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은 행복에서 시작된다

돌배나무집 셋째 딸 Vol.20

by 루파고

슬리퍼를 신고 교회 앞으로 나간 지유는 도로 위를 지나는 택시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며 정미소가 타고 있을 택시를 기다렸다. 십 분 정도를 기다렸을까? 정미소를 태운 택시가 지유를 알아본 것인지 당연한 듯 지유 앞에 멈춰 섰고 설마 하는 마음에 택시 안을 살펴본 지유는 뒷자리에서 기절한 듯 잠을 자고 있는 정미소를 발견했다.

“아저씨. 죄송한데요. 남편이 많이 취한 것 같으니까요. 요~ 앞 저희 집 앞까지만 부탁드릴게요.”

지유가 손짓으로 골목 쪽을 가리킨 후 정미소 옆자리에 앉았다. 정미소의 상태를 살핀 지유는 정신이 혼미한 상태이긴 했지만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는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여보! 진수 아빠!”

이미 집 앞에 도착했지만 정미소는 몇 번을 흔들어도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지유는 택시기사님께 미안한 나머지 정신도 못 차리고 있는 그에게 점점 짜증이 났다.

“아주머니~ 천천히 하셔도 돼요. 택시비는 충분히 받았어요.”

택시기사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하며 문을 열고 나오더니 지유를 도왔다. 택시기사와 지유가 부축해서 일으켜 세우자 정신이 돌아온 정미소는 눈도 뜨지 않고 뭐라고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정신 안 차릴 거예요?”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던 정미소는 지유의 채근에 흐릿하게 지유의 실루엣을 느꼈다. 정신이 조금씩 돌아오기 시작한 것이다. 정미소의 사지에 힘이 붙자 택시기사가 부축했던 힘을 빼자 잠시 휘청거리던 지유는 이내 중심을 잡았고 택시기사에게 고갯짓으로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지유야~ 사랑해~ 미안해~ 끄억~”

정미소는 지유에게 술김으로 애정 표현을 하며 애교를 떨었다. 술에 취하면 나오는 전매특허였다.

“알았으니까, 올라가요! 오늘은 왜 이렇게 많이 마신 거야?”

그는 평소에도 술자리가 많긴 했지만 이렇게까지 취해서 들어오는 일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오늘! 부대장 하고 좀~ 그랬어! 내~ 내가 그만둔다는데 왜 지가 같이 그만둔다고 그래서…… 내가 그랬어! 그럼 더 이상 발령은 보내지 말라고! 출장도 안 간다고 그랬어.”

그는 혀가 꼬부라진 발음으로 띄엄띄엄 말했다. 정미소는 현관 입구에 털썩 하니 쪼그리고 앉아 버렸다. 그리고는 지유의 팔을 끌어 억지로 지유 역시 바닥에 앉혔다.

“잘했지? 지유야! 지유씨~ 사랑해~ 나, 이제 출장 안 갈 거야~”

“알았으니까, 그만하고 올라가요~”

지유는 힘을 주며 억지로 그를 끌어올려 일으켰다. 정미소는 지유가 기대게 해주는 것이 좋았는지 일부러 체중을 더 싫어서 기댔다.

“무거워~ 힘 좀 줘 봐요!”

“알았어~ 잠시만!”

지유는 이를 악물고 정미소를 부축하며 이층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한 걸음, 한 걸음이 힘들었다. 이층에 거의 다 올라왔을 즈음, 정미소의 중심이 흐트러졌다. 정미소의 몸이 우측에서 부축하던 지유 쪽으로 넘어져 버렸다. 순간적으로 정미소의 무거운 체중이 넘어오자 이를 버티지 못한 지유는 오른손으로 난간을 잡으려 했다. 하지만 손이 미끄러지면서 두 사람이 한데 뭉쳐 계단과 건물 벽면 사이의 비좁은 골목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소리를 지르거나 비명을 지르거나 할 여유도 없었다. 정미소는 이미 술에 취한 상태라서 넘어지거나 떨어지거나 하는 느낌조차 없었다. 하지만 그는 머릿속에서 퍽 하는 소리를 들었고 이어 비릿한 피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그의 정신은 금세 혼미해졌다. 의식을 잃는 데까지는 불과 몇 초 걸리지 않았다. 지유는 왼쪽 손목이 부러졌는지 눈물이 쏟아지는 고통이 팔을 타고 전달되어 왔다.




