보면 되겠다. 사업성 하나만 보고 시행사에 막대한 자금을 투입할 금융사는 단 한 곳도 없다.

입주 업무까지 진행됐다면 사업은 끝났을까? 절대 그렇지 않다. 상가 같은 경우, 몇 년이 지나도 어쩔 수 없이 시행사가 안고 가기도 한다. 팔면 되지 왜 그러냐고 할 수 있지만 사실 내부적으로는 복잡한 부분이 많다. 대부분의 시행사업은 상가를 파느냐 아니냐에 따라 성고 혹은 부도가 나느냐 하는 기로에 서기도 한다. 총매출에서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시행사의 입장에서는 사업이 끝날 때까지 자기 돈은 없다. 시행사 사무실 운영비마저 신탁사의 관리를 받으며 자금 흐름이 원만치 않으면 사업 도중에 추가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동분서주해야 한다. 신탁사는 토지를 담보로 사업을 주관한다고 보면 편하다. 개발신탁과 토지신탁이 있는데 시행사업자가 PM업무를 잘 모를 경우 개발신탁으로 가면 편한데 실제로 신탁사는 계약서의 업무를 잘 이행하지 않는다. 말 그대로 갑질을 하는데 우리 농담처럼 돈 가진 놈이 왕이라더니 딱 그 짝이다.


6-시공사라 하면 흔히 알다시피 삼성래미안, Xi 같은 브랜드를 가진 건설업체다. 어떤 부지에 어떤 브랜드를 다느냐에 따라 분양성이 달라진다. 수익성은 그다음 문제다. 우리는 익히 브랜드값이라는 걸 알고 있으며 그 브랜드를 소유하기 위해 상당한 비용을 지불한다. 부당하다 생각할 지라도 말이다. 브랜드는 나름의 지조가 있다. 시행사가 요청한다 해서 아무 데나 브랜드를 붙여줄 리 만무하다. 3대 메이저 브랜드를 달게 되면 분양성은 높아진다고 생각하겠지만 일산 식사동 Xi는 오랜 기간 미분양으로 곤욕을 치렀으며 두산도 예상치 못한 미분양 사태로 본사가 휘청거렸을 정도였다고 들었다. 다시 말하지만 시행사업은 최상의 컨티션을 만들기 위한 모든 분야의 철저한 준비와 이행이 있다 하더라도 최종 상황까지 예측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시공사 선정이 끝났다고 하자. 준공까지 보증할 수 있는 기업이라면 무리가 없겠지만 기업은 말 그대로 기업이다. 내 사업의 앞날도 기약하기 어려운 판에 5년 후 시공사의 재무상황을 가늠할 수 있을까? 실제로 김포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있었다. 서O건설의 재무상황이 문제가 되어 그 여파를 시행사가 떠안게 된 경우다. 결국 추가 재원을 마련하지 못한 시행사의 부도로 이어졌다. 깊은 사정을 모르는 사람이라면 그 좋은 부지에 사업을 하는데 자금을 빌려오지 못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고 하겠지만 이 사업은 몇 억 들고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점을 명심하자. 생존을 위해 홀딱 벗고 내장 다 들여다 보여준다 하더라도 어려운 사업이 바로 시행이다. 예상할 수 없는 변수가 너무 많고 법인 자체를 인수한다 하더라도 불시에 튀어나오는 갑툭튀 채무를 만나면 숨이 꼴까닥 넘어갈 것이다.


