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월 초여름의 어청도는 산과 바다 어디든 풍성했다. 지유네 첫 번째 가족 나들이는 어청도의 랜드마크나 다름없는 마을 뒤쪽에 위치한 등대였다. 차를 타고 십여 분을 가야 하는 먼 곳이었다. 길이 험해서이기도 했지만 어청도는 결코 작은 섬이 아니었다. 이사 후 마을 근처만 다녔던 지유는 등대를 알게 된 후에야 어청도가 생각했던 것보다 큰 섬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산은 제법 높고 험했다. 진해에 있는 장복산만큼 큰 산을 넘다시피 해서 도착한 곳엔 하얀색 등대가 기다리고 있었다. 깎아지르는 절벽 위에 가까스로 선 등대는 아름다움의 절정 위에 서 있었다. 등대까지 이어진 길은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길 양쪽으로 세워진 돌담 밑으로는 족히 백 미터는 되는 수직으로 된 암벽이 등대를 떠받치고 있었다. 마치 디즈니랜드에 등장하던 공주가 살고 있을 곳만 같았다. 등대는 자물쇠로 잠겨 있어서 올라가 볼 수는 없었고 등대 뒤로는 등대를 관리하는 사람들이 숙식하는 듯한 집과 창고가 있었다. 집, 창고, 등대, 절벽 모두 이색적인 곳이었다.
“왜 김밥을 싸라고 하나 했더니 이런 비경이 있었네요? 나 그냥 여기서 살래~”
지유는 전날 저녁부터 소풍 갈 준비를 하라고 했던 이유를 이제야 알 수 있었다. 그냥 들렀다 가기에는 너무 아까운 곳이었던 것이다. 등대와 이어진 모든 곳에는 잘 관리된 파란 잔디가 깔려 파란 하늘과 맞닿아 한 폭의 그림을 만들고 있었다. 진수와 명수는 잔디 위로 뛰고 뒹굴며 깔깔거렸다.
“이런 곳에서라면 평상 살자고 해도 살 수 있겠어요.”
지유는 아이들이 국민학교를 마칠 때까지 살고 싶은 욕망이 꿈틀거렸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더욱 아쉬움이 남았다. 등대 밑 돌담 너머로 보이는 푸른 바다는 사진에서나 보던 지중해나 태평양 같은 바다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어 보였다. 바다는 한동한 그렇게 평화를 안겨주었다.
유월의 마지막 날, 지유는 어선을 부리는 이웃집 여자와 함께 바닷가로 소라를 잡으러 갔다. 한참 소라 잡기에 신이 났던 지유는 마을 쪽에서 이웃집 여자의 남편의 목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렸다. 부랴부랴 뛰어오는 그의 모습이 가까워지자 그가 외치는 소리에 소름이 돋았다. 다리가 굳은 건지 힘이 빠진 건지 아무런 느낌도 없었다.
“명수가 바다에 빠졌어요! 썰물이라 많이 떠내려갔대요. 빨리 가 봐요!”
정신을 차린 지유는 사색이 되어 미친 듯이 마을로 뛰어갔다. 소라를 잡던 곳은 마을에서 불과 이삼백 미터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곳이었지만 거기까지 가는 동안 지유의 뇌는 멈춘 상태나 마찬가지였다. 오로지 명수의 안위에 대한 생각뿐이었다. 바닷가로 난 시멘트길 옆에 아이들이 먼바다를 보며 발을 동동 구르는 모습이 보였다. 동네 이웃들도 하나 둘 모여들고 있었다.
“엄마! 명수가 저기!”
진수는 달려오는 지유를 달려들더니 품에 안겨 울먹였다. 진수의 손은 먼바다를 손짓하고 있었다. 문제는 하필 물이 빠지는 썰물이라 명수는 점점 멀리 떠내려가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지유는 스스로를 다잡으며 침착해지려 노력했다. 빨리 명수의 위치를 찾은 후 구출해내야 한다. 하지만 바다 어디에도 명수는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바다 위 파도 사이를 헤집던 지유의 눈에 명수의 옷 같은 것이 보인 것만 같았다. 명수는 이제 네 살에 수영을 할 줄 모른다는 사실이 머릿속을 스치자 하늘이 무너지는 듯했다. 지유는 자기도 모르게 바다로 뛰어들었다. 명수가 보였던 수백 미터를 헤엄쳐 갈 수 없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다. 하지만 지유의 행동은 판단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 그저 엄마로서의 본능이었다.
