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그 2

돌배나무집 셋째 딸 Vol.14

by 루파고

지유는 이번 주엔 일찍 나가기도 싫었다. 정미소에 대한 기대치 역시 뚝 떨어져 버리고 없었다. 느지막이 집을 나선 지유는 10시 40분이 되어서야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늦은 걸음을 옮기는데 정미소가 눈에 들어왔다. 그는 한쪽 손에 지팡이에 굽은 허리를 기댄 왜소한 노인과 장기에 열중이었다. 얼마나 집중하고 있었는지 지유가 옆에 온 것조차 모른 채였다.

“장군이다! 받아라! 이 녀석아! 이번엔 내가 이겼지? 요건 못 빠져나갈 거다!”

“잠시만요! 아직 모르는 겁니다!”

정미소는 장기판을 뚫어져라 노려보는 듯하더니 이내 허리를 펴고 팔짱을 꼈다.

“인석아! 빨리 두거라~ 나 바빠!”

아무리 봐도 바쁠 것 하나 없어 보이는 할아버지가 재촉했다.

“저는 인생을 걸고 나온 날입니다. 제가 더 급합니다!”

옆에서 채근하던 할아버지는 정미소의 진지한 목소리에 보채기를 멈추고 다음 수를 기다렸다. 노인 뒤에서 장기를 구경하던 두 노인이 뭔가 소곤대고 있었다. 표정으로 보아 해법을 찾은 듯했다. 지유는 조심스럽게 정미소 뒤에 서서 장기판을 읽기 시작했다. 어릴 때부터 아빠와 장기를 자주 두어서 제법 잘 두는 편이었다. 오 분이나 되었을까? 인내심을 잃은 노인들이 구시렁거리기 시작했다.

“이놈아! 노인네 늙어 죽겠다!”

“이렇게 하면 제가 이긴 것 같습니다. 이렇게 마를 옮기면서 장군입니다!”

정미소가 오른손을 마를 옮기며 말했다. 그의 마는 노인의 포장을 막는 동시에 장군을 치면서 동시에 차를 조준했다. 노인의 하나 남은 차를 정미소에게 떼이게 생긴 것이다.

“할아버지~ 계속하시지요.”

“오호~ 이걸 못 봤네. 이런 젠장!”

정미소는 노인의 김 빠진 한탄에 정신적 여유가 생겼는지 손목시계를 살폈다. 사색이 된 정미소의 표정을 지유는 보지 못했지만 상대편 노인은 화색이 돌았다.

“급한 일이라도 있나 보네? 우리 비긴 것으로 할까?”

노인은 정미소가 인생을 걸 정도로 중요한 일을 앞두고 장기를 두고 있다는 말을 기억했다. 이 참에 무승부로 만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듯했다.

“음~”

노인은 가느다란 숨을 내쉬며 장기판 아래 깔아 두었던 백 원짜리 지폐를 꺼내가려 했다. 정미소는 다 이긴 판이라 아쉬웠다. 그렇지만 지유와 만나기로 한 시간이 벌써 오십 분이나 지나 있었다. 약속 장소를 수시로 살피긴 했지만 여전히 지유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지만 노인의 표정은 점점 편하게 변해갔다.

“정미소씨! 계속해요! 다 이긴 판을 왜 그냥 무승부로 가요? 저는 괜찮으니까 계속해요.”

등 뒤에서 지유의 목소리가 들리자 정미소의 얼굴엔 미소가 번졌다. 화사한 지유의 모습에 정미소는 마냥 황홀했다. 노인들의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자네 애인이야? 미인인데? 인생을 걸 만하겠어.”

노인 역시 지유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언제 오셨어요? 늦었는데~ 괜찮으세요?”

“어차피 제가 늦은 건데요. 그리고 이왕 시작한 거 이기면 좋은 거 아닌가요. 정미소씨! 파이팅!”

지유의 말에 노인의 얼굴은 싸늘하게 굳었고 정미소의 얼굴엔 화색이 돋았다.

