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하야 재하야 고개를 내밀어라

38주~39주의 기록

by 이상우

우리 재하는 38주가 지나도 아무 소식이 없었다. 반 이상의 아기들이 그때쯤 되면 세상구경을 하러 나온다는데 우리 딸은 잠잠했다. 때 되면 밥 주고 맨날 놀아도 되고 청소 같은 건 안 해도 되는 엄마 뱃속 독방생활이 마음에 들은 것 같았다.


하지만 40주 예정일이 다가와도 기미가 없자 조금 불안해졌다. 언제 나올지 모른다는 긴장이 계속되자 아내는 말할 것도 없고 나도 두통과 근육통에 시달렸다. 그래서 우리는 39주 진료를 받으러 갔을 때도 낌새가 없으면 40주 되는 날 제왕절개 수술을 하자고 미리 상의를 했다.

재하야 재하야 고개를 내밀어라.
나오지 않으면 끄집어 내겠다.

이런 주술적 노래도 불렀지만 소용이 없었다.


병원에 가자 주치의 선생님이 자궁이 0.5cm밖에 열리지 않았다며 41주까지 기다려보자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41주까지 기다렸다가 유도 분만해도 나오지 않아 결국 수술하게 되는 경우가 주변에 꽤 많았었어서 그냥 예정일에 수술을 하겠다고 말했다. 다행히 원하는 시간에 수술방 자리가 있어서 편하게 출산 일정을 잡을 수 있었다.

우리가 재하에게 뱃속 퇴거 최고장을 보내자 재하는 비상이 걸린 것 같았다. 갑자기 뱃속을 걷어차고 난동을 피웠다. 통보가 무척 불쾌했었나 보다. 나올 것 같은 느낌이냐고 물어보니 그냥 행패 부리는 것 같다고 아내가 대답했다. 아기에게 빈정 상한 옥은 재하가 발로 배를 밀어 대자 질 수 없다며 손으로 꾹꾹 눌렀다. 그리고 이것저것 마구 주워 먹으며 재하 집을 비좁게 만들었다.


재하는 밤에도 계속 굴러다녔다. 하도 움직이자 진통이 시작된 건가라고도 생각했지만 별 소득 없는 태동이었다. 아무래도 여기를 나갈 수 없다며 춤을 추며 시위를 하는 모양이었다. 그래놓고 낮에는 피곤해서 자는지 잠잠히 있었다. 나는 구 남친마냥 재하에게 ‘자니?’하고 말을 걸었지만 대답은 없었다.


어쨌든 오지 않을 것 같던 시간이 48시간도 안 남았다. 이제는 뱃속 아기에 대한 글이 아니라 주민등록번호도 있는 어엿한 재하에 대해 쓸 수 있겠지. 그날 기분이 어떨지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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