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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하고 돌아오라

짧은 마카오 여행 에피소드

by 이상우

어느 날 재하가 유치원에서 돌아오자마자 말했다.

「아빠!! 나도 해외여행 가보고 싶어」

생각 없이 대답했다.

「재하, 제주도 여러 번 가봤잖아」

「아빠!! 잘 들어. 제주도는 외국이 아니야, 한국이야」

그곳에서 나랏밥도 먹었던 나인데 딸에게 제주도 교육은 20분간 받았다.



처음에는 도쿄에 갈까 했었다. 그때는 환율이 나쁘지 않기도 했고, 디즈니랜드도 있어서였다. 아내는 홍콩에도 디즈니랜드가 있는데, 거기가 더 작아서 어린애들이 돌아다니기 더 좋다고 했다. 그러자고 했더니만 마카오도 같이 가자고 했다. 굳이 그럴 필요까지 있나라는 표정을 지으니 자기만 따라오라는 표정으로 말했다.

「마카오 특가 비행기가 있어. 여기서 며칠 있다 홍콩 가면 두 군데 가고 좋잖아. 그냥 홍콩 왕복보다 이게 더 싸」

싸다는 말에 혹해서 그러자고 했다.



마카오 호텔은 무척이나 친절했다.

「여기는 카지노를 위해서 모든 편의를 군말 없이 제공한다던데 진짜인 것 같아」

내 말에 아내는 대답이 없었다. 피곤해서 못 들었나 싶어서 대수롭지 않았다.



재하는 저녁에 컵라면을 두 개나 먹고 7시에 잠이 들었다. 산타 할아버지 온다고 했던 날보다도 일찍 떠났다. 지칠 성도 싶었다. 전날 특가 비행기가 새벽 한 시 반에 우리를 공항에 내려 줬기 때문이었다. 나도 피곤하여 잘랑 말랑하고 있는데 옆에서 무언가가 희번덕거렸다. 졸려서 헛것을 봤나 싶었다. 다시 보니 그건 아내의 눈빛이었다. 맹금류처럼 동공에서 불을 뿜고 있었다. 그 안광이 천장에 닿아 「CASINO」 여섯 글자를 또렷하게 그리고 있었다. 막으면 부리와 발톱으로 날 할퀼 것 같아 나지막이 속삭일 수밖에 없었다.

「승리하고 돌아오라」

아내는 내 지갑에서 홍콩달러 고액권을 하나 꺼내 주머니에 쑤셔 넣고 유유히 사라졌다.



새벽녘에 그녀는 돌아왔다. 뭐라 뭐라 하는 것 같았지만 잠결이라 알아듣지 못했다. 혹시 안 돌아오지 않을까 염려도 했던 터라 가정으로 복귀한 것만으로도 다행이라 여기며 잠이 다시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눈이 마주치자 아내는 내 품에 파고 들어서 마구 속삭였다. 신혼 때도 하지 않던 행동이었다. 순간 불길한 느낌도 들었지만 진짜 사고를 쳤으면 딸도 데리고 와서 함께 안길 것이기에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이제 손 씻을 거야. 새롭게 태어나기로 결심하고 나왔어」

「지갑에서 한 장 더 꺼내갈까 했는데 미쳤나 해서 참고 나온 거야」

「여기서는 안 해. 다 조작이야. 라스베가스에서 할 거야」

「너무 떨려서 못했어. 소액으로 걸게 없더라고」

기가 차서 아무 말도 안 하고 있으니 한마디 더 붙였다.

「공모주 팔아 빵꾸 난 가계를 메꾸겠소」

「그거 다 반 토막 났잖아」

「...그렇지」



마카오 온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으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하며 다독여줬다. 어차피 아내가 백수 남편이랑 결혼할 때도 도박한 거나 마찬가지였으니 비록 사행성 행위였을지언정 소신대로 산 거였다. 삶에서 일관성은 중요하지만 앞으로 돈은 땀 흘려 벌자고 하며 훈훈히 마무리 지었다. 그러고 나서 잠깐 쉬려고 누워 폰으로 인스타 피드를 열었다. 한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상대의 본성을 알고 싶다면 돈 쓰는 곳을 살펴봐라」



p.s : 요새 다녀온 것은 아니고, 몇 달 된 이야기입니다. 이제 약간 여유가 생겨 글도 쓰고 그러네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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