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배나무집 셋째 딸 Vol.16
1973년 9월. 정미소의 해외출장은 베트남전 때문이었다. 귀국 직후 둘은 진해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말았다. 휴학을 하고 결혼을 하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지유를 홍명덕은 끝내 말릴 수 없었다. 그는 쓰린 가슴을 쥐어짜야만 했다. 가장 아끼던 지유가 학업을 그만두겠다는 것이 내내 마음에 걸렸다. 어쩌면 학업의 연장 같은 건 있을 수 없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지유도 죽고 못 살겠다던 정미소만큼은 마음에 들었다. 사돈집의 경제적 상황은 대부분 피난민들이 그렇듯 부유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사돈의 학식과 덕이 홍명덕의 마음을 사로잡고 말았다. 정미소의 새로운 근무지는 다시 진해 해군기지였다. 신혼부부가 된 그들은 살림에 보탬을 주겠다던 홍명덕의 제안에도 불구하고 정미소의 능력만으로 신혼살림을 꾸렸다. 대신 집과 멀지 않은 곳에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주말이면 정미소는 홍명덕의 테니스 강사 혹은 게임 파트너로 진가를 올렸다. 지유가 결혼하자 죽어도 결혼을 하지 않겠다던 첫째와 둘째가 잇따라 결혼했다. 정미소는 지유의 형제들 사이에서 즐거움의 존재로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다음 해 12월. 첫째 아이가 태어났다. 사내아이였다. 홍명덕은 자신의 첫아들이 태어났을 때보다 기쁜 듯한 표정이었다. 이름도 홍명덕이 지었다. 정미소의 친할아버지 이름을 따 진수라 지어주었다. 아이는 정미소를 빼다 박았다. 그런데 태어난 지 백 일이 채 되지 않았을 무렵 낯선 탁발승이 집을 찾았다. 누가 원한 것도 아닌데 진수의 사주와 운명을 점을 치고는 홀연히 자리를 떴다.
“이 아이는 총명하기는 하나, 자기 안에 갇혀 살 것이오. 마흔 살이 되도록 힘들 것인데, 무엇을 해도 성공하기 어려우니, 억지로 힘든 일을 찾을 필요가 없고 마흔이 넘으면 어떤 계기로든 귀인을 만나게 될 것이오. 그때부터 큰 일을 할 아이입니다. 재물과 명예는 그때부터 얻을 것인데 항상 사람을 조심해야 합니다. 저 아이 주변에는 항시 사람이 끊이지 않으나 곤경에 빠뜨리는 일이 많을 겁니다.”
탁발승이 남긴 메시지였다. 좋은 것 같기도 하고 달리 들으면 기분 나쁜 말인 듯했다. 그런데 기억을 더듬던 지유는 파고다 공원의 최씨 노인이 했던 말과 맞아떨어지는 것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냈다. ‘첫째는 마흔까지 고생만 하고 되는 일이 없으니 억지로 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진수의 친할아버지는 진수라는 이름을 지어준 다음 날 돌연 급사했다. 지유는 그 날 처음으로 정미소의 눈물을 보았다.
1976년 4월. 잠시 서울에 다녀온 며칠 사이 도둑을 맞았다. 집 안에 있던 살림들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것이다. 마치 이사를 간 것처럼 깨끗이 사라지고 없었다. 이웃들 역시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며 안타까워했다. 그것이 충격이었던지 지유는 뱃속의 아이를 유산하고 말았다. 지유는 무려 삼일 동안 눈물을 멈추지 못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정미소 역시 너무 힘들었지만 어찌 지유의 아픔에 비할까 싶었다. 정미소는 휴가를 내고 지유를 보살폈다.
1977년 10월. 명수가 태어났다. 진수도 정말 예쁜 아이였지만 둘째 아이는 비할 수 없을 정도로 예쁜 아이였다. 꼭 딸아이처럼 예쁜 용모 때문에 딸처럼 키우고 싶은 욕심이 들 정도였다. 그 무렵 정미소는 해외출장이나 파견근무를 하지 않기로 작정했다. 대신 진해와 인천을 오가야만 했다. 거의 이 년에 한 번씩 이사를 해야 하는 고달픈 생활이었다.