장기는 다시 시작됐고 불과 다섯 수 만에 정미소의 승부가 되었다. 외통수였다. 결국 백 원짜리 지폐는 정미소의 차지가 되어버렸다. 노인은 승부욕이 발동했는지 자리에서 일어서던 정미소를 붙들었다.

“한 판 더 둬! 이번엔 내가 이백 원 낼 테니까. 자네는 백 원만 내! 내가 본전 생각나서 그러는 게 아니야! 내가 이래 봬도 파고다 점쟁이 영감탱이들 중 최고수인데 억울해서 일찍 죽어도 모르겠다. 삼 판 이 승제로 해! 그것도 싫으면 이번 한 판만이라도 해. 어때? 내 돈 따서 자네들 데이트 비용으로 쓰면 좋잖아.”

정미소의 손목을 잡은 노인의 손엔 힘이 가득 들어가 있었다. 거의 막무가내였다. 정미소는 난감했다.

“그러지 말고 해 봐요! 정미소씨가 이기면 파고다공원 챔피언 되겠네요. 그리고 이백 원 더 생기면 우리 맛있는 거 사 먹어요.”

“그럴까요?”

정미소는 장기 두는데 데이트 시간을 낭비하긴 싫었지만 지유의 제안을 따르기로 작정했다.

“그러지요! 할아버지~ 그럼, 딱 한 판만 더 하시죠!”


이번 판은 초반부터 흥미진진하게 시작됐다. 점쟁이 노인, 관상쟁이 노인들에게 소문이 퍼졌는지 구경꾼들이 열댓 명이나 모여들었고 장기판 주변이 어수선했다. 노인들은 그들의 대국에 집중했다. 가끔씩 한숨과 한탄이 섞인 소리가 전부였다.

“저 젊은 친구 대단한데~ 최씨를 이기는 사람이 있긴 있구먼! 최씨! 이번에도 지면 이제 잠도 못 자겠어~”

최씨라고 불리는 노인은 주변 관객들의 잡담에 신경이 쓰이는 모양이었다. 장기판 위에는 노인의 포, 차, 상, 마가 각 한 개씩, 졸 두 개, 사 한 개 있었고 정미소에게는 사, 차, 마가 한 개씩, 졸 세 개, 사 두 개가 있었다. 전체적인 분위기로는 이번에도 정미소가 이길 수 있는 판 같았다.

“마장 받으세요!”

정미소의 심혈을 기울인 공격이었다. 그러나 노인은 긴장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이미 정미소의 수를 읽고 있었던 것이다. 노인은 사를 한 칸 올렸고, 정미소는 차로 다시 판을 정비했다. 이에 노인은 차를 장기판 위로 들어 올렸다. 정미소는 아차 싶었다. 차를 옮기면서 궁을 방어했던 곳에 허점이 드러난 것이었다. 피할 수 없는 외통수였다.

“이번엔 내가 이긴 것 같지?”

할아버지의 말에 정미소의 얼굴이 굳어졌다. 장기를 구경하던 노인들의 탄성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역시 최씨구먼! 그래~ 명불허전이야. 이게 바로 백마고지 탈환하던 딱 그때 같다니까!”

“무슨 소리야? 인천 상륙작전이지!”

노인들은 이번 승부를 두고 한 마디씩 던졌다.

“할아버지! 정말 잘됐습니다! 역시 고수이십니다.”

정미소가 패배를 인정하고 노인에게서 받았던 백 원짜리 지폐를 꺼내어 놓고 자리에서 일어서려 했다. 그런데 지유가 그의 어깨를 눌러 내렸다.

“할아버지! 다시 한 판 해요! 승부는 가려야죠! 이번 판은 삼백 원을 걸고 해요. 제가 판돈 걸 게요.”

지유는 지갑에서 백 원짜리 지폐 세 장을 꺼내 장기판 위에 올려두었다.

“금메달리스트가 자존심이 있지. 승부도 못 내고 가면 아쉽잖아요? 꼭 이겨요! 만약 이 판에서 지면 데이트는 이걸로 끝인 걸로 아세요.”

