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령

돌배나무집 셋째 딸 Vol.17

by 루파고

진해의 명물인 군항제 축제 기간이었다. 전국 최대규모라 할 수 있는 군항제가 아니었다면 진해가 전국에 알려졌을 가능성이 있었을까? 한가롭던 진해가 인파에 밀려 북적거리는 걸 볼 수 있는 유일한 시기다. 아름다운 벚꽃 길 때문에 군항제가 더욱 빛났을 지도 모른다.

갓 아가씨 딱지를 벗어던진 지유의 미모는 군항제 구경을 온 외지인들 누구보다도 아름다웠다. 매년 보던 군항제였지만 정미소와 함께 하는 군항제는 지유에겐 전혀 새롭게 와닿았다. 이런 저런 구경에 시간 가는 줄 모르던 그들에게 곱상한 아가씨가 다가왔다. 마침 그들은 솜사탕을 입에 물고 각설이 타령을 보며 깔깔거리던 참이었다. 얼핏 봐도 상당히 세련되어 보이는 곱상한 여자였다.

“저기요~ 혹시, 서울 분이시죠?”

여자는 다짜고짜 서울 사람인지부터 확인했다. 그도 그럴 것이 지유가 입고 있던 차림은 서울 번화가에서나 볼 수 있는 최신 유행의 패션이었기 때문에 의례히 서울 사람이겠거니 생각할 법도 했다.

“서울에서 내려온 지 얼마 안 되긴 했는데 왜 그러시죠?”

지유는 서울 말투에 적응하긴 했지만 아직 경상도 사투리의 억양이 남아 있어서 신경 써서 사투리를 눌렀다.

“정말 죄송한데요. 제가 소매치기를 당한 것 같아요.”

여자는 이제 겨우 스물서너 살이나 되어 보이는 예쁘장한 아가씨였다. 군항제의 어지러운 인파 속에서 지갑을 분실한 것이었다.

“혼자 오신 거예요?”

“아니요! 친구하고 둘이 왔는데요. 어디에 있는지 찾을 수가 없어요. 지금 여기가 어딘지도 모르겠고요.”

여자는 거의 울 듯한 표정이었고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려는 듯했다. 하지만 이미 해가 질 무렵이라 친구를 찾아주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정미소와 지유는 여자를 근처 파출소에 데려다 주었지만 거긴 미아보호소나 마찬가지 상황이었다. 여자의 문제는 일도 아니었다.

“혹시~ 기차 예약은 하셨어요?”

지유는 기차 시간에 맞춰 역으로 가면 친구를 만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시간이 거의 다 되었어요.”

기차 시간까지 역에 도착하기는 힘든 상황이었다. 평소에도 쉽지 않은데 군항제의 인파를 헤치고 간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정미소와 지유는 여자를 도와주기로 결정했다. 군항제 때 여관이나 민박을 잡는다는 건 불가능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을 그들은 알고 있었다.

“저희 집에서 하루 주무시고 내일 차비를 드릴 테니까 아침식사 하고 올라가세요. 오늘 같은 날 잠 잘 곳을 찾는다는 건 불가능해요. 불편하실 것 같으면 저희 부모님 댁이 근처니까 거기서 주무셔도 돼요.”

지유의 제안에 여자는 잠시 고민을 하더니 그들의 뜻에 따르기로 했다.

“너무 고맙습니다. 이렇게까지 신경 써주시고……”

“점심식사는 하셨어요?”

“아니요! 구경하느라……”

여자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어차피 저희도 놀러 나온 거라 이제 집에 가서 식사할 거예요. 같이 식사해요.”

그들은 신혼집에서 저녁식사를 하며 간단하게 막걸리도 한 잔씩 나눠 마셨다. 구로에 산다는 아가씨는 큰 마음을 먹고 진해까지 여행을 왔다고 했다. 신혼집은 단칸방이라 따로 잠자리를 만들어줄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이 구석에 여자의 이부자리를 펼쳐 주었다. 여자는 신혼부부가 사는 집에서 자는 게 부담스러웠는지 밤늦도록 잠을 이루지 못했다. 지유 역시 여자의 잦은 뒤척임에 밤새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간신히 잠이 들었던 두 사람은 아침이 되어서야 여자가 사라진 것을 알 수 있었다. 지유의 지갑에선 차비 정도의 돈이 사라졌고 달랑 쪽지 한 장이 남아 있었다.

<제게 큰 배려를 해주셨는데 도망가서 죄송합니다. 밤새 너무 무서웠어요. 절대 그럴 분들이 아니라는 걸 알지만 혹시라도 납치되는 게 아닐까 하는 고민도 했어요. 용서해주세요. 어차피 차비를 주시겠다고 하셔서 염치 불고하고 차비만 가져갈게요. 고맙습니다. 행복한 사랑하세요.>

정미소는 쪽지를 읽고는 ‘여자라서 내가 무서웠을 거야’라고 넘겨버렸다.

