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상우 May 15. 2024

아빠도 편지 받고 싶다

편지는 저승에서...

딸이 이제 글씨를 써보려고 한다. 특히 편지를 쓰고 싶어 한다. 월요일 새벽이면 쪽지를 남기고 섬으로 떠나는 엄마에게 보내려는 모양이다. 숫자 세는 것도 많이 늘었다. 엄마가 돌아오는 날을 기다리며 손가락을 접다 그리되었다. 결핍이 있어야 사람은 채워진다는데 아이에게도 해당되는 것 같다.     


  

“딸아, 엄마가 왜 보고 싶어?”

“엄마는 내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사람이니까”

“아빠는 몇 번째야? 아빠가 밥도 해주고 응가도 치워주고 매일 같이 놀아주잖아”

“아빠는 당연히 두 번째지!!”

세상에서 두 번째로 좋은 사람과 있어도 첫 번째를 보고 싶어 한다. 하기는 나도 세상에 제일 좋아하는 사람과 붙어 있는데도 힘든 것을 보면 좋아하는 것과 힘든 거는 별개의 문제라는 것을 알겠다.     



직장에서 누군가 ‘옥쌤 왔다 갔다 하느라 힘들겠어요’라고 말할 때가 있다. ‘진짜 진심으로 제가 더 힘들어요’라고 말하긴 하지만 코피를 흘리고 다니는 아내를 보면 다들 쉽지 않구나 싶다. 재하가 아마 제일 힘들 것이다. 유치원에서 돌아왔을 때 중문에 서린 얼룩을 보며 ‘엄마 왔나 보다!!’하고 소리칠 때면 가슴이 아린다. 물론 요새는 좀 적응했는지 엄마 왔다고 소리치고 내가 곤란한 표정을 지으면 ‘거짓말이지롱’ 하면서 장난인지 위로인지 모르겠는 말을 아빠에게 던지곤 한다.     


엄마 사랑해 엄마 보고 싶어


엊그제는 자기 전에 엄마가 먼저 죽냐 아빠가 먼저 죽냐를 물어보았다. 

“남자가 보통 8년 정도 먼저 죽는데, 엄마랑 아빠는 동갑이니 아빠가 먼저 죽겠지?”

“다행이다”

“뭐라고? 이 똥개가!!”

“아빠한테도 편지 써주고 싶거든. 아빠 죽으면 내가 편지 써줄게”

그거는 편지가 아니라 제문이라고 하는 거라 알려줬다. 그리고 며칠 있으면 어버이날이 있으니 편지 쓸 충분한 기회가 있다고 알려준 후 훈훈한 마무리를 지었다.     



어쨌든 달이 차면 기운다고 엄마가 늘 1등일 것은 아닐 것이다. 평생 엄마가 일 순위면 그게 더 문제다, 아내도 별수 없을 거다. 그날이 궁금하다. 재하엄마가 무슨 표정을 지을까. 너무 가깝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아무래도 학교 다닐 때는 공부해야 하니까. 엄마가 두 번째라는 것을 알게 되는 날 아내에게 맛있는 거라도 사줘야겠다. 충격이 있을 테니 많이 놀리지는 말아야지. 아니 근데 그럼 도대체 나는 몇 순위야?   

매거진의 이전글 헌법으로 가는 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