7-분양대행사. 이건 참 설명하기 불편한 부분이다. 사업을 장기로 지속한 분양대행사의 경우에는 신뢰가 베이스에 깔려있기 때문에 매사에 책임을 다 한다. 하지만 소규모 분양대행사의 경우 그렇지 못한 경우도 있다. 메뚜기도 한철 장사라는 말이 있는데 분양대행사에 딱 적절하다. 분양대행사는 말 그대로 시행사의 분양을 대행하는 곳이다. 시행사가 제시한 매뉴얼대로 분양을 성공시킨 후 사업장을 이탈하면 법적 책임은 대부분 시행사에 남는다. 그런데 시행사의 입장에서 보면 이런 경우도 있다. 아무리 능력이 좋은 분양대행사라 하더라도 사업지의 성격에 따라 분양 성공 가능성이 달라진다. 철저한 사전조사가 선제되었다 하더라도 말이다. 실제로 분양대행사 두세 업체가 거쳐간 현장이 허다하다. 그러고도 미분양으로 남은 현장의 경우 시행사는 목졸리기에 힘겨운 상황이다. 이 정도 가면 별의별 일이 다 생기고 그동안 숨겨져 있던 비리 등 각종 문제점이 죄다 불거져 나온다. 책임회피를 위해 너 죽이고 나 살자는 행태다.


7.5-입주대행사. 분양도 잘 되었고 이제 입주만 하면 되는 현장이라고 치자. 그런데 요즘처럼 코로나19 등의 문제로 가계의 위험성이 커진 요즘이라면 어떨까? 실제로 지인의 시행 사업장에 이 같은 일이 벌어졌다. 이미 분양은 완벽하게 끝난 곳이며 중도금 문제도 없었는데 입주 시점에 잔금 문제가 불거진 것이다. 게다가 이자지원 등의 옵션도 문제가 되기 시작했다. 현재 30%에 달하는 취소 요청이 들어오는 상황이며 계약해지를 위한 절차를 밟는 계약자도 나온다. 입주대행사는 말썽을 부리고 시행사는 예상치 못했던 자금난을 겪고 있다. 이렇다 한들 신탁사에서 시행사를 돕는 걸 바라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금융사는 짜인 캐시플로우와 플랜을 따라갈 뿐 시행사 편을 들어주지 않는다.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건 누구나 알 것이다. 사업의 성패는 오롯이 사업자의 몫이기 때문이다.


8-회계사 등 잔무. 이제 드디어 나누기의 시점이 왔구나. 수익을 눈앞에 두고 금융에서 내어줄 돈을 생각하며 그간의 고통이 한순간에 사라지는 것 같다. 그런데 세금의 문제가 남아있다. 세금으로 내느니 최대한 비용 처리해서 어떻게라도 수익을 늘려보려 했지만 모든 건 한계가 있다. 저는 세금 많이 내는 게 제일 행복해요,라고 할 사람이 있다면 모르겠지만 말이다. 예상했던 수익은 쪼개지고 쪼개져서 절반 정도밖에 안 된다. 이러저러한 문제점을 해결하느라 급전으로 빌려온 자금들을 해결하고 나니 실제 수중에 남은 건 눈물뿐.


* 1에서 8까지 열거된 업체 그리고 여기에는 표시되지 않은 수많은 업체들은 서로 수익을 남기기 위해 서로 머리를 굴리기 시작한다. 자본주의 사회니까 정당하게 페어플레이 한다면 문제될 것이 없다. 없다! 없다! ㅎㅎ 사람이 어디 내 맘 같아야 말이지.





시행사업은 건축사업의 종합예술이다. 보통 특용작물 농사나 새우양식 같은 사업들도 세 번에 한 번만 성공해도 대박이라 한다는데 시행사업은 한 번 실패하면 쪽박이다. 그래서 이 업계에는 밑바닥에서 새로 시작하는 사람들이 많다. 차근차근 올라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지만 그간 신뢰가 쌓인 사람이라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닐 것이다. 한 번 발을 들여놓으면 빼내기 어렵다는 건 아마도 성공의 희열 같은 것이 있기 때문 아닐까?