지유는 정미소에게 협박에 가까운 엄포를 놓았다. 물론 정미소에게 있어선 그 무엇에도 비교할 수 없는 협박이었다.

그새 장기를 보러 온 관객은 거의 삼십 명 정도 되어 보였다. 이제는 노인들 뿐만 아니라 파고다공원에 있던 사람들도 모여든 것이다. 결승전이 되어버린 이번 판의 진행은 초반부터 신중했다. 게다가 지금까지는 없던 규칙도 정하고 시작했다. 손을 대면 무조건 그 장기알을 움직이는 규칙이다. 장기를 구경하기 위해 까치발로 보거나 물건 상자를 놓고 올라서서 구경하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노인은 초반부터 매우 공격적이었다. 차 대 차 바꾸기, 상 대 졸 바꾸기를 시도했지만 정미소는 노인의 공격에 휘말리지 않았다. 바꾸자고 들이대도 응하지 않았다. 정미소는 철저한 방어수로 역습의 기회를 노리는 것 같았다. 그의 졸들은 어느새 일렬 전진해 있었다. 그 뒤에서 마와 상이 졸들을 보호하고, 차는 또 그들을 보호함과 동시에 언제든 공격에 가담하는 형세가 되어 있었다. 초반부터 공격 위주로 밀어붙였던 노인은 공략이 먹혀들지 않자 결국 장기알들은 갈 곳을 잃고 말았다. 장기판 위에는 많은 장기알들이 놓여 있었지만 영역이 좁아 한 수 한 수가 오묘한 판이 되어버렸다. 길이란 길은 죄다 막혀버린 것이다. 뭔가 버리지 않으면 체증으로 판이 불리해질 상황인 것이다.

“허~ 참! 다섯 수 앞을 보면 이길지, 질지 알겠는데~”

다섯 수라니! 귀신이라도 된단 말인가?

장기판 구경을 하던 노인 한 명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도 알 수 없는 훈수를 두었다. 한 수째, 두 수째, 세 수째. 이제야 노인은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음을 알게 되었다. 장기판 위의 포와 차가 모두 무용지물이 되었다. 고철이 된 탱크가 일 차선 도로를 막아버린 것 같았다. 노인은 십 분이 넘게 장기판을 들여다보았지만 딱히 다른 수가 보이지 않았다. 식견이 부족한 사람은 노인이 고전하는 이유를 전혀 알 수 없었다. 노인은 빨간 궁을 세우며 고개를 들었다.

“자네가 이겼구먼~ 멋진 승부였네. 덕분에 오랜만에 장기 같은 장기를 뒀어.”

“길이 남을 명승부였네.”

구경하던 노인들이 한 마디씩 물고 늘어졌다.

“가끔 공원에 나와서 한 판씩 두고 가! 내가 선물로 자네들 관상하고 사주팔자, 궁합 몽땅 다 봐줌세!”

“저야말로 즐거웠습니다. 아버지 이후로 최고 고수셨습니다.”

“뭐야? 자네 아버지가 훨씬 고수라고?”

“네. 지금까지 딱 두 번 이겨 봤습니다.”

“거~ 참! 난 우물 안 개구리였단 말이네.”

“무슨 소리야? 그냥 파고다 공원 최씨 영감탱이지~”

첫 판부터 장기판 관중석을 지키고 있었던 노인의 말이었다






장기 세 판을 두는 동안 무려 세 시간이나 훌쩍 지나가 버린 것을 안 것은 지유의 배에서 꼬르륵하는 소리가 들리고서였다.

“미안해요!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었네요.”

“괜찮아요! 오랜만에 즐거웠어요. 정미소씨는 관중을 즐겁게 해 주는데 소질이 있는 것 같네요. 지난번에도 그랬고 말이죠. 승리로 얻은 삼백 원은 제 것인가요?”

지유는 지난 테니스 대회를 떠올렸다. 스릴 넘치는 게임이었다.

“자네 둘, 바로 식사하러 갈 텐가? 나한테 풀이라도 받아보고 갈 텐가?”

