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개자식들이 있다. 5탄-고기를 지켜라
시끌벅적 농가주택 개자식들 이야기
녀석은 엄마가 집 안으로 들어간 것을 확인한 후에야 슬그머니 일어나 온몸을 털었다. 털이며, 먼지며, 흙이며... 몸에 붙었던 온갖 이물질이 사방에 흩어졌다.
"더러워!"
짱이가 눈을 흘겼다.
"이건 더러운 게 아니고 멋진 거야. 바깥세상이 어떤 곳인지 너희들은 잘 모를 거야. 당연하지! 집 안 울타리에 갇혀서 평화롭게만 살았으니 모험이란 걸 알 수가 없겠지."
녀석은 잘난 척을 하려는지 제법 그럴듯한 목소리를 냈다. 하지만 녀석의 의도와는 달리 짱이는 귀찮다는 듯 평소 즐겨 앉던 잔디 위에 벌러덩 엎드려 버렸다. 그러자 잠시 관심이 있는가 싶었던 영미 역시 녀석에게서 멀어져 창가로 향했다. 영미의 관심은 모험도 바깥세상도 아니었다. 오로지 언제 던져줄지 모르는 엄마의 선물만이 흥미로울 뿐이다. 짱이와 영미가 곁에서 사라지자 녀석은 하는 수 없이 자랑하는 걸 체념하고 짱이 곁으로 다가갔다. 체구가 작은 짱이는 왠지 모를 카리스마가 있어 친해지면 좋을 것 같았다. 하지만 짱이는 녀석에게 전혀 관심이 없는 듯했다.
"혹시 먹을 거 있으면 나눠줄 수 있을까?"
녀석이 물었다. 아까 그렇게 먹고도 배가 고픈 모양이었다.
"너도 영미하고 똑같구나?"
짱이는 귀찮다는 듯 시선을 돌려버렸다. 대신 꼬리로 담벼락 아래쪽을 가리켰다. 녀석은 바깥에서 얼마나 닳고 닳았는지 눈치가 빠른 모양이었다. 짱이의 선심을 이해한 녀석은 슬그머니 담벼락을 향했고 잠시 후 꿈에도 그리던 향긋한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귀하디 귀한 뼈다귀 사탕이 풍귀는 냄새가 분명했다. 언제인지 잘 기억나진 않지만 분명히 먹어본 적 있는 사탕 냄새였다. 담벼락 아래를 후벼 파자 드디어 기대했던 사탕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런데 갑자기 어디선가 돌풍이 불어닥치는가 싶더니 하연 그림자가 녀석의 등 뒤를 장악했고 녀석이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는 사이 영미는 사탕을 물고 저 멀리 달아나 버렸다. 덩치와는 달리 전광석화처럼 빠르고 날쌘 몸놀림이었다.
"기껏 선심 썼는데 그걸 그새 빼앗겼군. 포기해! 저 녀석 벌써 반쯤은 먹어 버렸을 걸."
짱이의 시선은 다른 쪽을 향하고 있었지만 이미 보고 있었던 것처럼 말했다. 녀석의 눈엔 정말 반쯤은 사라져 버린 뼈다귀 사탕의 모습이 보였다. 절반이라도 찾아야겠다는 생각에 녀석이 달려들었지만 영미의 거대한 체구를 이길 수는 없었다. 영미는 슬그머니 엉덩이를 돌려 녀석의 돌격을 막았고 다리보다 더 두꺼워진 꼬리로 녀석을 패대기쳤다.
"아이고! 뭐야?"
녀석은 정신이 혼미해질 정도였다. 이러다간 절반은커녕 부스러기도 찾을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간신히 영미의 꼬리를 피해 사탕의 행방을 살폈지만 이미 사탕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영미는 처음 보았던 모습과 비슷한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녀석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게 그렇게 씹어서 없어지는 거 맞아?"