그래서 시행사업은 사업의 끝판왕이라고도 하는 거다. 토지거래 시 발생할 수 있는 모든 리스크를 검토할 줄 알아야 하며, 토지를 매입할 수 있는 막대한 자금력이 있어야 하고, 금융과 건축을 잘 버무려 원만한 사업을 진행할 수 있는 관계가 형성되어야 한다. 시행사업을 했다고 말하려면 입주까지 완벽하게 끝내야만 한다. 중도에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변수를 예측해야 하며, 예비자금도 보유하고 있어야 한다. 결과적으로는 기술보다는 돈과 사람으로 하는 일이다 보니 사람을 볼 줄 아는 혜안도 필요하며 인간관계도 매우 중요하다. 돈 앞에 장사 없다는 말처럼 심지가 굳지 않은 사람이라면 큰돈이 오가는 시행사업에서 눈먼 돈이라는 생각에 흑심을 품고 하지 말아야 하는 짓을 할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시행사 입장에서는 알고도 눈 감아주는 경우가 있다는데 당사자는 전혀 모른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하다. 웃지 못할 이야기지만 우리 삶에서는 그런 일이 너무 허다하다.

시행사업의 가장 큰 변수는 사업을 시작할 당시와 준공 시의 시장 변화라고 했다. 시행사업자들은 자신들을 디벨로퍼라고 한다. 말 그대로 개발자다. 설명을 듣고 보니 프런티어이며 모험가다. 인생 한방을 목표로 하는 사람들을 비유하는 건 아니다. 시행업자들 중에 그런 류의 사람들이 없진 않지만 진정한 디벨로퍼는 한방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들 표현으로는 정책의 변화에 따라 목숨이 좌지우지되는 모험적인 사업이라고 한다.


몇 천 세대 규모의 사업 전 예상수지분석표를 검토해 봤다. 총 사업비 중 각 분야별 업체들에게 배정된 비율을 보니 예상외로 촘촘하다. 의외로 높게 배정된 게 아닌가 싶은 분야도 있어 따지듯 물어보니 분명 타당성이 있어 보였다. 복잡하기만 한 숫자놀음에 머리가 하얗게 변해버리는 것 같았지만 상세한 설명 덕에 하나씩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상세한 내역이라고 할 수는 없고 사업성 분석을 위한 개략적인 수지분석표일 뿐이라는 말에 더 이상은 파고들지 않기로 했다. 그 숫자놀음만 보면 인생 역전을 꿈꿔보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시행사업을 한답시고 멋 모르고 덤벼들었다가 모기업이 파산하거나 큰 위기를 겪은 사업체도 많다. 메이저 시공사를 보유한 대기업이 돈이 없어서 시행사업을 하지 않는 걸까? 우리는 남의 떡이 커 보인다는 말을 익히 듣고 살아왔다. 그리고 알다시피 세상엔 쉬운 일이 없다. 누군가 기반을 다진 초석 위에 우뚝 서 있다면 그의 초석은 온갖 고된 경험이 되었을 것이고 수많은 위기를 헤쳐나가 버티고 버텨서 굳어진 것이다. 세상엔 결코 공짜는 없다.