장기에 진 노인이 정미소의 손목을 잡으며 물었다.

“당연히 받고 가야지요.”

정미소는 이게 웬 떡이냐 싶었다. 최씨 노인은 잠시 눈썹을 찌푸리더니 정미소와 지유의 관상을 살피기 시작했다. 장기를 구경하던 사람들도 그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여기서는 안 되겠네! 내가 장기판에 집중해서 잘 몰랐었는데, 둘 다 관상이 심상치 않구먼.”

자리에서 일어난 최씨 노인이 앞서 걷기 시작했다. 노인은 관상 보는 노인들이 자리 잡고 있는 골목으로 향하더니 빈자리에 앉았다. 최씨 노인의 자리인 듯했다.

“일단, 자네 생년월일, 생시, 이름, 한자, 고향 다 대봐!”

최씨 노인은 정미소의 관상과 사주를 메모한 후 지유의 것도 잇달아 풀기 시작했다.

“정군! 자네는 귀한 집안인데, 왜 남의 집에 있나? 전쟁만 안 났으면 호의호식할 팔잔데. 지금은 조상 때 같지는 않아~ 손금도 좀 봐야겠어!”

최씨 노인은 정미소의 양 손의 손금을 모두 훑었다.

“집안의 세력이 다 했어. 그런데 자네 손금은 보기 드문 손금이야. 명도 길고, 재복도 있네! 자식 복도 나쁘지 않고, 여복은 최고야. 아마 이 친구가 자네의 평생 벗이 될 것 같네!”

지유는 최씨 노인의 풀이를 듣고 있자니 어이가 없었지만 곧장 자기 풀이를 시작하자 호기심이 앞섰다.

“자네는! 복을 타고났구먼! 그런데 도시에 살 팔자가 아니야! 도시보다는 시골이 맞을 것 같군. 운세에 물이 있어! 아이는 아들 둘에, 딸 하나를 놓겠어. 둘째 아들은 집안의 큰 일을 할 재목이고, 큰 아들은 가만히 둬도 제 몫을 할 거야. 그런데 마흔까지는 뭘 해도 빛을 못 봐! 고생만 할 거야. 귀인을 만날 때까지는 말이야. 쉽진 않을 거야!”

최씨 노인은 다시 정미소를 뚫어져라 바라보더니 말을 이었다.

“아버님께서 큰일을 하셨겠구먼~ 아주 큰 일을! 자네 사주에는 쇠퇴한 왕족의 기운이 보여! 그리고 자네 둘, 궁합은 볼 필요도 없네! 찰떡궁합이야! 말이 많아 봐야 빨갱이들 핏대 올리는 것과 다를 게 없을 것 같네.”

정미소의 얼굴은 그 어느 때보다 밝았다. 지유 역시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지만 결혼을 들먹이는 최씨 노인이 영 탐탁지 않았다.

“귀한 왕족의 자제께서는 기분이 좋으시겠습니다! 장기도 이겼고, 관상에, 사주팔자도 멋지게 나왔고~”

지유는 최씨 노인의 사주풀이에 괜한 심통이 났다. 둘의 사이를 두고 천생연분 입네, 애는 셋을 낳겠네 하면서 천상배필로 몰아간 것이 못마땅한 것이었다.

“꿈도 꾸지 마세요! 난 생각 없으니까! 오늘만 만나고 그만둘 생각이니까요.”

“인생은 한 번뿐인데 후회할 행동은 말아야죠. 맘대로 하세요.”

정미소는 어디서 나온 자신감인지 지유의 말을 받아쳤다.

지유는 그저 웃어버렸다.

“사실 저희 집안은 원래 평안북도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저는 전쟁이 나기 전에 태어나서 어머니께서 정말 고생이 많으셨답니다. 지유씨는 진해에서 태어났으니 전쟁 통에 피난을 다닌 사람들의 고통에 대해서는 잘 모르실 겁니다.”

지유는 목적지 없이 걷다 보니 창경궁 앞인 것을 알 수 있었다.

