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현듯 엄마

돌배나무집 셋째 딸 Vol.19

by 루파고

어청도에서의 생활 이 년, 다시 인천으로 발령이 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지유네 가족은 어청도를 떠났다. 시작과 끝의 느낌이 너무 다른 곳에서의 이 년이었다. 인천에서의 일 년은 그야말로 평화로운 삶 그 자체였다. 그것도 잠시 정미소는 진해로 발령을 받았고 바로 두 번의 해외 출장을 다녀왔다.

세월은 반복의 반복을 거치며 해를 거듭해 갔다. 그러던 어느 해 여름이 한참 지나가 버린 토요일 저녁, 정미소는 밤이 깊어서도 귀가하지 않았다. 아이들은 그래도 집에 오지 않는 아빠를 목이 빠지게 기다렸다. 진해에서 터를 잡은 정미소는 술자리가 잦아졌고 횟수도 점점 늘어갔다.

“아빠 왔다!”

정미소는 대문을 차고 들어오면서 소리쳤다. 지유는 그가 벌써 얼큰하게 취했다는 것을 목소리를 통해 알아차렸다. 두 아들은 대문을 차고 들어온 아빠를 향해 뛰어나갔다.

“아빠~ 통닭은요?”

하지만 정미소의 손에는 아이들이 그토록 기다렸던 통닭이 보이지 않았다.

“미안해~ 아빠가 아저씨들하고 술 마시느라 잊었네~ 대신! 우리~ 야영 가자!”

야영을 가자는 아빠의 말에 아이들의 관심에 통닭 따윈 없었다.

“약속 못 지킨 건 미안해. 대신 우리 야영 가자!”

정미소는 변명하듯 말하고 지유의 눈치를 보았다. 지유의 표정은 변함이 없었다.

“그래서, 언제?”

“지금 가지 뭐~”

어디서 튀어나온 자신감이 있었던지 정미소는 자신 있게 말했다.

“이렇게 어두운데? 이 시간에 어디로 야영을 가요? 말이 돼요?”

“그게~”

정미소는 지유가 화가 나 있다고 확신했다.

“짐 챙기자고! 자~ 당신은 애들 물건 좀 챙겨줘. 다른 건 내가 알아서 할게. 진수하고 명수는 엄마하고 야영 갈 준비 해!”

원했던 답이었다. 아이들의 복창이 터졌다. 불과 삼십 분도 채 지나지 않아 야영 갈 준비를 마쳤고, 지유는 미심쩍은 눈치였고 아이들은 이미 신이 난 상태였다.

자전거 안장 앞에 달린 시트에 명수를 앉힌 정미소는 장복산을 향했다. 장복산 아래 전셋집에서 장복산까지는 불과 삼십 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앞서 가던 진수는 앞뒤로 랜턴을 비추어 길을 걸어갔다. 진수는 장복산 일대 지리에 밝은 편이었다. 새로 사귄 친구들과 장복산 일대에서 총싸움, 칼싸움을 하며 놀았기 때문이었다. 바퀴가 만드는 전기 때문에 자전거 랜턴은 빛은 오락가락했다. 오히려 밤길을 밝혀주는 것은 달빛과 별빛이었다.

“여기에는 저수지도 있고 가재도 많아요. 귀신도 나온대요. 여름에 친구들하고 여기서 수영도 했었어요.”

진수는 아는 척을 하고 싶었는지 쉬지 않고 입을 놀렸다. 진수의 설명에 의하면 저수지 울타리는 산딸기로 가득하고 삐삐와 꽈리도 많은 데다가 탱자나무도 많다고 했다. 저수지를 지나 조그만 오솔길로 접어들었다. 오솔길은 달빛이 많이 들어오지 않아 좀 더 어두웠다.

“진수야~ 여기서 귀신 나오는 거 알지? 아빠도 여기서 귀신 본 적이 있어?”

정미소는 목소리를 깔며 말했다.

“여봇!”

지유는 소리를 꽥 질러댔다.

“농담이야!”

지유는 정미소의 소매를 잡아끌었다. 오솔길을 따라 걸은 지 오 분 정도 되었을까? 오솔길 중간에 오십 평 남짓 되어 보이는 넓은 평지가 나타났다. 정미소는 겁을 먹고 있는 지유와 명수를 위해 군용 랜턴 두 개를 꺼내 중앙을 비추었다. 주변의 돌을 모아 불을 지필수 있는 공간을 만든 그는 마른나무들을 모아 모닥불을 피웠다. 금세 주변이 환해졌다.

