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루파고 Oct 11. 2020

58.북한 음식점 두 곳을 가다

서초동 봉산옥, 설눈

지난번에는 재료가 다 떨어져 먹을 수 없었던 서초동 맛집 설눈을 이번에는 다녀오고 말았다. 묘하게도 설눈은 토요일에 쉰다. 그런데 마침 북한요리에 꽂힌 토요일, 근처에 있는 봉산옥에 들러 만둣국과 찐만두를 맛보았다. 우리 집안은 북에서 내려왔기 때문에 어른들은 실향민이라고 보면 되는데 어릴 때부터 이북 음식에 익숙해져 있었던 것 같다. 봉산옥의 김치는 우리 집 김치와 너무 비슷해서 꼭 엄마가 해주신 밥을 먹는 듯한 기분이 들었으니 말이다. 식당에서 우리 집과 비슷한 김치를 먹어본 건 처음인 것 같았다. 칼칼하고 시원한 맛이 독특하여 한번 맛보면 잊지 못하는데 이모들은 어느 날 갑자기 우리 집 김치가 생각난다고 할 정도이다. 아무튼 봉산옥에서 만난 반가운 김치도 그랬지만 속이 꽉 찬 만두 역시 맛있었다. 우리 집 만두와는 다른데 이 익숙한 느낌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담백하고 고소하며 식감이 좋은 만두피 안에 꾹꾹 눌러 채운 만두소가 더는 설명이 필요 없는 북한식 만두가 분명했다. 무말랭이 또한 우리 집 것과 비슷했다. 익숙한 맛에 감동이 밀려올 지경이었다.








그리고 오늘 드디어 설눈을 방문했다. 한이 맺힌 것도 아닌데 이런 반가움이 느껴지는 건 재료가 떨어지기 전에 왔다는 안도감 때문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골목 안쪽에 있어 그냥 찾으려면 어렵다. 물론 그건 봉산옥 역시 마찬가지였다. 1977년부터 시작했다는 설눈의 인테리어는 식당 연식과는 어울리지 않지만 깔끔한 실내 인테리어가 고급스러웠다. 일단 유기 수저의 무게감에 예스러움을 느끼게 했는데 나머지 그릇들이 유기 색 도금이 벗겨져 1% 부족함을 가져왔다. 자~ 설눈의 맛은 어떤 감동을 주려나.



메뉴판을 보니 가격이 나름 착해 보였다. 북한 요리를 이런 가격에 맛볼 수 있다는 건 분명 착한 게 맞다.



찬은 이렇게 차려졌다. 평양식 김치인가? 이것도 어릴 때 먹었던 기억이 있는 김치 맛이다. 할아버지는 평양 사람이고 할머니는 신의주 사람이니 두 지역의 음식들을 골고루 맛보며 살았던 걸까? 마침 설눈 역시 평양 음식점이니 그랬던 것 같다.



이게 그 유명한 온반이다. 비주얼부터가 남다르다고 느껴졌다. 위에 올려진 녹두빈대떡이 이색적인데 왠지 기억 구석에 흐릿한 것이 떠오를 듯 말 듯했다. 해가 지고서야 기억 속에 있던 이 녀석이 드디어 떠오르고 말았다. 할머니 음식 중에 바로 요 녀석이 있었던 것이다. 깔끔하고 고소한 맛이 일품인데 어울릴 듯 아닌 듯한 조합이 묘하게도 어울리는 음식이다.



밥 위에 양념장이 있고 그 위에 녹두빈대떡 한 장이 올려져 있는데 기억 속에 있던 이 음식은 제사 지내고 난 다음날이면 꼭 먹었던 바로 그것이었던 것이다. 닭곰탕을 베이스로 한 요리인 것 같다. 모르긴 해도 설눈에 자주 갈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바로 이 만두. 비주얼부터가 우리 집 만두와 같았다. 이번 추석 때도 집에서 엄마표 만두를 맛보았는데 이 반가움은 또 무엇이란 말인가? 이미 할머니의 만두보다 일취월장했던 엄마의 만두는 이 집 만두보다 훨씬 맛있다. 아무튼 심심하며 고소한 맛이 일품인 이 만두는 말 그대로 평양 만두인 것이다. 만두를 파헤쳐 만두소를 확인했다. 역시 오래전 돌아가신 할머니의 솜씨와 비슷한 듯했다. 나는 잘 모르겠지만 평양 사람인 할아버지에게 시집오신 후 할머니의 시어머니인 내 증조할머니께 배운 요리 솜씨 아닌가 싶다.

난 사실 우리 집안이 이북 출신이라는 것만 알았지 뿌리에 대해 관심을 두려 하지 않았었다. 딱히 필요성을 느낀 적이 없어서다. 그런데 이 음식들 때문에 호기심이 일고 있었다. 북쪽 음식들을 전문적으로 하는 식당들을 찾아다녀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다. 다음엔 어느 식당엘 가보려나...

매거진의 이전글 57.바로 벗기는 부산 곰장어 로컬맛집 초연숯불장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