내가 매 맞을 가능성이 높은 이런 글을 쓰게 된 이유는 현 정부의 무지를 꼬집기 위함이다. 공무원은 사업가가 아니다. 그들이 시행사업을 얼마나 알까? 이해하려 해도 직접 사업을 해보기 전에는 절대 이해할 수 없다. 일반 국민은 어떨까? 이렇게 세세하게 설명해도 이해하기 어려운 분야인데 누가 그렇다 하더라는 소리에 그런가 보다 하는 생각에 어설픈 판단을 한다면 뭔들 제대로 볼 수 있을까? 삐딱한 시각으로 시행사업을 보면 이 세상엔 죄다 도둑놈만 가득한 세상이라 해도 뭐라 할 말이 없을 것이다. 주택을 공급하려면 주택을 지을 사업자의 입장을 알아야 한다. 토지 가격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뛴다. 아파트 가격이 오르면 토지 가격은 함께 뛰는 거다. 연동한다는 것이다. 토지 가격이 오르면 분양한 주택 가격이 오르는 게 당연하다. 모두 소비자인 국민의 부담인 게다. 아파트를 짓기 위해서는 토지작업부터 준공, 분양까지 짧게는 5년 길면 20년도 걸린다. 사실 5년짜리 사업장은 거의 있을 수 없다. 멀리 볼 것도 없다. 9호선 라인이 연결된 삼전역 근처는 어떤가? 10년 전 토지 가격과 지금 토지 가격의 차이를 살펴보면 깜짝 놀랄 것이다. 당신이라면 오늘 10년 전 토지를 팔라며 달라붙었던 작업자에게 같은 가격으로 매매할 것인가? 땅주인이라면 자기 땅의 미래가치를 생각할 것이다. 말 그대로 호가가 높아지는 것이다. 10년 전 계획했던 예상 사업수지가 지금은 적용이 될까? 10년 전이면 평당 건축비가 350만 원 수준이다. 지금 서울에서 메이저 브랜드를 넣으려면 최소 500만 원 이상이다. 30% 인상된 건축비 역시 소비자의 몫이다. 그럼 우리 인건비는 얼마나 올랐을까? 참 답 없는 이야기다. 대체 사업의 복잡한 면을 염두에나 두고 정책을 펴는지 모르겠다. 지인의 경우 노무현 전 대통령 때 갑자기 실행된 분양가 상한제 때문에 150억 원이라는 순 자기 자본금을 일시에 날려먹었다. 계약서에 도장을 다 찍었던 금융사, 시공사 모두 등을 돌렸다. 이유는 뻔하다. 앞길을 예측할 수 없는 불분명한 사업이 되어버린 데 투자할 이유가 없어진 것이다. 원래는 최고의 사업장이라며 불같이 달려들던 그들인데 말이다. 주택을 공급하려면 사업자들이 사업을 펼칠 수 있도록 정책을 유도하는 게 우선인데 표심 하나만 보고 국민들을 꼬셔 보려는 거짓 정책으로 대체 무엇을 할 수 있겠냐는 게 내 생각이다.

요즘처럼 주택문제 심각할 때 위정자들이 전문가들의 경험 어린 제안에 귀를 열었다면 22번째 대책 같은 건 있을 수도 없었다. 이제야 깜짝 놀라 용적률 완화 같은 정책을 검토한다 하지만 이미 전문가들은 오래전부터 제안해왔던 것들이다. 우리가 흔히 생각해왔듯 담당공무원이라면 담당하는 전문가여야 하며, 공무원의 역할인 제재보다는 할 수 있는 방법을 안내하고 제시해 줄 수 있는 역할을 해야 하는데 실제 이놈의 세상은 공무원이 공무원의 소임을 다 할 수가 없게 만들었다. 욕은 욕대로 먹지만 그들이야 하기 싫어서 안 하겠는가? 금융권 관계자들 이야기를 들어보니 허구한 날 바뀌는 정책 때문에 담당자도 헷갈린다는 말들을 한다. 요즘 위정자들에게 한마디 하고 싶다. 제발 바둑 좀 배워라. 못 하겠으면 장기라도 배워라. 한 수 내밀기 전에 두 수, 세 수 정도는 예상하고 정책을 펴야지 한 수 던져놓고 다음 수가 어찌 될지 보는 미련한 정책을 누가 고민한 정책이라 하겠는가 말이다. 국민들을 장기판의 졸로 보는 것도 아니고.





글을 쓰다 보니 중구난방, 서두없이 가다 급하게 정리하고 말았다. 하고픈 말은 한참 더 많지만 나 역시 전문가가 아닌 일개 소시민일 뿐인지라. 생각하면 할수록 괜히 화만 나서 더 이상 글을 쓸 수가 없다. ^^

아무튼 오늘의 넋두리는 여기서 끝!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브런치 작가가 되면 뭔가 될 줄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