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스퍼트

35주~37주의 기록(서관면옥 방문기)

by 이상우

임신기간 막바지에 이르러서 우리는 맛집을 가열차게 찾아다녔다. 돈은 좀 없었지만 이때가 아니면 언제 놀까 싶었다. 원래 엥겔계수는 높았기에 별 티도 나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매일 소개팅하는 것처럼 온 수도권을 쏘다니며 밥을 먹었다. 먹는 양도 많이 늘었다. 입덧 기간 중에 워낙 못 먹어서 체중이 한동안 늘지 않았었지만 기어코 임산부 평균 무게 증가치는 막판에 맞출 모양이었다.



어느 날에는 명동교자를 갔다. 옥이 몇 달 전부터 노래를 하던 곳이었다. 아무래도 티브이에서 누가 먹는 걸 본 것이 분명했다. 뭐 칼국수가 큰마음 먹고 가야 할 만한 가격은 아니었지만 여건이 그간 맞지 않았다. 제주에는 보말칼국수가 있지만 명동칼국수는 없었다. 서울에 와서는 교통 때문이었다. 임산부를 데리고 한여름에 지하철 타고 버스 타고 명동을 가기는 좀 그랬다. 재하가 나올 때가 다가오자 우리는 큰 마음먹고 명동성당에 주차하기로 했다. 신부님과 수녀님에게도 미리 말해놓지 않으면 돈을 받는 곳이었다.



명동교자의 순환시스템은 여전히 효율적이었다. 백 대표님이 좋아하실 단출한 메뉴 구성, 종업원들의 자신만만한 손님 응대, 선 제작 후 주문 체계, 이 삼박자가 어우러져 음식은 시키자마자 앞에 나왔다. ‘빨리빨리’를 더 이상 구체적으로 표현할 수 없을 것 같은 광경이었다. 아무튼 우리야 칼국수와 만두가 후딱 나와서 좋았다.



문제는 재하가 몸부림을 치는 것이었다. 명동칼국수는 특유의 마늘향 진한 김치와 먹어줘야 제맛인데 태아가 먹기에는 쉽지 않을 맛이었다. 아내가 말하길 재하가 온몸으로 배를 밀고 있다고 했다. 만져봤더니 그랬다. 35주의 태아는 손발 머리 등등을 모두 동원해서 심술을 부리며 마늘김치를 거부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런 거 먹을꺼냐....이런 식으로 나올 테냐....” 하는 느낌이었다.

나였으면 바로 마늘 김치 먹는 걸 멈췄을 텐데 재하 엄마는 이정옥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몇 달을 벼르고 온 것이었다.

“다 세상 사는 매운 맛이라고 생각해. 세상살이가 쉬울 것 같아?”

이런 피가 되고 살이 되는 말을 딸에게 해주며 옥은 끝까지 마늘 김치를 꼼꼼하게 먹었다.



재하는 한동안 꼼짝하지도 않았다. 뭔가 삐진 것이 분명했다. 주관이 이토록 뚜렷한 아기라니. 두 여자 틈에서 살아갈 내가 안쓰러워졌다. 하지만 삐진 재하는 후식으로 팥빙수를 먹자 기분이 풀린 것 같았다. 뾰로통해서 팔로 퍽퍽 치던 재하는 콩콩거리며 뱃속을 돌아다녔다. 웃음소리가 배 바깥까지 들렸다. 재하는 아빠 닮아서 먹을 거에 약한 쉬운 아기였다.


팥빙수.jpg 이런 것만 먹으라고!!


또 다른 날에는 요즘 뜬다는 냉면집인 교대역의 서관면옥을 갔다. 그동안 평양냉면 하면 왠지 고고한 미식가분들이 드시는 것이고 나 같은 초딩 입맛은 비빔면이나 먹어야 할 것 같았다. 그런데 티브이에서 보니 평양 사람들도 식초 때려 넣고 겨자 팍팍 뿌려 먹는 걸 보고 자신감을 얻었다. 아무렇게나 먹어도 주변에서 비웃지 않겠구나 하고 말이다. 서관면옥에는 하루 20개 한정으로 파는 점심특선메뉴가 있었다. 블로그나 카페에서 찾아보니 냉면 외에도 고기나 무침이나 후식 류 같은 걸 얹어준다고 하였다. 우리는 기회가 되면 이걸 먹어보자고 했다.