정미소는 1980년을 마지막으로 운동선수 생활을 접었다. 그때까지 획득한 것만 해도 금메달이 열여섯 개, 은메달이 스물네 개, 동메달이 여섯 개였다. 사실 그는 테니스, 수영, 스케이트 세 개 종목에서 두각을 보이는 만능 스포츠맨이었다. 정미소는 부대 안에서도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었다. 선수생활을 접자 술자리가 잦아지기 시작했다. 가정에 충실도가 떨어지는 정미소의 용돈을 줄이는 막강한 방법까지 동원했지만 술자리는 끊어지지 않았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는 돈이 되는 금메달과 은메달을 담보로 잡히거나 팔아서 술을 마셔댔다. 끝내는 고혈압까지 왔고 진급에 누락되는 일까지 발생했다.
그러던 어느 날 지유는 특단의 조치를 취하기로 했다.
“진수 아빠! 우리 다른 데 가서 한번 살아보면 안 돼? 송희 엄마한테 이야기 들었는데 섬으로 발령 나서 갈 수도 있다던데, 우리도 섬에 한번 살아보자.”
섬에서 살면 일석 삼조의 효과를 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특수지 수당이 나오기 때문에 저축을 늘릴 수 있고, 아이들에게 영원히 남을 추억도 만들어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물론 가장 큰 목적은 정미소의 음주를 줄이는 것이었다.
“당신은 내가 매일 술 마시는 거 뒤치다꺼리해주기를 바라고 결혼하자고 했어? 너무 하는 거 아니야?”
지유는 속에 담았던 말을 이어갔다. 정미소에게 가장 섭섭한 것은 학업의 중단도 무엇도 아니었다. 그저 아이들과 행복하게 살기만을 바랐다. 그의 음주는 괴로워서 마시는 것도, 힘들어서 마시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주변에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었다. 여유 있는 살림이 아닌 걸 알면서도 술값도 항상 그가 지불하는 게 싫었던 것이다.
진수가 다섯 살 때,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아파트 놀이터에 놀러 갔던 진수가 돌아오지 않았다. 마침 일찍 퇴근한 정미소는 지유와 함께 온 동네를 뒤졌지만 밤이 깊어도 진수는 보이지 않았다. 저녁 아홉 시, 경찰에 실종신고를 하고 이웃까지 동원했지만 결과는 같았다. 지유의 머릿속은 절망 속으로 빠져들기 시작했다. 열 시가 넘어서도 아무런 소식도 없었다. 정미소가 밖으로 수소문하러 다니는 동안 지유는 작은 아들 명수를 억지로 재우고 전화기 앞을 지켜야 했다. 명수를 맡기고 나서려 했지만 한 명은 전화를 받아야 한다며 지유를 말렸다. 어린 명수는 익숙하지 않은 분위기를 읽었는지 자꾸 잠에서 깨 칭얼댔다. 매일같이 함께 놀다가 잠들었던 진수가 보이지 않으니 불안한 것 같았다.
열한 시를 넘기자 지유의 머릿속에는 오만 가지 생각들이 겹치기 시작했다.
‘어딘가 사람들 눈에 잘 안 띄는 곳에서 잠이 들었을 거야!’, ‘친구 집에 갔는데 부모님이 안 들어오셔서 그냥 거기서 잠들었을 거야!’
지유가 할 수 있는 긍정적인 생각은 그 정도가 전부였다.
‘길을 잃은 건 아닐까?’, ‘납치는 아닐 거야!’, ‘이상한 일은 아닐 거야! 절대 무슨 일은 없을 거야!’
열한 시 십 분 경. 그토록 기다리던 전화벨 소리가 울렸다.
“여보세요!”
지유는 떨리는 마음으로 전화를 받았다. 제발, 부디, 진수 소식이길 바랬다.
“나야! 혹시 진수 소식 있나 해서.”
정미소의 차분한 목소리가 수화기를 타고 들려왔다. 지유의 바람은 순식간에 깨져버렸다.
“어디예요?”
“지금 아파트 단지 끝까지 왔어. 여기는 이젠 사람도 없어. 잠시 집으로 돌아갈게.”
정미소는 자전거를 타고 나갔던 터라 십 분이 채 되지 않아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는 울지 않고 버텨주는 지유가 안쓰러웠다.
“파출소에 연락이 되어 있으니까 걱정 말고 기다려보자! 영리한 녀석이니까 꼭 돌아올 거야.”
