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관절 수술기
루파고, 병원에서의 8일을 머물다.
드디어 아기다리고기다리던 퇴원 날이 왔다. 활동적인 내가 병원 침대 위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야 하는 상황이 되자 주변 사람들은 나를 안쓰럽게 봤다. 어떻게 버티고 있을 수 있나 싶었겠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진통제에 반쯤은 취해 지냈던 것 같기도 하다.
때는 바야흐로 지금으로부터 12일 전 자전거 사고가 났고, 기껏 타박상 정도일 거라고 생각하고 집에서 3박 4일간 소파 위에서 꼼짝 않고 요양하다 혹시나 싶어 동네 정형외과에 가서 X-Ray라도 찍어볼 요량으로 식탁의자를 목발 삼아 평소 걸음의 백만 분의 일의 속도로 이동했다. 병원까지 곱디고운 맘씨를 가진 분이 도와주셨고 병원에 입원하기까지 모든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았다.
누런 원목 식탁에 의지해 끙끙거리며 걷는 나를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눕혀서 이동하지 않는 이상 아무런 도움이 될 수 없었다. 지하주차장에서 내려 엘리베이터를 타고 4층에서 내리자 병원 내부가 훤히 보이는 통유리창 사이로 길게 난 복도를 걸었다. 접수대에 있던 간호사 한 분이 목발을 들고 뛰어나왔다. 고맙긴 했지만 목발을 집고 걸을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었다. 의자를 맡겨두고 목발에 의지하니 걷기에 훨씬 수월했다. 하긴, 목발이 괜히 있는 건 아니니까.
X-Ray를 찍을 때 다리를 돌리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다리가 돌아가야 말이지. 고통을 참으며 끙끙거리는 나를 아랑곳하지 않고 어떻게든 촬영을 마쳐야 했겠지만 사실 좀 더 친절할 순 없나 하는 생각이 들긴 했다. 잠시 후 사진을 본 의사는 단번에 골절이라고 했고 나는 뼈에 금이 간 거 아니냐며 반기를 들었다. 맞다. 금이 간 거다. 의사는 금이 간 게 골절이라고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 무조건 수술하는 게 옳다고 했고 나는 그냥 누워있으면 붙지 않겠냐고 들이댔다. 뭐 이딴 환자가 다 있나 했을 것 같다. 생전 병원신세라고는 져본 적이 없는 내게 있어 수술이란 건 자존심에 스크렛치가 나는 일인 거다. 건강의 완전체를 자신하던 난데...... 방법이 없는 건 아니란다. 발부터 허리까지 깁스를 한 채 두 달 동안 꼼짝 않고 누워서 생활할 수 있으면 그리 하라는 말에 바로 꼬리를 내리고 말았다. 촬영했던 X-Ray 사진을 달라고 했더니 줄 수는 있으나 어차피 다른 병원에 가면 또 촬영할 거라고 한다. 왜 그래야만 하는지 이해할 수 없지만 그렇다 하니 그런 줄 알고 그냥 나와야 했다.
병원을 나오면서 2만 원에 목발을 구입했다. 전날 혹시나 싶어 쿠팡 등 인터넷을 검색했는데 거의 2~3만 원 정도에 판매되고 있었다. 인터넷 최저가보다 저렴한 거다. 이것도 의료보험이 적용된 걸까? 아무튼 우리는 현대아산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주차를 하고 목발을 짚고 병원 쪽으로 향하는데 한 남자가 휠체어를 밀고 뛰어나왔다. 이번엔 휠체어인 건가? 어쨌든 대형 병원이라 그런지 몰라도 초기 대응부터가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다. 코로나 때문에 체열 감지 등의 복잡한 절차를 거쳤는데 이런 시스템부터가 규모의 미학이 적용된 것을 알 수 있었다. 응급실로 들어서자 나는 휠체어에서 베드로 위치 이동을 해야만 했다. 이제는 누워있어야 하는 거다. 자세는 좀 더 편해진 것이 환자 모드로 급 변경이 되는 꼴이었다.
먼저 갔던 병원과는 달리 대기시간은 좀 더 길었고 X-Ray를 찍고 의사들의 협진 과정을 거쳐 수술 결정이 나기까지 무려 두 시간은 걸린 것 같다. 응급실이긴 하지만 내가 위중한 것도 아니라 별 문제가 없겠지만 촌각을 다투는 환자의 경우 나같이 하지는 않겠지 싶다. 아무튼 수술하는 걸로 결정이 나긴 했는데 현대아산병원 코로나 문제가 있었던지 병실이 없어서 입원을 기약할 수 없다고 한다. 우리는 한 시간 가까이 고민하다 강남에서 가까운 병원을 수소문했다. 그리하여 성수대교 건너에 있는 정형외과 전문병원으로 결정하고 입원 가능 여부를 파악한 후 바로 이동했다.
