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재하가 밤마다 운다. 열시면 먹던 분유 회사가 부도난 마냥 대성통곡을 한다. 그래서 나도 좀 울었다. 찾아보니 50일 후반부부터 온다는 ‘원더웍스’기간이라고 한다. 아니 나도 요새 곧 다가오는 사십 대의 무게에 짓눌려서 늘 울 것 같은데 참고 산다. 그런데 쟤는 울면 달래줘야 되고 나는 울면 꼴 보기 싫어지는 현실이 서글퍼서 더 눈물이 났다.
재하는 사실 눈물이 별로 없었다. 배가 고플 때와 배가 아플 때만 울었다. 주사 맞을 때도 ‘잉~’ 하고 끝냈다. 그래서 도대체 배가 고픈 건 얼마나 슬픈 건지 그때마다 궁금했다. 이처럼 웬만해서는 울지 않던 딸이었기에 처음에 울 때는 그냥 좀 안아주면 되지 않을까 안일하게 생각했다.
평소에 재하는 아빠를 운송수단이라 여기며 늘 올라탔다. 그리고 내 어깨 위에 있을 때 얌전했다. 제 엄마는 잘 안아주지 않을뿐더러 생떼도 통하지 않았기에 늘 착한 미소를 짓고 있다가 나를 보면 사장님이 직원을 바라보는 표정을 하며 ‘어서 나를 안지 않고 뭘 하느냐...’라는 메시지를 손짓 발짓 음성으로 보내곤 했다. 늘 딸(갑)과 아내(을) 앞에서 ‘병’에 불과한 나는 팔이 부스러지도록 딸을 안고 크지도 않은 집안을 돌아다녀야 했다. 허구한 날 재하는 나를 보며 옹알이로 찬송가를 불러댔다. ‘(나를 안고) 일어나~♩(나를 안고) 걸어라~♬’ 이런 가사였다.
매일 이 위에 계신다
그래서 엊그제 재하가 갑자기 오열을 하길래 ‘좋게 말해도 될 것을.. 신종 갑질 하기는...’이라 투덜거리며 안았다. 그래도 더 크게 울어대는 것이었다. 당황하며 흔들거림 효과를 주려고 다이아몬드 스텝까지 밟아가며 돌아다녀도 그치지를 않았다. 아내가 이리 줘보라 하기에 건네주었더니 조금 있다가 응가를 크게 했다. 배가 아파서 그렇게 크게 운 것 같았다. 굉장히 미안했다. 배 아파서 화장실 가야 하는데 누가 자기를 안고 흔들어대면 울화가 치미는 건 당연했다. 나였어도 눈물이 날 일이었다. 해결을 하고도 더 울어대길래 배변의 여운이 아직 남아있나 보다고 단순히 생각했었다.
어제도 열 시가 되자 또 울었다. 또 응가가 마려 운가 싶어 친구 만난 강아지 마냥 엉덩이에 계속 코를 대고 있었다. 하지만 기미는 없고 재하는 김장훈 빙의가 된 마냥 목을 꺾어대며 울었다. 딱히 방법이 있지는 않아서 또 안으려고 다가갔다. 재하는 왜 이제 왔냐며 내 목을 물고 귀에다가는 김장훈 모창을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인 우는 딸을 안고 돌아다녔다. 그러다 힘이 너무 들어 침대 끄트머리에 앉았다. 그 건너편 화장대에는 가습기를 틀어 놓았는데, 재하는 그게 신기한 모양이었다. 딸이 한동안 뿜어져 나오는 수증기를 구경하는 틈에 한 5분 정도 쉴 수 있었다.
“엄마 아빠 코에서 뿜어져 나오는 김은 안보이니....” 조용히 읊조렸다.
약발은 오래가지 않았다. 다시 재하가 울어대자 아내가 받아 젖을 물렸다. 잠깐 오물거리다 안 먹겠다며 곡을 했다. 아내는 한숨을 쉬며 다시 나에게 딸을 건넸다.
“자식은 부모의 봄날을 먹으며 큰다는데 나는 봄날이 다 지나서 다행이야.”
“그렇지. 한 늦여름쯤 되려나. 근데 얘 때문에 인생의 가을은 빨리 오겠다.”
늙어가는 엄마 아빠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재하는 자지러지고 있었다. 나는 일말의 희망을 걸고 재하를 안고 가습기 옆에 앉았다. 그동안 까먹었지 않았을까 했는데, 재하는 태어난 지 두 달이나 되는 자기 무시하냐며 더 울부짖었다. 나는 가습기에 인체에 무해한 빨간 물감이라도 좀 타볼까 하다 헛소리하지 말라며 아내에게 욕을 먹었다.
여간해서는 잘 울지않는데....
티브이를 켜면 나아질까 했지만 틀기가 좀 그랬다. 사방의 연구결과가 티브이를 너무 어려서 보면 두뇌 성장이 느려지니 어쩌니 하도 말이 많아서였다. 실제로 나도 어려서 티브이를 많이 봤더니 스무 살 넘어 공부에 대한 의욕이 떨어 지고 학업성취도가 현저히 느려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영유아 조기 티브이 시청 덕분인지 서른 중반이 되어서야 취직을 했고 말이다. 안 그래도 우리가 가끔 티브이를 보고 있으면 재하도 덩달아 넋 놓고 보고 있길래 화들짝 놀랬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벌써 우는 아기 달래려고 티브이를 틀 수는 없었다. 그 와중에 재하는 아예 이제 경기를 하려고 하고 있었다. 다행인 점은 우리가 살고 있는 집은 층간소음이 별로 전해지지 않았다. 이 좁고 오래된 집의 몇 개 되지 않는 장점이었다.
우는 건 좋은데 왜 우는 지나 알고 싶었다. 생후 60일 조금 넘는 아이에게 합리적인 것을 바랄 수는 없지만 납득이란 것을 하고 싶었다. 하나 깨달은 것이 있다면 처음 겪는 이 극한 인내 체험을 견디게 하는 것은 사랑이 분명했다. 사랑이 아니면 이렇게 참을 수 없었다. 십 수년을 연애하며 느꼈던 사랑이 무엇이 길래 이토록 가슴이 아프니, 눈물로 베개를 적시니, 다시는 사랑하지 않겠다니 했던 모든 것이 허무해졌다. 이제야 ‘사랑은 언제나 오래 참고...’라는 성경 구절이 조금 이해가 되었다.
티브이 대신에 침실 불을 켜자 재하는 조금 나아졌다. 어디서 읽은 바로 9시면 불 끄고 취침 교육을 하래서 불을 다 꺼버리고 살았는데 아무 소용없었다. 밤은 지루한 거라는 의미를 알려주고 싶었지만 재하가 못 알아들은 모양이었다. 교육은 무슨... 항상 느끼는 거지만 이론과 실제는 차이가 많이 난다. 그렇다고 너그러운 마음만으로 아기를 키우는 것도 쉽지 않다. 안아줘도 안아줘도 딸이 더 안아달라고 징징거릴 때면 ‘이때 아니면 내가 언제 안아주나’라는 생각도 들지만 그런 휴머니즘적 마음가짐으로 접근하기에 육아는 너무 실전이었다. 원더윅스 달력에는 70일이 되면 좀 나아진다고 라고 표시되어 있었는데 그때도 밤에 실랑이가 벌어지면 그냥 티브이를 틀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오늘도 열시는 오고 있다. 몇 시간 남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