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13주차의 기록
우리 원자(태명, 부부가 둘 다 역사 전공자라 생겨난 이름)가 생겨난 지 13주가 되었다. 어떤 친구일까 궁금하다. 나를 닮았을까 아내를 닮았을까. 가끔 재미 삼아 원자 최고의 조합, 최악의 조합을 이야기하곤 한다.
- 최고의 조합: 아빠의 '두뇌'(내가 게을러서 그렇지 머리는 좋다 ㅋㅋㅋ), 엄마의 '부지런함과 싹싹함'(어른들이 아주 좋아한다), 할아버지의 '운동신경'(밖에서 살았어야 할 사람, 시대를 잘못 태어남), 할머니의 '생활력'(우리 피닉스'조', 포기를 모르는 그 여자), 삼촌의 '음악성(기타 치는 베짱이)', 외 할아버지의 '얼굴'(진짜 잘 생기셨다), 외할머니의 '너그러움'(비 오면 학교 가지 말라는 분), 큰이모의 '붙임성'(모두가 나의 친구), 작은 이모의 '키'(나보다 크신듯), 그리고 코비의 '귀여움'(와이프 막냇동생 강아지) 등등
-최악의 조합: 아빠의 '게으름과 머리숱'(마음이 아프니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엄마의 '편식과 씻기 싫어함'(얼굴만 보면 상상이 안 간다), 할아버지의 '술 담배와 머리숱'(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할머니의 '강박증'(소싯적에는 새벽 4시까지 빨래를 다 널고 잤다), 삼촌의 '생에 대한 태도(기타 치는 베짱이)와 머리숱'(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외 할아버지의 '생활력'(얼굴에 몰빵하심), 외할머니의 '고집'(너의 말은 중요하지 않다), 큰이모의 '눈물'(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눈물 자판기), 작은 이모의 '재촉'(안되면 될 때까지), 그리고 코비의 '식탐과 오만방자함'(할머니가 요새 빨리 죽으라고 재촉한다, 참고로 02년생 어르신) 등등
사실 더 궁금한 게 있다. 옥 입덧의 종결 여부이다. 과연 끝나기는 할 것인가. 나는 정말이지 이게 궁금하다. 아내 친구 가영 씨의 말로는 14주가 되었던 날 고기 냄새가 극적으로 좋아졌다고 했다. 과연 옥에게도 그런 날이 올 것인가.
엄밀히 말하면 입덧이 좋아지기는 했다. 초기(5주~10주)에는 아무것도 드시지 않았다. 정말 굶었다. 내가 알던 옥이 이런 사람이었나 싶을 정도로 먹을 것에 전혀 손을 대지 않았다. 예를 들면 어느 날은 아내가 딸기를 대령하라 한 적이 있었다. 신이 나서 딸기를 꺼냈다. 딸기는 상시 준비되어 있었다. 조금이라도 곪았으면 거르고 예쁜 것만 씻어다가 진상하니 한 점 드시고는 '입맛이 없다'라며 물리라고 하셨다.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공손히 버림받은 딸기를 받쳐 들고 뒷걸음질 쳐서 나왔다. 그리고 거실에서 내가 다 먹었다.
어느 날은 또 이런 일도 있었다. 설에 아내는 임신 초기라 서울에 가지 못했다. 걱정이 되신 장모님이 마침 제주 놀러 간다는 큰 처형에게 음식을 잔뜩 들려서 내려보내셨다. 꽃게탕, 돼지갈비, 소갈비, 꼬막무침, 돼지고기 김치찜이었다. 아내가 먹고 싶다고 했던 그런 음식들이었다. 덕분에 자취생 냉장고 같았던 우리 집 냉장고는 잔칫상처럼 푸짐해졌다. 덩달아 나는 수심으로 가득 찼다. 이 음식을 다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했다. 우리 아내는 냉장고에 한 번이라도 들어갔던 음식은 드시지 않았기 때문이다. 바로 요리한 연기나는 따끈따끈한 것. 그것만이 옥에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었다. 냉장고에서 차게 식은 것들은 옥에게 더 이상 먹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사문난적, 이단, 사설(邪說)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옥은 음식의 순결성을 그토록 강조했다.
