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말했다. 짱이는 삐쩍 마른 리트리버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아무리 봐도 볼품없고 멍청해 보이는 녀석이다. 게다가 얼마나 소심한지 눈도 제대로 마주치지 못한다.
"너 바보냐?"
짱이가 물었지만 녀석은 꼬리만 살랑살랑 흔들 뿐 뭐라고 말도 하지 못했다. 안 하는 건지 못 하는 건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그래! 바보라고 치고 이름은 뭐니?"
"응... 그게 원래는 다른 이름이었는데 아줌마가 영미라고 불렀어."
영미는 웅얼웅얼 발음도 잘 되지 않는 목소리로 말했다. 더 기어들어갈 곳도 없을 것 같았다.
"원래 이름은 뭐였는데?"
짱이가 다시 물었다.
"그게... 사실은 기억하기도 싫어. 그냥 그 이름은 원래 없던 이름이었으면 좋겠어."
영미는 내리 깔았던 눈을 슬쩍 들어 짱이의 표정을 살폈다. 덥수룩한 털에 눈이 다 가려진 녀석이 어지간히 깐깐하게 군다 싶었다. 왠지 텃세를 부리는 것 같아 보였다.
"너도 사람들처럼 괜당 부리는 거야?"
영미는 이번에도 눈을 피하며 물었다. 여전히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고 있었다.
"난 그런 거 관심 없어. 난 여기를 내 집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내 집은 너무 넓으니까 말이지. 니가 원한다면 이 집은 너에게 줄게. 이렇게 좁아터진 곳은 내 체질에 맞지 않거든!"
짱이는 멀리 담벼락 위 스카이라인에 시선을 던졌다. 뭔가 좋은 게 생각나는 것인지 꼬리는 당당하게 바짝 세운 채였다. 영미의 눈엔 '차가운제주의여자개'로 보였다. 왠지 멋져 보이긴 했다. 영미의 배에서 꼬르륵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배가 고팠다. 이 집에 오기 전에 아줌마가 준 음식이 있었지만 간에 기별도 가지 않았다. 전에 살던 곳에선 매일 생라면만 먹었지만 아줌마가 준 음식은 달라도 뭐가 달랐다. 고기 맛도 나고 생선 맛도 났다. 전에 먹던 라면과는 다른 라면인가 싶었다. 하여튼 인간들이란 라면을 엄청 좋아하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영미는 사람들처럼 국물이 있는 라면은 먹지 않았다. 그건 너무 짜고 너무 매웠다. 그냥 생라면을 오독오독 씹어먹는 게 심심한 맛일지라도 재미는 있는 맛이었다.
"너 여기 살기로 했어?"
짱이가 물었다.
"아마 그렇게 될 것 같아. 아줌마가 먹을 거 많이 주실 것 같아서. 난 인생이 왜 그렇게 배고프게 살아야만 하는지 모르겠어. 그런데 여긴 정말 넓은 것 같아."
"이게 넓다고? 너 정말 바보 맞는구나? 세상이 얼마나 넓은데."
짱이는 영미의 말이 우습다는 듯 비웃는 듯한 말투로 꾸짖었다.
"난 잘 모르겠어. 넌 그런데 왜 목줄을 안 하고 있어? 그렇게 있어도 사람들이 가만히 내버려 두는 거야?"
영미는 너무 궁금했다. 영미는 태어난 후로 지금까지 목줄 없이 살아본 적이 없었다. 기껏 몇 발짝 걸을 수도 없을 정도로 짧은 목줄은 플라스틱으로 만든 작은 집에 묶여 있었지만 무엇으로 고정시켜 두었는지 끌려오지도 않았다. 거의 일 년 넘게 플라스틱 집 근처에서 벗어나 본 적이 없었는데 넓은 마당을 맘껏 돌아다니는 짱이가 부러웠다. 영미는 아줌마가 돌아오면 목줄을 묶어 어딘가에 고정시킬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우리 엄마는 목줄 같은 거 안 해주셔. 난 아직까지 그런 거 해본 적이 없는 걸."
짱이는 목에 걸린 목걸이를 보여주며 자랑스럽게 말했다.
"이런 건 액세서리야. 멋진 아가씨가 되려면 이 정도는 해줘야 하지 않겠어? 네 목걸이는 너무 흉하다, 얘!"
"그런가? 난 그런 거 잘 모르겠어. 그냥 배고프지 않게 잘 먹을 수만 있다면 여기서 한 발짝도 안 움직여도 괜찮을 것 같아."
"너 못 먹어서 그렇게 마른 거야?"
"응... 한 번도 배불리 먹어본 적이 없어. 사람들은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와서 물 한 바가지 퍼다 놓고 라면 몇 개 던져주곤 또 사라져 버렸어. 어쩔 땐 그보다 더 오랫동안 나타나지 않았어. 쥐가 옆으로 지나가도 잡을 수 없어서 그냥 배고파도 참고 언젠가는 밥을 줄 거라는 믿음만 가지고 살았어. 그런데 어느 날부터 아줌마가 내게 밥을 주시더라고. 그러더니 오늘은 이 집으로 데리고 오셨지 뭐야."
짱이는 배가 고파서 죽을 뻔했다는 영미의 이야기를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지금까지 사랑만 받으며 살아왔던 기억만 있는 짱이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이야기였다. 물론 너무 어릴 적 기억이긴 하지만 유기견이었던 유년시절이 있긴 했다. 어쩌면 잊은 것인지 명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약간의 트라우마는 남아있는 것 같았다. 바깥 생활을 그리워하는 건 아마도 아메리카 대륙의 히피족이 키우던 녀석들처럼 맘껏 쏘다니며 살기를 원하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이건 창문 너머로 엄마의 텔레비전 속에서 본 적 있는 내용에 대한 기억이다.)
*
영미는 그토록 원하던 세련된 목걸이를 선물 받았다. 하지만 아줌마는 목줄은 선물하지 않았다. 며칠 후에야 알게 됐지만 목줄을 주지 않은 게 오히려 일종의 선물이라는 걸 알게 됐다. 자기는 쓰지 않는다며 영미에게 건네준 짱이의 멋진 집은 넓고 화려했다. 이놈 저놈의 이빨 자국이 나 있던 전에 살던 집에 비하면 임금님 대궐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영미 역시 그 집 안에는 들어가지 않았다. 비가 오는 날만 제외하고. 항상 돌담 위에 누워 별빛을 받으며 무수히 쏟아지는 별들을 헤아리며 늑대 소리를 내던 짱이의 모습을 동경하며 영미 역시 밖에서 잠을 자기 시작했다. 영미의 눈에 짱이의 모습은 '차가운제주의여자개'라기보다는 '차가운제주의여자늑대'같았다. 영미는 목줄도 없는데 집에서 네 발자국 이상 걷지 않았다. 셋째 날이 되어서야 드디어 뭔가를 깨우치고 한 발자국 또 한 발자국 집에서 멀리 떨어져 보았다. 아무도 소리치지 않았다. 영미는 집에서 조금씩 멀어지다 못해 뛰어 봤다. 신이 났지만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아줌마는 계속 먹을 걸 주었지만 영미는 계속 배가 고팠다. 그래도 아줌마는 계속 먹을 걸 주었다. 영미는 쉬지 않고 먹었다. 세상에 신라면보다 더 맛있는 음식이 있을 거라고는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매일 맛도 없는 사리용 라면만 먹다 만난 신라면 정도만 해도 세상의 진귀한 음식이라 생각했던 과거의 영미는 이제 존재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