지유가 십여 미터 정도 멀어졌을 즘, 부대 언덕을 구르듯 뛰어내려온 정미소가 쏜살같이 바다로 뛰어들었다. 엄청난 속도였다. 오십 미터 정도 지유가 앞서가고 있었다. 정미소는 지유에게 직접 수영을 가르쳤기 때문에 지유에겐 명수를 구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까딱 하다가는 지유와 명수 둘 다 잃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일었다. 어쨌든 지유의 판단은 무모함 그 자체였다.
그때 어선 한 척이 만 안쪽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섬에서 나고 자란 어부는 바닷가에 사람들이 모인 것을 보고 사고가 생겼다는 것을 직감했다. 어부는 어선 지붕 위로 올라가 파도 사이사이를 살폈다. 잠시 후 그의 눈에 바다 쪽으로 나오는 두 사람을 발견할 수 있었다. 어부는 다시 바다를 살폈다. 아니나 다를까 그들 쪽으로 힘이 빠져 간신히 허우적거리며 떠내려 오는 아이를 발견한 것이다. 아이는 거의 물속에 잠기기 일보 직전의 상황이었다. 어부는 아이 근처로 어선을 몰아 갈고리로 아이를 건져 올렸다. 그는 얼마 전 이사 온 명수라는 것을 알고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다. 명수는 이미 정신을 잃고 숨도 쉬는 것 같지 않았다. 다급해진 어부 한 명이 급히 심폐소생을 흉내 내어 보았지만 쉽지 않았다. 어부는 정미소와 지유를 향해 배를 몰았고 다른 어부들은 지유와 정미소를 잇따라 배 위로 끌어올렸다. 정미소는 숨을 헐떡이며 명수에게 심폐소생술을 진행했다. 지유는 명수의 생사를 가늠할 수 없는 상황에 울지도 못하고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세상에 그렇게 긴 시간이 또 있을 거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명수는 콜록거리며 물을 토해냈다. 그리곤 다시 숨을 쉬기 시작했다. 명수는 아직 눈도 뜨지 못한 상태였지만 울기 시작했다. 아마 엄마 아빠의 목소리에 안도했을 것이지만 난생처음 경험해보는 죽음이라는 공포에서 다시 살아난 것에 놀라서였을 수도 있었다. 지유는 명수를 끌어안고 한참을 울었다. 그렇게 사랑스럽기만 했던 어청도의 아름다운 바다가 자신의 분신 같은 명수를 앗아가려 했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지유는 파란 바다가 두렵게 느껴졌다. 파란 바다는 어느새 까만 바다로 변해 있었다. 깊은 바다가 아가리를 열고 자신을 노려보는 것만 같았다. 언제라도 진수와 명수를 집어삼키겠다며......
그렇게 아름다웠던 어청도는 그렇게 지유를 배신했다. 명수는 사고 이후 예전 같지 않았다. 명수는 겨우 네 살밖에 되지 않은 나이였지만 영특하고 똑똑했었다. 정미소는 이미 유명을 달리했던 아래 동생과 비슷한 영재라는 것을 눈치채고 있었던 것이다. ‘대대로 영재가 끊이지 않았던 우리 집안의 영재는 여기서 끊어지나 보다!’ 정미소는 한탄했다.
지유는 어청도를 두려워했다. 명수 역시 바다를 두려워했다. 그러나 정미소는 두 아들을 그냥 내버려 두지 않았다. 그는 직접 아이들에게 수영을 가르쳤지만 명수에게만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정미소는 진작에 가르쳤어야 했다며 후회했지만 이미 지나간 시간은 돌아올 리 없었다.
시간이 약이었던지 사고의 충격은 조금씩 희미해져 갔다. 하지만 명수의 총명함은 눈에 띌 만큼 떨어졌다. 지유는 명수의 성장이 멈추는 게 아닐까 싶어 걱정이었다. 어청도에서의 생활이 일 년쯤 지날 즈음되어가자 지유는 명수의 건강에 더 큰 문제가 없을 거라 안도하기 시작했다.