병원에서 오전 진료를 받고, 재하는 머리가 약간 크지만 뱃속에서 잘 지낸다는 소식과 함께 냉면집으로 향했다. 시간이 애매해서 다른 곳을 갈까 하면서 길가에서 약간 망설이고 있었다. 저 멀리에서 택시가 다가오자 갑자기 아내는 날 밀어서 차 안으로 구겨 넣었다. 나를 택시에 강제로 태운 후 아내는 기사님께 외쳤다.

“서관면옥이요!”

“네? 거기가 어딘데요?”

“교대역, 교대역! 교대역이요!!”

“아...네...그런데 여기서 타셨네요.”

우리가 탔던 위치는 교대역 가는 방면과 반대였다. 방향을 바꾸려면 멀리서 돌아야 해 몇 천 원 이상 더 붙기에 보통 길을 건너 타든지 한다. 하지만 우리 옥은 마음이 급한지 일단 타고 본 것이다. 아내 눈에 불이 나는 것을 보고 ‘아니 왜 여기서 탔느냐’는 둥의 토다는 것을 멈추었다. 잘못하면 그 일렁이는 욕망의 화염이 나를 태워버릴 수도 있을 것 같아서였다. 섶을 지고 불속에 뛰어드는 걸 나는 제일 싫어한다.



냉면집에 도착했을 때가 11시 10분. 우리는 잘 하면 점심특선을 먹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다. 가게 여는 시간은 11시 30분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곧 알게 되었다. 점심때 맛집 찾아다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를. 우리가 받은 번호는 대기번호 16번이었다. 그리고 눈앞에는 점심특선을 먹을 수 있는 승리자 20명과 우리를 포함한 패배자 30여 명이 있었다.



대기번호 16번은 제시간 밥상에 간신히 앉을 수 있는 번호였다. 우리 뒤에도 사람들이 구름같이 몰려와 좀비 떼처럼 가게 앞에 줄을 서 있었다. 가끔 문이나 창문을 두드리는 사람이 있었는데 밥을 빨리 먹으라는 협박성 수신호 같았다. 옆자리 손님들에게 면상이 나오는 걸 보며 우리는 조용히 주문을 했다.

“혹시 면상은 안 되죠?”

아내는 살짝 부끄러움과 일말의 미련 및 희망을 첨가한 질문을 매니저님에게 했다.

“아 오늘을 다 마감되어서요.”

“평양냉면이랑 골동냉면 주세요.....”

먹는 내내 아내의 눈은 옆자리 어르신들의 특선요리에 가 있었다. 그 분들은 서관면상을 먹는다는 자부심에 허리도 꼿꼿하게 세우고 식사를 하셨다. 부족하면 수육을 시킬까 하는 내 말은 아내에게 들리지 않는 모양이었다. 분명 가자미눈을 하고 면을 집어넣는데, 입에 정확히 들어가는 것이 신기했다.



냉면집에서 나올 때 옥은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한창 더운 날 옆에 치솟는 불덩이가 있으니 환장할 노릇이었다. 아내는 한 마디만 덧붙였다.

“다음에 또 가자.”