두 사람이 추락하는 소리가 얼마나 컸는지 일층에 사는 주인집 내외가 무슨 일인가 싶어 집 밖으로 뛰어나왔다. 그들은 계단 옆 골목에 두 남녀가 몸이 얽힌 상태로 쓰러져 있는 것을 보았다. 좁은 골목이라 가로등 빛도 들지 않아 어둡긴 했지만 얼마나 많은 피를 흘렸는지 바닥을 시커멓게 적신 게 그들의 피라는 걸 예상할 수 있었다.

“아주머니~ 살려주세요! 애들 아빠가 의식이 없어요!”

지유는 정미소의 볼을 두드리며 팔을 흔들었다. 하지만 정미소에게서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정미소의 볼에는 피가 흥건했다. 머리에서 흘러나오는 것이었다. 지유는 정미소의 머리에 문제가 생긴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지유는 손목의 고통보다는 정미소의 안위 때문에 공포가 엄습했다. 다행히 숨은 쉬고 있다는 건 알 수 있었지만 머리에서 쏟아지는 피의 양이 적지 않았다. 지유는 왠지 어색하지만은 않은 심연의 공포가 느껴졌다. 어청도에서 명수를 잃을 뻔했었던 사고 당시의 그 공포심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지유에게 있어 정미소는 자신의 분신이나 다름없는 진수, 명수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소중했다. 아빠 홍명덕 다음으로 처음 사랑했던 남자다. 지유는 정신적 충격을 감당할 수 없었다.

지유는 앰뷸런스에 실려서 왔지만 어떻게 병원까지 왔는지도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제정신이 아니었다. 정미소는 병원 응급실에 도착할 때까지도 의식이 없었다. 다행히 가장 큰 종합병원이 가까운 곳에 있었기 때문에 십 분도 채 걸리지 않았지만 지유에게는 인생의 필름을 되돌리기에 충분할 만큼 긴 시간이었다. 지유는 눈물로 범벅이 되어 흐려진 시야 때문에 정미소를 제대로 볼 수도 없었다. 흐르는 눈물은 아무리 닦아내도 끝없이 흘렀다. 엄마를 보내드릴 때도, 알맹이가 떠나버렸을 때도 이렇게 많은 눈물을 흘렸던 적은 없었다. 지유도 팔이 부러진 상태였기에 그녀 역시 치료를 받고 있었지만 한시도 정미소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시야에서 그가 사라지면 영원히 사라질 것 같은 공포로 가득했다.

응급실은 분주했다. 정미소는 뇌진탕이라 했다. 두개골이 깨진 상황이기 때문에 머리를 열어야 한다는 의사의 말에도, 지유는 그의 생사 외에는 아무 관심도 없었다. 어떤 응급처치를 해놓은 것인지 알 수도 없었다. 그 와중에도 지유는 주인집 아주머니께 진수와 명수를 부탁해 놓았다. 아이들이 놀라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지만 지유의 머릿속에서 오래 머물지 못했다. 오로지 정미소의 의식이 돌아오기만 바랐다.

응급실에서 다른 의사들이 말했던 전문의라는 의사는 아침이나 되어서야 나타났다. 지유의 왼팔에 부목이 대어진 것 외에는 정미소와 지유의 몸에 다른 변화나 차도는 없었다. 지유는 그동안 신을 믿지 않는 것이 후회되었다. 지유는 당장 기댈 수 있는 누군가가 아무도 없다는 게 지금의 상황을 더욱 두렵게 했다. 지유에게는 정미소가 유일한 안식처이자 기둥이었다. 그런 그가 지유를 불안하게 하고 있었다.

