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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파고 Aug 22. 2020

그놈과 키스하는 널 보았어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를 다시 보다

어린 시절의 순진했던 기억이 스멀스멀 기어오르게 만드는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

내가 연예계에 무지하고 단순해서 그런지 몰라도 한가인이란 배우가 왜 자꾸 손예진과 배치되는 느낌인지 모르겠다.

오랜만에 마취 없이 생살 잘라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렇게 두 장의 사진으로만 보면 두 사람의 키스신 모두 아름답지만 장혁이 분한 주인공 입장에서는 속이 찢어지는 듯했을 것이다.

짝사랑하는 여자와 친해져 버린 친구와 키스하는 모습을 목격했으니 말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이 두 장면 때문에 모든 생각이 정지된 것만 같았다.

누구나 한 번쯤은 품고 살아가는 지난 추억 때문이리라.


난 영화의 배경이 됐던 시기에 학교를 다니진 않았지만 가깝게 지내는 지긋한 선배들을 통해 귀가 가려울 정도로 들었던 무용담이 많다.

대부분 학교 안에서의 이야기로 구성되었기에 이 영화에서는 그려지지 않았지만 최루탄 때문에 맑은 공기 제대로 마셔볼 수 없었던 시기였을 거다.

이제는 사라져 버린 교련 선생과 선도부.

요즘 아이들은 절대로 이해할 수 없는 규율과 폭력이 일상이었던 시대가 사실 이삼십 년밖에 안 되었다는 게 믿기지가 않는다.

손톱 한 마디만 넘어도 바리깡이 고속도로를 그었던 당시의 까까머리를 생각하면 영화에 나오는 인물들의 두발이 너무 자유로워 보인다.



요즘엔 그런 헤어스타일이 있다는 걸 알까 모르겠지만 기껏해야 상고머리 정도나 되어야 그나마 멋이라도 부려볼 만했으니 말이다.

교문을 들어서는 자체가 공포였던 시절.

체육선생님과 교련 선생님을 주축으로 선도부가 교문을 지켰던 당시를 제법 리얼하게 그린 듯하다.



가끔씩 영화에서나 보이는 폭력이 있었고, 요즘 아이들은 그게 뭐냐고 비웃을 수준의 성인잡지나 담배 때문에 소지품 검사를 해서 반 전체가 두드려 맞는 일도 늘 있는 일이었다.

상상할 수 없겠지만 학교 단위로 패싸움을 하는 경우도 있었고 반이 통째로 미팅을 나가는 재미난 일도 있었다.



남녀공학이란 건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시절, 여학생을 마주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라면 기껏 통학 때 버스 안에서 뿐이었다.

라디오는 끼고 살았고 수업시간에 몰래 이어폰을 끼고 방송을 듣다 걸려서 귀때기가 찢어질 정도로 끌려나가 싸다구를 맞는 것도 흔한 일상이었다.



이런 모습은 정말 꿈에나 있을 수 있는 아름다운 광경이다.

정말 영화니까 가능한 일 아니었나 싶다.

요즘 아이들은 아무데서나 손을 잡고 껴안고 심지어는 길거리에서 키스를 하는 대범함을 보이기도 하지만 당시엔 남녀칠세부동석까지는 아니어도 남녀가 같이 있는 그 자체만으로도 손가락질받을 일이었다.



학생이 술을?

난 대학 가서 술을 배웠지만 당시 몇몇 까진 친구들만이 아니었다.

여기선 맥주가 나오지만 소주도 잘 마시는 친구들도 제법 있었던 기억이 났다.

난 술을 마시지는 않지만 친구들과 어울려야 해서 술자리에 나가 소주 대신 사이다를 마신 기억도 몇 번 있다.



이 영화에서는 아주 간결하게 정리했지만 언젠가 짝사랑했던 친구를 다시 만났을 때 나는 어떻게 했을까 그려봤다.

아마 난 소심해서 모른 척하고 도망쳐버리지나 않았을까?



마지막으로 CAST가 올라갈 때 배우들의 현재 모습을 떠올렸다.

이 영화가 2004년 개봉했던 것 같은데 배우들 얼굴을 보니 참 젊다. ^^

그만큼 나도 늙어간다는 이야기가 된다.

아~ 슬프다.

소주나 한 잔 하고프다!





영화의 도입부에 이소룡의 영화 씬이 나오면서 이런 자막이 나온다.


절권도는 우리에게 뒤돌아 볼 것을 가르치지 않는다. 길이 정해졌으면 앞으로 나아갈 뿐이다.

- 스 리, <절권도의 길> 중에서 -

다른 건 모르겠다.

이것만 기억하자.

과거는 과거일 뿐, 앞이 더 중요하다.


길이 정해졌으면 앞으로 나아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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