“아가씨가 얼마나 무서웠겠어. 여자 혼자 외지에서 말야.”

“그보다 험상궂게 생긴 남자가 다음 날 외딴섬에 팔아버릴까봐 겁이 났을걸?”

지유가 정미소를 꼬집으며 말했다.






“발령 났어!”

일찍 퇴근한 정미소는 평소 같지 않은 말투로 발령 소식을 알려왔다.

“다시 인천이에요?”

“아니! 지난번에 섬으로 보내달라고 했었잖아. 아주 먼 섬으로 보내 달랬더니, 정말 먼 섬으로 발령이 났네!”

“언제 가는 거예요?”

“한 달 후야! 천천히 준비해~ 이번에는 부대에서 집도 구해줬어!”

“어딘데요?”

“어청도라는 섬인데~”

“어청도?”

“알아맞혀 봐! 안 가르쳐 줄래!”

지유는 당장 지도를 찾아 꺼내 들고 섬을 찾기 시작했다.

“찾으면 뭐 해 줄래요?”

“글쎄~ 섬에서 먹고살아야 하니까 낚싯대 사줄게. 대신! 매일 생선 반찬 해줘야 해!”

그의 말에 지유는 피식 웃고 말았다. 지유는 무려 십 분이 넘어서야 지도에서 섬을 찾을 수 있었다. 군산에서 서쪽 끝으로 가장 먼 곳에 떨어져 있는 섬이었다.

“이 섬에 사람이 살긴 살아요? 이렇게 먼데?”

“결혼 전에 한번 가봤는데, 정말 멋진 곳이었어. 제주도 같은 곳은 아니지만 기가 막힌 곳이야. 정말 좋아할 거야!”



어청도. 확실한 서해바다인데 파란 바닷물이 동해바다를 떠올리게 했다. 지유로서는 진해에서도 본 적 없는 물색이었다. 멀리 파란 바다 위로 섬이 둥실 떠 있었다. 봄의 문턱에 걸쳐 있던 겨울을 억지로 밀어내려는 듯 나지막한 산을 안고 있는 섬 어귀에는 진달래가 가득했다. 햇빛은 포근했지만 간간히 불어오는 바람에는 미련이 남은 겨울이 묻어 있었다. 멀리 보이던 어청도는 금세 코앞에 닥칠 것 같았지만 섬이 지유의 눈 앞에 펼쳐지기까지는 무려 삼십 분 가까이 기다려야만 했다. 배는 시끄러운 디젤엔진 소리를 울리며 섬의 좌측에서부터 접근했다. 배가 지나왔던 길로 시커먼 연기를 하늘을 가렸지만 이내 파란 하늘 사이로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만으로 된 섬의 입구 양쪽에는 낮은 암벽으로 이루어진 동산이 포근하게 이어졌다. 배가 만 안쪽으로 들어서자 지유의 눈앞에 자그만 포구가 아름답게 펼쳐져 있었다. 인천이나 진해에서 보았던 포구들을 백화점이라고 한다면, 어청도의 포구는 동네 어디서든 볼 있는 구멍가게 같았다. 좌측에는 해군부대가 주둔하고 있었다. 칙칙한 회색 페인트가 두텁게 칠해진 군용 선착장에는 작은 군함 두 척이 정박되어 있었다. 지유가 본 것 중엔 가장 작은 축에 드는 군함이었다. 해군부대 쪽에서 쇠를 두드려 깡깡 거리는 소리가 귀를 피곤하게 했다. 수병들이 깡깡이 작업을 하고 있었다. 지유는 이 년 동안 살아야 할 섬이 입구부터 맘에 들었다. 꿈에서 그리던 어촌마을이었다. 조용하고 한적하고 아담했다. ‘우리 집은 어디일까? 진수 아빠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지유는 사람들을 볼 수 있을 정도로 배가 다가서자 정미소를 찾기 시작했다. 선착장엔 그 말고도 배 안의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들 잔뜩 서 있었다. 정미소가 지유를 확인했는지 두 팔을 크게 벌려 손을 흔들고 있었다. 떨어져 지낸 지 기껏 일주일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생소한 장소에서 재회를 해서 그런지 더욱 반가웠다. 진수도 어청도라는 섬이 맘에 들었는지 하늘에 널리 떠있는 갈매기들에게 시선을 놓지 못하고 있었다. 사실 지유뿐만 아니라 두 아들 역시 어청도에서의 생활에 들떠 있었다.

