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개자식들이 있다. 3탄-새 가족의 탄생

시끌벅적 농가주택 개자식들 이야기

by 루파고

어느 날 짱이에게 불행한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영미로선 너무 익숙한 일이었지만 짱이에겐 곤혹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이번에도 짱이는 바깥세상 여행을 다녀왔다. 물론 엄마에게 허락을 받거나 한 것도 아니고 아무런 계획도 없이 무작정 떠돌다 모두가 지쳐있을 즈음되어서야 거지꼴을 해가지고 돌아온 것이다. 영미가 우러러보던 '차가운제주의여자늑대' 짱이는 온데간데없고 말 그대로 '개그지'가 되어 나타났다. 온몸은 흙탕물에 뒤범벅이 되었고 원래는 예쁜 하얀색 털을 가지고 있었던 짱이의 털은 온통 엉망진창이었다. 어디에서 뭘 하다가 다쳤는지는 몰라도 앞발 하나는 뭔가에 깊게 파여 아직도 피가 흐르고 있었다. 눈을 가렸던 이마의 털엔 진드기 몇 마리가 달라붙어 아주 고착한 상태였고 털도 군데군데 마구 엉켜 풀어질 것 같지도 않았다. 짱이는 그래도 단단해진 모습으로 나타나긴 했다. 몸매는 좀 더 날씬해졌고(날씬해진 게 맞긴 할까?) 눈빛은 예사롭지 않았다. 이젠 늑대의 수준을 떠나 배고픈 늑대의 수준까지 변모한 것이다. 영미의 눈엔 야성미 넘치는 짱이의 모습에서 자신은 영원히 넘을 수 없을 기품 같은 게 보였다. 전장을 누비다 돌아온 개선장군처럼 늠름함이 있었다. 어쩌면 중국 고사에나 등장하던 뮬란의 현신이 아닐까?

짱이는 그날부로 목줄이 채워졌다. 대신 엄마의 배려로 마당 양 끝에 길게 설치된 와이어에 길게 연결된 목줄이라 활동하는 데는 크게 문제가 없었지만 마구 뛰어다니던 짱이의 활달함은 조금씩 잦아들기 시작했다. 짱이가 떠나 있던 한 달 동안 영미의 몸은 거의 두 배 가까이 불어 있었다. 아줌마는 엄마가 됐고 영미는 엄마의 둘째가 됐다.

"넌 돼지냐? 개냐? 대체 정체가 뭐야? 뭘 어떻게 먹었길래 그 모양이 된 거야?"

짱이는 어이가 없다는 듯 영미 주위를 빙글빙글 돌며 살폈다. 그러다 영미 꼬리 근처에서 킁킁거리던 짱이는 뒤로 펄쩍 뛰어 달아났다.

"그게 개가 가진 똥구멍이 맞는 거냐? 대체 뭘 얼마나 먹는 거야?"

"내가 뭘? 난 안 보이는데."

영미는 똥구멍을 보겠다며 빙빙 돌았지만 방법은 없었다. 짱이가 그렇다면 그런 건 거다.

"니 몸매 너 아니?"

짱이가 재차 물었다.

"좀 무거워진 것 같긴 하지만 난 상관없어. 얼마나 행복한지 몰라. 너 없을 때 엄마가 소고기를 엄청나게 많이 주셨어. 얼마나 맛있는지 모를 거야."

영미는 새벽에 내린 이슬비로 축축하게 젖은 땅바닥에 철퍼덕 엎드렸다. 다리만큼이나 두꺼워진 꼬리를 바닥에 파닥파닥 두드리자 땅이 진동하는 듯했다.

"내가 보기엔 너는 이제 개가 아닌 돼지가 된 것 같아. 개돼지!"

"난 괜찮다니까! 이렇게 맘껏 먹으며 살 수 있다면 돼지가 돼도 좋아."

"그런데 너, 누구 허락받고 우리 엄마를 니 엄마라고 하는 거야? 혼 좀 나볼 테야?"

짱이가 으르렁거렸다.

"엄마가 엄마라고 하시니 엄마인 거지. 너 없는 동안 내가 너 이상으로 딸 노릇 했거든. 넌 딸이 돼서 니 멋대로 싸돌아다니기만 했지 엄마 걱정일랑 해보기나 했어? 내가 그동안 엄마를 위해 얼마나 애교를 부리고 놀아드렸는지 알아? 엄마가 심심하면 노래도 불러드리고, 엄마가 슬퍼하며 엉덩이로 비벼드리기도 하고, 엄마가 외로우면 얼굴도 핥아드렸어. 넌 그런 적도 없었잖아. 이미 엄마는 너보다 날 더 좋아하셔!"




영미는 흥흥거리며 자랑스럽게 말했다. 그런데 영미가 다른데 시선을 둔 순간 짱이가 크게 도약하며 영미에게 달려들었다. 매우 놀란 영미가 깨갱하며 피했지만 날쌘 짱이를 감당할 순 없었다. 원래 힘이 좋은 편이 아니긴 했지만 이젠 몸이 너무 둔해져 잘 뛰기도 힘들었다. 그래도 화가 치밀어 오른 영미는 죽자 사자 짱이를 잡으려 이빨을 드러냈다. 짱이는 잽싸게 방향을 틀어 영미의 뒷다리를 콱 깨물었다. 영미가 고개를 돌려 짱이를 물어버리려 했지만 이미 짱이는 저만치 떨어져 있었다. 영미는 힘을 내어 짱이를 잡으려 뛰었다. 하지만 짱이는 비웃는 소리를 내며 도망쳤다. 아무리 와이어에 걸려 있다 하지만 영미의 속도로는 짱이 근처엔 얼씬도 하지 못했다. 게다가 얼마 뛰지도 못해 숨이 차서 헉헉거리고 말았다. 멀찍이 떨어져 바닥에 엎드린 짱이는 묘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하늘 위로 들어 올렸다.

"아우~~ 아우~~"

"뭐야? 그건 어디서 배운 거야? 너는 이제 개가 되기를 포기한 거니?"

"웃기시네. 이런 게 바로 인생인 거야. 맨날 너처럼 하던 대로만 하며 살면 그게 무슨 재미야? 나처럼 모험도 하고 일탈도 해야 진짜 멋진 삶이지."

영미는 이해할 수 없는 짱이의 소리를 그냥 잊고 대접 안에 담긴 물을 혀로 핥았다. 자동펌프 호스를 들이댄 것도 아닌데 물은 순식간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영미의 입은 온통 흠뻑 젖어 있었고 이제 기운을 차린 영미는 언제 짱이와 다퉜나 싶을 정도로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너희들이구나?"

짱이와 영미는 처음 듣는 목소리에 놀라 왼쪽 구석 담벼락을 쳐다보았다. 담벼락 아래 처음 보는 녀석의 머리가 하나 돌담 사이에 끼여 있었다.

"너 뭐야?"

"뭐긴 뭐야? 지나가는 과객이라고 해 두지. 어휴 그런데 여기 왜 이렇게 좁아. 내가 어지간하면 다 파고 들어가는 편인데 여긴 쉽지 않네."

하얀 털을 가진 남자 개였다. 잠시 후 녀석은 머리를 털며 돌담 사이를 비집고 빠져나왔다. 다리는 생기다 만 것인지 너무 짧아서 짜리 몽땅했다. 얼굴만 봐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몸뚱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