녀석이 식식거리며 따졌지만 이미 소용없는 짓이었다. 아직 배가 조금 고프긴 했지만 이 정도면 충분히 먹은 셈이었다. 평소대로라면 앞으로 이틀은 굶어도 버틸 수 있는 양은 먹은 셈이었다. 영미는 할 일은 다 했다는 듯 데크 위에 앞다리를 꼬으고 널브러졌다. 녀석의 눈에 들어온 영미의 자세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모습이었다. 얼굴은 소의 모습을 하고 있었고 몸매는 돼지에 자세는 고양이 그리고 꼬리는 전설에나 나온다는 호랑이의 것이었다. 녀석은 영미의 꼬리에 두드려 맞았던 기억이 생생하게 기억났다.
짱이는 세상 다 귀찮다는 듯 잠이 들어버렸고 영미 역시 배도 부르고 해서 그런지 행복한 표정으로 헥헥거리고 있었다. 가끔 혀로 코를 핥는 모습이 없었다면 잠을 자는 건 지도 알 수 없을 것 같았다. 집 안으로 들어간 엄마는 녀석들이 진을 치고 있는 마당에는 전혀 관심도 없는지 나타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녀석은 에라 모르겠다는 생각에 잔디 위에 옆으로 누웠다. 반쯤 열린 문이 보였다. 하지만 나갈 생각은 하지 않았다.
해가 질 무렵이 되자 큰 나무 사이로 빨간빛이 새어 들어오기 시작했다. 잠시 후면 완전히 깜깜해질 것만 같았다. 데크 위에서 자세를 바꾸며 이리저리 굴러다니던 영미가 벌떡 일어나자 짱이와 녀석 역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영미 때문이 아니었다. 맛있는 냄새가... 녀석에게는 천상의 냄새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맛난 것이 다가오고 있었던 것이다.
"이 녀석 아직도 집에 안 갔네?"
먹을 걸 가지고 나오던 엄마는 녀석의 엉덩이를 밀어 문 쪽으로 몰았다. 하지만 이번에도 역시 녀석은 문 앞에 이르자 바닥에 견고하게 엎드렸다.
"배고파서 그래? 그럼 너도 이거 좀 먹고 가렴."
엄마는 짱이 밥그릇에 돼지뼈를 담아 돌담 옆에 놓아두었고 영미 밥그릇은 데크 위에 올려 두었다. 짱이와 영미는 각자의 밥그릇에 달려들었고 녀석은 하염없이 엄마의 발만 따라다녔다. 녀석은 짱이 밥그릇을 훔쳐보다 으르렁거리는 통에 후다닥 도망쳐 나왔고 영미 밥그릇은 구경도 못 해보고 튕겨져 나왔다. 영미의 엉덩이는 바위처럼 무거웠다. 녀석의 모습을 지켜보던 엄마는 집에서 그릇 하나를 더 들고 나와 녀석 앞에 놓아주었다. 살점이 엄청나게 많이 붙은 돼지다리뼈였다. 고기를 먹으려는 순간 녀석은 익숙한 그림자를 느낄 수 있었다. 역시 영미였다. 녀석은 뼈를 물고 죽기 살기로 뛰었다. 이번엔 어쩔 수 없었다. 문 밖으로 나가지 않으면 고기를 사수할 수 없을 거라는 걸 직감한 것이다.
"영미야!"
엄마가 소리쳤지만 영미는 녀석을 추격했다. 하지만 녀석 역시 필사적이었다. 문 밖까지 뼈를 물고 나간 녀석은 엄마가 잽싸게 문을 닫은 덕분에 지켜낼 수 있었다. 영미는 으르렁거리고 식식거렸지만 녀석은 개의치 않았다.
"집에 가서 맛나게 먹으렴!"
엄마는 굳게 닫힌 문 너머에서 손을 뻗쳐 녀석을 쓰다듬었다. 녀석은 눈물이 날 것 같았지만 꾹 참아냈다. 이 얼마 만에 맛보는 고기였던가? 방금 영미에게 강탈당한 사탕을 이렇게라도 보상받은 것 같아 행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