선착장에 배가 닫자마자 정미소가 여객선으로 뛰어올랐다. 파도에 흔들리는 건널다리를 사뿐하게 넘는 모습이 영락없는 뱃사람이었다. 잠에서 깬 명수는 눈을 뜨자마자 나타난 아빠의 모습에 신이 나서 달려갔다. 두 아이를 양팔에 하나씩 들어 올린 정미소의 모습이 사랑스러웠던 지유가 두 아이를 안고 있는 정미소를 함께 안아주었다.

“보고 싶었어요!”

“그새?”

정미소는 지유의 한마디만으로도 행복했다. 지유는 선착장에서 본 바닷가에 기름이 둥둥 떠 있어 눈살이 찌푸려졌다. 청정 자체를 꿈꿔왔던 상상 속 어청도에 오점 하나가 남았지만 그 정도는 용서해주기로 했다. 무엇보다 두 아이들에게 최고의 추억을 만들어줄 곳이기 때문이다.

이 년 동안 머물 집은 해군기지로 올라가는 언덕 아래 우측 두 번째 집이었다. 파란색 지붕이 바다와 잘 어울려 보였다. 어촌마을의 어부가 살고 있을 듯한 집이었다. 집은 네 식구가 살기에는 충분히 넓었다. 가족들이 오기 전에 미리 깨끗하게 청소와 도배를 마쳐둔 상태였다. 그래서일까? 시골집이라고 하기에는 깨끗하고 정갈해 보였다. 집 뒤로 돌아가는 골목 뒤쪽으로는 이름 모를 생선들이 무수히 널려 있었다. 어촌이라는 것을 새삼 실감하게 했다.

“여기에서 우리의 멋진 추억을 만들고 싶네! 정말 좋다! 진수야~ 너도 좋지?”

지유는 마치 여행을 온 것 같은 기분에 춤을 출 수 있을 것 같았다.

“엄마! 너무너무 좋아!”

두 아이는 새로운 집에 홀려 골목 안쪽을 탐사하듯 훑고 다니기 시작했다. 진수는 입학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바로 전학을 오게 됐다. 지유는 진수가 이곳에서 친구들을 만나 때 묻지 않게 잘 자라주기를 기대했다.

다음날 아침 정미소는 지유, 진수, 명수 모두 데리고 나들이에 나섰다. 마을 안쪽으로 들어서 동네 어귀에 자리 잡은 아담한 분교를 향하고 있었다.

“정말 예쁘다!”

지유는 아기자기한 분교에 흠뻑 빠져들었다.

“무슨 학교가 이렇게 작아?”

“아빠! 여기는 뭐야?”

지유, 진수, 명수는 각기 다른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 지유의 눈에는 작고 아담한 어청도의 분교가 너무도 마음에 들었다. 가능하다면 이곳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을 하면 좋을 것 같았다. 지유에게는 어릴 때부터 학교 선생님이었던 아빠의 모습이 그렇게도 멋져 보일 수가 없었다. 동네 사람 모두 아빠를 존경하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만약 프랑스 유학 외에 다른 꿈을 꿔야만 했다면 선생님을 했을 것이었다.

“진수가 다닐 학교야. 선생님도 친구도 몇 명 없지만 전에 다니던 학교보다 훨씬 재미있을 거야. 엄마도 더 자주 볼 수 있어. 좋겠지?”

“응! 엄마. 난 엄마만 자주 볼 수 있으면 어디 있어도 좋아. 그런데 여기 친구가 몇 명이나 되는데?”

“글쎄~ 우리 일단 학교에 들어가 볼까?”

지유는 진수의 전학 절차를 밟은 후 교실로 들어가는 진수를 창문 너머로 교실을 살펴보았다. 일, 이, 삼 학년이 함께 공부를 하는 듯 보였다. 지유의 눈엔 새까만 얼굴에 눈만 말똥말똥 뜬 아이들의 모습이 그렇게 귀여워 보일 수가 없었다.

“진수도 저 아이들처럼 새까맣게 되겠지요? 생각만 해도 귀여워 죽겠어~”

“그렇게 생각하고 보니 그렇네. 그나저나 진수하고 쟤들하고 있으니까 정말 그림이 웃긴다. 저기 진수 앞에 앉은 여자아이는 내 후배 딸이야. 저 녀석도 일 년 됐다는데 진수보다 훨씬 새까맣잖아. 진수도 몇 달 안 걸릴 것 같아.”

정미소와 지유는 명수를 데리고 학교 밖으로 나왔다.

“여기 어청도 어때? 맘에 들어?”

“당연하죠! 난 그냥, 그냥 너무~ 너무 좋아요!”

“명수도 좋아!”

명수도 어청도가 무척 마음에 드는지 물어보지도 않은 말에 혼자 대답을 했다.

“여기서는 애들 풀어놓고 키워도 되니 마음도 편하고 그렇긴 하네~”

정미소는 흡족한 표정을 하며 파란 바다를 내다보았다.

이전 16화유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