정미소의 위로에도 불구하고 지유는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정미소는 지유를 꼭 끌어안았다.
“돌아올 거야! 믿어야 돼! 지유야! 진수 엄마! 힘내자!”
그때였다. 터지듯 울리는 전화벨 소리가 가슴을 때리는 것처럼 울렸다. 지유는 정미소의 품에서 튕기듯 빠져나가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정진수 실종 신고하셨죠?”
“네! 맞아요! 어떻게~”
지유는 마음이 급해졌다. 어떤 결과든 빨리 듣고 싶었다.
“방금 아주머니께서 아이를 안고 오셨는데요. 어찌나 깊게 잠이 들었는지 좀처럼 깨어나지를 않네요. 일단 여기로 오셔서 찾고 계시는 아이가 맞는지 확인해 보세요.”
“어디 파출소지요?”
경찰에게 입고 있는 옷을 확인한 지유는 진수를 찾았다는 확신에 심장이 터질 듯이 쿵쿵 뛰었다. 마침 가까운 위치에 있는 석바위 파출소였다. 정미소와 지유는 깊이 잠든 둘째를 옆집에 맡겨두고 거침없이 계단을 뛰어내렸다. 정미소는 지유를 자전거 뒷자리에 태우고 페달을 밟았다. 약간 경사가 진 오르막길이었지만 힘든 것도 모른 채 미친 듯이 달렸다. 둘은 말도 잊었다. 그저 진수를 찾을 수 있다는 기대 하나뿐이었다. 시간은 열두 시가 다 되어가고 있었고 그들은 고요한 어둠을 가르며 질주했다.
석바위 파출소의 문을 박차고 들어간 그들은 나무 의자에 앉아 아이를 안고 있는 여자를 발견했다. 다름 아닌 진수였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지유는 그 자리에서 ‘감사합니다’라는 말만 백 번 이상은 한 것 같았다. 세상을 잃었다가 다시 얻은 것 같았다. 지유의 여섯 시간은 육 개월, 육 년이나 다름없었다. 울다가 잠이 들었던지 진수의 눈가에는 눈물 자국이 있었다. 이름을 부르며 흔들자 진수가 눈을 비비며 잠투정을 했다. 잠이 덜 깬 진수는 집을 잃었다 돌아온 것도 인지하지 못한 듯했다. 한참을 멀뚱하게 엄마 아빠를 쳐다보던 진수가 울음을 터뜨리더니 한참을 울었다.
<진수는 놀이터에서 친구의 포클레인 장난감이 부러워 옆에 붙어 놀고 있었다. 그때 처음 보는 중학생 정도로 보이는 형이 와서 자기를 따라가면 더 좋은 것을 주겠다고 했다. 진수는 형이 쇠를 자르는 연장을 찾기에 집에서 그걸 갔다 주었다. 형은 자전거를 묶어둔 걸 끊고 진수를 태우고 어디론가 갔다. 멀리 달렸지만 진수는 새로운 장난감에 정신이 팔려 사리판단이 불가했다. 어딘지도 모르는 곳에 선 형은 뭔가 사 올 게 있다며 내려서 기다리라고 한 후 떠났다. 그 형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그곳에서 한 시간 이상을 기다렸지만 해는 저물고 배가 고팠다. 하지만 진수는 끝까지 그 형을 기다렸다. 급기야는 배가 너무 고팠던 진수는 근처의 구멍가게 유리창 너머 과자와 빵들이 먹고 싶어서 한참을 울었다. 진수를 데려온 아주머니는 다름 아닌 구멍가게의 주인이었다. 그녀의 설명에 따르면 열 시가 다 되어 문을 닫으려는데 한 시간 넘게 가게 앞에서 울던 아이가 이상했다. 집이 없는 거렁뱅이는 아닌 것 같았다. 아이 설명을 듣고 상황을 대충 이해한 아주머니는 아이의 집을 찾아주기로 작정했다. 하지만 너무 어린아이는 집 주소를 알 턱이 없었다. 일단 울음을 멈추지 못하는 진수에게 빵과 우유를 먹여 일단은 안정을 시킨 아주머니는 아이에게 집이 어디인지 차근차근 물었다. 진수가 기억하는 것이라곤 노란색 아파트에 살고 있고, 주변에 시장이 있고, 옆에 개천이 있다는 것뿐이었다. 아주머니 역시 생소한 지역 같아 옆 상가 주민들에게 물어물어 주안주공아파트라는 것을 알아냈다. 아주머니는 막차 시간이 다 되었지만 무작정 진수를 데리고 버스를 탔다. 버스가 철길을 가로지르는 법원 근처의 육교를 넘어갈 즈음 진수는 졸음을 참지 못하고 잠이 들다.>
여기까지가 진수와 아주머니가 설명한 사건의 진상이었다.