일주일 뒤 병원 예약은 9시 반에 잡았다. 나에게는 차를 준비 시켰다. 그간에는 주차가 귀찮아 지하철을 타고 다녔는데 그 날에는 신속하게 행동해야 했다. 보통 병원을 갔다가 점심을 먹으러 가는 것이지만 그날은 밥을 먹기 전에 준비 운동으로 병원에 가는 분위기였다. 재하가 여전히 건강하다는 말은 귓등으로 흘려듣고 서관면옥으로 향했다. 그때가 10시 15분, 도착하니 10시 반이었다. 아직은 비어있는 가게 앞 주차장에 차를 댄 순간 이미 다른 일행들이 들이닥쳤다. 후다닥 차에서 내려 문 앞에 줄을 섰다. 지배인으로 보이는 분이 번호표는 11시부터 나눠준다고 하셨기 때문이다. 음식을 먹기 위해 기다리는 게 아니고 대기표를 받기 위해 줄을 서다니. 돈은 이렇게 벌어야 하는 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우리 뒤에도 사람들은 계속 들어오고 있었다. 기다리기 심심하니 서로 통성명도 하고 그랬다. 우리가 제일 어렸다. 보통 어르신들이나 아주머니 모임들이 많은 것 같았다. 그냥 서 있으면 햇볕에 너무 더우니 대기하는 사람들끼리 번호표를 만들까 도 얘기했다. 그렇지만 오늘은 임산부에게 꼭 점심특선을 먹여야 했기에 어떠한 시비도 없어야 했다. 그래서 그런 임의의 편법을 만들기보다는 정석적인 30분 서서 기다리기를 택했다.


기다리는 마음.jpg 기다리는 마음...


우리는 1번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내가 1번이었다. 옥은 저기 그늘에서 모바일 게임을 하고 있었다. 아무튼 평생에 앞자리라고는 앉아 볼일 없던 내가 아내 덕분에 1번을 하고 있다니. 수업 시간에 뒷자리 앉기 위하여 일찍 가던 나였다. 열한시가 다가오자 대기표를 받을 때 ‘냉면이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같은 질문을 받지 않을까 긴장이 절로 되었다. ‘냉면은 오랜 기다림이지요.’라는 대답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나마 나는 첫 번째라 별생각이 없었지만 뒤에 있는 사람들은 대기자들의 숫자를 세며 ‘점심특선을 먹을 수 있는 경우의 수’를 따지고 있었다. 가끔 미리 와서 기다리던 사람들의 일행이 늘어나는 걸 보며 뒷사람들은 장탄식과 함께 일주일 전 우리가 지었던 표정을 짓고 있었다. 짜증 한 스푼, 절망 한 스푼, 빡침 두 스푼 정도.



1번.jpg 이렇게 온다...세상에 1등이라니


드디어 서관면상을 받을 수 있었다. 대기표를 받을 때 미리 주문을 받기에, 일주일 전 허리 꼿꼿하신 분들에게 주문을 안 했는데도 밥상이 술술 나오던 것에 대한 비밀이 풀렸다. 맛은 괜찮았다. 무엇보다 이 점심특선은 승리의 자부심으로 먹는 것이었다. 면이 심심하게 느껴질 때면 옆자리 한 번, 바깥사람들도 한 번 보았다. 양념이 따로 필요 없었다. 옥도 무척이나 만족한 표정이었다. 차림 사진을 다섯 장씩 찍고 있었다. 나오며 아내는 한 마디를 덧붙였다.

“다 이루었다.”

아 그리고 재하는 평양냉면 같은 거에는 관심 없었다. 끝나고 먹은 요구르트를 더 좋아했다.


서관면상.jpg 이게 서관면상


집에 와서 자랑을 하니 엄마가 밖에서 맛난 것 먹으면 자기 생각이 안 나냐고 물었다. 나는 당연히 난다고 했다. 엄마는 역시 우리아들이라며 감동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이것도 먹어봤는데 안 드셔봤지?’ 하고 놀릴 생각에 설렌다고 했다. 그랬더니 ‘xxxx’라고 욕을 했다.



그리고 아기다리고기다리하던 37주가 왔다. 이제는 아무 때나 나와도 된다. 이때를 위해서 병아리를 품는다고 몸 고생 마음고생을 했던 아내에게 박수를. 그리고 시중드느라 나름 애쓴 나에게도 적당한 박수를 보낸다. 사실 시작도 안 한 건데.



마음의 눈으로.jpg 재하사진 없으면 섭섭하니까....마음의 눈으로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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