어청도는 먼바다로 고기잡이를 나온 어선들의 중간 경유지, 보급지, 피항지다. 국가적으로도 방위상 위치로도 매우 중요한 섬이다. 그래서였는지 선착장 근처에는 육지에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았던 다방이 몇 개나 줄지어 있었다. 지유가 처음 어청도에 도착했을 때만 해도 어촌에 무슨 다방이 그렇게 많은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이해할 수 있었다. 지유가 어청도로 들어온 후 첫 번째 폭풍우가 온다는 뉴스가 있었고 며칠 후 실제로 기상이 악화되었다. 하늘은 난데없이 새까맣게 변했고 콩만 한 빗방울이 총알처럼 바닥을 파헤치기 시작했다. 몇 시간 전부터 급히 피항을 온 어선들은 그 넓던 어청도의 만을 가득 채웠다. 조용하던 섬은 전에 없이 흥청거리기 시작했다. 다방의 존재는 그날 드러났다. 얼굴조차 볼 수 없었던 젊은 여자들이 열 명 정도 부둣가를 오가는 게 보였다. 폭풍우 소식을 듣고 육지에서 들어온 듯했다. 바다에서 며칠이고 떠다니던 어부들이 땅에 발을 디디자 열 명이나 되는 여자들은 매우 분주했다. 그 후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어디서 왔는지 알 수는 없지만 훈련을 마친 군함이 들어온 날이면 어김없이 젊은 여자들이 나타났고 부둣가는 다시 분주해졌다. 결혼 전의 지유였다면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들이 어청도를 찾을 수 있었던 건 산 너머에 있던 아름다운 등대 덕분이었다. 언덕 꼭대기 절벽 위에 우뚝 선 등대가 밝혀준 불빛은 아무리 먼 곳에서도 볼 수 있었다. 어청도 인근해는 육지에서 매우 먼바다라서 파도가 매우 높았다. 폭풍우가 다가올 무렵이 되면 십여 미터가 넘는 파도가 어청도 연안을 덮쳤다. 하지만 어청도의 품 속은 엄마 품처럼 안전했다. 어청도는 그런 섬이었다.
날씨가 예사롭지 않다 싶으면 어김없이 수십 척의 배들이 어청도의 품 속으로 찾아들었다. 바람이 잦아들기 전에는 며칠이고 뱃사람들 세상이 됐다. 늦은 저녁까지 온 동네가 북적였고 불야성을 이뤘다. 며칠간의 축제가 끝나고 나면 수십 척의 배들은 기약 없이 어청도를 떠났다. 그럼 젊은 여자들 역시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기상이 악화되면 다시 어청도를 찾을 것이 분명했다.
어선들이 다녀가면 집집마다 해산물로 가득했다. 어선에서 잡은 해산물은 어차피 뭍으로 가져다 팔 수 없기 때문에 헐값에 처분하는 수밖에 없었다. 마을 사람들은 그것들을 말려서도 먹고 날것으로도 먹었다. 며칠 동안은 온 동네가 생선 비린내로 가득했다. 온 집안의 밥상에는 진귀한 해물로 상다리가 휘어질 듯했다. 그때는 동네 고양이들도 잔치가 벌어졌다. 먹을 것이 많은 어청도에는 길 고양이, 집 고양이가 따로 없었다. 고양이들 간에 다투는 법도 없었다. 전혀 그럴 필요가 없었다. 지유는 어청도 주민들이 다투는 것을 거의 본 적이 없었다. 고양이들처럼 풍요로웠기 때문이다. 어청도엔 토박이들의 텃세도 없었다. 고양이들이나 마찬가지였다.
정미소는 가끔 군함을 타고 훈련을 나갔다. 지상근무로 왔다지만 구축함을 타고 해외 출장을 다녔던 것이 그리울 때가 있었던 것이다. 언젠가는 팀스피리트 훈련이라며 나갔던 군함이 무언가를 끌고 들어왔다. 그런데 웬일인지 군 선착장으로 가지 않고 여객선과 어선들이 드나드는 선착장으로 향했다. 군함 뒤에 끌고 온 것은 다름 아닌 검은 등을 둥둥 띄운 고래였다. 지유는 그때 처음으로 고래를 보았다. 하지만 고래는 이미 죽은 상태였다. 지유는 문득 눈을 뜬 채로 죽는 물고기의 동그란 눈망울이 떠올랐다. 어쩐 일인지 고래는 눈을 감은 채였다. ‘고래는 죽는 순간 어떤 생각을 했을까? 이 고래는 왜 죽었을까?’ 엄마가 된 지유는 모든 생물을 보는 시각 자체가 많이 변해 있었다. 두 아들 다 한 번씩 잃을 뻔했었고, 유산한 경험도 있었던 지유에게는 생명, 모정, 자식, 삶과 죽음에 대한 모든 개념이 모성이라는 관점에서 재정립되어 있었다. 훈련 중 죽은 고래를 발견해서 끌고 들어왔다던 정미소의 설명은 다음 날 거짓으로 드러났다. 훈련 중에 고래를 포격해서 잡은 것이었던 거다. 지유는 처음으로 정미소에게서 전에 없던 차가운 감정을 느꼈다. 착하기만 했던 그가, 잔인한 포획자 또는 사냥꾼 같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날 처음 알았다. 어청도는 포경선들의 주요 피항지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