“정말 고맙습니다. 아주머니~ 저희 가족의 은인이십니다!”
정미소는 파출소 바닥에서 넙죽 큰절을 했다. 그의 진심이 담긴 인사였다. 아주머니는 어쩔 줄 몰라했다. 만약 진수에게 관심을 주지 않고 그냥 지나쳐 버렸고 진수를 잃었다면 둘 중 한 명은 미쳐버렸지도 모른다. 진수는 지유의 품 속에서 한참을 울다가 잠이 들어버렸다. 납치를 당한 충격도 그렇겠지만 다시 엄마를 만나게 되어 안도감이 들었을 것이었다.
“저희가 사례라도 해드리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정미소의 말에는 일말의 가식이라고는 존재하지 않았다.
“어차피 누군가 해야 할 일을 제가 한 것뿐이에요. 당연한 일인데.”
아주머니는 끝까지 한사코 사례는 필요 없다며 손사래를 쳤다.
“성함과 주소만이라도 알려주세요. 부탁드립니다.”
“아니에요. 그렇게 신경 안 쓰셔도 된다니까요. 괜찮아요.”
아주머니는 도망치듯 파출소를 빠져나갔다. 정미소와 지유는 아주머니를 따라나서며 아주머니의 손을 잡았다.
“그럼~ 차편도 끊겼는데, 택시라도 타고 가세요. 얼마 되지 않지만 이거라도 받아주셔야 저희 마음이 편해요. 부탁드릴게요.”
정미소가 지갑에 있던 지폐를 모두 꺼내 쥐어 드렸지만 아주머니는 그것조차 거부했다.
“예쁜 아들 잘 키우세요. 자식을 잃은 마음은 제가 더 잘 알아요. 일찌감치 아이들에게 제 어미로서 지었던 죄를 이제 겨우 하나 풀었을 뿐입니다.”
아주머니는 알 수 없는 사연이 담긴 한마디 말을 남겼다. 정미소는 아주머니의 눈에 비친 눈물을 보지 못했지만, 지유는 아주머니의 눈물과 가슴속의 응어리를 볼 수 있었다. 지유가 아주머니의 눈물에서 느낀 것은 엄마로서만이 볼 수 있는 그것이었다. 아주머니는 그렇게 떠나가 버렸다. 정미소의 눈엔 그녀의 뒷모습에서 빛이 발하는 것처럼 보였다. 마치 신과 같은 느낌이었다. 그는 다시 한번 맨바닥에서 아주머니의 등 뒤에 대고 큰 절을 올렸다.
“파출소에 아주머니 인적 사항이 있을 거야. 물어봐서 얻어가면 되겠다. 은혜는 갚아야지.”
하지만 아주머니는 파출소에 자신의 정보를 남겨두지 않았다. 경찰들 역시 갑작스럽게 뛰어나간 아주머니 신상에 대해 캐물을 생각은 하지 못했던 것이다. 파출소에 감사인사를 하고 나온 두 사람은 잃었던 세상을 다시 얻은 기분이었다. 지유는 피곤함이 극에 달했다. 정미소는 진수를 등에 업고 지유는 자전거를 옆에 끌며 걸었다.
“진수 아빠! 세상 참~ 예쁘다! 그치?”
“그러게, 우리 같으면 그 아주머니처럼 했을까?”
진수는 따뜻한 아빠의 등이 익숙한지 볼을 밀착시키고 행복한 미소를 지은 채 곤히 잠들어 있었다.
“신혼 때 진해에서 그 아가씨 일 생각나?”
“그 아가씨도 정말 무서웠을 거야. 우리 진수도 그때 우리가 좋은 일을 해서 이렇게 사고 없이 돌아온 걸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