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개월 인생

애착기를 시작하는 딸

by 이상우

아이가 5개월이 되기 시작하니 머리 돌아가는 게 제법 보인다. 아빠가 자고 있더라도 자기가 이 사람을 깨우면 말 타기를 할 수 있다는 것을 안다. 내 뺨을 때리든지 얼굴을 침범벅 만들든지 해서 일으키고 난 뒤 나에게 옹알이로 의사를 전달한다.

“으으으~ 아아아~”(아빠, 좋은 생각이 났어. 날 안고 나가는 거야)

눈을 반짝반짝거리면서 말을 한다.


이재하의 힘은 갈수록 좋아졌다. 카우보이마냥 안긴 팔 위에 서겠다고 난리였다. 그뿐이 아니라 자기를 앞으로 가마 태우듯이 안으라며 몸을 홱홱 돌려댔다. 주변에서 하도 공주처럼 떠 받들어 줬더니 그냥 안긴 것으로는 성이 안 차는 것 같았다. 들어주지 않으면 심한 옹알이를 했다. 대충 들어도 그건 안 좋은 소리였다. 나는 벌써부터 자식에게 욕 들어먹기 싫어 몇 번 그렇게 안아줬더니 허리가 또 고장 났다. 보험금 신청서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다시 병원에 가야 했다.



가마타기.jpg 이렇게 안으라고...


뭘 쥐는 것도 멈추지 않았다. 엄마의 머리카락은 1순위였다. 아주 즐거워했다. 아빠 머리카락은 소중한 걸 알아서였는지 주로 목덜미를 잡았다. 가끔 목젖을 잡았는데 '컥'소리가 절로 나왔다. 그 외에도 쇄골, 눈썹, 귀밑머리 등 아픈 급소는 어찌 알고 다 잡아댔다. 어디서 듣기로는 아기가 본능적으로 손에 쥐려고 하는 게 포유류 진화의 증거라고도 한다. 인류가 털북숭이였던 시기에 엄마 위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엄마 머리나 털을 잡았다나.


머리카락.jpg 엄마 머리카락과의 즐거운 한때


아내는 이런저런 검색을 해보더니 나에게 말했다.

“자기야, 5개월 아기는 오감발달 놀이를 해야 한대.”

“그럴 필요 뭐 있어. 우리가 맨날 옆에서 떠들어대서 자극 엄청 받을 걸?”

“그렇게 떠들고 안아만 줘서 기분만 좋으면 뭐하냐. 뒤집기도 못하잖아!!”

“.... 덕분에 정서는 엄청 발달했잖아.”


딸은 뒤집기를 못했지만 되집기는 잘했다. 운동하라며 엎드리기를 시키면 몸을 옆으로 굴려 발라당 누워버렸다. 그래 놓고 엎드리면 다시 귀찮아지니 뒤집기는 하려고도 안 했다. 이래 놓고 자기를 안아주지 않고 내가 옆에 누워만 있으면 아빠를 잡고 거의 일어나려고 했다. 이리 보면 뒤집기는 일부러 하지 않는 것이 틀림없었다. 아예 뒤집을 필요성을 느끼지도 못하는 것 같았다. 나를 닮은 것은 얼굴뿐이 아니었다. 게으른 것도 똑 닮았다.


뒤집기는 못하지만 정서가 과잉 발달한 우리 딸은 눈치 주는 법을 어느새 알았다. 거의 유일하게 재하가 혼자 있을 때는 우리가 밥 먹을 때였다. 한 10분은 물끄러미 우리를 쳐다보며 참아줬다. 그러다 곧 뱁새눈을 하고 빨리 먹으라고 압박을 했다. 귓가에 ‘손 보인다 손 보여!!’를 외치던 훈련소 조교 목소리가 들렸다. 지가 분유 드실 때는 예민했다. 하도 안 먹겠다고 거부를 하길래 내가 ‘하~ 지지배 겁나 안 먹네 정말’이라 했더니, 자기 흉보는 건 어찌 알았는지 눈치 주지 말라며 불만 가득한 얼굴로 잔소리 같은 옹알이를 30분씩 하곤 했다.