아무튼 그 음식 중에 옥은 꽃게탕 국물만 조금 드셨다. 게도 살짝 드시다가 평소에 먹었던 게 아닌 것 같았는지 내려놓으셨다. 남겨진 음식들은 모두 나의 몫이었다. 하루하루를 늘 잔치처럼 먹었다. 살이 뒤룩뒤록 올랐다. 특히 돼지고기 김치찜은 정말 맛있었다. 생긴 것만 봐도 이 나트륨 덩어리는 특히 심장에 안 좋겠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너무 맛있었다. 난 김치찜을 먹으면서 '이거 먹고 일주일 덜 살겠다'라고 외쳤다. 누군가 내 생의 마지막 순간에 뭘 먹고 싶냐고 물어본다면 '장모님이 해주셨던 돼지고기 김치찜'이라고 말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돼지고기 김치찜에 혹해서 쓸데없는 말이 많아졌는데 중요한 건 그 음식들을 내가 다 먹었다는 거였다. 맛있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의무적으로 해치워야 하는 건 쉽지 않았다. 그 와중에 큰 처형, 큰형님과 소고기를 한 번 먹은 적이 있는데 그때는 옥이 많이는 먹지 않았어도 어쨌든 먹긴 먹었다. 약간 빈정이 상했다. 입맛이 없다고 냉장고 들어간 것은 나보고 다 먹으라고 해 놓고서는 소고기는 맛있게 먹다니. 인지상정으로 이해는 하지만 배신감이 조금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속이 메스꺼워서 자주 게워내는 와중에도 음식평은 늘 잊지 않으셨다. 한 번은 국물 있는 차가운 면이 드시고 싶다 하여 산방식당 밀면을 사 갔다. 산방식당에서는 면과 국물은 따로 포장해주었다. 면이 물속에 들어있던 게 아니었다. 그래도 옥은 조금 드시고 나서는 산방식당 면이 불어있다며 사 오는 것은 맛이 없다고 하셨다. 그리고 면을 물속에 담가놓은 채 안방 침대로 스르륵 사라졌다. 나는 그걸 다 먹어야 했다. 원자가 들어서기전에는 돈이 아까워서인지 먹는 시늉은 했지만 이제는 아주 당당히 안 먹는다고 하는 아내였다. 이제는 익숙해졌다. 아무튼 한 끼 한 끼를 소중히 하며 먹는 것에 타협이라고는 없었던 옥은 한동안 그렇게 살았다.
옥은 임신하면서 몸무게가 8kg나 빠졌다. 한때 60kg 선을 위협해서 내가 우리 '55캠페인'하자고도 했었다. 몸무게 55kg, 옷 사이즈 55 이런 식으로 말이다. 옥은 갑자기 살이 찌는 것에 대해 어디서 찾아보고는 이건 갑상선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내가 그럼 병원을 가보자고 했지만, 아내는 제때제때 알아서 건강관리하는 그런 여자가 아니었다. 알겠다고 하면서 침대를 뒹구는 게 옥이었다. 임신 판정을 받고 피검사를 하자 갑상선 자극 호르몬 수치가 높게 나왔다. 우리가 다니는 산부인과 의사는 종합병원 내분비내과에 가보라고 했다. 그제서야 옥은 병원에 밀려밀려 떠밀려 갔다. 수치만 안 좋다 하면 또 이 핑계 저 핑계 대면서 안 갔겠지만, 갑상선 수치는 낮고 갑상선 자극 호르몬 수치는 높으면 태아의 두뇌발달에 영향을 준다는 말을 듣자 그제서야 가게 된 것이다.
종합병원을 가자 거기 의사는 보통 이 정도 수치면 천천히 가라앉게 내버려 두지만 임산부의 경우는 약을 먹어야 한다 했다. 복용 후 2주 정도 지나고 다시 오라 했다. 그때 또 피검사를 해야 한다 했다. 옥은 어디서 찾아보고는 살이 급격히 쪘다면 아마 갑상선의 영향일 수 있다는 얘기도 했다. 옥은 그 얘기를 듣고 기고만장해져서 나에게 호령을 했다.
"거봐라. 내 탓이 아니다. 갑상선 때문이다."