병원 주차장에 차를 대고 목발을 집고 올라가는데 남자 조무사 한 명이 이동식 베드를 밀고 헐레벌떡 뛰어나오는 게 보였다. 설마 했는데 나를 위한 것이었다. 그는 목발을 짚고 걸어오는 나를 보며 의아한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어떻게 걸어서 오시는 거죠?" 나야말로 황당했다. 지금껏 걸어서 다녔는데 무슨 소린가 싶었다. 아무튼 베드에 누워 편하게 병원 안으로 이동해서 X-Ray, MRI까지 촬영했다. 나중에 알았지만 MRI 촬영이 전혀 필요 없는 부위다. 말 그대로 뒤통수 맞은 거다. 의료보험 적용도 되지 않아 45만 원이라는 생돈을 날린 거다. 아무튼 모르면 당하는 거다. 시간이 늦어 수술은 다음날 아침 9시로 잡고 2인실로 향했다. 누구나 마찬가지겠지만 사람 많은 걸 병적으로 싫어하는 나는 4인실이나 6인실에서 머무를 자신이 없긴 했다.
전날 아점으로 먹은 신라면을 제외하고 24시간 정도 먹은 게 없었다. 하다 못해 물도 거의 못 마셨는데 어차피 수술하려면 금식을 해야만 한다. 이렇게 아귀가 잘 맞아떨어질 수도 있구나 싶었다. 너무 긍정적인가? 뼈를 다치면 48시간 전에 수술하는 게 좋다고 한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48시간이 지나면 며칠 더 지난다 하도 별 차이가 없다고 한다. 평생 정형외과 전문의로 계셨던 분에게서 들은 이야기니 별 이견의 달 부분은 없을 것 같다.
전날 수술을 위한 급여, 비급여 관련 동의서를 썼는데 퇴원 시점에서 보면 별 쓸데없는 짓들을 했구나 싶다. 병원 관련 경험이 많은 분의 의견에 따르면 약 120만 원 정도의 불필요 비용이 지출되었다는 것이다. 감기도 걸리지 않고 생전 병원 냄새조차 맡아본 적이 없는 내게 실손보험 같은 게 의미가 없다 싶어 오 년 전쯤 해지시킨 후 최근 자전거를 타는 지인들의 사고 소식을 듣고 다시 가입할 것을 고민하긴 했었는데 마침 사고가 난 후에야 후회가 되긴 했다.
아무튼 지난 일은 지난 일이고, 내 몸은 베드에 뉘어 수술방으로 향했다. 수술실보다는 수술빵으로 불리는 무서운 그곳은 시체실 마냥 서늘한 냉기가 흐르는 비호감의 공간이었다. 내 의지와는 달리 두 다리는 어딘가에 꽁꽁 묶였고 팔도 고정됐다. 왠지 고문장치 같다는 느낌이 들었을 정도로. 묘한 자세로 고정된 내 몸을 둘러보니 웃기지도 않았다. 잠시 후 예정했던 대로 마취는 두 가지로 진행됐다. 뼈를 건드려야 하니 척추 마취를 해야 하고 심리적인 부분 때문이었을 거라고 생각되는 수면마취가 이어졌다. 수면마취는 생각보다 오래 걸렸는데 주량이 센 사람들의 경우는 그렇다고 하는 것 같다. 언제 잠이 들었는지 몰라도 수술은 시작됐고 수술 도중 나는 마취에서 깨고 말았다. 눈을 뜨고 보니 파란색의 커다란 천이 병풍처럼 하반신을 가리고 있었다. 그 아래에서는 피부를 절개하고 뼈를 맞추고 피가 튀는 작업이 이뤄지고 있을 것이었다. 고관절에 구멍을 뚫고 있는 듯했다. 수술빵 안의 의료기기들 소리가 귓속으로 소용돌이치듯 빨려 들었다. 뼈를 뚫는 소리는 묘한 느낌을 자아냈다. 온갖 상상력을 동원하여 내 뼈에 드릴링이 되는 그림을 그렸다. 잠시 후 핀을 박는 소리가 들렸고 나는 의료진에게 물었다. "수술 잘 되고 있나요?" 흐흐흐~ 내가 생각해도 황당하다. 누군가 "네~"하는 답변을 해준 뒤로 아무도 내 질문에 답해주지 않았다. 그러다 또 잠이 들었던 것 같다. 반 수면 상태라고 해야 할까? 완전히 마취된 것도 아니고 완전히 깬 것도 아닌 몽롱한 상태인 거다. 술 좀 작작 마셔야지. 마취제도 안 통하는 이런 묘한 상황을 접하고 나니 술 많이 마시는 건 백해무익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흐릿하게 복도의 천장에 박힌 조명들이 휙휙 지나가는 게 보였다. 마치 영화 속 주인공의 시각으로 본 듯한 모습이었다. 반쯤 생각이 없어서 그런 상황인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병실로 들어오며 먼저 입원해 있던 룸메이트와 인사도 나눈 것 같다. 모든 행위가 자의에 의해 행해졌지만 이상하게도 기억엔 선명하지가 않다. 이런 신박한 경험이 다 있나! ^^
그로부터 7일 간 나의 병실 생활이 이어졌다. 수술 전날 입원한 것까지 총 8일간의 경험이다.