젖 먹을 것도 어느새 지능적으로 먹는다. 평소에는 분유보다 당연히 모유를 선호한다. 그런데 이젠 잠이 올 것 같은 시간 즈음에는 젖 먹는 걸 슬슬 피한다. 엄마 젖을 물면 자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인지 젖을 물리려고 하면 짜증과 함께 거부한다. 순순히 물때도 있지만 대개 그때는 실패한다. 혹시 재하가 잠드는 게 아닐까 하며 일말의 기대를 가졌던 우리는 차갑게 식어간다. 딸을 재우고 맘 카페를 갈 생각에 두근거렸던 아내는 재하가 젖 먹튀를 했다며 분을 낸다. 자정이 가까워오는 시간에 젖 먹튀를 하고는 당당히 나에게 자기를 안으라며, 그리고 나가서 놀자며 아빠 뺨을 찰지게 쳐대는 딸을 보면 할 말이 없어진다.



즐거움.jpg 항상 즐거운 재하의 하루


그래 놓고 엄마는 소중한 것 같았다. 어제는 아내가 하루 종일 외출할 일이 있었다. 오전 열 시쯤 나갔는데 처음 한 시간은 나랑 가마 타기 놀이하면서 잘 놀았다. 배고프다고 하는 것 같아서 분유병을 물렸더니 대성통곡을 시작했다. 평소에는 집에 엄마가 없는 것 같으면 눈치껏 분유도 잘 먹었는데 어제는 달랐다. 엄마가 보고 싶은지 장장 한 시간을 울었다. 이렇게 우는 걸 본 적이 없는 나는 당황했다. 안아도 보고 사정도 해보고 ‘이놈!!’도 해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더 크게 울었다. 집 밖으로 나간 사람에게 육아 얘기를 하지 않는다는 불문율도 어기고 아내에게 전화도 했다. 영상통화라도 하면 재하가 좀 나아질까 봐서 그랬다. 아내는 들어오겠다고 했지만 그러지는 말라고 했다. 다음에 나도 들어와야 할 수도 있어서였다. 어이없는 것은 딸을 달래느라 안으면 얘가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도 가마 타기를 하겠다고 몸을 돌려댔다. 그 와중에도 자기 챙길 건 다 챙겨가는 걸 보고 재하가 엄마가 보고 싶어서 우는 것만은 아닌 것 같았다. 내가 자기를 만만히 보는 것 같아 한 번 군기 잡은 것이 아닌가 하는 합리적 의심이 들었다.


찾아보니 5개월 즈음되면 주 양육자, 특히 엄마와 1차 애착관계를 형성한다고 한다. 재하가 엄마 찾으며 대성통곡했던 것은 그 전조였던 것 같다. 아빠 입장에서는 나도 옆에서 24시간 붙어있는데 아빠 없다고 울진 않으면서 엄마 없다고 우는 게 조금 섭섭하기도 했다. 그래도 두세 돌 넘어가면 아빠 많이 찾는다니 기다려봐야겠다. 거기서 몇 년이 지나면 모든지 다 사주는 큰 이모가 좋겠지. 그리고 또 시간이 흐른 다음에는 BTS 비스무리한 오빠들 쫓아다니지 않을까 싶다.



이유식.jpg 잘 먹는다...


이런 이재하가 오늘부터 이유식을 시작했다. 우리는 긴장하고 먹였는데 생각보다 잘 먹었다. 예전에 우리 밥 먹을 때 뱁새눈을 한 것은 자기도 한 입 달라고 했단 뜻이었나 보다. 조금은 어른이 된 우리 딸이 잘 먹으니 섭섭함이고 뭐고 내 기분이 너무 좋았다. 자식 입에 뭐가 들어가는 게 이렇게 기쁜 일이었다니. 이렇게 재하를 보면서 부모의 마음을 알아갔다. 자식이 요구하면 전부 다 주고 싶은 그런 마음. 문득 엄마도 이 부모의 마음을 오래간만에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그런 의미에서 돈 좀 보태 달라고 전화했더니 먹고 죽을 것도 없다며 욕을 먹었다.