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한 시간만 날아가면 도착하는 반은 도시, 반은 시골인 이색적인 한국의 명소 제주도. 차를 타고 도시를 벗어나 한라산 어깨를 곁눈질하며 좀 더 따뜻한 곳을 찾아 내려가다 보면 뭉친 마음 근육마저 풀어주는 남원을 만나게 된다. 기나긴 화산암 돌담이 끝없이 이어지고, 이름 모를 풀들이 맘껏 자라난 풀밭 위엔 관광객의 시선을 사로잡는 단단한 근육의 말들이 세상 그 어디에도 없을 평화를 누리고 있다. 차들이 쌩쌩 달리는 잘 뻗은 포장도로를 벗어나 좀 더 태곳적이었을 곳으로 조금씩 파고들다 보면, 남원이란 마을의 구석지고 후미진 곳에 원주민이었을 법한 사람들이나 살았을 법한 마을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다. 옹기종기 자리 잡은 오래된 농가주택들 사이로 어디선가 들려오는 소리가 있다. 소리를 따라 왼쪽으로 살짝 굽고, 오른쪽으로 왕창 굽고, 길이 아닌 것만 같던 길도 길이 되는 그런 길을 가다 보면 소리의 정체를 발견한다. 몇 백 평은 될 성싶은 넓은 마당엔 생긴 것만 봐도 닮은 구석 하나 없고 유별나게 개성 독특한 세 녀석들이 진을 치고 있다. 이 녀석들은 여느 사람들처럼 자라온 삶이 다르고 성격도 천차만별인데 녀석들에겐 좀 더 특별한 구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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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견이었던 짱이는 어린 시절부터 하늘이 점지해준 인연으로 한 식구가 됐다. 성견이 되기 전에 입양된 짱이는 정승집 막내딸처럼 애지중지 자랐다. 바깥세상은 위험할 거라고 생각하던 아주 소심하던 녀석은 어느 날 우연히 바깥나들이를 하고 머리에 벼락을 맞았는지 뭔가 깨우침이 있었다. 짱이는 울타리 밖 세상에서 자유라는 새로운 삶을 찾았다. 엄마가 주는 사료는 정성이 들어 있고 때가 되면 먹을 수 있었지만 울타리 밖 세상엔 그깟 먹을 것이 가져다주지 못하는 기똥찬 자유로움이 있었다. 구멍 뿡뿡 뚫린 돌담 너머로 그렇게 신나는 세상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모든 게 살아 숨 쉬고 있었다. 딱히 다른 것 없는 공기지만 다른 공기라고 자신할 수 있었다. 짱이가 집을 나서면 동네 모든 개들이 냄새를 맡고 소리쳤다.
"넌 누구니? 어느 집 녀석이니?"
다른 집 돌담 너머 갇혀 사는 어떤 녀석인지 알 바 없었다. 세상은 넓고 넓었다. 짱이가 알던 세상은 진짜 세상이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된 거다. 짱이는 마구 뛰었다. 폐가 터질 때까지 뛰었다. 그러다 죽을 것 같으면 잔디 위에 몸을 던져 누워버렸다. 집 마당에 있던 잘 정비된 풀과는 냄새부터 달랐다. 풀 속에는 개미, 거미, 지네 할 것 없이 생전 본 적도 없는 벌레들이 지천이었다. 풀벌레와 한참을 속삭이던 짱이는 뒷다리를 스쳐 지나가는 들쥐 녀석을 발견했다. 마당에서 자기를 놀리던 녀석들과 한 패라는 생각에 들쥐를 좇았다. 들쥐는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죽기 살기로 뛰었다.
"여긴 숨을 돌담도 없거든!"
한참을 뛰던 짱이는 드디어 들쥐를 발로 짓이길 수 있었다.
"어때?"
들쥐는 제발 살려달라는 애처로운 눈빛으로 짱이의 눈을 살폈다. 아무리 봐도 무서운 존재였을 것이다. 짱이는 들쥐에게 송곳니를 보여주었다.
"니들은 언제든지 잡아먹을 수 있거든!"