“여기, 불을 계속 살려야 하니까. 명수는 엄마하고 모닥불 지키고 있어. 아빠하고 형은 텐트를 치고 맛있는 거 만들어 줄게~”

진수는 신이 났다. 진수는 힘에 부칠만큼 무거운 텐트 가방을 질질 끌어다 놓고 있었다. 진수는 텐트 끈을 잡고 정미소는 텐트를 고정시키는 팩을 짱돌로 때려 박았다. 땅! 땅! 땅! 땅! 땅! 땅! 팩을 박는 소리가 숲 속에 울려 퍼지자 숲 속 날짐승들이 놀라 푸드덕거리며 날아갔다.

“우리 때문에 숲 속 동물들이 시끄러워서 잠을 깨버렸나 봐!”

“얘들아! 미안해! 우리가 시끄럽게 해서~ 대신에 우리가 맛있는 거 줄게!”

“명수가 줄 거지?”

“내거는 안 되고, 형 꺼 줄 거야! 형이 동물들 깨웠잖아.”

텐트 설치가 끝나고 네 식구는 모닥불 주위로 모두 모여 앉았다. 진수의 동요는 가족 여행의 시작이었다. 울창한 숲 속의 모든 것이 야영을 아늑하게 만들었다.

다음날, 두 아이는 가재 잡기에 빠져들었다. 아이들은 힘에 부칠 정도의 큰 돌도 둘이 힘을 모아 뒤집고 돌이 있던 자리에 손을 더듬어 가재 십여 마리를 더 잡아냈다.

“이곳은 저에겐 깊은 추억이 있는 곳이에요.”

지유는 알맹이의 추억이 스멀스멀 솟아나기 시작했다. 두 아들을 낳던 날에 그토록 그리웠었던 친엄마가 새삼 그리워졌다. 깊이를 알 수 없는 심연의 바닷속에서 공기가 가득한 풍선이 떠오르는 것처럼, 엄마에 대한 그리움이 밀려 올라왔다. 진득한 무언가가 가슴을 꽉 잡아 조이는 것 같은 쫀득한 느낌으로 그리움이 울컥거리기 시작했다.

“엄마! 알맹이!”

지유는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장복산 한쪽에는 엄마가 묻힌 곳이 있었다. 멀지 않은 곳에는 알맹이가 날아오른 후 완전히 자신을 떠나버린 장소도 있었다. 엄마 생일에도, 명절에도 그리고 가끔 엄마 생각이 날 때도 그렇게 엄마의 묘를 찾았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알맹이와 엄마가 동시에 기억나면서 깊이를 알 수 없는 그리움에 사무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탯줄이었구나!’ 지유는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흘렀다. 텐트 밖에 앉아있던 정미소는 본능처럼 지유의 흐느낌에 튀어 올랐다.

“지유야! 무슨 일이야?”

그는 오랜만에 진수 엄마, 여보가 아닌 자유라는 이름을 불렀다. 지유 역시 오랜만에 들어본 자신의 이름에 잔잔한 감동을 느꼈다.

‘내가 지유였을 때도 있었구나. 엄마도 엄마 인생이 있었는데~’ 엄마 지유는 자신의 엄마에 대한 생각으로 옮겨갔다. 왠지 모를 서글픔이 몰려왔다.

“무슨 일 있어? 왜 그래?”

“아니에요. 그냥~ 갑자기 엄마 생각이 나서요.”

“갑자기 왜? 우리~ 이따가 어머니 산소에 어머니 뵈러 갈까?”

“그래요!”

지유는 다시 생각에 잠겨버렸다. 정미소는 지유를 혼자 있게 놔두기로 했다. 표정엔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깊은 고뇌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본 적 없는 깊은 슬픔이었다.

지유는 진수를 받아준 산파 할머니를 보며 막내를 낳고 돌아가신 엄마 생각을 했었다. 여자가 아니면 이해할 수 없는 산고의 고통과 출산의 행복, 기쁨인 것이다. 지유의 생각은 거듭 거슬러 오르고 있었다. 엄마의 빈자리는 알맹이가 상당 부분 대체해 주었다. 탯줄로 연결이 된 적이 없었고, 가족이나 부모 간의 관계도 아닌 알맹이와 지유의 관계는 엄마와 같은 추억을 공유했다는 것으로 충분히 대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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