나는 머리를 조아리며 아내에게 내 무식과 경솔함에 대하여 사과를 해야 했다. 그렇게 약을 꾸준히 먹자 수치가 좋아지면서 체중도 극적으로 빠졌다. 거기에 입덧까지 덧붙여서 밥을 먹지 않으니 심지어 웨딩드레스 입으려고 준비할 때보다 더 빠져버렸다. 한창 체중이 불어날 때면 좀 덜먹지 싶었었는데 이제는 뭘 드시기만 하면 내 기분도 좋아진다. 아 물론 배는 점점 나오고 있다. 살은 빠지는데 배는 볼록한 기이한 현상을 보게 된다. 육아대백과 사전에 보니까 지금은 나올 때는 아니라는데 아무튼 그렇다. 생명의 신비는 책으로 다 설명이 안되는 모양이다. 아내가 원숙한 ET 체형이 되어가고 있는데 이걸 가지고 또 왈가왈부하면 옥에게 불호령을 들을까 무서워 더 이상 말은 말아야겠다. 원자가 넓고 튼튼한 집에서 살 수 있다는 것에 위안을 삼기로 했다.
우리 원자는 아주 잘 크고 있었다. 사실 엄마 아빠가 늙어서 걱정을 좀 했었다. 아빠는 비록 정자왕이었지만 그래도 이왕이면 젊은 정자왕이 나은 건 당연했다. 고맙게도 우리 착한 원자는 꾸준히 자라주고 있었다. 5주에는 아기집을 봤고, 6주에는 심장소리를 들었다. 8주에는 조랭이떡 같은 모습을 보았고 12주에는 예쁘장한 뒤통수와 귀여운 엉덩이를 볼 수 있었다. 6주에는 3.6mm, 8주에는 1.5cm, 12주에는 6.5cm였다. 보통 아이들이 8주에는 1~2cm, 12주에는 6~7cm라는데 우리 원자는 딱 표준 사이즈였다. 키는 그래도 좀 더 컸으면 좋겠다. 초음파 영상을 본 아내가 '원자가 다리를 쭉 뻗었는데 엄청 길었어'라고 말했다. 나도 그런 것 같았다. 기대를 좀 해봐야겠다.
엄마가 그 와중에 태명을 '복돼지' 라고 하자고 했다. 그런 부르기도 어렵고 올드하고 기복 신앙적 태명은 옳지 않다고 생각해서 바로 거절했다. 단칼에 자르자 엄마는 좀 섭섭해하는 것 같았지만 내가 '엄마 셋째 낳으면 그때 복돼지로 합시다'라고 했더니 착한 척하던 할머니의 모습을 버리고 나에게 욕을 했다.
원자 심장은 아주 잘 뛰었다. 사람이 만나서 또 다른 사람을 만들어 낸다는 건 참 신기했다. 현대 의학이 발달한 건 아버지들에게 참 좋은 일인 것 같았다. 눈으로 아이의 모습을 보면서 아버지가 될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는 시간인 것 같아서 그렇다.
우리 장난꾸러기 원자는 우리에게 얼굴을 보여주지는 않았다. 엄마 등을 보면서 있었다. 목둘레도 잴 수 없게 숨어 있는 더 짓궂은 애들도 있다고 했다. 그래도 우리 원자는 검사할 수 있게 목둘레는 다소곳이 보여주되 얼굴은 감췄다.
"다음에 봐"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뒤통수와 엉덩이로도 충분히 원자에게 반했지만 한 달을 또 기다리라니. 시간이 빨리 갔으면 좋겠다. 이제 다음 달에 가면 성별도 알 수 있다.
이제 아내의 입덧도 조금씩 잦아드는 것 같기도 하다. 예전에는 항상 안 좋아서 결국 약을 먹었지만 이제는 약을 가끔은 약을 먹지 않고도 괜찮다.
"이제 괜찮은 것 같아"
하지만 이 말은 믿지 않기로 했다. 저 말만 하면 다음날 귀신같이 안 좋다. 보통 사흘에 한 번꼴로 안 좋다. 다만 이게 정말 안 좋은 건지 사흘에 한 번은 방심해서 아무거나 먹다가 안 좋아지는 건지는 궁금하다. 비싼 거 먹고 와서는 늘 괜찮았던 임상적 결과가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은 지난주에 했던 아내의 피검사 결과도 나왔다. 다행히 저위험군이라고 한다. 얼른 봤으면 좋겠다. 물론 원자도 엄마 닮아서 달면 삼키고 쓰면 뱉지 않을까 걱정되고 나를 얼마나 부려먹을까도 염려되지만 나는 얼른 두 명에게 고기를 구워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