“지금 어디 가는 거죠?”

“애들 잘 살고 있는지 살피고 가려고 합니다.”

“네?”

지유는 정미소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가보시면 압니다. 소개해 드릴 녀석들이 있습니다. 말을 좀 안 들어서 그렇지 지유씨도 좋아하실 겁니다.”

“내가 왜 정미소씨 동생들을 만나야 하죠? 전 싫은데요!”

“그러지 말고 따라오십시오. 저는 사실 왕족이 맞습니다. 원래는 창경궁입니다만, 일본 놈들이 동물원을 만들어 버렸습니다. 다 왔으니까 그냥 들렀다가 가셨으면 합니다.”

지유는 정미소의 진심 어린 표정에 마음이 흔들렸다. 농담인 걸 알면서도 왠지 궁금하기도 했다. 지유는 순간 어이없다는 생각에 실소를 흘려버렸다.

“왜 그러십니까? 뭐가 그리 웃기는 거죠?”

“아니에요!”

정미소 창경궁 입구의 경비원에게 무언가를 보여주는 것이 보였다. 그런데 경비원이 구십 도에 가까운 인사를 하며 예의 바르게 입구로 안내했다.

“지유씨! 이제 오셔도 됩니다.”

경비원은 지유에게도 구십 도에 가까운 인사를 했다.

“수고하시오!”

정미소가 경비에게 말했다.

“네! 별말씀을 하십니까? 어서 들어가시지요.”

지유는 정미소의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어쩐지 말도 안 되는 소리는 아니다 했어!’ 지유는 스스로를 속이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헛소리라고 생각했었으니 말이다.

“동물원 구경 가시겠습니까?”

“네? 네! 그러지요.”

“아시겠지만, 우리는 서울 시민들을 위해 궁 안의 동물원을 개방했습니다. 보세요! 시민들이 좋아하는 모습을~”

정미소가 왼 팔을 앞으로 펼쳐 보이며 말했다.

“궁금한 게 있어요. 우리나라 왕조는 이미 없어지지 않았나요?”

“물론, 왕조는 사라졌지만 후손들에 대한 예우는 지켜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미소씨는 정씨잖아요.”

“외척입니다.”

지유는 이제야 궁금한 것이 풀리기 시작했다.

“덕분에 서울에서 동물원 구경을 다해 보네요.”

“그런가요? 고맙습니다!”

정미소가 호탕한 웃음소리로 답했다.

“자~ 다 왔습니다!”

동물들밖에 보이지 않는 곳이었다.

“네?”

지유는 정미소의 뚱딴지같은 소리에 종잡을 수가 없었다.

“여기! 제 동생들입니다.”

“무슨?”

“네! 저기 저 소들입니다. 제가 소띠입니다. 저기 있는 녀석들이 모두 제 동생들입니다.”

정미소의 말에 지유는 한참 생각에 잠겨서야 그의 말뜻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전부 다 거짓말이었군요? 그럼 입구에서 경비원은 어떻게 된 거예요?”

사실 정미소가 군경 할인을 확인하고자 말을 건네면서 그에게 간곡히 부탁을 해두었던 것인데 경비원들은 생각했던 것보다 더 협조적이었던 것이다.

“이렇게까지 심하게 장난할 생각은 아니었는데, 지유씨가 너무 잘 믿어서 말이죠. 미안합니다.”

“어이없지만 재미있었어요.”

지유는 피식 웃으며 물소들에게 시선을 던졌다.

“얘들아! 너네 형 여기 놓고 누나 혼자 갈게.”

“지유씨! 미안해요!”

두 사람은 크게 한바탕 웃고는 비원을 거쳐 창경궁을 빠져나왔다.




지혜는 이번 지유의 데이트 후담에 상당히 후한 점수를 주었다.

“재미있네! 그 사람~”

지혜의 표현은 그게 전부였다. 지유는 지혜의 심경에 뭔가 좋지 않은 일이 있나 싶었지만 사실은 지유가 빠지게 될까 염려가 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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