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배나무집 셋째 딸 Vol.21
“나 병원이야?”
“사고가 났어요. 기억 안 나요? 뇌진탕이래요. 지금은 괜찮아요.”
지유는 정미소가 안정을 취하길 바랐기 때문에 일부러 거짓말을 했지만 태연하지는 못했다.
“거짓말 안 해도 돼! 내 몸이 이상한 걸 알아. 그리고 나 여기 오래 있지 못할 것 같아. 느낌이 그래~”
“무슨 소리예요? 당신! 지금 아무렇지도 않아요. 그냥 머리가 좀 아픈 것뿐이에요.”
“그래! 지유야. 그냥, 내 말 잘 들어줘! 나랑 결혼해줘서…… 정말…… 고마워! 난, 정말 부족하다고. 당신에겐 과분하기만 한 놈인데…… 진수, 명수를 떠맡기고 먼저 떠나게 되네.”
정미소의 눈동자는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지유는 이를 악물었다. 그에게 태연한 듯 보이려 했다. 하지만 연기에 소질이 없는 지유에게 이 상황을 태연하게 보이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런 소리 하지 말아요! 왜 자꾸 이상한 말을 해요? 퇴원해서 집에 가면 되는 건데……”
지유는 말끝을 흐리며 고개를 숙였다.
“지유야! 지유씨! 나, 수술실에서 의사들이 내 이야기하는 걸 들었어…… 그때 잠깐 의식이 돌아왔어. 의사 말로는 난 살지 못할 거라고 하는 것 같았어. 내가, 지금, 이렇게 정신이 돌아온 건…… 내가, 그냥, 가지 말고 당신한테 하고 싶은 말을 하고 가라고…… 기회를 준 것 같아.”
지유는 더 이상 참아내지 못했다. 지유의 오열하는 울음소리가 시댁 식구들과 지인들의 마음에 심한 압박을 가했다.
“당신 같은 사람이, 왜! 왜~ 나 같은 놈을 만나서 이렇게 된 건지, 미안해!”
“아니에요! 뭐가 미안해요! 난, 하나도 후회스러운 것 없어요. 우린 항상 행복했잖아요.”
“그냥, 내 말 들어줘~”
지유는 그가 행복했던 기억으로, 후회 없는 마음으로 갈 수 있기를 바랐다. 지유는 의사들의 말을 믿으려 하지도 두려워하지도 않았었지만 이제는 그들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고는 있었다. 단지 인정하기 싫었던 것이다. 그걸 인정하는 순간 모든 희망은 사라지는 것이니까.
“나…… 행복한 삶을 살았어. 후회 없이, 내가 이렇게 된 것만 빼고는…… 이렇게 먼저 가면 안 되는데……”
정미소는 감정이 복받치는지 잠시 숨을 골랐다.
“당신을 처음 만난 날을 잊을 수가 없어. 내 평생 최고의 미인을 만났어. 주제넘게, 내겐 과분한 당신이…… 내 인생의 목표가 된 거야. 그날 우승도 당신이 아니었다면, 내 의지가 그렇게까지는 만들어내지 못했을 거야. 살면서…… 사랑한다는 말을 많이 못 해서 미안해. 난, 단 한 번도 당신을 사랑하지 않은 적이 없었어. 그날…… 김중위가 끝까지 포기할 수 없다고 해서 부대에서 결투를 했었어. 내가 이겼어. 진수 명수 잘 부탁해. 애들이 안 보이네. 보고 싶은데…… 오늘이, 마지막일 것 같은데…… 그날 난 김중위에게 졌어야 했어.”
여태 눈물을 참았던 정미소는 더 이상 참지 못하겠는지 울컥하고 눈물을 쏟아냈다. 그리고 몇 분을 울었다. 시어머니와도 한참을 이야기했다. 부족한 아들로 살다가 먼저 가서 죄송하다며, 먼저 가서 죄송하다며 용서를 빌었다. 아버지와 둘째 만나면 어머니를 모시지 못하고 먼저 떠나게 돼서 면목이 없다며 울었다. 시어머니 역시 눈물을 참지 못했다. 정미소의 막내 동생은 진수와 명수를 데리러 인천으로 내려가고 없었다.