짱이는 들쥐 냄새를 맡으려 킁킁거리고는 발을 들어 들쥐를 풀어주었다. 하지만 이미 겁에 질린 들쥐는 도망치지 못했다. 이미 네 다리가 후들후들 떨려 아무런 행동도 할 수 없었다. 짱이는 들쥐야 어쨌든 관심도 없다는 듯 길을 나섰다. 여기가 어딘지 알 순 없었지만 불어오는 바람 속에서 느껴지는 엄마의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엄마의 독특한 냄새는 백 년이 흘러도 찾아낼 수 있다고 자신했다. 짱이는 맘껏 뛰었다. 지금까지 살면서 이렇게 열심히 뛰어본 적이 없었다는 것이 신기하게 느껴졌다. 짱이는 자기 발이 그렇게 빠른지 몰랐다. 나무가 휙휙 지나갔고 풀이 툭툭 꺾여 나갔고 개미가 발톱에 튀어 날아갔다. 또 숨이 찬 짱이는 해가 지고 있는 걸 알 수 있었다. 이젠 엄마 냄새도 나지 않았다. 배도 고프고 목도 말랐지만 어디에도 먹을 건 보이지 않았다. 짱이는 근처 귤밭에 떨어진 귤 하나를 발견하고 입에 물었다. 시큼하고 달콤한 귤즙이 입 안에 퍼졌다. 그저 마냥 행복했다. 짱이는 귤나무 아래서 그대로 잠이 들었다.
짱이는 다음날에도 그다음 날에도 또 그다음 날에도 뛰었다. 개판 포레스트 검프도 아니고 그냥 뛰었다. 오 일째 되던 날 짱이는 문득 엄마가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젠 엄마 냄새를 맡을 수 없었다. 저녁이 되면 불어오는 바람 속에서도 엄마 냄새는 나지 않았다. 다만 밤이 되면 집에서 보던 별 하나를 볼 수 있다는 걸 기억해 냈다. 어쩌면 그 별만 보고 달리면 엄마 냄새를 맡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밤이 어둑어둑 찾아오고 매일 밤 보던 그 별이 하늘에 나타나자 짱이는 또 달리기 시작했다. 돌담을 뛰어넘고, 귤나무를 스쳐 달리고, 짱이를 보고 놀라 숨는 들쥐도 무시하고, 개미는 짓이겨 밟고, 풀벌레 소리는 못 들은 척하며 무작정 달렸다. 그렇게 한참을 달려간 짱이는 엄마 냄새가 아닌 며칠 전 흔적을 남겼던 오줌 냄새를 맡았다. 분명히 왔던 곳인 거다. 피곤한 짱이는 그 자리에서 그대로 잠이 들어 버렸다.
다음날 짱이는 드디어 엄마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상수리나무 사이로 훌훌 불어오는 엄마의 냄새. 새로운 세상이 너무 좋아 엄마마저 잊고 뛰쳐나갔던 짱이는 갑자기 엄마가 그리웠다. 짱이는 또 마구 달렸다. 엄마 냄새가 나는 그곳으로. 멀리 엄마의 모습이 보였다. 엄마도 짱이를 발견했다. 짱이는 크게 소리쳤다.
"멍멍멍! 아우!"
짱이는 그렇게 몇 번을 집을 나서 나름의 모험을 즐겼다. 이제는 들에서 배고프지 않게 지내는 방법도 익혔다. 밤하늘의 별을 보고 집을 찾는 방법도 터득했다. 들쥐를 잡았다 놓아주는 놀이도 즐겼다.
그러던 어느 날 짱이에겐 없던 액세서리가 생겼다. 예전과는 다른 좀 더 묵직하고 튼튼한 목걸이였다. 좀 촌스럽긴 하지만 이젠 어른이 되었으니 장신구 정도는 착용해 줘야지, 라며 짱이는 스스로를 대견하게 생각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이젠 모험 여행을 떠날 수 없게 된 거다. 짱이는 매일매일 탈출할 기회를 엿보기 시작했다.
또 그러던 어느 날 드디어 기회를 잡았고 날래게 돌담을 뛰어넘었다. 이젠 그 정도 돌담은 식은 죽 먹기니까. 엄마는 모르겠지만 밤이 되면 돌담 위에 앉아 우주의 별을 헤아리다 잠을 자고 엄마가 일어나기 전에 마당으로 내려오곤 했었다. 엄마는 짱이가 집에 들어가서 자지 않는 걸 걱정했지만 짱이에겐 이미 온 세상이 집이 되어버린 상황이었다. 그러던 짱이의 모험이 끝이 난 건 하늘을 덮는 커다란 구름 때문이었다. 사실 그건 구름이 아니라 엄마가 잘 때 덮는 이불이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언젠가 마당에 널어 두었다 방 안으로 가져가는 걸 본 적 있는 꽃이 잔뜩 그려진 이불이었던 거다.
그날로 짱이의 모험은 끝이 났다. 며칠 후 짱이 앞에 못 보던 녀석이 짱이의 마당에 나타났다. 덩치는 큰데 비쩍 마른 철딱서니 없어 보이는 녀석이었다. 누런 털이 볼품도 없고 어디서 밥도 못 얻어먹고 다녔는지 갈비뼈가 앙상하게 드러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