이번 수술로 나의 강력한 이미지에 금이 갔다. 완전한 건강체에서 티타늄 철심을 박은 인조인간이 된 것이다. 자잘한 상처들은 일주일이 채 되지 않아 딱지가 붙고 퇴원 시점이 된 오늘은 거의 다 나았다. 수술 부위에는 힘을 줄 수 없어 이틀 정도는 거의 미동도 어려웠다. 팔로 다리를 들어 올려서야 간신히 이동이 가능했으니까 말이다. 그래도 휠체어를 쓸 필요까지는 없었는데 간호사들은 내가 목발을 짚는 걸 만류했다. 하지만 휠체어보다 목발이 더 편할 걸 어쩌겠나. 넘어지는 것을 우려해서라고 하지만 휠체어에 오르내리다 넘어질 확률이 더 큰 것 같다. 다리 상태는 하루가 다르게 달랐다.
허리를 세우는 각도가 90도를 넘어서기까지 4일은 걸렸다. 그쯤 되자 머리도 감고 혼자 밖에도 나다닐 수 있을 정도까지 회복된 것 같다. 엄청난 회복력에 다들 놀라는 걸 봐서는 아직 내가 건강체라는 것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 아파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건강에 대한 걱정을 해본 적이 없었지만 어쨌든 이번 수술 때문에 병원신세를 져보니 아픈 사람들의 마음을 백 분의 일 정도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과연 그럴까 싶긴 하지만 말이다. 아파본 사람이 아픈 사람의 마음을 안다고 하는데 세상의 모든 일이 다 그럴 것이다. 단어 몇 개로 단순하게 표현할 수 있는 아픔이지만 그 아픔의 종류는 다르고 각기 상황도 다르기 때문에 개개인이 느끼는 아픔의 수치는 절대 같을 수는 없을 거다. 이번 경험으로 공감한다는 말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말로 대치됐다.
퇴원 두 시간을 앞둔 지금 병원에서의 경험을 나름 정리하고 느낀 점을 되돌아보았지만 이번 수술이나 병원생활이 뇌를 강타할 정도의 충격은 없었던 것 같다. 단 하나 있다면 아프지 말아야 한다는 점 정도일까? 평소에 그 단단하던 어머니도 매일 내게 전화를 주시는 것만 봐도 그렇다. 나 하나 아프면 그만일 거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사랑하는 누군가 다쳤을 때 느껴지는 그 감정이 바로 상대가 내게 느끼는 감정 이리라.
병원에 있으면서 많이도 얻어먹었다. ^^
이번 사고와 입원은 가까운 사람들 몇 명 정도와 함께 자전거를 타는 가까운 라이더들이나 소식을 들었을 것이다. 매일 거의 두세 명은 찾아온 것 같다. 그들은 모두 미안한 마음이 들 정도로 몸에 좋다는 것들을 바리바리 싸가지고 왔다. 병실 메이트, 간호사, 간호조무사, 청소 아주머니와 나눠 먹어도 남아돌 정도로 말이다. 아무튼 그런 관심과 사랑과 염려 덕분에 이렇듯 빨리 회복되어 집으로 갈 수 있게 된 것 같다.
이제 곧 맘이 편안한 공간, 집으로 간다. 집까지 데려다주겠다는 배려는 감사하지만 이제는 혼자서도 잘할 수 있는 상태이다. 물심양면으로 보살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8일간의 병원생활을 마무리한다.
감사합니다. 아프지 맙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