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아내가 간밤 꿈 이야기를 해주었다.
개를 낳았다는 것이었다.
아내는 의사에게 이 강아지가 언제 사람이 되냐고 물어봤다고 한다.
아무래도 아스달연대기를 열심히 본 후유증인 듯싶었다.
애기 아니 강아지의 아빠는 누구냐고 물어봤다.
옥의 얼굴이 발그레해지는 걸 보니 나는 아니었던 것 같았다.
하루는 또 자다가 신음소리를 내는 것이었다.
나는 복통이라도 생겼나 해서 급히 물었다.
“무슨 일이야? 괜찮아?”
“나 목도 마르고 오른쪽 다리에 쥐도 났어.”
“......”
급히 달려가서 오렌지 주스 한 잔을 따라오고 저리다는 다리도 주물러 드렸다.
옥이 감동한 듯 말했다.
“자기는 왜 이렇게 다정해? 나 남편 너무 잘 만난 것 같어.”
“못생겨서 그래. 나도 먹고살아야지. 내 평생소원이 얼굴값 한 번 해보는 거야.”
“아니다. 자상한 게 더 좋다.”
늘 올곧은 우리 아내는 자기 정도면 괜찮게 생긴 거라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아무튼 옥은 기분이 좋아졌는지 나중에 재하에게 너희 아빠가 이렇게 잘해줬다고 자랑한다고 했다.
나도 무심하게 대답했다.
“아마 지 엄마 닮았으면 잘해주는 것보다 잘생긴 남자 더 좋아할 거야.”
재하가 잘생긴 남자를 만나려면 최소한 두 가지 중 하나는 갖춰야 했다.
집에 돈이 많든지 아니면 자기가 그 정도 미녀든지.
양가 조부모 및 일가친척을 포함한 우리 집 사정을 보면 돈이 많아질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그럼 자기가 어느 정도 예뻐야 하는데, 문제는 초음파 사진 속 재하가 나를 닮았다는 점이었다.
아이고...내 딸아....공부 열심히 하자
입체 초음파를 하는 날 드디어 우리 딸의 얼굴을 보는구나 하면서 병원에 갔다.
생각보다 더 설렜다.
거북이 꿈을 꾼 다음 로또를 사서 맞춰볼 때보다 더 두근거렸다.
모니터에 재하 얼굴이 나오는데 순간 ‘헐’소리가 절로 나왔다.
하관이 너무 나를 닮아있었다.
조류 부리 같은 구강 돌출형 하관이 이십몇 주밖에 안된 아기의 얼굴에도 뚜렷하게 보였다.
밤마다 외할아버지나 엄마 얼굴 닮게 해달라고 기도하면서 잤는데 상심이 컸다.
아무래도 공부를 열심히 시켜야겠다는 다짐마저 들었다.
아내는 딸이 아빠 닮으면 잘 산다고 괜찮다고 했지만 아무런 위로가 되지 않았다.
이미 나를 놀리고 있는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혹시 나만 그렇게 생각하나 했는데, 주변 의견도 다 비슷했다.
처가댁 식구들도 ‘아이고, 지 아빠 닮았네’ 하시고 우리 이모들도 ‘으하하, 너랑 똑같다야’라고 얘기하고 있었다.
내가 너무 걱정을 하니 한 선생님이 위로해주셨다.
“상우쌤, 너무 실망하지 마세요. 얼굴에는 눈이 제일 중요해요. 나와서 눈 떠봐야 알아요.”
....재하야 눈은 정말 아빠를 닮으면 안 된다.
아빠가 미안해서 벌써부터 눈물이 난다.
단 한 사람만 나와 닮지 않았다고 하고 있었다.
늘 꿋꿋하게 이상우는 잘생겼다고 주장하는 그 여인, 바로 우리 엄마였다.
“우리 아들이 이렇게 생겼다고? 아닌 것 같은데...”
그분께서는 상상 속의 아들과 실제의 아들 간의 괴리가 늘 크셨는데, 이번에도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그나저나 재하의 얼굴을 보고 걱정이 돼서 식음을 전폐한 나와는 다르게 아내는 잘 먹었다. 시간이 약이라는 말은 임산부에게도 통하는 말이었는지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아내의 입맛은 돌아왔다.
문제는 간식 위주의 식사였다.
pc방에서 먹듯이 매 끼니를 때웠다.
아침에는 시리얼, 점심은 튀김우동-볶음김치-사이다, 저녁은 짜파게티-볶음김치-콜라, 그리고 틈틈이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물 대신으로 오렌지 주스나 딸기 우유, 요구르트를 먹었다.
몸무게도 그다지 늘지 않아서 할 말도 없었다.
그나마 영양소가 걱정되어서 잔소리를 했더니, 이것마저 안 먹고 너의 딸을 굶기겠다고 협박을 했다.
날 닮은 우리 딸이 배를 곯으면 안 되니 어쩔 수없이 굽신거리며 사정을 해서 계란 프라이라도 하나 먹는 걸로 타협을 봤다.
임산부 당뇨를 조금 걱정하는 것 같기는 했는데 검사 결과는 아주 정상으로 나왔다.
그 후로는 더 기고만장해져서 한 손에는 요구르트 한 손에는 아이스크림을 끼고 살게 되었다.
야구장가서도....오로지 아이스크림....
재하는 한술 더 떴다.
그래도 아내는 비싼 걸 사주면 잘 먹었는데, 우리 딸은 단 거를 먹을 때만 반응했다.
우리 딸은 주로 요구르트, 아이스크림, 딸기 우유 같은 걸 먹어야 움직인다.
발 구름이 아주 경쾌한 것이 기분이 좋은 게 바깥까지 느껴진다.
한 번은 아내가 랍스터를 먹어봐야겠다고 했다.
나도 한 번도 안 먹어보기도 했고 장모님 생신이기도 하고 그래서 큰 마음먹고 좋은 호텔 식당을 가게 됐다.
재하는 그 비싼 게 뱃속에 들어가는데 가만있었다.
나중에 집에서 죠스바를 먹으니 그제야 발로 찼다.
딸의 입맛을 보며 앞날이 심히 걱정됐다.
치과를 자주 갈 것 같으니 보험을 들어놓아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헤헤...우리 딸 덕분에 이런 것도 먹어보고....이렇게 우리는 임신 8개월째를 맞이했다.
시간이 참 빨랐다.
얼른 가을이 되어서 엄마 닮은 딸을 보고 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