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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파고 Feb 26. 2019

17시간 라이딩 후 찾은 여유

제주도 MTB 자전거 일주 다음 날 이야기

무려 17시간 동안 제주도 한 바퀴 돌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전혀 피곤하지 않았다.

너무 무리해서 그런 걸까?
3/4 지점부터는 갑자기 힘도 나고 했는데 몸에 이상이 생긴 걸까?
씻고 이래저래 정리하고 나니 10시 40분 정도 됐다.
맥주 한 캔을 따고 밴드 챗 창을 열었다.
대단하다고들 그런다.
사실 아무나 할 수 있는 건데 너무들 치켜세운다.
궁둥이 아픈 거만 빼면 아무 탈이 없다.
500ml 캔맥주를 벌컥벌컥 두 번 하니까 바닥이 비었다.
냉장고에서 다시 한 캔을 꺼내 뚜껑을 땄다.
따악! 하는 소리가 경쾌하다.
맥주의 청량감이 귀를 통해 전해졌다.

스트라바 때문에 스마트폰 배터리 유지하느라 정말 힘들었는데 이번에 느낀 게 있다.
제주 내려오기 전에 가민520을 주문했는데 미리 구입해서 가지고 왔다면 신경 쓰지 않고 달릴 수 있었겠다 싶다.
이래 저래 채팅하면서 맥주 세 캔을 마셨다.
12시 정도 되자 눈꺼풀이 무거워졌다.
이제 드디어 잘 때가 된 거구나.

다음에는 로드자전거로 한 바퀴 돌아봐야겠다.
이번 <제주도 자전거 일주 하루에 끝내기>는 '무식이 용감'이라는 결론이 났다.
8시간?
내 실력과 체력엔 무모한 일이다.
아무튼 억지로 계획은 성공이다.


다음 날


침대에 퐁당 하고 베개에 머리를 누인 것까지가 마지막 기억이다.
새벽 5시.
눈이 번쩍 떠졌다.
늙으면 새벽잠이 없다더니, 딱 내 꼴이다.
몸뚱이가 이상해진 게 분명하다.
전혀 피곤치 않다.
누군가 내 밥에 뭔가를 넣은 거다. 분명히~


한라산 쪽을 보니 안개가 뿌옇다.
꼴을 보니 오늘도 엄청 덥게 생겼다.
태양은 동그랗게 떴다.


마당 잔디밭에는 하늘소 한 마리가 기어 다닌다.
짜식. 도망도 가지 않는다.

하늘소의 애교를 잠시 지켜보다가 수월봉으로 향했다.

수월봉의 아침은 꽤 매력적이다.
날씨가 그다지 좋지 않아서 기대는 없지만 상쾌한 공기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 거란 예감이 있었다.
지금 시간이면 아무도 없을 것이니 더욱 좋고......


아름다운 수월봉 정상에서 제일 먼저 나를 반긴 건 이거다.
정신머리들이 어디에 있는 걸까?
정말 걷어 차고 싶은 인간들이다.
어디서 뭘 배웠길래 이 모양일까?
새끼들한텐 뭘 가르칠 건가?
뇌를 열어 어떻게 생겼는지 확인해 봐야 한다.
이런 인간들은 명소를 여행할 자격을 부여하면 안 된다.


수월봉 정상에서 본 거다.
좌측에서부터 차귀도-와도-고산리선착장이다.
해무가 잔뜩 끼었다.
오늘은 분명 어제보다 더 더울 거다.



아무도 없는 정자 그늘에 앉았다.
아침부터 푹푹 찌는데 여긴 시원하기 그지없다.
쪼리를 신고 나간 나는 맨발로 바닥을 느꼈다.
영혼마저 자유로워지는 것만 같았다.
십수 년 전 태풍이 지나간 설악산 어딘가를 맨발로 걸었던 기억이 난다.
그 자유로움이란......
신발 속에 꽁꽁 잡아 두었던 발을 꺼내 땅을 디딘 자유로움은 세상의 모든 구속을 떨군 기분이었다.



수월봉의 기상관측대다.
왼쪽이 신도리다.
내가 낚시하는 곳.


어제 선크림을 발랐는데 이 모양이다.
아주 섹쉬하다.
이걸 자덕이라고 한다는 걸 어제 알았다. ㅋ

집으로 돌아가 고등어로 추어탕 비슷하게 만든 걸 먹고 억지로 한 숨 더 잤다.
기껏 한 시간이었지만.
9시 30분.
10시에 서귀포이마트로 장을 보러 가야 한다.
40분 정도 걸리는 거리니까 부지런을 떨어야 한다.


장을 보고 돌아오니 어머니표 콩국수가 준비됐다.
그냥 콩국수가 아니다.
잣을 갈아 넣은 보양식.
천일염을 집에서 더 볶아 만든 소금.
어제 그토록 먹고 싶었던 건데 어머니는 어떻게 내 맘을 알고 해 주셨네.

오늘 물 때가 나쁘지 않다.
자전거 일주하던 날이 가장 좋을 때였다.
아쉽지만 뭐라도 잡으러 나갔다.
6시 20분 경이 썰물 때다.
4시 30분 정도 되어 고무장화, 망태기, 밀짚모자, 장갑, 갈고리, 배낭을 준비하고 바다로 나갔다.
뭐라도 잡아야 하니까.


요즘 딱 청각 철이다.
청각?
들어본 적이 없는 사람이 많을 거다.
많이 자라지 않는 귀한 녀석이다.
식감이 아주 기가 막힌 해초다.
저녁 밥상에 이렇게 올라왔다.


뿔소라에 붙은 게 너무 괴기스러워 한 컷 찍었다.
소라도 좀 잡아서 삶아 얼렸다.
해물죽 같은 거 해 먹을 때 넣으면 좋다.
된장찌개에도.
부침개에도.
김치찌개에도.

보말과 거북손도 조금 했다.
사진은 없지만.

요즘 이런 걸 먹어서 힘이 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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