“나~ 정신이 많이 흐릿해졌어. 아마 애들은 못 만나고 갈 것 같아.”
그때, 곁에 있던 목사님이 다가와서 그에게 질문을 했다.
“하나님을 믿으시겠습니까? 주의 은총으로~”
“네 믿겠습니다. 하나님께 지유를 부탁드리면 잘 보살펴 주실까요?”
정미소는 다시 지유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지유의 손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아이들을 부탁해~ 사랑한다고 전해줘! 당신을 정말 사랑해! 내 사랑하는 지유야. 아…… 당신이 끓여준 만둣국이 먹고 싶다……”
그의 동공은 가늘게 흔들리더니 이내 초점이 흐려졌다. 지유의 손을 잡고 있었던 손에서 빠르게 힘이 흩어지고 있었다. 지유는 그의 손을 당겨 볼에 비볐다. 지유는 이렇게 떠나가는 그가 애처롭고 불쌍했다. 마지막 인사였다. 담당 의사의 말대로 그의 의식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리고 이튿날 심장마저 멈추고 말았다.
지유는 진수와 명수에게 아빠의 모습을 보여줄 수가 없었다. 대체 어떻게 아빠의 죽음을 알려야 할지 판단을 할 수가 없었다.
“엄마! 아빠 죽은 거야?”
이를 악물고 눈물을 참던 지유는 진수의 질문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어떻게 알게 된 것인지, 진수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고민하던 지유에게 아빠의 생사를 물어온 것이다.
“아~ 응! 그래…… 그렇게 됐어.”
당장엔 아이들을 안심시키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거짓말을 해야 했지만 지유는 차마 그렇게 할 수 없었다. 진수는 울먹울먹 했지만 녀석 또한 이를 악물고 참아내고 있었다. 진수의 하얀 볼 살이 바르르 떨리는 것이 보였다. 오히려 엄마를 안심시키려는 듯했다.
“엄마~ 아줌마한테서 이야기 들었어. 그날 새벽에 아줌마가 집에 와서 아빠 사고에 대해 이야기해줬어. 명수는 자고 있었는데, 나는 하나님, 부처님한테 소원 빌었어. 아빠가 아무 이상 없이 집으로 돌아오게 해 달라고. 그러면 교회도 다니고, 절에도 다니겠다고 약속했어. 그런데 누구도 내 소원을 안 들어줬어. 난 하나님도 싫고, 부처님도 싫어! 우리 아빠가…… 우리 아빠가……”
진수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명수는 이제야 아빠에게 뭔가 좋지 않은 일이 생겼다는 것을 알아챘는지, 진수를 따라 울기 시작했다. 그렇지 않아도 무서운 병원에 온 것도 이상한데 온 식구들이 모여있는 게 두렵던 참이었다. 지유는 진수, 명수를 부둥켜안고 함께 울었다. 지유는 아이들의 작은 심장이 심하게 요동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작은 심장이 아빠의 빈자리를 이겨내고 문제없이 성장할 수 있을지, 정미소의 빈자리를 지유가 대신 채워줄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정미소의 빈소에는 해군 부대장을 포함해 많은 군인들이 다녀갔다. 지유는 쓰러지지 않으려 증발될 것 같았던 정신을 가까스로 붙들었다. 무엇보다 진수, 명수에게 나약한 모습을 보여줄 수는 없었다. 이제는 세 식구가 서로 부둥켜안고 의지해서 살아야 한다. 지유는 두 아들을 마음이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가급적이면 아이들이 있는 자리에서는 눈물을 흘리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지유는 정미소 생각만 스치면 눈물이 쏟아지는 걸 참기 힘들었다. 누가 옆에 있기라도 하면 엉뚱한 말을 걸었다. 정미소와의 기억들을 떠올리지 않도록 뭐든 해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