긴급한 상황이라더니 전문의의 출현 후 곧장 수술 시간이 잡혔고 어수선하고 다급한 발걸음이 이어졌다. 정미소의 수술은 12시간 정도 이어졌다.






지유는 장시간을 두고 공포와 마주했다. 삶과 죽음, 추억과 이별, 사랑, 과거, 미래, 고통 등 지유의 머릿속은 온갖 기억으로 흐트러졌다. 원치 않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결코 답할 수 없는 질문을 하는 자신을 탓하며 눈물을 흘렸다.

“누구시든지~ 진수, 명수 아빠를 살려만 주신다면 그분을 믿고 따르겠습니다. 그러나, 그러나! 문제가 생긴다면 죽을 때까지 저주하겠어요. 부탁이에요. 제가 처음으로 부탁드리잖아요. 꼭 들어주세요.”

지유는 부처님도, 성모 마리아 님도, 하나님도, 단군 할아버지도, 남묘호랑개교도 상관없었다. 아니!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그냥 무조건 빌고 또 빌었다.

“더 큰 병원으로 옮기셔야겠습니다.”

12시간 가까운 수술 끝에 수술실을 나오던 의사의 결론이었다.

수술 중 부대 동료들이 다녀갔다. 사고 나기 전에 함께 술자리를 했던 사람들도 다녀갔다. 가깝게 지내는 이웃들도 찾아왔다. 시어머니와 시댁 식구들 모두 수술실 앞에서 한 발자국도 떼지 않았다. 의사에게서 자세한 설명을 듣고 온 부대장은 국군수도통합병원으로 옮겨 재수술하기로 결정했다. 의사는 국군수도통합병원의 의료 수준이 훨씬 높다고 했다. 병원을 옮겼지만 충격적인 답이 돌아왔다.

“이미 늦었습니다. 처음부터 여기로 왔었어야 했습니다. 차라리 머리를 열지 말았어야 했는데, 이미 뇌세포가 괴사 하기 시작했습니다. 의식이 돌아올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목숨을 건진다고 하더라도 정상인으로 살 수 있는 가능성은 없습니다.”

지유는 쿵~ 하는 소리를 들어야만 했다. 자신의 몸이 힘을 잃고 쓰러져 바닥에 부딪치는 소리였다. 부대장과 동료 몇이 지유를 일으켜 세웠지만 지유의 뇌는 이미 생각을 멈추었다. 불자들이 말하는 무아의 세계를 접한 것과 같은 상황이었다. 정미소의 어머니, 즉 지유의 시어머니도 정신을 잃고 쓰러졌는데 지유는 알지 못했다. 어머니의 마음과 아내의 마음이 같을 리야 없겠지만, 정미소에 대한 충격적인 소식은 그녀들의 뇌를 잠식해 무아지경으로 만들기는 충분했다.

지유는 체력이 달려 힘들어하는 시어머니를 병원에서 제공한 숙소로 모셨다. 그녀는 정미소의 곁에 24시간 내내 붙어 있었다. 지유는 정미소의 의식이 돌아오기만을 기도하고 기도했다. 지유가 기도하는 대상은 정해져 있지는 않았다.

다음날 정오 무렵 정미소의 의식이 돌아왔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였다. 불과 한 시간도 채 되지 않았다. 아마도 마지막 말을 하고 싶었던 그의 의지가 한 시간 동안 정신을 차리게 만들었던 게 아니었을까.

“여보~ 진수 아빠!”

지유가 소리쳤다. 그의 의식이 돌아온 것을 알게 된 지유는 식구들을 불러 모았다. 한 시간쯤 전에 찾아온 지유네 동네 언니와 목사님도 함께 했다. 목사님은 병실 안에서 감사의 기도를 하고 있었다. 지유는 자신의 기도를 들어준 누군가에게 감사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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